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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가 농사도 잘함-7화 (7/199)

7화 농업혁명의 시작(1)

7화 농업혁명의 시작(1)

고양성이 차명을 거두었으나 세상사가 그렇게 돌아갈 수는 없다. 그래서 그냥 차명을 도입했다. 이게 별 건 아니었다. 내가 하는 일인데 다른 사람의 명의를 사용하면 그게 곧 차명이었다.

대체 이게 무슨 말이냐면 대충 이런 상황이었다.

-아니, 폐하께서 꼴도 보기 싫은 똥오줌을 모두 치워주신다고?

-어디 그뿐이겠나? 측간도 다 치워주신다고 하셨네.

-이럴 수가 있나. 내가 살다 살다 똥오줌 때문에 눈물까지 흘리게 될 줄은 몰랐네.

-그거 콧물일세.

-거참. 내가 눈물이라면 눈물이지 왜 자네가 뭐라고 하나?

-알겠네. 그나저나 이래서 사람은 오래 살아야 하는 거야. 똥오줌을 치워주는 폐하를 다 만나다니 말이네.

-그렇지. 이건 정말 좋은 일일세.

내가 치우는 건데 다들 고양성 만세를 외치고 있다.

그러니까 다들 좋아하는 건 고양성 명의였고

“허. 정말 가능하다는 겁니까?”

미친놈 취급을 받는 일은 내 명의였다.

가자미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사람은 얼마 전 돼지 사육을 물어봤다고 나를 마음껏 비웃었던 승려 혜자였다.

“소승은 평생 들어보지 못한 일입니다.”

“내가 생각해낸 것이니 대사가 들어볼 수가 없지요.”

“대인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늘 큰 성공을 보이셨으니 의심하지는 않습니다만 우려는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려하지 않으셔도 되오. 그러면 정리하지요.”

혜자의 표정이 애매하긴 했으나 더 토를 달지는 않았다.

나 역시 길게 말하지는 않았다.

“우선 똥오줌을 옮기는 일을 처리해야겠지요?”

“그렇습니다. 대인. 이는 잘 준비해야 합니다. 평양 도성이 난리가 났을 정도이니 말입니다.”

보기에 따라서 사람들이 과하게 흥분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이건 정말 흥분할 만한 일이었다.

일찍이 고나리질을 좋아하는 소크라테스가 아내에게 ‘너부터 자신을 좀 알지? 정신 차려.’라고 역관광 당한 뒤 가출한 적이 있다. 하지만 충격을 받았는지 멀리 가지는 않고 집 앞에 앉아서 차분하게 자신을 되돌아볼 때 화가 덜 풀린 아내가 요강을 정조준하여 쏟아버린 일이 있었다.

남의 집 부부싸움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 서양에서는 창밖으로 똥오줌을 그냥 투척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고구려에서 그랬다가는 맞아 죽는다. 자고로 내가 더러우면 남도 더러운 것이다.

물론, 거리에 오물이 있긴 한데 노상 방뇨가 불법이라도 근절되지 않은 건 현대도 마찬가지였으니 패스하자.

평양도성에는 구덩이를 파서 운영되는 공용화장실이 몇 군데 있었다. 왕궁에는 곧장 하천으로 흘러가는 ‘수세식 화장실’이 있지만 대부분 공용화장실과 따로 집 마당에 구덩이를 판 개인 화장실을 사용했다.

주요 타격 화장실은 바로 이곳이었다.

혜자가 천천히 말을 시작했다.

“관청에 의하면 1,500여 명을 기준으로 1년마다 오물을 치우고 있습니다.”

똥오줌이라는 건 방치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이를 전담하는 관청도 있을 정도였다.

어쨌든 이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1,500여 명이 사용하는 화장실의 구덩이를 비우는 주기가 1년이다. 1년 내내 악취가 도성 전체에 자욱하게 뻗어 있다는 말이었다. 아무리 먹고 사는 게 어려운 시절이라고 할지라도 악취를 좋아할 수는 없다. 아니, 애초에 이런 지독한 악취는 적응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데 왕이 똥오줌을 1년간 모아놓는 게 아니라 바로바로 치워준다고 하니 싫어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더욱이 집에서 따로 사용하는 개인 화장실도 정리해준다고 한다. 미친 듯이 환호할만한 사안이었다.

자고로 청결을 선호하는 건 인간의 본능인 법이다.

“대인. 도성에서 하루에 나오는 똥오줌이 300석에 육박합니다.”

혜자가 승려이긴 한데 업무 장악력이 상당히 뛰어났다.

괜히 근왕파의 실세이자 핵심으로 자리 잡은 게 아니었다.

그리고 하루 똥오줌이 300석이나 나온다는 건 하루에 확보할 수 있는 비료가 300석이라는 것이다. 이건 너무나도 좋은 일이었다.

“막대한 인력이 필요한데 홀로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오. 설마 고구려 최고 귀족인 나를 믿지 못하오?”

“······그저 우려한 것에 불과합니다. 아니, 대인. 왜 이렇게 날카로우십니까.”

“아. 미안하오. 한데, 뭘 우려한다는 것이오?”

“실패하면 엄청난 후폭풍이 발생할 겁니다. 잠시나마 악취에서 벗어났는데 며칠 안 가서 다시 악취가 나타나면 불만이 폭발할 것이니 말입니다.”

“걱정하지 마시오. 무조건 성공하니까.”

사실 홀로 추진하는 일이긴 한데 내가 근왕파의 수장이었다.

그러니 자연스레 근왕파의 인물들이 결합할 수밖에 없는데, 이번에 딱 잡힌 건 혜자였다. 똑똑하고, 아는 것도 많고, 동원할 수 있는 인력도 제법 되었기에 바로 간택한 것이다.

“알겠습니다. 소승이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내 말을 잘 들으시오. 수레마다 똥오줌을 가득 담아서 도성 밖 외곽으로 옮기시오. 물론, 구덩이는 미리 파둬야 할 것이외다. 아. 적을 것이오?”

“물론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좋은 생각이오.”

지금부터가 중요했다.

아무리 인분으로 비료를 만든다고 할지라도 다 기술이 필요하긴 했다.

그러니 지금 할 수 있는 방법을 머릿속에서 꺼내는 게 가장 중요했다.

“절대 생똥을 그냥 사용해서는 아니 될 것이오. 자칫 잘못했다가는 똥독 오르니까.”

“물론입니다. 똥독은 사람의 손발을 상하게 하니 경계해야지요. 이번에 동원되는 승려들도 이를 제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자비를 베풀어주실 것이외다.”

“그런 부처님이 있으면 소승 좀 소개해주시지요.”

“혼자만 알고 있을 것이오. 계속합시다. 미리 준비한 구덩이에 똥오줌을 넣은 뒤 썩힌 곡물 껍질과 함께 섞어야 하오.”

“곡물 껍질은 어떤 걸 사용합니까. 자세히 설명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풀뿌리를 햇볕에 말려 태운 재와······.”

인분이 훌륭한 비료로 거듭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중화시키지 않으면 ‘독극물’이었다. 사람도 똥독이 오르듯 작물도 그냥 죽어버린다.

“그런데 비를 맞으면 허사가 되니 주의해야 하오.”

“지붕이 있는 분옥이라도 만들어야 하겠군요. 맙소사. 이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참으로 좋은 생각이오. 비용은 내가 다 보탤 것이니 그냥 하시오. 인력도 얼마든지 동원하시오. 내가 다 책임질 것이오. 아니, 왕씨 가문에 있는 모든 걸 사용하시오.”

“대인의 결단에 소승은 그저 감탄할 뿐입니다.”

“이런 건 왜 안 적소?”

“소승의 마음에 적었습니다. 부처님께 꼭 전할 것이니 심려치 마시지요.”

“내가 따로 만나서 전하리다. 어쨌든 대사. 잘 새겨야 하오. 이 일을 잘 수행하면 수확량은 물론이거니와 휴한지가 급격하게 줄어들 것이외다. 아시겠소?”

“가능하다면 고구려는 환골탈태하겠군요. 사시사철 오곡이 풍성하게 익은 고구려라니. 생각만 해도 설렙니다. 부처님께서도······.”

안 들었다.

비료에도 종류가 많고 때가 있지만 이건 천천히 하기로 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걸 집행하면 서로 기운 빠진다.

지금은 이 정도만 해도 폭발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장담했다.

“그리고 석회도 설명하리다.”

“음. 한데, 대인. 비료야 그렇다고 할지라도 충재는 하늘의 뜻입니다. 정말 이를 사람이 할 수 있다는 겁니까?”

재차 우려를 표명했다.

이건 뭐 나도 이해하기로 했다.

정말 상상 밖의 일이긴 했으니까.

“내가 사는 하늘은 다 허락했소. 뭐 하오? 안 적고?”

“소승과 담소를 나누셨는데 이것도 적습니까? 아니지요. 본론을 말씀하시면 적습니다.”

“거참. 잘 적으시오. 이건 간단하오. 석회를 뿌리면 진흙 속에 알아서 잘 스며들 것이외다. 이러면 명충(螟蟲)의 피해를 없앨 수 있소. 또한, 토분에 석회를 섞은 뒤 논밭에 뿌리면 벌레가 먹지 않으며, 석회를 물에 넣어 하루 뒤 즙액을 걸러내어 두점(콩가루를 섞어서 쑨 풀)에 섞고 밀가루 풀을 만들어 쓰면 좀이 생기지 않을 것이외다.”

“조금만 천천히 말씀해주시지요. 적는 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런데 밀이라니요.”

“양손으로 쓰시오. 그냥 적으세요. 어쨌든 석회도 비료의 효과가 있소. 벌레도 잡고 땅도 좋아질 것이니 일거양득이오. 그러니 이것도 대량으로 준비해야 할 것이외다.”

혜자는 부지런히 손을 움직였다.

“대사. 인분으로 만들 비료는 수확량을 보고 판단해야 하겠으나 석회로 살충하는 건 며칠이면 결과가 나올 것이오. 내가 하나씩 다 살필 수는 없소. 이 모든 건 대사가 꼭 감당해줘야 하오.”

“소승이 잘 챙기겠습니다.”

“나라가 부유해지면 사찰도 몇 개 더 축조할 수 있고 그런 것이외다. 잘합시다.”

“하하하! 당연하지요!”

사람의 능률을 올리는 일에서 가장 좋은 건 장밋빛 미래를 제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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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고덕이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는 소식은 궐에도 전해졌다.

안학궁의 연못을 바라보던 연자유의 표정이 심각했다.

“신은 설마하니 진심일 줄은 몰랐사옵니다.”

“막리지가 언제 허언하는 걸 봤소?”

“그건 아니옵니다. 하온데 너무 허무맹랑한 말이었기에 그저 농이라고 여겼사옵니다.”

“농이라고 생각하셨소? 나는 위두대형이 상당히 화가 났다고 생각했소만?”

예상대로 짓궂은 표정으로 약을 올렸다.

연자유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신이 간곡하게 청하온데 부디 잊어주시옵소서.”

“천천히 생각해보겠소.”

“끙.”

이럴 때는 말을 돌리는 게 현명하다.

연자유는 다시 본론으로 들어갔다.

“하온데, 폐하. 살충이 가능하다면 정말 놀라운 일이옵니다. 병충해를 방비할 수 있다니 상상도 해보지 못하였사옵니다.”

“다시 말하지만, 막리지는 허언하지 않소. 그러니 일단 믿어야지요. 비록 실패할지라도 막리지는 진심이었을 것이니 말이오. 그는 이번에도 진심으로 열과 성을 다할 것이오.”

그때였다.

“폐, 폐하!”

사색이 된 혜자가 경박스럽게 달려왔다.

눈이 휘둥그레진 걸 보니 아주 중요한 일인 것 같았다.

“서, 성공했사옵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성공하다니?”

“살충이 이뤄졌사옵니다. 징글징글하던 벌레가 모조리 퇴치되었사옵니다.”

“뭐요?”

“대사, 그 말이 사실이오?”

충격적인 보고에 고양성과 연자유가 동시에 물었다.

듣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혜자는 헐떡이는 숨을 겨우 내쉬면서 계속 말했다.

“그야말로 일망타진이었사옵니다. 마치 부처님이 악귀를 제압한 것과 같았으니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사옵니다.”

“당장 막리지를 데려오시오!”

“오는 길에 만났사온데 조만간 입궐할 듯하옵니다.”

그때 멀찍이서 의기양양하게 걸어오는 왕고덕이 보였다.

고양성은 환하게 웃으며 양팔을 벌린 채로 다가갔다.

“막리지!”

그러자 왕고덕은 당황하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고양성이 한 걸음 다가갔기에 거리는 그대로였다.

“막리지는 농신이외다!”

“······그러시옵소서. 하오나 더 다가오지는 마시옵소서.”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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