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미터앞 그녀석-7화 (8/91)

07.

“누나!!!”

식판위에 배당된 급식을 받고는 눈에 띄는 자리 아무 곳에나 앉아 있는데,

누군가가 호들갑스러운 인사를 건네 온다.

한 수저 밥을 먹다 만 도이는 우걱우걱, 입안의 것들을 씹으면서 고개를 돌렸다.

너무 아무렇지 않게 도이의 옆에 자신의 식판을 놓으며 방긋방긋 웃는 성민.

이유 없이 웃음이 흐른다.

“성민이구나?”

“이야~ 역시 날 잊지 않았구나. 고마워요, 누나.”

성민의 과장된 칭찬에, 도이는 그저 어깨를 한번 으쓱 거렸다.

“뭐, 고마울 것까지야.”

“아니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점심, 아니 후식은 내가 쏜다! 괜찮죠?”

“후훗. 그러고 싶다면 사양은 하지 않을게.”

너무나 밝은 모습이 절로 웃음 짓게 만들었다.

“근데 왜 혼자 왔어?”

“누가 혼자예요?”

“아직 친구 많이 못 사귄 거야?”

“에이~ 누나는. 누가 들으면 내가 왕딴 줄 알아요. 이렇게 잘 생긴 왕따가 어딨다고.”

살짝 윙크를 한번 하고, 성민은 밥을 크게 한술 떴다.

어찌나 복스럽게 먹는지, 그 모습에 군침이 다 돌 정도다.

“이렇게 예쁘신 누님들을 앞에 두고, 다른 사람을 신경 쓸 수야 없죠. 신사된 도리로써.”

“그, 그래....?”

아무리 입 발린 소리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좋은 건 어쩔 수 없구나. 쩝!

도이는 어색한 웃음을 흘렸고, 다희는 헤벌쭉~ 그저 좋아 보인다.

“누가 친구 아니랄까봐, 쌍쌍바로 놀기는. 쯧쯧.”

그리고 그 때, 기다렸다는 듯이 어디론가부터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쌍쌍바는 뭐냐?”

“쌍쌍바가 뭐게?”

살짝 이맛살이 찌푸려진 도이가 기분 나쁘다는 듯 물었지만,

오히려 같은 질문으로 반문을 하는 민환이었다.

도이의 미간은 조금 더 심한 굴곡을 그렸고,

“똑같이 생긴 것 둘이서 찰싹 달라붙어서 똑같은 짓 한다는 소리지.”

“생긴 것들?”

“아 참, 생기신 분들.”

“하하하.”

얄밉기 그지없지만, 그 모습이 성민의 눈에는 제법 귀엽게 보였는가보다.

한쪽 손만을 이용해, 딱- 소리를 내며 능청스레 웃는 민환의 모습을 보고 호탕하게 웃었다.

“그런데 이쪽은 누구? 처음 보는 얼굴이네?”

“아, 난 이틀 전에 전학 왔어.”

“아하! 2반에 전학 왔다고 떠들썩하더니, 그게 너였구나?”

“떠들썩하다는 건 좀 오버고,”

“아무튼 반갑다. 난 5반에 도민환이다.

도이누나랑 친한 것 같은데, 앞으로 자주 보게 될 지도 모르겠구나.”

민환은 성민을 향해 곧게 손을 뻗었다. 두 사람은 보기 좋게 악수를 했고,

“성민이랑 나랑 친하고 안 친하고를 떠나서,

왜 네가 이 녀석을 자주 볼 거라고 말 하는 거야? 더군다나 나를 빌미삼아.”

도이는 다소 불만 섞인 음성으로 쏘아붙였다.

“에이~ 누나, 그세 잊은 거야? 누나랑 나랑은 실과 바늘이잖소.”

“실과 바늘? 누가 그래?!”

“내가!”

터억! 제 가슴을 한번 내리치면서 의기양양한 민환.

그 모습이 살짝 얄미우면서도 이상하게 밉지가 않다.

도이는 무어라 꼬투리를 잡고 싶은 얼굴이었지만

이내 아무런 말없이 먹던 밥을 마저 떠 넣었다.

그런데 문득, 민환의 얼굴을 보니 떠오르는 일이 있었다.

“참, 민환아.”

“응?”

“저기 말이야.....”

밥을 먹다 말고 뜬금없이 사람을 부르더니 길게 뜸 들이는 도이.

입안에 밥을 떠 넣으면서 사과 할 일이 있다는 걸 의식한 것이다.

그러나 시일이 지난 지금, 딱히 그 이야기를 꺼내자니 어찌 꺼내야 할지 난감한 얼굴이다.

그렇다고 대충 얼버무리기도 그렇고......

“그러니까 저기.....”

“....안 해도 돼요.”

“응?”

“누나가 무슨 말 하려고 그러는지 아니까 안 해도 된다고.”

어느새 친구들 틈에서 한참 멀어져 도이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민환이다.

두 사람의 관계가 정확히 얼마나 단단히 형성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민환은 도이가 무슨 생각, 어떤 말을 하고 싶어 하는 지 모두 아는 눈치였다.

잠시, 말끝을 흩트리며 뜸을 들인 도이로 인해,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다희 역시 도이가 왜 그러는지 아는 양, 두 사람 사이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성민만이 민환과 도이 사이에서 오가는 무거운 기류에 의해 흥미로운 듯 지켜보고 있었다.

“그래도 뭐, 정 미안하면 언제 맛있는 거나 사던가. 아!! 그러지 말고,

다음에 누나 선도서는 날 나 걸리면 한번..... 아니, 한번은 약해. 세 번만 봐줘요.”

“세 번? 그 말은 즉, 대놓고 걸릴 짓이라도 하겠다는 거냐?”

“말을 해도 꼭. 누가 그렇대?”

“아니면 뭐냐?”

“만약을 대비해 두자는 거지. 이런 좋은 말 놔두고.

여튼, 머리 나쁜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살짝 고개를 저어가며 대놓고 비아냥거리는 민환이다.

“만약이고 나발이고, 내가......”

“성민아!!!!”

민환의 비아냥거림에 기분 나빠 하지 않고 웃으면서 말하는 도이.

그러나 이번 역시 그 말은 끝을 가지 못했다.

미처 한마디 말을 다 마치기 전에 들려오는 하이 톤의 가느다란 음성이 원인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하이 톤의 음성이 들려온 곳으로 향했다.

“.....씨빠빠.”

그리고 곧장, 현재로써는 낯선, 성민의 욕지거리를 들을 수 있었다.

성민을 알고 지낸지 삼일 만에 처음으로!

“성민아, 성민아~ 점심은 이 누나랑 먹어야지, 누구랑 먹는 거야?!”

서운함을 너머 기분이 나쁘다는 감정을 간접적으로 들어내는 앙칼진 음성이었다.

그 음성 못지않게 앙칼진 시선으로 도이를 쏘아보는 민아.

두 팔은 성민의 목을 감싸고 있었다.

“여우같은 계집애......

우리오빠 하나 휘어잡은 것도 모자라 이제는 성민이한테까지 직접거리는 거냐?”

“직접?”

“주제를 알아야지. 차유민이가 호락호락 하니까, 니 눈엔 보이는 게 없는가보지?

어디 너 같은 것한테 권성민이 가당키나 한 줄 알아? 이게 어디서 누구한테 깝치고 있어?!”

도이는 기분이 나빴다. 반쯤 비워낸 음식이 얹혀오는 것 같았다.

“내가보기엔 니가 더 깝치는 것 같은데.”

차가운 음성. 냉정한 어투. 뜻 밖에도 민환이었다.

지금껏 도이 앞에서 제법 귀염을 떨던 모습과는 천지차이의 모습이었다.

한껏 찡그러진 인상은 무척이나 불쾌함을 말했다.

“권성민이 어떤 놈인지는 모르지만,

도이선배는 너 같은 것들한테 비교도 안 되는 양반이거든?

더군다나....... 권성민 역시 널 달가워하는 것 같진 않고 말야.”

민환은 성민을 슬쩍, 한번 바라보고는 냉정하게 말했다.

민아는, 민환의 말보단 태도에,

성민 역시 자신을 반가워하지 않는다는 말에 무척이나 어이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닐 거라는 감정도 강하게 보인다.

뭐라고 앙칼지게 쏘아붙일 것 같았지만 조용했다.

어처구니없는 발언에 입이 다물어진 것 같다.

“차민아. 나 지금, 밥 먹고 있거든. 따로 할 말이 있어서 온 거라면 나중에 하자.”

“아이~ 우리가 꼭 할말이 있어야만 만날 수 있는 사이였어? 아니잖아~”

마치 싸움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에, 성민은 서둘러 수습에 나선다.

허나, 민아는 즐기기라도 하는 듯, 코 맹맹한 소리를 한껏 뽐내며 아양을 떨고 있었다.

조금 전 민환의 태도쯤이야 아무렇지 않다는 것 같다.

성민만 옆에 있다면......

탁-! 그러나 성민은 귀찮다는 듯, 자신의 목을 죄고 달라붙는 민아를 떨쳐냈다.

생각지 못한 행동에 무게 중심이 한곳으로 쏠려 바닥으로 넘어지고 만다.

순간 집중된 시선으로 인한 수치심보다는 성민의 행동 자체에 기분이 나빴다.

울긋불긋, 발개진 얼굴로 벌떡 일어나서는,

“너, 너!! 지금 이게 무슨 짓이야? 이깟 것들 때문에 지금, 나를 민 거야?

응? 그런 거야? 야!! 권성민, 너 왜 이래?

니가 언제부터 이런 별 볼일 없는 것들이랑 놀았다고!

아무리 제멋대로라지만 나한테 이러면 안 되지.

네 친구들이 보면 웃어. 웃는다고! 알아?!”

생각 없는 말들을 내뱉었다.

물론 민아의 입장에선 상한 기분을 추스르기 위한 방책이었지만,

그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왔다.

“너.....!! 지금 말실수 했다. 차민아. 그것도 아주..... 아주 큰 실수다.”

“서, 성민아!”

차게 얼은 성민의 눈동자를 보며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민아.

다급하게 수습을 하려 하지만,

“내 이름..... 동내 똥강아지 이름 부르듯 부르라고 있는 거 아니거든?”

“…….”

“너, 나 알지? 당분간 보지 말자.”

이미 때는 늦어버렸다.

성민은 이렇다 말도 없이, 냉정하게 등을 돌렸고, 급식소를 빠져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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