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오늘도 희망고등학교의 하루는 시끌벅적한 아이들과 함께 시작 되었다.
여기저기 웃고 떠드는, 한 눈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아이들.
그 속에 도이와 다희가 보인다.
오늘 다희는, 어제 미처 하지 못했던 자랑을 늘어놓기에 여념이 없었다.
유민의 등장만 없었더라면 이미, 한껏 자랑하고도 남았을 이야기를 말이다.
“그래서 말이야, 내가 오늘 그걸 하고 왔거든?”
“어련하시겠어.”
“왜이래? 그래도, 너니까 보여주는 거야.”
제법 인심을 쓰는 듯한 말이었다.
그러나 도이는 다희가 어떤 말을 하던 별 관심 없어 보였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다희는 열심히 자랑을 하던 것도 모자라 대 놓고 보여주기 까지 한다.
다희가 도이에게 보여준 것은 금목걸이였다.
얼핏 보기에는 모르겠으나, 다희의 말로는 24K란다....
그리고 그 것은 얼마 전 교재를 시작한 남자친구로부터의 선물.
마치, 무어라 말 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너무나 값진 선물을 받은 마냥,
호들갑스럽기 그지없었다.
“예쁘지? 예쁘지?”
목에서 살짝 떼어 책상위에 올려진 목걸이.
적당히 얇은 줄 위에 상당히 심플하지만, 그 위에 펜던트는 제법 값이 나가 보였다.
“그래. 예쁘네.”
“야, 그렇게 껄렁껄렁 보지 말고 잘 좀 봐봐.”
“잘 봐도, 잘 안 봐도 예뻐.”
호들갑스러운 다희에 반해, 도이의 반응은 심심했다.
도이의 그런 반응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다희.
뾰루퉁한 얼굴로 변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오호라~ 너, 샘나는 구나? 유민오빠는 아직 이런 거 한번도 해 준적 없잖아. 그치?”
“샘은 무슨. 어린애도 아니고.”
가볍게 시선을 창 밖으로 돌려놓은 도이다.
정말로 샘이 나질 않는 건지, 아니면 애써 내색하려 하지 않는 건지는 모르겠다.
그 속을 까놓고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물끄러미 창 밖을 주시하던 도이.
이미 운동장에는 다음 시간을 준비하는 아이들이 보였다.
“참, 다희야.”
“응?”
통일감이 강한 같은 색, 같은 모양의 교복을 입듯,
같은 색의 체육복을 꿰어 입고서는 이미 운동장을 돌기 시작하는 아이들.
우연의 일치였을까? 그 무리 속에서 도이는, 제법 눈에 띄는 한 아이를 보았다.
“혹시.... 어제 그 아이 기억 해?”
“그 아이?”
“민환이랑 닮았다던.....”
“아! 기억하지. 왜? 밖에 있어? 다음시간이 체육인 모양이지?”
“응. 그래서 말인데, 혹시 기억해? 그 녀석 이름.”
“이름? 아마.... 성민이였지.....? 그래, 성민이였어. 권성민.”
역시나, 도이의 예상대로 다희는 성민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성민의 이야기가 운운되기 시작한 시점.
다희는 어느새 자신의 소중한 목걸이 자랑도 싹 잊어버린 양,
도이의 시선이 닿는 곳을 따라간다.
그리고는 넋이 나간 얼굴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성민의 자태를 감상하고 있었다.
“근데, 저 녀석은 어떤 배경 속에서 태어났을까?”
그러다 문득, 뜬금없는 말을 내 뱉는다.
“그런 건 갑자기 왜?”
“민환이 과긴 한데.... 어딘가 모르게 민환이보다 더 귀티나 보이지 않냐?”
“글쎄....”
한순간 둘의 시선이, 뿌리박힌 나무처럼 운동장에서 벗어날 줄 몰랐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
“민환이를 능가할.... 아니, 능가하는 녀석이라는 거야.”
“오호~ 너도 뭔가를 느끼긴 느꼈구나?”
“후우.... 지금 내가 말 하는 건, 권성민의 배경이 아니라 근성이야.”
“근성?”
“그래..... 근성.”
“흐음.....”
“저 녀석은 도민환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 할 인간이 아니라고.”
어제, 단 하루였지만, 그 만남에서 나는 그것을 느꼈어.
저 녀석은 분명 예산 인물이 아닐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튀지도 않는 말로 어처구니없이 사람을 당황시키기란 쉽지 않을 테니.
불끈! 굳은 의지를 보이듯 도이의 말은 단호했다.
하지만 지금 도이가 생각하고 있는 바는, 성민에 관해서는 극소수의 것에 달할 뿐이었다.
단 한번의 만남으로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은 무리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쉽게 짧은 생각을 하고 굳히는 도이의 모습.
음..... 차후에 도이가, 성민에 관한 것을 하나하나 더 알게 되었을 때,
어쩐지 도이의 반응이 궁금하다. 뭔가 재미난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없으면 말고. -_-)
.
.
“도련님, 부탁하신 자료입니다.”
“아, 고마워요.”
서늘한 바람 한점이 더운 바람과 함께 적당히 어우러져 머릿결을 엉켜 놓았다.
하늘하늘하니 움직이는 머리카락 덕분에 코끝이 간질간질 하지만,
번거롭고 귀찮기 보다는 오히려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고 있는 성민.
어스름하게 해가 지는 시간에 얼음이 가득 들은 잔에 보기만 해도 시원해 보이는
오렌지 주스를 가득 담아들고
넓은 정원이 한눈에 보이는 발코니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신상명세서]
곁에 있는 남자에게로부터 전해 받은 얇은 종이뭉치 하나.
그 첫 장엔 [신상명세서]라는 다섯 글자가 뚜렷하게 적혀있었다.
한 장 또 한 장의 종이를 넘기고 넘길수록, 성민의 표정은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무언가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는 기쁨과 신비로움이 공존하는 미소에서
밝게 빛나는 미소로......
그리고 그 미소는 한 낯에, 강하게 내리쬐는 햇빛 보다 더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이거, 이거.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겠는 걸? 후훗.”
“…….”
“이것 봐요 엄마...... 내 눈은 정확하다고 말 했잖아.”
아버지, 아무래도 이번 게임은 최고의 게임이 될 것 같습니다.
아버지와 나의 승패여부를 떠나, 오랜만에 제법 마음에 드는 인형을 발견하고 말았거든요.
그러나 저는, 이번 아버지와의 게임에서 승패에 연연해하지 않겠습니다.
물론, 시작도 하기 전에 겁을 먹었다거나 포기를 한 건 아닙니다.
난, 반드시 이 아이가 아주 큰 도움이 될 거라 확신하니까요.
아무래도 제게 소중한 그 녀석들을 지켜내는데 더 없이 제격이란 말입니다.
아직 사람을 판단하는 제 눈이 녹슬지만 않았다면....
이 아이는 분명 제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 줄 겁니다.
그러나 한 가지.... 굳이 걱정스러운 것이 있다면....
다만, 그로인해 이 아이가 슬퍼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아버지도 아시겠지만 이 못난 아들, 아직은 아버지같이 냉정하진 못하겠습니다.
나 자신을 위해 누군가의 희생을 원치 않으니까요.
하지만, 이 아이가 제 뜻대로 움직여 주기 위해서는
소중한 하나를 버려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로인해 눈물짓는 날이.... 부디 길지 않기를 바랍니다.
누군가의 희생이 달갑지 않은 만큼, 누군가에게 미안해하는 것 또한 익숙지않으니까요.
허나, 어쩐지... 이 아이만큼은 미안한 마음이 크게 들 것 같습니다.
너무..... 섣부른 판단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