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 가는 길
2024년 2월 15일 13:00 (미국시각 14:00),
미국 자치령 사이판.
5일 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탄핵한 미 의회는 폐망으로 치달은 현 국가정세를 조숙이 해결하고자 임시 상원의장이자 부통령직을 겸임하는 마이크 슈머가 권한 행사에 들어가면서 행정부 수반들 대부분을 전격 교체에 들어갔다. 그뿐만 아니라 미 의회에서는 이번 USSC 스캔들과 관련된 모든 인사에 대해 사법적 착수 법안을 상정하는 한편 대국적인 청문회 개최에 들어갔다.
이처럼 미 의회의 발 빠른 처사로 인해 미 전역으로 확대된 폭력시위는 어느 정도 사그라졌고 이제 미국 시민은 물론 전 세계의 귀와 눈은 미 의회의 청문회에 쏠리게 되었다.
또한, 현재 진행형인 대한민국과의 전쟁 신속하게 평화적으로 해결하고자 마이크 슈머 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계획을 언론에 알려 무마시킨 스칼릿 캐머런 전략보좌관을 대한민국과의 평화종전 협상 특사로 임명했다.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잉!
루트 32 도로에 사이렌을 울리는 싸이카가 선두로 앞서나가는 가운데 의전 차량과 여러 대의 호위 차량이 한 줄로 뒤따르고 있었다. 그리고 도로 가에는 중무장한 대한민국 해병들이 곳곳에서 경계를 펼치고 있었다.
미국 자치령인 이곳 사이판은 현재 대한민국 해병에게 완전히 점령되어 도로 가와 각종 건물에는 성조기 대신 태극기가 바다 갓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펄럭였다.
이러한 광경을 창문 너머로 바라본 스칼릿 캐머런 특사는 쓴웃음을 지었다. 대한민국 정부가 어떠한 의도를 가졌는지 단번에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의전 차량이 자치의회장 현관 앞에 도착했다. 호위 차량에서 경호원들이 먼저 내려 주변을 경계했고 의전 차량에서도 스칼릿 캐머런 특사가 내렸다.
“어서 오세요.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대한민국 외교부 소속의 한 남성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마치 자기 집에 온 손님을 맞이하는듯한 뉘앙스였다. 이에 스칼릿 캐머런은 자기도 모르게 살짝 이맛살을 찌푸렸다. 이에 김명환 2차관은 표시 나지 않을 정도의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였다.
대한민국 외교계의 귀재답게 김명환 2차관은 인사말 하나를 건네더라도 심리전에 이용했다.
“반갑습니다. 스칼릿 캐머런입니다.”
억지로 미소를 보인 스칼릿 캐머런 특사가 손을 건네며 자기소개를 했다.
“네, 반갑습니다. 외교부 2차관 김명환이라고 합니다. 자! 가시지요.”
짧게 악수를 한 김명환 2차관은 왼손으로 한쪽을 가리키며 안내했다.
“네, 그럴까요?”
안내하는 김명환 2차관을 따라 스칼릿 캐머런 특사가 자치의회장 안으로 들어갔다.
★ ★ ★
2024년 2월 15일 13:30 (미국시각 14:30),
미국 자치령 사이판 챌런 키야 자치의회장 회의실.
50여 명은 여유롭게 앉아 회의할 수 있을 정도의 널따란 회의실 가운데에는 기다란 탁자가 놓여있었다. 그리고 한쪽 중앙에는 강경희 장관과 그 옆에는 군복을 입고 매서운 눈빛을 발사하는 장성이 앉아있었다.
대한민국 군인 서열 2위인 윤기윤 합참차장이었다.
“어서 오시라요.”
“반갑습니다. 캐머런 특사님!”
회의실에 스칼릿 캐머런이 들어오자 강경희 장관과 윤기윤 합참차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건넸다.
“네, 반갑습니다.”
가볍게 인사를 건넨 후 자리에 앉은 스칼릿 캐머런 특사는 다소 긴장이 되었는지 목에 두른 스카프를 느슨하게 풀었다. 이에 윤기윤 합참차장이 물었다.
“혼자 오신겁네까?”
종전과 관련된 협상이었기에 정부 관계자를 비롯해 보통은 군 대표로도 장성 한두 명은 함께 참석하는 게 관례였다. 하지만, 현재 미국 합동참모본부 역시 USSC와 관련된 장성들이 한둘이 아니었기에 협상 테이블에 나올만한 장성이 마땅치 않았다. 그만큼, 생각 이상으로 수많은 장성이 USSC 스캔들에 관여되었다는 것이었다.
“사정상 그렇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협상과 관련하여 모든 권한을 부여받았으니 협상에 있어서 문제 될 건 없을 것입니다.”
“아! 그렇쿠만요. 알갔습네다.”
뻔히 미국 내 사정을 알면서도 물어본 윤기윤 합참차장이 능구렁이 마냥 옅은 미소를 지었다.
“자! 그럼 시작할까요?”
강경희 장관이 유창한 영어로 회의 시작을 말하자 스칼릿 캐머런 특사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게 하시지요.”
“그럼, 한미전과 관련하여 우리 대한민국이 원하는 부분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강경희 장관은 미리 준비해온 문서를 스칼릿 캐머런 특사에게 내밀었다.
“상세한 내용은 여기 문서에 모든 적혀 있으니 오늘 중으로 확인해 주시고 지금은 요약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문서를 받아든 스칼릿 캐머런은 짧게 대답했다.
“이번 한미전은 결과적으로 보자면 우리 대한민국의 승리라고 생각합니다. 동의하십니까?”
“아니오. 동의하지 않습니다.”
단번에 부정한 밝힌 스칼릿 캐머런은 협상에 임한 만큼 절대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자 말투에 힘을 넣기 시작했다.
“이번 협상은 전쟁의 폐해를 중단하고 양국 평화를 위한 제스처라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지금 승전국과 패전국을 가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왜 스칼릿 캐머런이 미국 정치계에서 떠오르는 인재 중의 인재인지를 내뱉은 몇 마디에서 느낄 수 있었다.
“아!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양국 평화를 위한 협상 자리라 하니 승전국과 패전국은 안건은 일단 뒤로 뺍시다. 대신 이번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그 원인을 규명하고 잘잘못을 따지는 건 동의하시죠?”
순간, 움찔하는 스칼릿 캐머런이었다. 지금 강경희 장관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의도를 단번에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터진 USSC 스캔들로 인해 수많은 사실이 밝혀졌다. 그중엔 815 평양 폭탄테러 사건의 배후가 USSC 이었다는 것을 시작으로 3년 전 동북아 전쟁의 미국 참전, 그리고 이번 한미전 발발원인 등 그동안 베일에 싸였던 많은 것들이 밝혀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쟁 발발원인 규명과 잘잘못을 따진다는 건 전쟁 승전국으로써 패전국에 전쟁 배상을 요구하지 못한다면 지금까지 전쟁 발발원인 책임을 물어 우리 미국에 전쟁 배상을 받겠다는 뜻이었다.
“강 장관님! 전쟁이라는 것은 당시의 국제정세의 흐름에 따른 연장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의도를 눈치챈 이상 순순히 당할 순 없다고 판단한 스칼릿 캐머런은 정무적인 말을 늘어놨다.
“국제정세의 흐름이요?”
“네, 그렇습니다.”
이때 윤기윤 합참차장이 박장대소를 했다. 협상 자리에서 이와 같은 행동은 결례였으나 저돌적 성격의 윤기윤 합참차장은 개의치 않았다.
“하하하, 내래 오랜만에 재미난 말을 듣는구만 기래! 이보시오. 캐머런 특사 양반! 지금까지 미국이 국제정세 흐름에 따라 전쟁을 해왔습네까? 아니디요. 그 반대이디요. 전쟁을 위해 국제정세를 배후에서 조종하지 않았습네까?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을 말이디요.”
떨떠름한 표정과 함께 일갈하는 윤기윤 합참차장, 하지만 한국어를 모르는 스칼릿 캐머런 특사는 두 눈을 껌뻑거리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에 강경희 장관이 조금은 순화하여 윤기윤 합참차장의 말을 통역했다.
“아니, 무슨 그런 말씀을······. 우리 미국을 매도하지 마세요.”
통역을 들은 스칼릿 캐머런 특사가 두 눈을 부릅뜨며 대들 듯이 맞받아쳤다. 순간 통역사가 된 강경희 장관! 스칼릿 캐머런의 말을 그대로 윤기윤 합참차장에게 전달했다.
“뭐기요? 매도라 했습네까? 베트남을 치기 위해 위장한 통킹만 사건! 이라크의 유전 장악을 위해 있지도 않은 생화학 대량살상무기를 핑계로 이라크를 침공한 사건, 이렇듯 한둘이 아닌 데 끝까지 오리발입니까?”
이후 윤기윤 합참차장과 스칼릿 캐머런 특사 간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설전이 오갔다. 이에 중간에 통역 역할을 하게 된 강경희 장관은 스칼릿 캐머런과 윤기윤 합참차장을 번갈아 보며 강경희 장관이 중간에 끊어버렸다.
“논외 적인 얘기가 길어지면 협상만 지체될 뿐이니 이쯤에서 정리하고 종전과 관련된 내용으로 넘어가시지요.”
이에 윤기윤 합참차장과 스칼릿 캐머런은 서로를 노려보며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어느덧 종전 협상이 시작된 지 1시간이 흘렀다. 일정 부분에서는 대승적인 차원에서 합의를 이뤘지만, 배상금과 관련한 중요한 대목 3가지는 서로 간 대립으로 이견 조율을 하지 못했다.
첫 번째는 승전국과 패전국을 떠나 전쟁 발발원인 국가인 미국이 전쟁배상금 500억 달러를 지급해야 한다.
두 번째는 현재 대한민국 해병대가 점령한 마리아나 제도와 북마리아나 제도의 4개 섬을 대한민국에 아무 조건 없이 이양한다.
세 번째는 평화종전 이후 평화적 관계 지속과 군사적 충돌을 막고자 양 국가의 중간 지점이라 할 수 있는 하와이 제도의 8개 섬을 양국이 공동 운영체로 다스린다.
미국 측에서 보자면 기절초풍할 요구상황이었기에 스칼릿 캐머런은 끝까지 버티었다.
이에 지금부터는 윤기윤 합참차장이 본격적으로 나설 시점이었다. 지금까지는 강경희 장관이 외교적인 화술로 스칼릿 캐머런과 협상을 조율해왔다면 지금부터는 강압적인고 강경한 자세로 스칼릿 캐머런 특사를 압박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살짝 상체를 비스듬히 돌리고 탁자 위에 한쪽 팔을 올린 윤기윤 합참차장은 여전히 날카로운 눈빛을 발산하며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캐머런 특사! 끝까지 고집을 피우시니 한마디 하겠습네다. 우리 정부는 위 3가지 조건이 성립되지 않는다면 앞서 합의한 모든 조건을 파하는 것은 물론 전쟁을 계속 수행할 수도 있습네다. 설마 그것을 원하는 것입네까? 정말 우리 대한민국이 미국을 확실히 눌러주고 승전국이 되어 요구해야만 응하겠습네까? 지금은 우리 대한민국이 마리아나 제도와 하와이 제도만을 원하지만, 향후 전쟁이 계속된다면 어떨 거 같습네까? 아마도 알래스카는 물론 미국 본토의 주 여러 개는 넘기셔야 할 듯한데 말입네다.”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동시통역으로 강경희 장관이 전하자 스칼릿 캐머런 특사는 미간에 잔뜩 힘을 주고는 따지듯 물었다.
어느 정도 순화하여 통역했지만, 스칼릿 캐머런 특사가 듣기엔 참으로 협박에 가까운 발언으로 들렸다.
“지금 협박하시는 겁니까?”
윤기윤 합참차장은 상체를 앞으로 내밀며 서슴없이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협박하는 것이디요. 대통령께서 마음만 먹는다면 지금 당장에라도 미국 본토는 초토화가 될 것입니다. 아닐 거 같습네까? 또한, 한 달이면 미국 본토에 50만 지상군이 상륙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게 우리 대한민국입네다. 캐머런 특사! 정 못 믿겠다면 이번 종전 협상을 파행 하시디요. 오늘 밤에라도 미국 본토가 불타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드리디요. 종전 협상 파행 시 미 본토 공격권은 대통령님으로부터 이미 부여받았으니까 말이디요.”
마치 잡아먹을 듯 두 눈을 부릅뜨고 말하는 윤기윤 합참차장의 말에 스칼릿 캐머런 특사는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고 입술을 파르르 떨렸다.
수많은 장성 중에 윤기윤 합참차장이 협상 자리에 대표로 온 이유가 바로 이거였다.
백악관 전략보좌관 출신답게 논리적인 대화에서는 꿀리지 않을 정도의 능력을 펼칠수 있으나 윤기윤 합참차장처럼 강압적이고 조금은 맹목적인 형태의 대화에서는 대응능력이 떨어지기 마련이었다.
이렇다 할 대꾸를 못 하고 망설이는 스칼릿 캐머런, 이에 윤기윤 합참차장은 한층 더 목소리에 힘을 주며 압박을 가해나갔다.
“결판하기요. 계속 전쟁을 하갔습네까? 아니면 이쯤에서 평화협상을 체결하시겠습네까? 캐머런 특사의 결정에 미국의 운영이 갈라질 것입네다.”
말을 마친 윤기윤 합참차장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1번 버튼을 바로 눌렀다.
조용히 회의실이었기에 스마트폰 수화기 너머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합참의장님! 내래 윤기윤입네다. 아무래도 평화협상은 체결되지 못할 거 같습네다. 그렇디요. 그렇디요. 네, 알겠습니다. 앞으로 5분 후에 전화가 없으면 엔드 게임 1단계 실행하시라요.”
통화를 마친 윤기윤 합참차장이 스마트폰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는 손목시계를 바라봤다.
한국어로 통화하는 부분에서 엔드 게임이라는 단어만 알아들은 스칼릿 캐머런은 순간 정신이 혼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과연 엔드 게임이라는 단어가 뭘 의미하는지 수많은 생각이 스칼릿 캐머런의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윤기윤 합참차장이 말한 5분의 시간이 다가올 때쯤 스칼릿 캐머런 특사는 조용히 말했다.
“좋습니다. 한국 정부에서 요청한 나머지 3가지 조건 모두 받아들이겠습니다.”
이에 윤기윤 합참차장은 마음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스마트폰을 들고는 1번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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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20일 17:00,
대한민국.
5일 전, 미국과 평화적인 종전 협상이 체결됨으로써 제3차 세계대전으로 확대될뻔한 전쟁은 끝이 났다. 이제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보유한 국가로 재탄생했고 경제적 군사적으로 유일무이한 초강대국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역사는 돌고 돈다. 200여 년간 세계 1강의 자리에서 세계를 주무르던 미국이 하루아침에 분열 조짐까지 몰리는 국가로 몰락하는가 하면 36년간 일본에 식민지가 되었고 광복 후에는 625전쟁으로 전국이 폐허 되어 세계 최하위 빈민국이었던 대한민국이 70여 년 만에 미국을 밀어내고 세계 1강에 오른 것을 보면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
이에 우리는 과거의 아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반교교사 삼아 새로운 정치, 사회, 경제 체제 구축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며 평화롭고 평등한 시대 가치를 구현하는 것이 아마도 21세기 대한민국 국민에게 남겨진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