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상하는 태풍
푸틴 대통령의 성명발표가 끝난 후, NSC 회의실은 그야말로 얼음장과 같았다. 한때 군사적으로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 있었던 러시아가 전쟁발발 3개월 만에 대한민국에 무릎을 꿇었다는 사실 자체가 믿기 어려웠다.
그리고 또 하나, 세계 모든 언론매체가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항복 성명발표를 보도하면서 지금부터 세계 패권국은 대한민국이라는 말들을 서슴없이 방송을 통해 내보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근 100년간, 세계 패권국으로 군림했던 미국으로써는 매우 심기가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분할된 화면을 통해 세계 주요 방송사에서 내보내는 속보 방송을 보던 트럼프 대통령이 슬쩍 보좌관을 향해 눈짓을 주자 이내 스크린은 꺼졌다.
“엄연히 우리 미국이 있는데 세계 패권국이라니요. 저런 말도 곧 며칠 후면 사라질 겁니다.”
불편해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헤아렸는지 메인 존스 국무부 장관이 아부성 발언을 내뱉었다.
“음, 아쉽긴 합니다. 러시아가 조금만 더 버텨줬더라면 한국과의 전쟁이 조금은 수월해졌을 텐데 말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현재 한국으로 향하는 해군 전략을 좀 수정해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순간, NSC 회의에 참석한 군 관계자들은 떨떠름한 시선을 전략보좌관에게 던졌다.
전략보좌관이라 하면, 국가 정세를 분석하고 그에 맞는 전략을 세워 대통령을 보좌하는 직무였다. 그렇기에 군 전략을 논하는 전략보좌관의 발언이 상당히 거슬려 보인 것이다.
하지만, 스칼릿 캐머런 전략보좌관 그러한 시선을 피하며 계속해서 자신의 발언을 이어갔다.
“대통령님! 저번 회의에 말씀드린 대로 러시아와의 전쟁이 끝난 이상, 한국은 우리 해군과의 전면전에 모든 전력을 총동원할 것입니다. 현재 합참에서 세운 전략의 수정은 불가피합니다.”
“저기, 전략보좌관님!”
합동참모본부의 작전참모장 닉 리만도 중장이 참지 못하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네?”
“음, 현재 세워진 전략은 합참에서 전략관련자들이 며칠을 심사숙고해 수립한 전략이자 작전 안입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상당히 잘 세운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앞서 말했듯이 앞으로의 전장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습니까?”
“우리 해군의 70%에 달하는 5개 함대의 전력은 한국과 러시아와의 전쟁 여부에 있어서 그리 큰 영향은 없다고 봅니다. 캐머런 전략보좌관은 너무 소심한 듯합니다.”
“라만도 중장! 캐머런 전략보좌관님이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 한번 들어봅시다.”
설전이 오가자 오스틴 베리 합참의장이 중재했다.
“감사합니다.”
합참의장의 중재에 스칼렛 캐머런 전략보좌관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당찬 눈빛으로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을 보며 자신의 의견을 제시했다.
“한국 공군은 아마도 평화도(구 오키나와)에 대대적인 공군전력을 투입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3년 전, 한일전 종전 후 일본으로부터 규슈와 오키나와를 이양받은 대한민국은 규슈는 동주라는 연방 주정부를 세웠고 오키나와는 특별차지도인 평화도로 이름을 바꿔 이곳으로 이주하는 대한민국 국민과 예전 류큐 왕국 당시의 시민을 중심으로 자치 운영을 할 수 있도록 조직 개편을 이뤘다.
당시 오키나와 현에 거주하던 일본인은 150여만 명으로 이 중 류큐 왕국 당시의 후손이었던 시민과 일부 일본인 80여만 명이 대한민국 국적 신청을 했고 나머지 일본인은 모두 본토로 소개(疏開)되었다.
한순간, 70만 명이 일본 본국으로 소개(疏開)되면서 평화도(구 오키나와 현)의 주거시설은 남아돌았고 이에 대한민국 정부는 남아도는 거주시설을 모든 철거했다. 그리고 평화도를 세계최대의 휴양지로 개발하고자 철거된 자리에는 대형 관광호텔과 세계최대 시설의 워터파크는 물론 미국의 디즈니랜드와 버금가는 대형놀이시설인 피스랜드를 건설했다. 그리고 축구장 10개 넓이의 실내스키장을 만들어, 겨울 스포츠를 언제든 즐길 수 있는 다양 다색 한 휴양지로 탈바꿈시켰다. 나머지 40여 개의 섬에도 다양한 컨셉의 휴양시설과 다채로운 해양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시설이 완벽하게 갖춰졌다.
이로 인해 한일전이 벌어지기 전 2020년에 연 600만 명이었던 관광객은 2022년에는 1,100만 명으로 폭발적으로 늘었고 2023년에는 1,700만 명으로 늘어났다. 제3차 산업 관광업만으로도 평화도에 거주하는 시민들은 평생 먹고 살만큼의 수익을 창출할 수 있었다.
3년 만에 3배에 달하는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평화도 내 공항들은 포화상태가 되었고 이에 유지보수만 해왔던 미 공군이 사용했던 춘남(구 가데나) 공군기지를 2022년 1월에 민간 공항 개조 사업에 착수했다. 그리고 1년 6개월 만에 개조 사업을 마친 춘남(구 가데나) 국제공항에는 전 세계 항공기를 타고 방문하는 관광객들로 북적이게 되었다.
평화를 상징하는 섬이자 세계최대의 휴양지로 탈바꿈한 평화도는 이처럼 “평화도”라는 이름답게 일체의 군사 시설은 물론 한 명의 국인도 주둔하지 않았다. 그리고 기존의 군사 시설은 철거되거나 민간인이 사용할 수 있는 시설로 바뀌었다. 이런 평화적인 섬을 스칼릿 캐머런 전략보좌관은 주목하고 있었다.
“평화도에 과연 한국군이 공군전력을 투입할까요? 근 2년간 평화니 뭐니 상징하면서 세계 관광객을 끌어드린 곳을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평화도 전장의 한복판에 빠질 수 있는데 말입니다.”
그랬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 합동참모본부에서도 평화도 이번 해상 작전에서 논외였고 이로 인해 제7함대는 오직 제주도를 목표로 평화도(구 오키나와)는 그냥 지나치는 것으로 작전 안이 세워진 이유였다.
팀 그린 수석보좌관이 고개를 좌우로 갸우뚱거리며 정말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네, 맞습니다. 자칫 평화를 상징하는 섬으로 탈바꿈시킨 평화도가 전장의 한복판이 되는 것을 한국은 원치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 상황을 보자면, 우리 해군과의 전면전은 한국에서 보자면 국운을 건 전쟁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한러전이 끝난 이상, 국운을 건 전쟁에 과연, 지리적으로 전략적으로 중요한 평화도를 활용하지 않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저는 그 미지수를 걱정하는 것입니다.”
스칼릿 캐머런 전략보좌관의 설명이 끝나자 잠시 NSC 회의실은 조용해졌다. 회의에 참석한 관계자들은 저마다 나름대로 생각에 잠긴 듯했다.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교 중 최고 1위 대학교로 선정되기도 한 뉴저지 주의 프린스턴대학원에서 22살에 정치외교로 박사 학위를 딴 스칼릿 캐머런 전략보좌관은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후 34살에 백악관 전략보좌관에 임명된 수재 중의 수재였다.
정치외교뿐만 아니라 부전공으로 군사학을 공부한 탓에 스칼릿 캐머런 전략보좌관은 상당한 군사 지식을 바탕으로 현재 전개되고 있는 미국 해군의 전략적 부분에 대해서 과감히 말할 수 있는 이유였다.
잠시 침묵의 시간이 지나고 트럼프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요. 캐머런 전보관! 그렇다면 우리 정부나 해군이 어떻게 대처했으면 좋겠습니까?”
트럼프 대통령의 질문에 닉 리만도 작전참모장이나 군 장성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군 관련 전략을 자신들이 아닌 전략보좌관에게 묻는다는 것은 상당히 기분 나쁠 수 있었다. 마치 가져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와 같았기 때문이었다.
“네, 최소한의 위험성도 배제하면 안 됩니다. 즉, 평화도에 한국 공군전력이 투입되었다는 전제로 이번 작전을 실행해야 합니다. 한국 진공에 대한 시간이 다소 지체되더라도 제7함대는 평화도 내 정찰활동을 늘려야 하며, 언제든 평화도를 공격할 수 있는 지상 공격 능력을 항시 준비해야 합니다. 이왕이면 해병대를 평화도에 상륙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갓 35살의 젊은 여성이 여러 장성 앞에서 군사 관련 전략을 서슴없이 말하자, 발언 내용이 어쨌든 군 장성들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현재 상황에서 군사 시설도 없는 평화도를 작전 안에 두는 것은 현재 추진 중인 ‘대섬멸 작전’에 상당한 차질을 빚을 수 있습니다. 이틀 후면 한국 해군과의 전면전이 시작되는 상황에서 말입니다.”
이번 ‘대섬멸 작전’ 안을 처음부터 끝까지 세우는 데 총력을 기울였던 존 뎀프시 전략작전관이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했다. 즉, 수용할 수 없다는 반대 의견이었다. 이에 스칼릿 캐머런 전략보좌관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돌려 질문을 던졌다.
“전략본부장님! 만약 평화도를 무시하고 제7함대가 제주도로 향한 후 평화도에서 공군전력이 나타나 제7함대의 후방을 노린다면요? 대처 가능하시겠습니까?”
“가능하기보다는 평화도에는 공군전력이 없습니다. 현재 공중정찰 전력을 통해 평화도를 24시간 감시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X-400도 포함입니다. 지금 회의를 하는 이 시간에도 말입니다. 괜히 있지도 않은 공군전력을 우려해 작전 안을 수정하기엔 무리라 봅니다. 자칫 제7함대와 나머지 함대 간의 작전 운용에 차질이 생길 수 있습니다. 지식으로 군사 전략을 논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발상입니다.”
전략본부장답게 존 뎀프시는 맞받아쳤고 무시하는 듯한 조롱 섞인 말도 전했다. 하지만 스칼릿 캐머런 작전보좌관은 개의치 않은 듯 추가 질문을 했다.
“X-400이라든지 아니면 다른 공중정찰전력을 100% 신뢰하십니까?”
“네, 100% 신뢰합니다.”
“그래요? 생각지 않게 실시간으로 바뀌는 게 전장 상황이지 않습니까? 제 생각엔 전략본부장 자리에 계시면서 그런 절대적인 신뢰를 한다는 게 저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가장 우려하고 지양해야 하는 부분이 아닌가요?”
“뭐요?”
“제 말이 틀렸습니까?”
또다시 불꽃 튀기는 설전으로 이어지자 이번엔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중재하고자 양손을 펴 보였다. 그만하라는 동작이었다.
“합참의장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트럼프 대통령의 말에 오스틴 베리 합참의장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네, 우리 합참에서 놓친 부분을 캐머런 전략보좌관이 정확히 지적한 듯합니다.”
“그런가요?”
“네, 그렇습니다. 전장 환경은 언제든 바뀔 수 있습니다. 비록, 완벽할 정도로 한국군의 움직임을 정찰하고 있더라도 예기치 않은 변수는 생기기 마련입니다. 예로 이번에 큰 피해를 본 나토군이 있겠지요. 대통령님, 회의가 끝나는 대로 ‘대섬멸 작전’ 안에 대해서 다시금 점검하겠으며, 캐머런 전략보좌관 말대로 평화도와 관련해서도 추가적인 작전 안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스틴 베리 합참의장은 자신의 치부라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깨끗이 인정했다.
“그래요. 심사숙고해서 작전 안을 검토 바랍니다. 한국 역시 국운을 건 전면전을 준비하는 만큼 우리 미국 역시 국운을 걸고 철저히 준비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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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4일 09:00,
남주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와대 국가위기상황센터 지하 벙커.
새벽 시간, 푸틴 대통령의 항복 성명발표가 언론매체를 통해 전 세계에 전해진 후 비공식적이긴 하지만 동맹국은 물론 여러 국가로부터 축하의 인사가 쇄도했다. 일부 친미성향의 국가에서는 계속해서 영토를 넓혀가는 대한민국에 대해 팽창주의로 세계 평화를 위협한다는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어쨌든 세계 대부분 국가는 대한민국을 이 시대 진정한 패권국으로 인정했다. 한러전 종전으로 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갖게 된 대한민국, 별다른 지하자원 없이 기술력 하나만으로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고 이제는 수많은 지하자원으로 세계 1강 자리를 굳건히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한러전 발발 후, 종전 이후에 대한 각종 대책안을 수립한 통일정책부의 수장, 김영철 장관은 두툼한 문서를 회의에 참석한 고위관료들에게 나눠줬다.
문서의 정체는 러시아로부터 이양된 영토 및 주거자에 대한 정책이 쓰여 있는 문서였다.
“이 문서에 쓰여 있는 모든 정책은 공식적으로 항복조인식이 있는 금일 오후 4시부로 본격적으로 시행될 것입네다. 금일 오전, 하원국회와 상원국회에서 별문제 없이 일사처리 진행된다면 말입네다.”
회의실 대형 스크린 옆에 선 김영철 장관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이번에 러시아로 이양받은 영토는 현재 대한민국 영토의 7배가 넘습네다. 영토야 어디 도망가디 않으니끼니 별문제는 아니디만, 영토에 비해 인구가 턱없이 부족합네다. 그래서 말인데 말입네다. 현재 제2국민 혜택을 대폭으로 올리고 귀화 가능 시기도 5년에서 3년으로 내리는 법안이 필요합네다. 즉 대한민국 국적 취득을 희망하는 사람들의 수를 늘려야 한다고 생각합네다. 또한, 현지 조사에 따르면 러시아 남부 같은 경우 대부분 시민이 소개를 원치 않은 것으로 확인됩네다. 즉, 제2국민 신청은 하지 않으면서도 현재 거주지에서 살길 바란다는 말입네다. 생각 못 한 문제는 아니디만, 이 부분에 대해서도 포괄적인 해결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네다.”
김영철 장관은 단상에 서서 지금까지 수립했던 정책에 대해서 브리핑을 하였고 특히나, 현실적으로 직면한 문제에 대해서 심도 있게 설명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