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67화 (567/605)

애원하는 일본

2024년 1월 30일 18:30,

남주 서울특별시 강남구 국가정보원(대테러수사국 취조실 밖).

미국의 기밀을 미끼로 추은희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청한 우치다 총리, 취조실에서 나온 김명환 2차관과 안연우 국장, 그리고 마동석 부국장은 잠깐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는 시간을 가졌다.

“저놈, 괜히 있지도 않은 기밀 운운하며 대통령님과 만나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설령 기밀이 있다 한들 별거 아닐 것으로 보입니다.”

시종일관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마동석 부국장이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마 부국장 말대로 당연히 그럴 수 있어! 하지만, 우치다 총리가 수행원 몇 명만 대동하고 불법적으로 대한민국에 입국한 것에는 뭔가 비빌 언덕이 있었기 때문에 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

안연우 국장이 긍정적이지도 그렇다고 부정적이지도 않은 모호한 말을 하자, 한 손으로 턱을 매만지며 곰곰이 생각하고 있던 김명환 2차관이 입을 열었다.

“일단, 대통령님께 보고를 드리도록 합시다. 혹, 우치다 총리가 미국의 기밀을 실제 알고 있다면, 현재 미국과의 전면전을 앞둔 상황인 만큼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설령 거짓이라 해도 단순 면담이니 크게 손해 볼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네, 그렇게 하시지요.”

김명환 2차관의 말에 안연우 국장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자 마동석 부국장 역시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잠시 후 청와대에 보고가 올라갔고 대통령께서 직접 국가정보원에 오신다는 답변을 받았다.

30분 후. 수도방위사령부 직할부대인 제55경비대대 군인들이 국가정보원 주변 일대에 대한 경계 임무에 투입되었고 수도헌병단 소속의 특별경호대는 내부 시설 곳곳에 투입되었다. 그리고 청와대 사전경호원들이 짙은 특수 선글라스를 쓰고 대통령께서 이동할 모든 길목에 자리를 잡았다.

여러 대의 검은 밴의 경호를 받으며 대통령 의전 차량이 국가정보원 현관에 도착했다.

“어서 오십시오. 대통령님!

진작부터 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영진 국정원장이 반갑게 맞아줬다.

“괜히 제가 이곳으로 오게 돼서 바쁘신 분들 시간을 뺏지 않았나 생각되네요.”

이영진 국정원장을 비롯해 고위급 직원들이 기다랗게 서 있는 것을 본 추은희 대통령은 미안해진 마음을 전했다.

“아닙니다. 대통령님! 대통령 취임 후 처음으로 오셨지 않습니까?”

“아! 그러긴 하군요. 호호, 야당 분들 눈치를 보느라 한 번쯤 와야지 와야지 하다가 이렇게 오게 되는군요.”

“대통령님! 날씨도 추운데 어서 들어가시지요.”

“그래요. 갑시다.”

★ ★ ★

2024년 1월 30일 19:30,

남주 서울특별시 강남구 국가정보원(대테러수사국 접견실).

취조실에서 접견실로 옮겨진 우치다 총리는 1인용 소파에 앉아 수갑 자국이 선명한 자신의 손목을 이리저리 어루만지며 기다리는 그때 밖에서 여러 명의 발자국이 들려왔다.

철컥~

보좌관이 문을 열자 추은희 대통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에 우치다 총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마치 윗사람을 대면하듯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추은희 대통령님!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우치다 총리님!”

추은희 대통령 역시 생각 이상의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인사했다. 그리고는 원형 탁자를 두고 서로 간 악수를 하고는 의자에 앉았다.

“총리께서 대한민국에 왔다는 보고를 받고 깜짝 놀랐었습니다.”

한 컷 여유로운 자세로 소파에 앉은 추은희 대통령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대통령님을 뵙고자 이렇게 무례를 무릅쓰고 오게 되었습니다.”

우치다 총리는 최대한 자신을 낮추며 말했다.

“현재 불편한 양국의 관계로 인해 환영은 못 해주더라도 이왕 오셨으니 면담은 하고자 이렇게 오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그래요. 저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입니까?”

추은희 대통령은 바로 본론을 꺼냈다.

“대통령님! 제발 우리 일본을 도와주십시오. 현재 일본은 아비규환 그 자체입니다. 직장을 잃은 수많은 사람이 폭동을 일으켰고 저마다 식량을 구하기 위해 살인 강도사건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우리 일본은 정말 폐망하고 맙니다.”

우치다 총리는 현재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그건, 일본이 자처한 일이 아닙니까?”

온화한 표정과는 반대로 추은희 대통령의 어조와 말투는 차가웠다.

“네, 맞습니다. 일본, 아니 일본 내각을 책임지고 있는 저의 잘못입니다. 그 부분에 대해선 반성하며 후회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발! 일본을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연시 고개를 숙이며 부탁하는 우치다 총리! 애처로움을 지나 안쓰럽기까지 했다.

“우리 대한민국이 어떻게 도와달라는 말씀인가요?”

추은희 대통령이 긍정적인 자세를 보이자, 이때다 싶었는지 우치다 총리는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어렵게 찾아온 기회를 어떻게든 살려보겠다는 의도였다.

“아니! 왜 그러십니까? 일어서세요.”

순간 당황한 추은희 대통령! 하지만 우치다 총리는 바닥에 머리를 박으며 말했다.

“우리 일본에 경제적 지원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추은희 대통령님!”

“아니! 그러지 말고 의자에 앉아서 말씀하세요. 제가 부담스럽습니다. 일어서지 않으면 면담은 끝내는 것을 하겠습니다.”

강자에게 비굴하고 약자에겐 힘으로 짓누르려는 일본 특유의 특성을 제대로 보여주는 우치다 총리였다. 이러한 특성을 잘 알고 있는 추은희 대통령은 속으로 역겨움이 쏠려왔다. 이중인격체들의 집합소. 겉으로 친절한 척을 하며 뒤에서 속하는 분류들. 일반인이나 정치인이나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이러한 이중인격체들이 많았다. 아닌 일본인이 만들어낸 문화일 수도 있었다.

“죄송합니다. 간절한 마음에 결례했습니다.”

“우치다 총리님! 일본과는 불과 며칠 전에 외교적 단교를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경제적 지원을 하다니요? 우리 국민은 절대 수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추은희 대통령은 현실적인 문제를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부탁드리는 겁니다. 또한, 그에 대한 대가로 미국의 기밀에 대해서 제공하겠습니다.”

“미국의 기밀이라······.”

추은희 대통령은 일부러 관심 없는 척 표정을 지으며 말끝을 흐렸다.

“아마도 미국과의 전쟁에 있어서 매우 유용한 정보일 것입니다. 자신합니다.”

“그런가요? 무슨 기밀인지 모르겠지만, 과연 우치다 총리 말대로 유용한 정보일지는 들어봐야 알겠군요.”

“대통령님! 죄송하지만, 먼저 경제적 지원을 약속해주시면 미국의 기밀에 대해서 알고 있는 모든 걸 다 털어놓겠습니다.”

보이지 않은 신경전이 벌어졌다.

추은희 대통령은 우치다 총리가 말하는 미국의 기밀에 대해서 먼저 얘기를 듣고 경제적 지원을 할지 말지 판단을 하려 했고, 우치다 총리는 경제적 지원 약속을 전제로 미국 기밀을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역시 아쉬운 사람은 우치다 총리였다.

“음, 그 기밀이 무엇이든 간에 여기 이 자리에서 경제적 지원을 하겠다는 약속은 양 국 간의 관계가 너무 좋지 않습니다. 죄송하지만, 우치다 총리의 요청을 들어줄 수 없겠습니다.”

딱 잘라 말하는 추은희 대통령이었다. 이에 우치다 총리는 깊은 고민에 들어갔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우치다 총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미국 기밀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대신 일본에 대한 경제적 지원은 어떻게든 꼭 해주시기 바랍니다.”

정상적인 정상면담이었다면 어느 정도 밀고 당기는 신경전을 벌이겠지만, 현재 마련된 자리가 자리인 만큼 우치다 총리는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추은희 대통령을 보며 우치다 총리 입에서 미국 기밀에 관해서 설명을 시작했다.

“현재 미국은 한국의 스텔스 전투기나 전투함을 탐지할 수 있는 군사위성인 아틀라스라는 정찰위성을 여러 기나 운용하고 있습니다. 현재 이 위성 중 4기는 한러전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북서부전선 일대의 상공에서 운용되고 있습니다.”

“잠깐! 우치다 총리님! 아틀라스 위성에 대해선 우리 정부 역시 알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치다 총리의 미간이 좁혀졌다.

“정, 정말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 정도 기밀은 이미 파악한 상태입니다. 어느 정도 기대를 했는데 고작 아틀라스 위성 얘기라니 조금은 아쉽군요.”

“그렇다면, 최신 버전의 또 다른 아틀라스 위성도 아시는 겁니까?”

순간, 추은희 대통령은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놀랐다. 최신 버전의 또 다른 아틀라스 위성에 대해선, 모르는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네, “당연하지요. 그것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대화에 있어서 유리한 고지를 잡고는 추은희 대통령은 조금은 뻔뻔할 정도로 아는 척을 했다. 이에 우치다 총리는 실망했는지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킁!”

“우치다 총리! 그렇다 하더라도 총리가 알고 있는 최신 버전의 아틀라스 위성에 알고 있는 부분을 말씀해 주세요.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와 같은지 말입니다. 혹, 우리가 모르는 정보가 있다면 도움이 될 것이고 그렇다면 그 대가로 어느 정도 일본에 경제적 지원은 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기니까요.”

추은희 대통령은 슬쩍 말을 하게끔 유도했다. 그러자 우치다 총리는 두 눈빛이 반짝였다.

“네, 알고 있는 모든 부분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요.”

“현재 최신 버전의 아틀라스 위성은 총 4개로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위성들이 미국 국적의 위성이 아닌 영국 국적의 위성으로 세계위성센터에 등록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혹, 그 부분도 알고 계신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추은희 대통령은 속으로 매우 놀랐지만, 절대로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다.

“아! 모두 알고 계셨군요.”

참으로 우치다 총리는 바보 같았다. 정상 회담은 물론 국가 간 외교관들의 면담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 패는 숨기고 상대의 패를 보고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하지만 지금 우치다 총리는 상대의 패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자신의 패만 죄다 보여주고 있는 꼴이었다.

이때 추은희 대통령의 귀속에 장착된 조그마한 장치에서 국가안보실 전략보좌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대통령님! 일본 총리에게 그 위성의 등록코드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어봐 주시기 바랍니다.

추은희 대통령은 접견실에 들어오기 전, 미리 귀속에 조그마한 통신장치를 장착했다. 그리고 접견실 밖의 비밀 공간에서는 청와대 수석은 물론 국가정보원 직원들과 군 관계자들 여럿이 현재 면담 상황을 영상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우치다 총리님! 혹, 그 위성들의 등록코드는 알고 계십니까?”

“아니요. 그건 모릅니다.”

“아! 그렇군요. 아쉽군요.”

“대통령님! 만약 등록코드를 알아내면 우리 일본을 도와줄 수 있습니까?”

추은희 대통령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시 뜸을 들였다.

“음,”

“대통령님! 어떻게든 알아낼 테니 꼭 경제지원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뭐! 그렇게 확인하고 싶은 정보는 아니나, 알게 된다면 그런대로 도움은 될 거 같군요.”

다시 한번 통신장치에서 전략보좌관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에 추은희 대통령이 또다시 우치다 총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 총리님! 아틀라스 위성과 관련한 기밀은 어떤 루트로 알게 되었나요?

“그것이······. 사실 미국 NASA에 연구원으로 위장한 스파이가 여럿 있습니다. 그중에 한 명이 아틀라스 위성 개발에 직접 참여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스파이가 아틀라스 위성과 관련된 기밀정보를 빼돌려 보고했군요.”

“그, 그렇습니다.”

“좋습니다. 총리께선 그 스파이를 통해서든 뭐든 최신 버전의 아틀라스 위성의 등록코드를 알아내세요. 만약 알아낸다면 총리께서 요청하신 경제지원에 대해서 인도적 차원에서 지원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정, 정말입니까?”

“네, 정 필요하다면 문서로도 남겨드릴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우치다 총리는 연달아 고개를 숙이며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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