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16호
2023년 10월 19일 13:00,
북주 평양특별자치시 보통강구 민족노동당 당사.
민족노동당 창당 2주년 기념식이 거창하게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원산에서 출발했던 김정은의 관용차가 당사 현관에 도착했다.
이에 대기하고 있던 수많은 환영 인파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세계 각국에서 온 언론매체의 기자들 카메라 셔터 소리가 연이어 울렸다.
1만에 달하는 평양 시민의 환호성을 받으며 관용차에서 모습을 드러낸 김정은 전 국방위원장은 오른손을 들어 환영 인파에 답했다. 그 모습은 마치 예전 국방위원장 시절의 모습과 닮아있었다. 아니 일부러 예전의 모습을 재연하고자 하는 듯했다.
3개월 전 8년간의 의식불명에서 깨어난 김정은은 이후 치료를 받으며 현실을 직지하고는 정치적으로 모든 걸 내려놓고는 갈마별장에서 현대판 유배 생활을 해왔다. 하지만 북한 출신의 거물급 인사들과의 면담을 지속하면서 김정은의 심정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그것은 정치적으로 포기했던 권력욕에 다시금 눈을 뜬 것이었다.
그동안 면담을 통해 김정은에게 수많은 유혹이 있었다. 이에 김정은의 심정 변화의 단면을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첫 외부행사로 민족노동당 창당 기념식에 참석하는 것이었다.
이렇듯 새로운 야심을 품고 첫 외부행사인 민족노동당 당사에 모습을 드러낸 김정은은 당당하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었다. 더군다나 환영인파의 환호성은 김정은의 권력욕을 더욱 치솟게 했다. 마치 예전의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던 당시로 돌아간 듯한 느낌에 김정은의 심장은 마구 뛰었다.
환영인파와 인사를 주고받은 후 현관을 통해 당사 안으로 들어서자 민족노동당 의원과 관계자들이 일제히 일어나 폭풍과 같은 박수를 쳤다.
“오시느라 고생 많았음둥. 김정은 위원장 동지”
당 대표이자 상원의원인 김형원이 두 손으로 김정은과 악수를 하며 예전 존칭을 그대로 사용했다.
남과 북이 평화통일이 된 지 3년이 넘어가는 지금 김형원은 자신보다 30살이나 어린 김정은에게 예전과 같은 깍듯한 자세로 인사했다. 이에 김정은은 당연하다는 듯 오른손으로 김형원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내래 김형원 동지 때문에 요새 살맛이 납네다.”
김정은의 말투는 존칭어였지만, 인사를 건네는 행동은 하대였다.
“아닙둥. 이렇게 모시게 되어 영광입둥. 식장으로 가심둥!”
악수를 마친 김형원은 두 손으로 당사 기념식장을 가리켰다. 그동안 당사 1층을 울리는 박수 소리는 계속해서 울렸다.
잠시 후 기념식장에 들어선 김정은은 당 대표 김형원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준비된 환영식이 시작되었다. 당 창설 2주년 기념식인지 아니면 김정은 환영식인지 구분이 안 가는 행사가 저녁 늦게까지 이어졌다.
이런 행사를 매의 눈으로 지켜보는 자들이 당사 곳곳에 있었다. 바로 국가정보원 ACS 요원들이었다. 이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각종 첨단장비를 이용해 행사에 참석한 인사들이 주고받는 대화 내용을 빠짐없이 녹음에 들어갔고 특히 김정은과 주변에 있는 당 관계자들 간의 대화에 집중했다.
★ ★ ★
2023년 10월 19일 18:00 (이란시각 12:30),
이란 테헤란 11지구 주이란 러시아 대사관.
테헤란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11지구의 노펠 로셀이트 도로에 있는 7층 건물 안에는 국가정보원 소속의 대외정보국 1과 1팀 요원들이 건너편 울창한 숲과 건물로 이뤄진 주변 일대를 감시하고 있었다.
바로 이란 테헤란 주재 러시아 대사관이었다. 이틀 전, 라틀리 호텔을 떠난 SVR(대외정보국) 요원들은 새로운 둥지로 이곳 러시아 대사관과 직선거리로 200m 정도 떨어진 뉴 나데리 호텔로 옮겼다. 하지만 중동본부 총책임자인 루슬란 니그마툴린 본부장은 라틀리 호텔을 벗어난 후 뉴 나데리 호텔이 아닌 러시아 대사관에 들어간 후 지금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에 박기웅 팀장과 팀원들은 뉴 나데리 호텔이 아닌 러시아 대사관을 감시하고 있었던 이유였다.
“나 원 참! 모습이라도 보여야 확! 낚아채지. 지겹다. 지겨워···.”
안기철 대리가 VR-M2 광학장비로 건너편 러시아 대사관 곳곳을 살피며 투덜거렸다. 그러자 옆에서 노트북을 만지작거리던 조동현 주임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안 대리님! 팀장님한테 말해서 확 대사관 덮칠까요?”
“네가 말해!”
“그런 건 선배인 안 대리님이 말해야죠.”
“자식이? 선배가 시키면 네, 하고 하는 거지 뭔 말이 많아?”
지겨운 잠복 임무에 지겨웠는지 시답지 않은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대사관 주변을 둘러보러 갔던 박기웅 팀장과 한강일 대리가 들어왔다.
“수고하셨습니다.”
출입문이 열리고 박기웅 팀장이 들어오자 조동현 주임이 일어나 인사를 건넸다.
“수고랄게 있겠어? 그 돼지는?”
박기웅 팀장은 루슬란 니그마툴린 본부장을 돼지라 불렀다.
“네, 현재 C동 건물 3층 숙소에서 침대에 대자로 누워서 쉬고 있습니다.”
VR-M2로 확인된 루슬란 니그마툴린 본부장의 현재 상황을 설명하듯 안기철 대리가 말했다.
“저 돼지 새끼 아주 팔자가 폈군그래. 대사관 안에서 이틀 내내 퍼질러 쉬고 있고 말이야. 우리는 에어컨도 없는 이 건물에서 아주 완벽히 쪄 죽는데 말이야.”
동양인이라는 것을 숨기기 위해 외출할 때마다 사복 위에 아랍 전통 의상과 터번을 둘러쓴 박기웅 팀장은 이내 터번과 옷을 아무렇게나 벗고는 그대로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팀장님! 나가서 선풍기라도 사 올까요? 정말 더워 죽겠습니다.”
함께 들어온 한강일 대리가 전통 옷을 벗다가 말고 말했다.
“그냥 참자! 뭐 여기서 일주일 내내 쥐새끼처럼 있을 것도 아니고.”
“그러다가 정말 저 돼지 놈이 계속해서 얼굴 코빼기 비치지 않고 대사관에서 처박혀 있으면 어쩝니까?”
한강일 대리가 정말 걱정되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설마? 저놈도 일은 하겠지”
“것보다 팀장님!”
안기철 대리가 조동현 주임에게 VR-M2를 넘기고 박기웅 팀장에게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팀장님! 그냥 오늘 밤 대사관 침투해서 저 돼지 끌고 나오시죠?”
“대사관에 직접?”
“네, 언제까지 이렇게 기다릴 순 없잖습니까?”
이에 박기웅 팀장은 벽에 기대어 턱을 매만지며 잠시 고민에 들어갔다.
테헤란 주재 러시아 대사관은 엄연히 러시아 영토다. 만에 하나 일이 틀어진다면 영토 침입으로 대한민국과 러시아 간의 직접적 전쟁의 시초가 될 수 있었다. 그만큼 대사관 내부와 외부에서의 임무 수행에 있어서 그 책임 수위는 너무나 컸다.
“과장님이 허락하실까?”
“일단 말해보고 안되면 어쩔 수 없는 거죠.”
안기철 대리가 계속 부추겼다.
★ ★ ★
2023년 10월 19일 21:00,
북주 평양특별자치시 보통강구 민족노동당 당사 주변.
저녁 만찬을 끝으로 민족노동당 창당 기념행사가 끝이 난 당사 3층 대회의실에는 김정은 전 국방위원장을 비롯해 김형원 당 대표와 여러 의원이 착석해 있었다.
오전부터 여러 곳에서 남모르게 기념행사를 감시했던 ACS의 김정은 담당 A팀과 민족노동당 주요 의원 담당 C팀이 함께 건너편 건물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지금까지 여러 첨단장치를 써봤으나 아쉽게도 감청을 할 수 없었다. 군사시설에서나 사용할 만한 강력한 감청 방해전파가 당 건물 전체에 흐르고 있었다.
현재, VR-M2 광학장비에 비친 당사 3층 회의실에는 30여 명의 요주 인물들이 의자에 앉아 회의를 진행하려 듯했다.
“이번에도 직접 투입해야 하나?”
창문 넘어 당사 건물을 바라보던 C팀 신국진 팀장이 중얼거렸다. 이에 1과 과장이자 A팀 팀장을 맡은 홍혁준 과장이 신국진 팀장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신 팀장! 그런 걱정 안 해도 돼!”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뭐 다른 방법이라도 있습니까?”
“그럼! 안 대리 준비해”
초조한 신국진 팀장과 다르게 홍혁준 과장은 팔짱을 끼고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잠시 후 안강수 대리가 작은 은빛 가방을 가져와 열었다. 그 안에는 쌀 한 톨 크기의 아주 작은 드론이 들어있었다.
“이게 뭡니까?”
신국진 팀장이 안강수가 꺼내든 드론을 보며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이번에 지하연구소에서 개발을 완료하여 테스트까지 모두 마친 초소형 정찰 드론이야. 이름이 뭐더라? 아! MSQ-D1이고 영상 녹화부터 감청까지 모두 가능하지”
“하! 이런 게 있었으면 진작에 지급해 주지 그랬습니까?”
신국진 팀장의 불만 섞인 말에 홍혁준 과장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 우리도 어제 받은 거야. 조만간 모든 팀에 지급한다고 하니 기다려보라고.”
“아! 그렇군요.”
“자! 안 대리, 늦기 전에 날려보자고”
“네, 알겠습니다.”
안강수 대리가 초소형 드론과 연결된 노트북을 조작했다. 당 건물에 대한 전체 설계도면이 3D 형식으로 보였고 3층 회의실까지의 최상의 침투경로 여러 개가 설정되었다. 이중 가장 안전한 루트를 결정한 안강수 대리가 마저 노트북의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엔터키를 눌렀다.
그러자 아주 미세한 소리가 울리더니 초소형 드론인 MSQ-D1이 순간 속도로 공중에 떴다. 경로만 설정하면 자동으로 비행하며 주변 위험 상황을 인지하고 자동으로 TCS 모드 기능을 활성화하는 최첨단 초소형 드론 MSQ-D1이 이내 건물 환기통을 따라 건물을 빠져나갔고 이내 건너편 민족노동당 당사 건물 1층으로 들어갔다.
아주 미세한 비행음에 파리보다 작은 크기의 MSQ-D1은 설정된 경로를 따라 빠르게 비행했고 1분도 안 되어 목표인 3층 대회의실에 침투하여 사람 눈에 잘 띄지 않은 한쪽 벽에 붙어 회의실 전체를 촬영한 데이터를 전송했다.
이에 노트북 디스플레이에는 고해상도의 회의실 영상은 물론 잡음 없는 깔끔한 소리가 들려왔다.
“워! 이거 대박 물건인데요? 이제 목숨 걸고 침투할 필요가 없겠어요.”
“좋은 것만은 아니야.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없어진다는 뜻도 있다고.”
“아! 그건 너무 비관적이지 말입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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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20일 04:30 (쿠르디스탄시각 22:30),
쿠르디스탄 공화국 서아제르바이잔주 마쿠 아제르바이잔 공원(1정찰소대 전초기지).
보자크에서 출현한 드론으로부터의 정찰소대 장갑차에 대한 공격과 며칠 전 있었던 강경희 장관의 테러 사건에 3기계화보병중대 1정찰소대 전초기지는 24시간 경계 강화 체제로 임무 중이었다.
이러한 전초기지로부터 1km 떨어진 산악지대에 달빛마저 구름에 가려 어두운 산악지대에 검은 그림자 수십 개가 은밀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의 움직임은 매우 신속하며 빠르게 이동했다. 이들의 정체는 바로 이란 혁명수비대 소속의 혁명특전대로 대부분 군 경력이 10년 이상의 베테랑으로 이뤄졌고 장비 역시 러시아로부터 첨단 장비를 지원받은 상태였다.
야간 투시경을 통해 컴컴한 야간에도 대낮처럼 보며 능숙하게 산악지대를 이동하는 이들은 사전에 만반의 준비를 했는지 한국군이 설치한 행동인식 탐지기가 설치한 곳을 피해가며 급기야 전초기지로부터 500m까지 접근했다.
50명에 달하는 이란 혁명특전대 그룹은 하나가 아니었다. 전초기지 반대편에도 한 무리의 혁명특전대 검은 그림자가 모습을 보였다. 총 100명에 달하는 혁명특전대가 전초기지와의 거리를 좁혀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