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린 6년
2021년 2월 25일 14:30,
일본 혼슈 지바현 신요코다 지하 벙커(통합막료감부 회의실).
“금일 새벽을 기해 도쿄도 내 전개한 모든 미군이 일제히 요코스카항으로 철수 중입니다.”
“시바사키 대신! 미군 사령관과 얘기가 잘 안 된 거요?”
“죄송합니다. 부총리님! 최선을 다해 설득을 해봤지만, 현재 미국 본토가 한국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큰 타격을 입으며 2차 증원군 소집이 어렵다는 이유로 일본에 주둔한 모든 미군을 한반도 전선으로 이동시키겠다는 미국 펜타곤의 결정입니다.”
시바사키 방위성 대신은 부총리를 볼 면목이 없었는지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말했다. 이에 아소 다로 부총리는 버럭 화를 내며 추궁하듯 말했다.
“그렇다고 도쿄도에 전개한 미군 전체를 철수하면 어찌합니까? 당장 철수해서 한반도를 진공 할 수도 없을 텐데 말이오. 시바사키 대신은 그거 하나 설득하지 못하고 뭐한 겁니까?”
“죄송합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한심하긴 정말 한심해, 이제 한국군이 도쿄가 점령하는 것은 시간문제군요.”
아소 다로 부총리는 작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그의 두 눈에는 분노 뒤에 누군가를 전범 책임자로 정할지에 대한 간사함이 가득해 보였다.
“시바사키 대신은 전쟁이 시작되고 지금까지 방위성 대신으로서 제대로 한 일이 없는 듯합니다?”
“아니, 무슨 그런 말씀······.”
“아베 총리 때부터 지켜봤소이다. 항상 뒤에서 제국주의를 부추기만 했지, 정작 한국과 전쟁이 시작되고 나서 뭐 제대로 한 게 있습니까?”
“부총리님! 말씀이 심하십니다.”
“심해요? 흥, 총리 대행으로 이제부터 시바사키 대신을 방위성 대신에서 보직해임을 하겠소. 숙소에 가서 잠자코 기다리고 있으시오.”
“지금 이러한 시국에 저를 방위성 대신에서 보직해임이라니요? 이건 월권입니다.”
“월권이라니? 난 지금 총리 대행자이오. 즉시 숙소로 돌아가시오”
쿠앙!
시바사키 대신은 갑작스러운 보직해임에 화가나 회의실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이에 회의실 공기는 급속도로 가라앉았다. 이런 분위기를 전환하고자 마사키 하지메 통합막료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 한쪽 벽면에 설치된 스크린으로 걸어가 말을 열었다.
“아소 다로 부총리님! 우리 일본 수도인 도쿄를 한국놈들에게 쉽게 빼앗기진 않을 겁니다. 현재 북부방면대 소속의 제2차량화보병사단, 제7기갑사단, 제5차량화보병여단에 도쿄 방어를 위해 긴급 기동하라는 명령을 내린 상태입니다. 또한, 한국군 제9기계화보병사단의 배후를 기습공격 할 제9차량화보병사단이 현재 안나카까지 기동해 교전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적어도 한국군 제9기계화보병사단을 제9차량화보병사단과 제6경보병사단이 앞뒤로 포위해 큰 타격을 줄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증권군인 북부방면대는 언제쯤 도쿄도에 진입해 지원할 수 있겠소?”
조금 전까지 화를 내며 시바사키 방위성 대신을 경질한 아소 다로 부총리는 이내 마사키 하지메 통합막료장 말에 귀를 기울였다.
“네, 앞으로 6시간 후면 도쿄도 내로 진입합니다.”
“6시간 후라, 그렇다면 한국군은 현재 어디까지 진공을 해왔소?”
“다시 한번 지도를 봐주시기 바랍니다. 한국군의 도쿄도 주공부대는 20기갑사단으로 현재 하치오지를 시작으로 사가미하라와 하노, 그리고 후추와 다마까지 진공 한 상태이며 현재 조후까지 밀고 들어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조후라······. 도쿄 코앞까지 밀고 왔군”
“증원군 북부방면대가 도쿄도에 진입할 때까지 어떻게든 제1기갑사단과 10개 보병사단이 목숨을 걸고 한국군 제20기갑사단의 도쿄 진입을 저지할 것입니다.”
“가능하겠소? 미군도 없는데?”
마사키 하지메 통합막료장의 자신감 넘치는 설명에도 아소 다로 부총리는 다소 걱정되는 말투로 질문을 던졌다.
“부총리님! 한국군은 도쿄로 진공을 하면 할수록 주위 도시를 추가로 점령해야 합니다. 즉 병력분산이 불가피합니다. 이에 20기갑사단의 주공부대를 제1기갑사단이 게릴라 시가전으로 시간을 벌고 위성도시로 분산된 후공부대는 10개 보병사단에서 저지할 것입니다. 또한, 역공을 위해 지금까지 전력을 보존했던 12공중기동헬기여단을 적극적으로 투입해 공중 타격전도 가할 것입니다.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꼭 도쿄만은 반드시 방어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일본의 전쟁 패배는 한 번으로 충분합니다. 다시금 2차 세계 대전과 같은 참혹한 흑역사가 되풀이되어선 절대 안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마사키 하지메 통막장?”
“하잇! 최선을 다해 막아내겠습니다.”
★ ★ ★
2021년 2월 25일 14:50,
일본 혼슈 지바현 신요코다 지하 벙커 (방위성 대신실).
다소 아로 부총리에게 보직해짐을 당한 시바사키 대신은 끌어 오르는 분을 삭이며 대신실로 들어왔다. 주일 미군으로부터 제공받은 5평 남짓한 사무실에는 책상과 의자 그리고 간이침대와 화장실이 전부였다.
“아소 다로 이 인간 모든 책임을 나한테 뒤집어씌우려고 선수를 치는군, 흥! 내가 이런 식으로 당할 사람이 아니다. 어림도 없지!”
의자에 앉아 책상에 발을 올려 꼬고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시바사키 대신은 잠겨진 서랍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1번을 길게 한번 눌렀다.
1분의 시간이 흘렀지만, 신호만 갈 뿐 상대방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에 시바사키 대신은 스마트폰을 그대로 바닥에 힘껏 집어 던졌다.
팍 악~
액정은 물론 배터리가 분리되며 박살이 났다.
“스핑크스 이 개자식! 너까지 전화를 안 받아? 좋아! 끝장을 보자!”
시바사키 대신은 USSC 의원 중 닉네임 스핑크스를 들먹이며 안쪽 주머니에서 작은 USB를 꺼내 노트북에 꽂았다. 그리고는 이메일 화면 창을 열고 방금 꽂은 USB의 자료를 메일 첨부파일로 올렸다. 또한, 메일 수신자란에는 세계 유수의 방송국 기자들의 메일주소를 입력했다. 그리고 엔터를 누르려는 그때, 뒤쪽에서 뭔가 음산한 느낌이 들었다. 이에 고개를 돌려 보려는 그때 누군가가 왼손으로 시바사키의 목을 감아 조이고는 오른손으로 입을 막았다. 스네이크 초크였다.
“읍! 읍!”
알 수 없는 상대에게 제압당해 벗어나려 발버둥을 쳤지만 엄청난 완력에 꼼짝을 하지 못했다. 조여오는 왼팔로 인해 머리에 피의 공급을 받지 못하자 시바사키 대신은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곧 사지가 축 늘어지며 기절했다.
시바사키 대신을 기절시킨 사람은 바로 1시간 전 지상 게이트를 간단한 신분 조회만 하고 지하 벙커로 들어온 턱수염 군인 즉 코드 네임 FH225인 스콜피온 요원이었다.
텀수염 군인은 의자에 축 늘어진 시바사키 대신의 입을 벌리고 혀를 잡아당겨 위로 올렸다. 그리고는 품에서 권총형 주사기를 꺼내 혀 밑쪽에 바늘을 찔러 주사액을 주입했다. 무색무취한 소량의 투명한 액체 200mg이 시바사키 몸속으로 빠르게 퍼졌다.
축 늘어진 시바사키는 심장의 박동이 서서히 늘려지면서 이내 멈췄다. 이에 턱수염 군인은 확실히 죽었는지 확인한 후 노트북의 메일을 삭제하고 USB를 뽑아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는 이내 조용히 시바사키 대신의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원래부터 미군 벙커였기에 복도에서 마주치는 일본 자위군의 의심을 받지 않으며 자연스럽게 인사까지 나누며 지나쳤다. 그리고 몇 분 만에 엘리베이터 앞에 선 턱수염 군인은 스마트폰을 꺼내 어디론가 메시지를 보냈다.
-코드 네임 FH225 표적 제거 완료!-
-코드 네임 AX001 그곳에서 즉시 빠져나오기 바람-
-코드 네임 FH225 접수 완료-
간단히 메시지를 주고받은 턱수염 군인은 바로 엘리베이터에 탑승하고는 지상으로 올라갔다.
★ ★ ★
2021년 2월 25일 15:10,
일본 혼슈 도쿄도 도쿄 시부야구.
20분 전, 치열한 교전 지역을 우회하여 이곳 시부야 구에 도착한 남궁원은 평상시였다면 교통지옥이었을 시부야 도로는 가끔 전차와 장갑차 등 군용차량만 이동할 뿐 일반 차들은 한 대 돌아다니지 않은 죽음의 도로와 같았다. 남궁원은 이곳에 도착하기까지 여러 차례 도로 곳곳에서 자위군으로부터 검문을 받았다. 그럴 때마다 미리 준비한 싱가포르 기자 위조신분증으로 무사히 통과한 남궁원은 작은 공원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남궁원은 스콜피온의 특정 주파수 신호를 더 넓은 범위로 찾기 위해 배낭에서 커다란 안테나를 꺼내 스마트폰과 연결했다. 이렇게 하면 탐지거리가 최대 60km까지 2배나 늘어났다.
아직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던 스마트폰의 화면에서 붉은 점이 희미하게 반짝이기 시작했다. 이에 남궁원이 그쪽으로 안테나를 돌리자 탐지된 신호는 더욱 커졌다.
‘그래 찾았다. 이 자식!’
지도상에 붉은 점으로 반짝이는 지역은 신요코다 주일 미 사령부가 있는 장소였다. 지하 벙커에 있던 턱수염 군인이 지상으로 올라오며 특정 주파수가 탐지된 것이었다.
남궁원은 즉시 자동차의 시동을 걸고 신요코다와 연결된 도쿄만 아쿠아라인을 향해 속도를 올렸다.
★ ★ ★
2021년 2월 25일 15:20,
일본 혼슈 지바현 신요코다 지하 벙커(지상 게이트).
수많은 미군 수송 차량이 철수를 위해 각가지 물자를 싣고 있는 지상 게이트 건물을 빠져나온 턱수염 군인은 주차해 둔 검은색 자동차에 타고는 이내 군복을 벗어 뒷좌석에 아무렇게 던졌다.
손쉽게 임무를 완수한 턱수염 군인 즉 코드 네임 FH225 스콜피온 요원은 선글라스를 쓰고는 이내 자동차 시동을 걸었다.
부응~
이제 요코스카항으로 돌아가 미군 수송함을 타고 일본을 빠져나가기만 하면 되었다. 이에 반대편에 있는 요코스카항을 가기 위해 도쿄만 아쿠아라인의 도로에 올라탔다.
가끔 군용차량만이 달리는 한산한 도쿄만 아쿠아라인 도로를 달리며 막 지하 도로로 들어가려는 그때 반대편 차선에서 하얀색 렉서스 차 한 대가 빠른 속도로 지하 도로에 빠져나와 막 지나치려 했다. 이에 코드 네임 FH225 스콜피온 요원과 렉서스 운전자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면 지나쳤다.
코드 네임 FH225 스콜피온 요원은 지하 도로를 운전하며 조수석 창문을 내리고 운전하는 렉서스 운전자의 눈빛이 조금은 거슬렸지만, 크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넘겼다.
한편, 조수석 창문 넘어 선글라스를 쓴 백인 사내와 눈빛을 교환한 남궁원은 그동안 쌓아왔던 복수심이 극에 달하며 얼굴이 빨개지기까지 했다. 평범한 대학생에서 한순간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친구까지 저세상으로 보내야만 했던 남궁원은 도쿄만 아쿠아라인 톨게이트를 빠져나오자마자 스키드 마크가 찍힐 정도로 급제동과 동시에 유턴해 반대편 차선으로 끼어들어 전속력으로 달렸다.
끼이이이이잉~ 부아앙~
스마트폰 화면에 표지된 붉은 신호의 위치는 남궁원 자동차와 12km 떨어진 상태! 혹시나 놓칠까 하는 생각에 남궁원은 RPM 바늘이 레드존까지 꺾으며 더욱 세차게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뻥 뚫린 편도 4차선 도로를 최고속도로 10여 분 정도 달리다 보니 드디어 검은색 자동차와 거리 500m까지 따라잡았다. 이에 남궁원은 속도를 줄이며 조용히 따라갔다.
그리고 10분 정도 더 달린 후 검은색 자동차는 요코스카 항구 전용 주차장에 아무렇게나 주차를 했다. 그리고 차에서 내린 스콜피온 요원은 빠른 걸음으로 항구 대합실로 걸어갔다. 항구에는 수많은 미 해병대원들이 완전군장을 메고는 각종 수송함과 상륙함에 탑승하기 위해 인산인해 했다. 그런 복잡한 인파를 헤치고 스콜피온 요원은 서슴없이 걸어갔다.
남궁원 역시 주차장에 주차하고는 배낭에 넣어두었던 각가지 장비를 착용하고는 그의 뒤를 조심히 따라갔다. 남궁원의 가죽 재킷 안쪽 왼쪽에는 CS5 레이저 피스톨이 홀스터에 꽂혀 있었다.
‘한 번의 기회만 있으면 된다.’ 남궁원의 머릿속에는 이 생각뿐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늘에서 들어줬는지 대합실에 들어온 스콜피온 요원은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는 화장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래, 화장실에서 해치운다.’ 복수를 위해 마음을 단단히 먹었지만 지금 남궁원의 심장은 증기기관차처럼 쿵쾅거렸다. 전문적인 현장 요원이 아니다 보니 극심한 긴장감에 머리까지 어지러웠다. 하지만 남궁원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이겨내려 했다. 남궁원은 선글라스를 쓰고는 인버터 비전 모드로 화장실 내부를 확인했다. 다행히 화장실에는 표적인 스콜피온 요원 한 명뿐이었다.
‘됐다. 지금이다’
침 한 번 꿀컥 삼킨 남궁원은 가죽 재킷 안쪽에서 CS5 레이저 피스톨을 꺼내 들어 지향 자세를 취하고는 조심스럽게 남자 화장실로 들어갔다.
퍼억! 퍼퍽퍽!
이때 어디선가 강한 충격이 남궁원의 손목을 쳤다. 이에 CS5 레이저 피스톨은 화장실 바닥에 나뒹굴었고 또다시 남궁원의 얼굴에 강한 충격이 밀려왔다.
사실 스콜피온 요원은 요코스카 항구에 도착하기 전부터 자신의 차를 뒤쫓아오는 하얀색 렉서스 차량에 대해 진작에 눈치를 채고 있었다. 이 바닥의 베테랑답게 알면서도 모른 척 한 스콜피온 요원은 도리어 남궁원을 화장실로 유인한 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