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린 6년
2021년 2월 25일 10:30,
일본 혼슈 후쿠이현 쓰루가시 (제2차 상륙군 군수지원여단 주둔지).
쓰루가의 넓은 공터에는 제2차 상륙군의 군수지원여단이 주둔하여 한국에서 수송해온 각종 전쟁물자를 일본에 상륙한 한국군에게 원활히 조달하고 있었다. 조금 전, 충무공이순신함(CG-1101)을 비롯해 한국 해군 구축함의 호위를 받으며 부산항에서 출항한 10여 척의 수송함과 군수지원함이 쓰루가 입항했다.
그리고 정박한 군수지원함에서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무거워 보이는 배낭을 멘 한 사내가 군수지원함의 계단을 통해 하선했다. 그리고 외항 밖에서 미리 대기하던 군수지원여단의 C-160 험비 소형전술차에 탔다.
“어서 오세요. 군수지원여단 본부대대의 나상환 중사입니다.”
뒷좌석에 배낭을 내려놓고 조수석에 탄 사내에게 인상 좋아 보이는 군인이 자기소개하며 악수를 청했다. 나상환 중사는 군인치고는 인상이 매우 좋아 보였다.
“안녕하세요. 국정원 소속 남궁원 팀장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하하하, 남들은 이곳을 뜨고 싶어 안달인데, 남 팀장님은 전쟁 한복판으로 들어오시고, 혹시 특수임무 때문에?”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나상환 중사가 물었다. 이에 남궁원은 짧게 대답했다.
“개인적으로 할 일이 있어서요.”
“아~ 개인적으로······.”
뭔가 말하고 싶지 않다는 느낌을 받은 나상환 중사는 재차 물어보려 하다가 이내 포기하고는 차를 출발시켰다.
4일 전, 가족과 친구를 죽인 스콜피온 요원의 최근 통신 내역 파일의 암호를 푼 남궁원은 이 중 친구 강정호를 죽인 러시아계 미국인인 세르게이 하리토노프라는 스콜피온 요원이 극비의 임무를 맡고 금일 아침 일본 요코스카항에 도착한다는 정보를 알아냈다. 그리고 호큘라의 도움을 받아 30km 이내 거리에서 스콜피온 조직이 사용하는 통신 프로토콜의 특정 주파수를 찾아 대략적인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프로그램까지 개발해 남궁원 자신의 스마트폰에 설치했다.
스콜피온 요원의 실체를 알게 된 후 남궁원은 대테러수사국 안연우 부국장에게 가족과 친구의 복수를 위해 도와달라는 요청을 했다. 이에 안연우 부국장은 처음엔 극구 만류하며 모든 걸 잊고 새 삶을 살라고 설득했으나 계속된 남궁원의 요청과 누구보다 남궁원의 슬픈 과거를 가장 잘 알고 있었기에 고민 끝에 들어 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내막 속에 남궁원은 여자친구인 이혜진 과장에게는 잠시 지하연구소에 출장 간다고 둘러대고 어젯밤 쓰루가 항으로 출항하는 군수지원함에 승선해 이곳으로 오게 됐다.
부우우웅~ 끼이익!
창문을 열고 늦겨울 바닷바람을 맞으며 잠시 사색에 잠긴 남궁원을 태운 소형전술차는 어느덧 해안도로를 벗어나 십 분도 안 걸려 군수지원여단 주둔지에 들어섰다. 그리고 상당히 넓어 보이는 군수지원여단
“저기! 3호기가 남궁 팀장님이 타고 갈 스카이버스입니다. 저기 보이는 군인한테 이거 보여드리면 됩니다.”
나상환 중사는 신용카드 크기의 허가증을 내밀며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나상환 중사가 가리킨 곳에는 수직이착륙 수송기인 CMV-100 스카이버스가 여러 군수 물품을 한가득 싣고 이륙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 고맙습니다. 나상환 중사님! 전쟁이 끝날 때까지 몸조심하세요.”
“네, 남궁원 팀장님도 개인적인 일 잘 해결하기 바랍니다.”
“네, 그럼 이만”
인사를 나눈 남궁원은 뒷좌석에서 배낭을 꺼내 매고는 스카이버스 3호기로 걸어가 책임자로 보이는 자네에게 방금 나상환 중사에게 받은 허가증 카드를 내밀었다.
“저기, 남궁원이라고 합니다.”
“아! 얘기는 들었습니다. 3호기에 타세요. 앞으로 10분 후에 이륙합니다.”
“고맙습니다.”
‘안 부국장님께서 신경 많이 써주셨군,’
도쿄까지 갈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해준 안연우 부국장에 대한 고마움이 든 남궁원은 상기되었던 얼굴에 미소를 보이며 스카이버스에 탑승했다. 널따란 화물칸의 접이식 의자에 앉은 남궁원은 배낭을 옆좌석에 두고는 창문 넘어 밖을 바라봤다.
이곳 쓰가루시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전쟁 중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평화로워 보였다. 간혹, 포격으로 인해 건물이 무너져 골조물이 보이고 불에 탄 곳곳의 집들을 제외하고 말이다.
잠시 후 얘기했던 시간이 되자 남궁원이 탑승한 3호기를 비롯해 10여 기의 스카이버스가 수직으로 이륙하면서 각자 군수 물자를 수송할 지역으로 기수를 돌려 서서히 속도를 높이며 비행했다.
남궁원이 탄 스카이버스 역시 어느 순간 마하 1을 돌파하며 제20기갑사단(결전) 본부의 주둔지인 하치오지시로 날아갔다.
★ ★ ★
2021년 2월 25일 11:00,
일본 혼슈 도쿄도 후추 시가지.
26전차대대에 복귀한 712호 전차는 7중대 1소대에 합류하여 후추 시가지 진공 임무에 들어갔다. 새벽까지 도쿄도 곳곳에서 결전을 치렀던 제61기갑여단이 보고한 대로 미 해병대가 썰물 빠지듯이 빠져버린 후추 시가지에는 간헐적인 육상자위군 제1기갑사단 소속의 전차와 장갑차만이 기습적인 공격을 가해왔지만 도리어 괴멸 수준의 피해를 보고는 후퇴했다.
이제 도쿄 중심까지 25km가 남은 상태였다. 도쿄 중심으로 갈수록 육상자위군의 저항이 격렬하겠지만, C-3 백호 전차는 고사하고 C-23P 현무 보병전투장갑차의 장갑도 피격시키지 못하는 무늬만 120mm 활강포를 장착한 육상자위군의 최신예 10식 전차에 염려할 일은 아니었다.
쿠르르르릉. 쿠르르르릉.
조금 전, 이동 경로 38구역에서 제1기갑사단 소속의 10식 전차 4대를 격파한 7중대 1소대(붉은소)는 712호 전차가 가장 뒤에서 기동하며 종렬 대행으로 후추 시가지 중심부를 가로질렀다. 2km만 더 기동하여 33구역만 점령하면 오전 할당받은 임무를 완수하고 점심시간까지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예상보다 30분 정도 더 빠른 점령 속도였다.
7중대 1소대 전차가 좌우로 광자포 포신을 돌려 도로를 따라 기동하는 가운데 간혹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길거리에 나온 후치 시민들은 한국 전차를 보고는 질에 겁을 먹고는 건물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아마도 그들의 눈에는 한국군이 침략군이자 사랑하는 가족을 죽인 살인자로 보였을 것이다.
삐빅. 삐빅! 비삑.
저층 빌딩 숲을 기동하던 선두 백호 전차인 713호 전차의 LWR에서 대전차 미사일의 레이저 조준 감지 경고음이 울렸다. 이에 자동으로 주 포탑은 회전했고 짧은 순간 작은 포성과 함께 광자포에서 붉은 입자를 토해냈다.
713호 전차에서 발사한 광자포 입자는 정확히 2시 방향 5층 옥상에서 대전차 미사일을 쏘려던 육상자위군 보병에게 날아갔다.
쮸웅~ 콰콰쾅!
5층 옥상 전체가 붉은 광자포 입자가 휘몰아치며 폭발했고 대전차 미슬을 발사하려던 육상자위군 보병들은 초고열의 입자에 의해 한 줌의 재로 변하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여기는 붉은소 하나, 둘과 넷은 전방 500m 지점까지 기동해 전방 경계 들어간다. 붉은소 둘은 현 위치에서 후방 경계하도록, 다들 대전차 미슬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도록”
711호 전차장이자 소대장의 지시가 헤드셋을 통해 붉은소 전차 소대에 전해왔다.
“여기는 붉은소 둘 확인 이상!”
“여기는 붉은소 셋 확인 이상!”
“여기는 붉은소 넷 확인 이상!”
원래 712호 전차가 선두 기동으로 전방 경계를 펼쳐야 하는 임무였지만 현재 전차 상태가 극히 안 좋았기에 714호 전차가 맡은 후방 경계 임무를 하게 됐다. 사실 대 평원이 아닌 시가전에서는 앞뒤가 없었다. 수많은 건물과 복잡하게 이어진 도로 때문에 언제 어디에서 매복하고 있다가 공격할지 모르는 상황이기에 꼭 후방 경계를 맡았다고 위험도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다.
삐빅! 삐빅! 비삑!
전방 옥상에서 1소대를 노리던 대전차 미슬 보병들이 사라진 가운데 이번에는 후방을 경계하던 712호 전차의 LWR에서 대전차 미슬 레이저 조준 경고음이 울렸다. 회전판 고장으로 자동 표적 설정이 안 되는 712호 전차의 전차장 오영택 중사는 디스플레이의 디지털 지도상에 레이저 송출지점이 표기되는 곳을 확인하고는 이네 소리쳤다.
“염아! 왼쪽으로 90도, 거리 180m 대전차 미슬이다. 전차 빨리 돌려!”
“네, 알겠습니다.”
후방으로 바라보던 712호 전차는 제자리에서 좌현으로 90도를 돌리며 움직이지 않은 주 포탑을 대신해 오영택 상사가 가리킨 방향으로 틀었다.
“염아! 5도 정도 더 왼쪽으로 꺾어!”
조준경을 통해 대전차 미사일을 발사하는 그림자를 확인한 포수 김영주 중사가 소리쳤다.
“네, 알겠습니다.”
끼이잉~
슈우웅~ 슈우웅~
멀지 않은 곳에서 2발의 대전차 미사일이 하얀 연기를 흩날리며 하늘로 솟구쳤다. 그리고 이내 고도를 떨어뜨리며 712호 전차 주 포탑 상단을 노리며 낙하했다. 한편 712호 전차에서도 광자포가 불을 뿜었다.
쮸웅~
대전차 미사일을 발사하고 즉시 도망가려던 제1기갑사단 소속의 중화기 보병들을 덮쳤다. 30분 전부터 다리 밑에서 매복하고 있다가 712호 백호 전차를 노린 제1기갑사단 대전차 미슬 보병들은 그대로 흔적도 없이 타버리며 바람에 흩날리는 재로 변해버렸다.
한편 50m 상공까지 솟구친 2기의 대전차 미사일은 그대로 712호 전차에 떨어졌다.
쾅앙! 콰아앙쾅
두 번의 폭발과 함께 712호 전차 주위에 검붉은 불꽃과 함께 시꺼먼 연기가 솟구쳤다. 하지만 다행히도 712호 전차의 강력한 SECM 전파 교란에 영향을 받은 대전차 미슬 2기는 목표 타켓이 틀어지며 그대로 도로에 처박혀 폭발했다.
“바로 이거거든! 되잖아 염 병장아! 하하하”
“아! 전차장님!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저 긴장돼서 손발이 안 움직입니다.”
“야! 난 염 병장 조종실력을 믿는다. 방금처럼, 타킷팅 알려주면 그대로 전차를 돌리도록 해!”
“아 정말 5세대 전차로 1차 세계 대전 초기 전차처럼 운용하려 합니까?”
염훈기 병장이 투덜거리자 오영택 상사는 딱 잘라 말했다.
“잔말 말고 다시 원래 위치로 돌려라!”
“아나~ 알겠습니다.”
1차 세계 대전 당시 초기 전차 모델처럼 전차포와 전차가 일체형으로 되어있어서 적 전차를 피격할 때는 직접 전차가 좌우로 움직여 조준해 쏘는 형식이었다. 지금 712호 전차가 지난 100년 전 전차 운용 방식을 그대로 따라 할 수밖에 없는 슬픈 현실이었다.
★ ★ ★
2021년 2월 25일 11:20,
일본 혼슈 도쿄도 하치오지시 서단 2km (제20기갑사단(결전) 본부 주둔지).
쓰루가에서 이륙한 지 30분 만에 제20기갑사단(결전) 본부의 임시 주둔지에 도착한 남궁원은 스카이버스에서 내린 후 기다리고 있던 장교와 악수를 하며 인사말을 나눴다.
“상부로부터 얘기는 들었습니다. 자 따라오시죠.”
대위 계급장을 단 장교 한 명이 앞장서 걸어갔다. 이에 배낭을 멘 남궁원은 조용히 따라갔다.
100m 정도 걸어간 후 장교가 뒤돌아보며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저 차량입니다.”
장교가 가리킨 것은 렉서스 IS250 하얀 승용차였다.
“자 이것도 받으세요.”
대위 계급의 장교는 차 키와 함께 태블릿 PC를 건넸다.
“여기 디지털 지도에도 현재 우리 군이 점령한 지역이 표기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참고로 후추까지 이동하시고 그다음부터는 조심히 가야 합니다. 특히 후추 외곽은 일본놈들과의 교전이 치열하니 조심히 이동해야 합니다.”
대위 계급의 장교는 건네 태블릿 PC 화면에 보이는 디지털 지도 곳곳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고맙습니다. 이거 바쁜데 저로 인해 시간을 뺏겼는지 모르겠습니다.”
“하하, 아닙니다. 합참에서 직접 남궁원 팀장님을 확실히 지원하라는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네? 합참에서요?”
“네! 모르셨습니까?”
“아!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남궁원이 개인적인 일로 교전 지역인 도쿄 시내로 들어가는 데 있어 한국군의 지원을 받기는 어려웠다. 처음 남궁원의 부탁을 받았던 안연우 부국장은 권한 밖의 일이라 고민 끝내 나봉일 원장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에 나봉일 원장은 합참에 협조 요청을 하였고 다행히 합참에서도 최대한 지원을 하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부우우웅~
태블릿 PC의 디지털 지도를 보며 한국군이 점령한 지역의 도로를 따라 운전하던 남궁원은 스콜피온 통신 프로토콜 특정 주파수를 탐지하는 프로그램을 켰다. 아직 이렇다 할 신호는 잡히지 않았지만, 도쿄 시내로 진입하면 분명 신호가 잡힐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면 액셀러레이터를 발에 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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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25일 14:00,
일본 혼슈 지바현 신요코다 지하 벙커.
일본 내각과 주일 미 사령부가 함께 지내는 신요코다 지하 벙커에 턱수염이 더부룩한 백인 사내가 미군복을 입고 지상 게이트에 모습을 드러냈다. 신요코다 지하 벙커의 보안 경계는 주일 미 사령부 병력이 담당이기에 그 턱수염 사내는 간단한 신분 조회만 걸치고 통과했다.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이 턱수염 군인의 출입 검문 절차는 매우 간단히 끝났다.
“3번 엘리베이터로 내려가시면 됩니다.”
게이트 보초병인 미군 한 명이 패스 카드를 건네며 말했다. 이에 턱수염 군인은 알았다는 손짓만 하고는 3번 엘리베이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상 게이트를 간단히 통과한 턱수염 군인은 3번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100m까지 내려와 내렸다. 그리고는 여러 갈래의 복도 중 망설임 없이 왼쪽 끝 복도로 걸어갔다. 이미 모든 길을 알고 있다는 듯이 말이다.
턱수염 군인이 걸어가는 복도는 일본 내각 인사들과 통합막료감부 지휘관들이 지내는 장소와 연결된 복도였다.
복도를 따라 걸어가는 턱수염 사내의 목적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고 처음 온 이곳을 뻔히 알고 있는 듯 한 곳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턱수염 군인의 옷 속에는 권총 형태의 주사기가 숨겨져 있었다.
그리고 어딘가로 스마트폰을 꺼내 들어 통신을 보냈다.
-코드 네임 FH225 목표지점 도착-
-코드 네임 AX001 표적 제거는 금일 6시 안으로 처리 바람-
-코드 네임 FH225 접수 완료-
턱수염 군인은 바로 코드 네임 FH225인 스콜피온 요원, 세르게이 하리토노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