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3화 (233/605)

다윗과 골리앗

2021년 2월 13일 22:30,

일본 규슈 사가현 사가시 북서단 19km 203도로(제2해병사단).

사가부터 북서단 19km 떨어진 203 도로에는 제3해병사단의 선봉을 맡은 신속대응연대인 까치독사연대의 K-23P-M 기동전투장갑차 72대가 종대 대형을 유지한 채 고속기동 중이었다. 그리고 상공에는 7기동헬기대대 KUM-M50 슈퍼수리온 기동헬기 16대와 제10상륙함대 소속의 강화도급 LHD 강습상륙함에서 공중 지원을 온 WAH-91SP 송골매 공격헬기 16대가 전방위 공중 엄호를 펼치며 앞서서 날아갔다.

또한, 지속적인 스파이더 드론의 정찰과 아폴론 정찰위성으로부터 전달받은 정보로 서부방면대의 제8기갑사단과 일부 살아남은 제4기계화보병사단이 사가부터 구루메시를 지나 후쿠오카시까지 이어진 대략 65km에 걸친 평야 지대를 규슈 방어 전선으로 구축해 제2해병사단의 진공을 방어하고 있다는 것을 사전에 모두 파악한 상태였다. 이에 제3해병사단 중 제8기갑사단의 기갑전력을 상대할 수 있는 까치독사연대가 선봉으로 나섰고 더불어 제10상륙함대 해군항공대 소속의 공중 전력까지 지원을 받으며 방어 전선을 돌파할 예정이었다.

10여 분이 지난 후 203도로의 끝자락에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평야 지대가 까치독사연대를 맞이했다. 이에 까치독사연대의 김인혁 연대장은 도로를 이탈해 사가로 곧장 기동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연대장의 명령에 일제히 도로의 난간을 넘어 야지로 들어선 기동전투장갑차 위로 WAH-91SP 송골매 공격헬기 16기가 횡대 대형으로 전환하며 서서히 속도를 올려 사가로 곧장 날아갔다. 그 뒤로 슈퍼수리온 기동헬기 16기가 속도에 맞춰 따라갔다.

★ ★ ★

2021년 2월 13일 22:50,

일본 규슈 사가현 사가시 북서단 5km 평야 지대.

사가 전방 방어를 책임진 제8기갑사단 제43전차연대 상공에 로터 엔진 소리와 함께 지금까지 보지 못한 조금은 이질적으로 생긴 WAH-91SP 송골매 공격헬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강력한 스텔스 기능에 레이더에도 탐지되지 않고 어두운 밤하늘에 로터 소리만 울리며 각가지 불빛을 반짝이며 다가오는 검은색의 송골매 공격헬기는 이를 상대하는 육상자위군에게는 그야말로 두려움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WAH-91SP 송골매 공격헬기는 해군이 보유한 최신 스텔스 공격헬기로 육군에서 운용하던 FAH-91SP 송골매 공격헬기를 해상에서도 운용할 수 있도록 내장 연료전지를 대폭 늘려 항속거리를 상당히 길어졌고 해상 불시착 시 승무원 탈출시간과 기체를 보호할 수 있는 비상 부주장치 장착과 해수에 의한 부식 방지를 위한 기체 방염 기술을 업그레이드한 버전이었다.

제10상륙함대 소속의 해군항공대 비행대대장 오형진 중령은 적외선 모드와 자기장 모드로 육상자위군 제43전차연대의 90식 전차와 각가지 장갑차를 확인하고는 공격명령을 내리기 위해 대대통신망을 개방했다.

- 바닷새 하나, 여기는 바닷새 하나, 지금부터 편대 단위로 지상공격 시작한다.

- 여기는 갈매기, 라저.

- 여기는 부비, 라저.

- 여기는 기러기, 라저.

오형진 중령의 공격명령이 떨어지자 횡대 대형으로 침투하던 WAH-91SP 송골매 공격헬기는 저마다 편대 단위로 흩어지며 공격 준비에 들어갔다. 저공비행으로 돌입하면서 지상이 가까워지자 헬멧 바이저를 통해 10식 전차의 모습이 확연히 눈에 들어왔다.

“네놈이 첫 번째 타자다!”

오형진 중령은 송골매 공격헬기의 양쪽 날개에 장착된 20연장 50mm 플라즈마 활성탄의 발사 버튼을 눌렀다.

슈우웅~ 슈우웅~ 슈우웅~

양쪽 주익 날개에 파이프 형태로 장착된 20연장 발사관에서 플라즈마 활성탄 로켓 여러 발이 불을 토하며 날아갔다. 갑작스러운 공급 사이렌에 놀란 승조원들이 허겁지겁 전차에 타려던 10식 전차에 거대한 화염이 치솟았다. 승무원들 역시 화염에 휩싸이며 시꺼먼 형체로 날아갔다.

콰앙! 콰앙! 콰앙!

이것을 시작으로 사방 곳곳에서 지축을 흔드는 크고 작은 폭발들이 연이어 일어났다.

콰아아앙! 콰앙!

위이이잉! 위이이잉!

43전차연대 본부중대 소속의 87식 자주대공포의 쌍열포가 기계음을 내며 하늘에서 불꽃을 쏟아내는 송골매 공격헬기를 사격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냈다.

자주대공포치고 15억 엔에 달하는 매우 비싸기로 소문난 87식 자주대공포의 자체 레이더가 돌아가며 송골매 공격헬기를 탐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비싼 만큼 레이더의 성능은 제값을 하지 못했다. 송골매 공격헬기의 스텔스 기능과 강력한 SEMP 전파 교란 능력이 탁월한 점도 있었지만, 가격대비 레이더 성능은 최악이었다.

어쨌든 정확한 조준이 안 된 상태에서 급한 나머지 대공포 사수는 방아쇠를 당겼다. 사거리 3km인 35mm 쌍열 기관포에서 분당 550발의 속도로 탄들을 어두운 밤하늘에 뿌려댔다.

드르르르르르륵.

수많은 붉은 빛줄기가 하늘을 수놓았지만, 송골매 공격헬기들은 멋진 회피기동을 펼치며 쉽게 대공포 화망에서 벗어났고 도리어 플라즈마 활성탄으로 보복을 가했다.

하나둘씩 87식 자주대공포는 폭발하며 화염에 휩싸였고 82식 지휘통신장갑차에서 지켜보던 43기갑연대장인 오타니 신조 일등육좌가 참모관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대체 대공 방어 부대는 뭐 한 거야? 여기까지 조센징 공격헬기가 오는 동안 말이야! 사단엔 연락했나?”

“현재 제8육상비행대대가 출격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언제 온다는 거야?”

“10분 안에 도착할 것으로 보입니다.”

“10분? 그동안 버틸 수 있으려나 모르겠군···.”

규슈의 제공권을 상실한 항공자위군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육상자위군은 그나마 제8기갑사단의 제8항공비행대대를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2000년 후반부터 미국으로부터 도입한 AH-64DJ 롱보우 아파치는 라이센스로 일본에서 자체 생산한 13대를 포함해 총 90대를 보유했으나 2016년 보통국가로 천명하며 아파치 공격헬기의 추가 도입을 추진해 대한민국이 도입한 기종과 같은 AH-64E 아파치 가디언을 98기나 운용하게 되었다.

AH-64E 아파치 가디언은 기존 AH-64D 아파치 롱보우를 대폭 개량한 기종으로 공대지 AGM-114 헬파이어 미사일과 공대공 AIM-92 스팅어 미사일 또는 AIM-9 사이드와인더 공대공 미사일, 그리고 70mm 히드라 70 FFAR 로켓과 M230 30mm 체인 건을 동시에 탑재할 수 있다. 또한, 최신 사격통제장치와 생존 장비를 갖췄으며 주·야간 전천후 작전 수행도 가능해 현존하는 최고의 공격 헬기로 꼽혔다. 하지만 이러한 순위는 서방국가에 알려지지 않은 대한민국의 송골매 공격헬기를 제외했을 때의 결과였다.

송골매 공격헬기 16기가 지상의 모든 걸 지워버리듯 제43전차연대를 격멸시키는 가운데 전속력으로 야지 기동하던 신속대응연대인 까치독사연대의 K-23P-M 기동전투장갑차 72대가 육상자위군 43전차대대와의 교전 거리까지 접근했다.

차륜형 K-23P-M 기동전투장갑차의 상탑 포탑의 50mm 광자포에서 일제히 광물질을 토해냈다. 또한, 상탑 후미에 장착된 32연장(16x2) 발사관에서 50mm 플라즈마 활성탄 로켓이 연달아 발사됐다. 이에 하얀 항적의 포물선을 그으며 제43전차연대로 날아간 활성탄이 폭발하자 어두운 평야 지대를 환하게 밝혔다.

10식 전차보다 긴 사거리를 자랑하는 50mm 광자포의 선제공격을 받은 제43전차연대는 송골매 공격헬기의 공중 공격에 이어 지상공격까지 받게 되자 적절한 대응 기갑전술을 펼치지 못하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 여기는 바닷새 하나, 노우스 포인트 헬기 다수확인, 거리 16, 지상의 쥐들은 까치독사에게 양보! 2시 방향으로 고속기동 및 5km에서 인게이지 오펜스 이상!

- 여기는 갈매기, 라저.

- 여기는 부비, 라저.

- 여기는 기러기, 라저.

어느 정도 제43전차연대를 정리한 오형진 중령은 2시 방향에서 날아오는 제8육상비행대대의 아파치 가디언 공격헬기에 대한 공격명령을 내렸다. 현 교전 지역에서 붙게 되면 혹, 아군 지상 병력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일만의 피해를 사전에 차단하고자 이동해서 교전하겠다는 판단이었다.

WAH-91SP 송골매 공격헬기 16기는 지상공격을 멈추고 일제히 고도를 높였고 곧장 2시 방향으로 선회해 날아갔다.

★ ★ ★

2021년 2월 13일 23:00,

일본 규슈 사가현 사가시 외곽.

한편 송골매 공격헬기를 따라가다 방향을 틀어 교전 지역을 크게 우회한 KUM-M50 슈퍼수리온 기동헬기 16기는 사가 외곽에 도달했다. 그리고 지상 8m 높이에서 호버링을 유지하자 탑승한 해병대원들은 헬기 레펠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몇 분도 되지 않아 신속한 동작으로 지상에 착지한 500여 명의 해병대원은 소대 단위로 정방 사주경계를 취했고 대대장의 명령에 따라 사가 시내로 투입했다.

이들의 임무는 사가 시내의 주요 공공건물의 점령 및 시내에 주둔 중인 일부 육상자위군 병력과 경찰의 제압이었다.

타탕! 타타타타탕! 타탕!

시내 곳곳에서 경쾌한 총성이 울려댔다. 제8기갑사단의 일부 직할 부대 보병과 경찰이 시내로 침투한 제7기동헬기대대 해병대를 향해 총격을 가했다. 하지만 레이저 라이플과 보호 슈트 착용, 그리고 최첨단 개인 장비를 사용하는 해병대원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2소대! 3소대가 사격 지원하면 무조건 전방 기역으로 꺾인 도로까지 이동한다.”

3중대장의 목소리가 헬멧에 장착된 통신기기를 타고 들려왔다. 이에 2소대장이 소대원을 바라보며 손짓으로 명령을 내렸다.

“달려!”

쭈웅쭈웅쭈웅쭈웅~

순간 수많은 빛줄기가 전방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2소대 해병들은 이때를 놓칠세라 뛰기 시작했다.

팟팟팟팟.

죽을힘을 다해 3중대 2소대 소속인 강경태 상병이 뛰어갔다. 그리고 그 근처에 무수히 많은 탄착이 형성되며 불꽃이 튀겼다.

“이 새끼들 왜 나만 갖고 그래!”

목표지점까지 도달해 벽면을 등지고 숨을 고른 강경태 상병은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꼭 자기한테만 사격을 가한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넌 교전 중에 왜 자꾸 중얼거려?”

언제 왔는지 소대 선임인 김인후 병장이 숨을 헐떡거리며 말했다.

“이 새끼들이 꼭 저한테만 사격하는 거 같습니다.”

“웃기네, 나 뛰어오다가 다리 한 대 맞고 아파 죽겠거든?”

김인후 병장은 오른쪽 다리 종아리 부위를 매만지며 말했다.

“그렇습니까? 제가 복수해드리겠습니다.”

강경태 상병은 고참이 맞았다는 사실에 고소했는지 싱글벙글 웃으며 대답했다.

“이 자식은 고참이 총을 맞았다는데 웃고 지랄이야. 복수든 뭐든 한번 해봐!”

“기다려 주십시오.”

강경태 상병은 헬멧 왼쪽에 있는 버튼을 클릭했다. 적외선 모드에 인버터 비전 모드를 추가하자 전방에 차량 뒤에서 숨어 가끔 총격을 가하는 경찰 2명이 보였다. 이에 강경태 상병은 숨 한번 쉬고는 그대로 사격 자세를 취하고는 CS1 방아쇠를 당겼다.

경쾌한 발사음과 함께 두 줄의 레이저 빛줄기가 길가에 세워진 차량 뒤에서 엄폐하고 있던 경찰에게 날아갔다. 레이저 빔은 가볍게 차량을 꿇어버리고는 그대로 경찰 2명을 가슴팍과 복부에 꽂혔다.

커어어억!

안전하다고 생각한 차량 뒤에서 숨어있던 경찰 2명이 짧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자 근처에 있던 다른 경찰들이 흠칫 놀라며 헐레벌떡 도망치기 시작했다.

“보셨습니까?”

“이 자식 스나이퍼 수준인데?”

“뭘 이 정도로 스나이퍼라고 하십니까? 해병대라면 기본 아니겠습니까?”

“지랄한다.”

웬만한 엄폐물로는 해병대원이 사용하는 개인화기인 CS1 레이저 라이플 빔을 막지 못했다. 또한, 어두운 밤에서도 낮처럼 볼 수 있고 건물 내부까지 투영하는 인버터 비전 모드로 전투를 벌이는 무적 해병대와의 시가전은 처음부터 승자는 정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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