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국면
2015년 9월 15일 12:00,
대한민국 서울.
전 세계를 경악하게 했던 8‧15 평양 폭탄 테러는 대한민국과 북한에 크나큰 후유증을 남겼다. 가장 관심이 쏠렸던 테러범의 정체는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정권을 잡은 후 피바람의 숙청 당시, 운 좋게 살아남은 소수 급진 강경파의 소행으로 전원 체포하여 총살했다는 북한 당국의 일방적인 발표가 있었다. 하지만 국내 언론은 물론 세계 언론은 그 발표를 믿지 않았다. 지금까지 믿을 수 없는 행보를 해왔던 북한이었기에 세계 언론은 하루가 멀다고 온갖 가설의 음모론을 내세우며 쓰레기와 같은 기삿거리를 쏟아냈다.
또한, 북한의 일방적인 외교단절 통보와 대한민국의 테러조사위원회 방북 수용도 거부하는 비상식적 행동으로 남북 간 긴장감은 극도로 팽배해졌고 전쟁 위기까지 고조되면서 해외 투자회사들의 자본금은 물밀 듯이 빠져나가 코스닥과 코스피 증권시장은 끝없는 밑바닥을 쳤고, 전 세계로 퍼진 한류 덕에 연간 천만이 넘었던 외국 관광객 또한 발길을 뚝 끊기자 이는 내수시장의 몰락으로 이어졌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줄줄이 도산 위기에 직면하며 수많은 실업자를 양산했다.
이런 국가적 경제 위기는 1998년 IMF는 위기도 아니라는 서민들의 한탄과 이런 위기가 언제까지 이어질까 하는 두려움과 원망으로 하루하루를 사는 상황 속에서 기득권층은 해외로 재산을 빼돌리며 가족 전체가 이민 아닌 이민을 하려는 추태를 보였다. 동북아 주변국 또한 한반도 전쟁 발발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주시하며, 각종 음모설과 언론 몰이로 한반도 위기를 자국의 이익으로 삼기 위해 더 촉발하는 이기적인 행보를 보였다.
이렇게 사면초가에 빠진 대한민국의 가장 큰 문제는 대통령의 부재였다. 안형준 대통령의 서거로 오영국 국무총리가 임시 대통령직을 수행하였으나, 국무총리의 임시 대통령직 수행은 국정 업무에 있어서 한계를 보였고 이에 국가 비상위원회에서는 헌법 68조 2항에 의해 2015년 10월 9일 19대 대통령 선거일로 정하였다. 대한민국 국민은 물론 세계 언론매체는 파국으로 치닫는 대한민국을 구할 새로운 대통령이 누가 될지에 대해 모든 관심이 쏠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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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2일 16:00,
서울시 성북구 안암동 대한대학교 컴퓨터공학부 강의실.
‘아, 마지막 단계에서 막히다니······. 인간 김퓨러! 한물간 거야? 그놈의 군대만 아니었어도 내 실력이 이렇게 죽진 않았을 텐데, 제기랄.’
대한대학교 컴퓨터공학 3학년인 김인직은 어제 있었던 일들을 회상하느라 앞에서 열심히 설명하는 교수의 말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저번 8‧15 평양 폭탄 테러가 터졌을 당시 김인직은 2포병여단의 100대대에서 병장 4호봉으로 제대 3일을 남겨둔 말년 병장이었다. 평양 폭탄 테러가 터지자 군 전체에 ‘데프콘 2’ 발령과 함께 국가 비상체제로 전환되자 모든 전역 예정자의 복무 기간이 3주가 연장되었다. 이에 병장 5호봉으로 전역한 시대의 불운아이자 대한 남아 김인직은 설상가상으로 복학신청을 제때 하지 못해 1년을 백수 아닌 백수로 지낼 뻔했다.
하지만 국가 위기로 인해 복무 기간이 연장되어 복학 시기를 놓친 김인직과 같은 전역자를 대상으로 대학교에서 늦게나마 복학신청을 받아줘 정상적으로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김인직은 고등학교 때부터 국내는 물론 해외 화이트 해커 대회에 출전하여 대상을 받은 경력도 있었고 이쪽 세상에서는 김퓨러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또한, 대학교 진학 역시 대한민국의 명문대학교인 대한대학교 컴퓨터공학부에 특기 장학생으로 입학까지 했다. 가히 대한민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을 갖춘 그런 김인직이 어젯밤 마지막 보안망을 뚫지 못하고 실패한 원인을 군 복무 기간의 연장으로 실력이 줄었다는 얼토당토않은 핑계를 대며 인상을 잔뜩 쓴 얼굴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덧 수업은 끝났고 학생들은 다들 강의실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옆에 앉았던 단짝 친구인 강경호가 능글맞을 웃음을 보이며 불렀다.
“인직아, 오늘 미팅 있다잉. 급미팅! 킥킥킥, 이 엉아가 너를 위해 준비했으니까 꽃단장하고 가자! 나, 너, 재윤이까지 삼 대 삼 미팅이다.”
“싫다.”
김인직은 모든 게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대로 창밖을 보며 짧게 대답했다.
“어라? 신방과야! 신방과 1급수라고 1급수, 이 자식 오늘 왜 이러냐?”
미팅이라면 환장하는 놈이 저런 반응을 보이자 강경호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뒤에 앉아있는 재윤이를 보며 검지로 머리에 대고 빙빙 돌렸다.
“나는 집에 간다.”
갑자기 벌떡 일어난 김인직은 가방을 둘러매고 쏜살같이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야! 미팅이라고, 신방과 미팅! 네가 그냥 가면 어떻게 해!”
붙잡을 틈도 없이 강의실을 나가는 김인직을 향해 원망 섞인 분노의 메아리를 날렸지만, 대답 없는 김인직이었다.
“재윤아, 저놈 오늘 뭐 잘못 먹었냐?”
“난들 아냐?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인식이 대타 구하는 게 우선이다.”
“두말하면 잔소리지, 이 기회를 인직이 때문에 날릴 순 없지, 가자 대타 구하러.”
오랜만에 잡은 미팅을 김인직 때문에 취소될까 봐 두 친구는 대타를 찾으러 강의실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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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2일 23:00,
서울시 강북구 수유동 김인직 자취방.
학교에서 돌아온 김인직은 바로 컴퓨터 책상에 앉아 모니터를 보면 5시간 채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아, 뭐가 문제지?’
김인직은 중얼거리며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렸다. 컴퓨터 모니터 화면에는 여러 가지 기호와 수많은 숫자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갔고 가끔 몇 개의 숫자들이 반작거린 후 사라지는 패턴이 무한 반복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제발! 조금만 더, 더! 오늘은 뚫고 말겠다!’
이를 악물고 엄청난 손놀림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던 순간, 모니터의 화면이 멈추고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문구가 화면에 떴다. ‘Success’라는 단어가 나왔다.
“야호! 역시 김퓨러야 김퓨러! 캬캬캬!”
환호성을 지르며 양팔을 벌리고는 그대로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잠시 성취감을 만끽하던 김인직은 순간 벌떡 일어나 손목시계를 바라봤다.
‘보안 및 추적시스템이 가동되면 길어야 10분이다.’
10분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자 김인직이 엔터를 누르자 모니터의 화면이 바뀌며 어디서 많이 보던 로고가 보였다. 바로 NASA(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 즉, 미항공우주국의 네트워크 보안망을 뚫은 것이다. 군 제대 후 1개월간 준비했고 방금 29개국을 우회하여 침입에 성공했다. 어제는 마지막 보안망에 걸려 실패했으나 오늘 드디어 꿈을 이룬 것이었다.
“쇼핑 좀 해볼까?”
미항공우주국 데이터베이스에서 자료들을 확인하던 중 김인직의 눈빛이 반짝였다. 이에 본능적인 빠른 손놀림으로 키보드를 치기 시작했고 새로운 관문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추적시스템 가동되기까지 5분! 가능할까? 다음에 도전, 아니면 못 먹어도 고?’
김인직의 머릿속에서는 Go와 Stop이라는 단어가 어지럽게 돌아가는 가운데, 손만은 본능적으로 더욱 속도를 올리며 키보드를 쳤다. 잠시 후 미항공우주국 소속의 인공위성과 접촉된 네트워크를 따라 생각지도 못한 오아시스를 찾았다.
“Area 51.”
그 말만 들었던 미국 네바다주에 있다는 제51구역, 정식 명칭은 넬리스 공군기지, 외계인을 연구한다는 소문만 무성한 바로 그 비밀기지였다.
“와, 대박이다!”
짧은 탄성을 지른 김인직의 심장은 벌렁거렸고 키보드를 치던 손도 떨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얼마 없는 관계로 김인직은 데이터베이스에서 이것저것 닥치는 정보를 내려받았다.
29개국을 우회해 나사의 인공위성 네트워크를 통해 들어온 게 세계적으로 가장 비밀스러운 제51구역이라는 사실에 김인직은 매우 흥분되고 기뻤지만, 한편으론 뭔가 모르게 서서히 겁이 나기 시작했다. 제51구역은 미국 시민조차 접근하면 바로 총으로 죽인다는, 그 정도로 보안이 철저한 곳으로 알고 있었다.
‘나도 미국 첩보 요원한테 소리 소문도 없이 암살당하는 거 아니야?’
불길한 생각이 든 김인직은 다운로드를 중단하고 바로 제51구역 데이터베이스에서 빠져나왔다. 최초 해킹 시발점을 중국으로 잡았고, 29개국을 우회하여 침입했기 때문에 절대 추적할 수 없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너무 큰 거물을 건드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내심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려받은 자료는 USB에 담아 노트북 가방에 집어넣었다.
“시작할 때는 뚫고 말겠다는 도전정신에 재미났는데, 막상 성공하니 무섭네. 괜히 했나? 에이, 피곤한데 일단 잠이나 자고 내일 생각하자”
5시간 이상을 모니터 화면을 보며 키보드만 두드리다 불길한 생각마저 드니 정신적, 육체적 피로감이 일시에 몰려왔다. 이에 김인직은 침대에 누워버리고는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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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9일 18:20,
서울시 성북구 안암동 대한대학교 본관 2층 휴게실
지금 TV의 모든 채널에서는 금일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누가 대통령 당선인이 될 것인지에 대한 시사 프로만이 편성되어 방송되고 있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그 어느 때보다 이번 대통령의 책임이 막중하고 대한민국의 흥망이 걸려 있었기에 초등학생부터 100세 노인까지의 이번 선거에 관한 관심은 최고조였다.
대한대학교 본관 2층 휴게실에 설치된 TV에서도 선거 출구 조사에 대해 아나운서와 2명의 패널이 나와 방송을 하고 있었다.
“드디어 19대 대통령 선거시간이 마감되었습니다. 아! 방금 출구 조사에 관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현재 출구 조사에 따르면 예상했던 상황과 조금 다르게 가고 있습니다. 출구 조사 내용 먼저 보시죠.”
패널들 양측에 두고 중앙에 앉아있던 여성 아나운서가 도표를 가리키며 현재까지의 출구 조사에 관해 설명하고 있었다.
“현재 출구 조사에 따르면 제1야당인 연합당 오동길 후보가 44%로 선두를 달렸고 한마음혁신당의 서현우 후보가 42%로 바짝 추격하며 2위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예상외로 현 여당인 복지한국당 연길수 후보가 13%로 조사되었습니다. 음, 조금 의외네요. 저희가 예상했던 거와 많은 차이를 보이는 연길수 후보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요? 안강현 교수님?”
여성 아나운서는 왼쪽에 앉아있는 머리가 반쯤 벗어진 중년 남성에게 질문하였다.
“저는 예상했습니다. 왜냐하면, 현 여당은 작년 평양 테러에 대한 국민의 심판을 받는 것이지요. 2015년 들어서 갑자기 남북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평화의 시기니 대박 통일이니 뭐 이런 얘기들 하다가 건국 이래 최악의 경제위기와 안보위기 사달이 나지 않았습니까? 보세요, 지금 국민은 사는 게 사는 게 아닙니다. 죽지 못해 살고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현 여당에 표를 주는 국민은 없다고 봅니다. 험험!”
“네, 그럼 안강현 교수님. 여당 연길수 후보는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죠. 현재 민심은 복지한국당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누가······.”
TV를 시청하던 초췌한 젊은 남자는 손목시계를 한번 보고는 도서관 휴게실을 빠져나와 힘없이 계단을 걸어 내려왔다. 힘없어 보이는 이 젊은 사내는 바로 김인직이었다. 저번 해킹 성공 후 USB에 담긴 정보에 대해서 보고 싶은 충동으로 매일 잠을 설쳤으나, 왠지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되면 엄청난 불행이 닥칠 것 같은 불안감에 호기심을 억누르며 하루하루를 보냈던지라 눈 밑으로 다크서클이 볼까지 내려온 반 폐인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도서관 건물 현관을 나서는 그때, 누군가 뒤에서 김인직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