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화. 희망
김만철의 말에 강백현은 윤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윤수야. 이거 어디서 났어?”
“엉아! 포인트로 샀어. 아빠랑 헤어진 날, 그때 아빠 구하려고 내가 샀어.”
윤수의 대답을 들은 백현은 황당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만철에게 말했다.
“사다니요? 설마……”
백현의 말에 김만철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혼자 있을 때 능력이 담긴 두루마리를 구입했나 보더라구. 근데 그 사용법을 몰라서 아직도 사용 못하고 있던 거지. 천만다행이지 않아? 이 능력이 뭔지 듣고 깜짝 놀랐다니까.”
김만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확실히 그러네요. 10년 뒤의 자신과 바꿨다가는 자칫 영문 모를 위험에 처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만철이 형은 대처를 잘 하셨네요. 어떻게 발견하신 거예요?”
“슈트 안에 있더라구. 선희가 아들 목욕시키다가 발견했지 뭐.”
다행히 정선희 누나가 발견한 모양이었다. 백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네요. 천만 다행이에요. 그런데 왜 저한테 오셨어요?”
그러자 김만철이 씩 웃으며 말했다.
“찰스로부터 이 능력에 대한 이야기 듣고 나서 물어보니, 미나가 이걸 찾았다고 하더라구. 그래서 너한테 바로 달려온 거야. 찾고 있었던 능력을 발견했다고 말해주려고.”
“미나가요? 제 동생?”
“응. 강미나. 왜? 너도 아는 이야기 아니었어? 설마 동생하고 그런 이야기 안 해?”
김만철의 말에 강백현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저한테는 그런 이야기 없었거든요. 일단 이 두루마리는 제가 가지고 있을게요. 미나한테 이 능력을 왜 찾았는지 이유를 물어보면 알겠죠.”
“그래. 나는 이제 다시 가봐야겠다. 윤수! 형아한테 인사해야지!”
만철의 말에 박윤수가 미안한 듯 두 손을 모아 사과의 표현을 전했다.
“응. 형아! 미안.”
“아니야. 윤수 키 많이 컸네. 멋있어졌다!”
“아빠가 비행기 놀이 자주 해서 많이 컸어.”
“비행기 놀이?”
“응. 공중 10m까지 윤수를 던지고 받아줘.”
백현이 고개를 저으며 김만철에게 말했다.
“형, 그거 아동학대 아닌가요?”
“윤수가 평범하진 않잖냐. 슈트도 있으니까.”
“선희 누나한테는 비밀로 하신 거 아니에요?”
“쉿!”
역시 의외성 넘버 1. 김만철. 육아에는 그리 큰 소질이 없는 것 같다고 백현이 생각했다.
백현은 윤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중에 형이 시간 되면 우리 윤수 보러 놀러갈게. 조심히 가!”
“응!”
윤수가 떠난 후 백현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10년 전과 몸이 바뀌는 능력.
그렇다면 현재의 몸은 어디로 가는 거고, 과거의 몸은 어디서 오는 걸까?
그런데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미나가 다급한 얼굴로 강백현을 찾아왔다.
“어디 있어?”
다짜고짜 묻는 미나의 질문이 수상하게 느껴진 백현,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뭐가?”
“어디 있냐고! 혹시 배운 거야? 그 능력 배운 거야? 빨리 말해!”
미나가 긴장하고 있었다. 그런 미나의 행동에 백현은 재빨리 자신의 머리 주변에 보호막을 씌워 생각을 못 읽게 막았다.
“지금 뭐하는 거야? 오빠! 오빠!”
평소보다 상당히 흥분한 동생의 모습에 백현이 차분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너 왜 그래? 그 능력이 뭐기에 너를 그렇게 초조하게 만드는데?”
백현의 말에 미나가 말했다.
“그거 없애버려야 하니까.”
“뭐? 없애?”
“그 능력을 없애버리지 않으면 누군가 또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 희생을 선택할지 모르니까!”
미나의 고조된 어투에 백현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차분하게 말해봐. 시간 많아. 천천히 말해도 알아들으니까, 이해하기 쉽게 말해봐.”
오빠의 말에 짜증을 부리던 미나가 결국 단념한 채 자리에 앉아 말을 꺼냈다.
“그 능력은 율리만이 배웠던 능력이야. 위험하다고!”
“그런데?”
“아~ 진짜! 우리 과거의 세계가 멸망하게 된 계기 중 하나가 그 능력 때문이었어. 현재의 세계도 원래는 멸망했었는데 그 능력으로 미래를 바꾼 거야.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이고. 율리만이 왜 희생한 건지 알아? 그녀는 이 미래를 만족스러워했어. 현존 인류와 과거의 인류가 공존하는 지금을 만족스러워했다고!”
미나의 말에 백현이 그녀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는 표정을 짓자 미나가 다시 알아듣기 쉽게 말해준다
“율리만은 최초에는 3명을 흡수한 키메라였어. 그중 하나가 과거의 나, 그리고 또 하나가 과거의 윤수, 그리고 오빠는 모를 누군가. 이렇게 셋.”
“그래. 흥미롭네.”
“청년 윤수의 모습은 본 적이 있지? 그녀가 흡수한 존재가 청소년기의 윤수였고, 윤수는 확실히 그 능력을 배우고 있는 상태였지.”
“그리고?”
“10년 뒤의 율리만은 그걸 통해 10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 그리고 10년 전으로 돌아갔지. 그 이후 과거에 체류하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 코어에너지를 계속해서 사용했어. 그리고 그 결과 그녀는 평생 과거에 남을 수 있었지.”
“추리가 대단하네.”
“추리가 아니야. 율리만이 죽음 직전에 나한테 전한 진실이야. 나보고 과거로 돌아가지 말라며 완곡하게 부탁했었다구.”
미나의 말에 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계속해 봐. 그러니까 이 능력을 사용하면 10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거네.”
“맞아.”
“하지만 지금보다 더 좋은 결과값을 얻을 수 있을까? 지금의 인류는 대부분 살아남는 데 성공했잖아. 율리만은 자신의 최초 계획대로 과거의 인류도, 미래의 인류도 살리는 데 성공했고 그 결과를 바꾸고 싶지 않아했어. 나도 그녀의 의견엔 동의하는 중이고. 그러니까 그 두루마리는 나한테 넘겨. 바로 소각할 테니까.”
미나의 말을 이해한 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미나야. 네 이야기는 잘 알겠는데, 혹시 말이야.”
“뭐!”
백현은 자신의 가정을 나열해보았다.
흥미로운 가설이 생겼다.
“아니! 생각해봐. 이 능력이 10년 전의 몸과 위치를 바꾸는 능력이잖아. 즉 10년 전 자신의 몸과 위치를 바꾸는 능력인데, 만약 20대인 내가 이 능력을 쓰면 10대 때인 초등학생 백현이 이곳에 오고, 지금의 나는 초등학생일 때의 시대로 가는 거 아니야?”
백현의 말에 미나가 미간을 찌푸렸다.
“장난치지 말고 내놔! 없애버릴 거니까 내놓으라고! 어? 아니면! 아니면 어떻게 할 건데?”
“아니야. 해볼래. 밑져야 본전이잖아?”
“오빠! 오빠!”
강백현은 주저 없이 능력이 담긴 두루마리를 찢었다. 그러자 신체전이 능력이 백현의 능력 목록에 추가된다.
“아~ 진짜! 오빠, 내가 배우지 말라니까!”
미나가 단단히 화가 난 것을 느낀 백현이 자신의 능력명을 속으로 말했다.
《신체전이 Lv.1》
그러자 홀로그램이 능력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알려준다.
방법은?
두 눈을 감고 왼쪽 새끼손가락을 접는다. 그걸로 끝.
“오빠! 쓰지 마! 쓰지 마! 쓰지 마! 쓰지 말라니까!”
강백현은 동생의 만류에도 자신의 이론을 확인하기 위해 바로 능력을 사용했다.
* * *
백현이 눈을 뜬 곳은 10년 전.
아니……. 강백현이 10살이던 2009년이었다.
침대에서 깨어난 백현은 미소를 지으며 일어났다.
'와 이게 신체전이 능력이구나.'
자신이 10살 때로 돌아오다니.
아니, 정확히는 10살 때의 시간대로 돌아온 것.
이런저런 장난감이 방 안에 가득하고, 특히 레고와 건담들이 책장에 빼곡히 놓여있는 것을 보니 과거 자신의 방이 확실해보였다.
그리고 밖에서 나는 소리. 엄마와 아빠의 목소리다.
“여보! 애들 자는 것 같은데?”
“그럼 밀린 숙제 좀 할까?”
“아~ 안 돼. 그러다 들키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그럼 잠깐 나가서 하고 오지 뭐.”
“주책 맞게 무슨 나가서까지 해!”
“한 시간 내로 끝내면 되잖아. 응? 여보! 여보! 발소리 안 나게 빨리 나갔다 오자. 응?”
살금살금, 현관문이 열리고 바깥으로 나가는 두 사람.
미니맵을 통해 엄마 아빠가 외출한 것을 확인한 백현이 자신의 방에서 바깥으로 나왔다.
백현은 오랜만에 자신의 집을 바라보며 추억에 잠겼다.
동생이 TV 애니메이션을 보기 위해 앉아있던 소파가 그대로 있고, 푸르스름한 블라인드와 베란다 옆에 키우는 각종 난과 선인장도 여전하다.
그러고 보니 허기가 느껴졌다.
‘아…… 이 능력은 체력을 엄청 소비하는구나.’
과거로 신체가 전이된 상황.
그로 인해 체력은 급속하게 소모되는 중이다.
지속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 백현은 베란다를 통해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을 확인했다.
팔짱을 낀 채 리무진에 타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그 둘을 모시는 사람은…… 최형우 아저씨.
“아~ 이때는 아저씨가 우리를 돌봐주고 계셨지.”
백현이 추억에 잠겨 10년 전의 최형우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만 해도 최형우 아저씨가 곁에 있었다.
“그래. 기억 나. 저 표정 진짜 따뜻했는데…….”
‘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근처 학교의 경비원으로 이직하셨지.’
최형우 아저씨와의 추억이 아른거리자, 백현의 얼굴에 쓴웃음이 걸렸다.
잠시 후, 아파트 베란다 밖으로 아람이가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걸어 나가는 게 보였다.
‘저때는 한국말이 참 서툴렀는데……’
그리고 베란다 밖에 김만철로 보이는 청년도 보인다.
‘우와! 무슨 밤에 도복을 입고 다녀! 어쩐지 여자들한테 인기 없을 것 같더라.’
밤 9시, 도복을 입고 아파트를 활보하는 김만철의 모습이었다. 미니맵을 확인하며 그의 존재에 피식 하고 웃는 백현.
그런데 갑자기 끼이익하는 소리가 들린다.
백현은 순간 놀라 미니맵을 통해 소리의 근원지를 찾았다.
현재 베란다에 나와 있는 백현.
그리고 베란다의 미닫이문을 열고 그를 쳐다보고 있는 건 아직 어린 6살의 미나였다.
백현이 한숨을 내쉬며 뒤돌아보았다.
어린 꼬마 녀석이 슈트를 입은 백현을 바라보고 있다.
꼬마 주제에! 무섭지도 않은지 조금씩 다가오는 미나.
그런데 하필이면 문틈에 다리가 걸려 넘어지고 만다.
“아아아아악!”
꼬마 미나는 비명을 질렀지만 다행히 다치지 않았다.
넘어지려는 것을 재빨리 둥근 보호막에 가두어 바닥과 부딪히지 않게 막아준 덕분이다.
공기방울처럼 공중에 떠 있는 보호막 안에 든 미나에게 백현이 다가와 손을 잡아준다.
말똥말똥한 눈으로 10년 후의 백현을 쳐다보는 미나가 물었다.
“누구야? 오빠는 누구야?”
미나의 말에 백현이 씩 웃었다.
“누군지 알겠어?”
“아니!”
“누군지 알아맞춰 봐.”
“왕자님?”
“그래. 왕자님, 보호막 쓰는 왕자님이야. 공주님은 이제 자야지?”
“아, 응.”
백현은 자연스럽게 미나를 동생 방 침대에 눕혔다.
“다음에 또 올게.”
작별인사와 함께 방문을 닫고 퇴장하는 백현.
그리고 능력사용시간 종료.
미나는 왕자님이라고 부른 남자를 다시 확인하기 위해 침대에서 일어나 방문 바깥으로 달렸다.
찰칵!
문을 열자 가루처럼 사라지는 왕자님의 모습.
그리고 그 자리에 한 소년이 나타난다.
쿨쿨, 잠옷을 입은 채로 잠을 자는 소년.
그 사람은 오빠.
“오빠! 오빠! 일어나 봐!”
미나는 자신의 오빠를 흔들어 깨우며 말했다.
“왜?! 어? 내가 왜 여기서 자고 있어?”
“그것보다 오빠! 나 왕자님 봤다! 왕자님이 나 구해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