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cm헌터-179화 (179/200)

179화. 제2경비구역

윤수의 놀라운 능력을 보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아람이는 내상이었기 때문에 외관의 변화는 없었지만, 김만철의 경우는 달랐다.

팔에서 새살이 돋아나기 시작하고, 새살이 점점 원래의 형태를 되찾아간다.

“으으으, 윤수야. 간지러워.”

“괜찮아. 새살 나면 원래 간지러운 거야.”

“크크, 녀석! 고맙다.”

“고맙다고 하지 말고 애초에 다치지 마. 나 아빠 챙기느라 힘드니까!”

윤수의 녹색 빛은 그들로 하여금 경이로운 광경을 선사했다.

그래서일까? 여기저기 몰려드는 사람들이 많았다.

리더로 보이는 여성은 조심스러운 얼굴로 김만철에게 물었다.

“어떻게 다들 능력을 쓸 수 있는 거죠? 아니, 그것보다 한 가지 부탁부터 드려도 될까요?”

* * *

김아람과 김만철을 구해준 아이들에게는 여기저기 상처가 많았다.

윤수는 아이들의 상처를 세삼하게 치료해주기 시작했다.

또래아이들과의 첫 만남.

그래서일까? 지칠 만도 할 윤수였지만 표정은 어느 순간보다도 밝아보였다.

강백현, 김만철, 김아람, 그리고 미나는 회복실에서 여성 리더와 공식적인 회합을 가졌다.

“반갑습니다. 저는 배연아라고 합니다. 예상하셨겠지만 이곳 제2경비구역을 책임지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아-. 그렇군요.”

김만철이 주변을 둘러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남자들의 사진이 든 액자가 엄청나게 걸려 있었다.

매일매일 닦아내는지 액자에는 먼지 하나 없었다.

그걸 보며 배연아는 일행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처음부터 남자들이 없던 것은 아니에요.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들은 거인들을 이길 수 있다고 믿고 있었어요.”

“네?”

“거인에게 지상을 빼앗긴 후, 이곳에 남은 저희들은 반격의 순간을 기다렸어요. 후퇴가 아닌 반격만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여기 남은 거고요.”

“이런…….”

“그래도 저희에겐 율리안 박사님이 남긴 최고의 병기가 있었어요.”

“네?!”

율리안의 이름이 또 나왔다.

“다만, 그걸 조종할 수 있는 사람은 20세 이상 성인 남성으로 한정해두었죠.”

회복실의 뒷문을 여는 배연아.

그녀가 문을 열고 따라오라는 제스처를 취한다.

일행들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뒤쪽에는 거대한 창고 같은 공간이 있었다.

“이게 다 병기입니까?”

“네. 정확히는 방주 안에 있던 것을 꺼내 준 거죠. 율리안 박사님은 서울에서 후퇴하며, 생존자가 밀집한 우리 기지에 병기를 넘겨주고 가셨어요. 처음에는 집요할 만큼 저희를 설득했다고 들었습니다. 같이 후퇴해야 한다고, 같이 도망가야 한다고 하셨죠. 하지만 저희는 그럴 수 없었어요. 고향을 등질 수는 없었으니까요.”

배연아의 입장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율리안 박사님이 넘겨준 병기는 총 18대였어요.”

뒤쪽에 인간의 형태를 한 로봇으로 보이는 병기가 보였다.

“저 안으로 사람이 탑승할 수 있어요. 그리고 탑승하면 인간이 본래 가지고 있는 능력을 증폭해서 사용할 수 있게 되지요.”

“능력의 증폭이 가능하단 말씀이십니까?”

“네. 하지만 저희 중에 능력을 가진 자는 없었어요. 탑승 자체로 거인과 상대할 수 있게 된다는 게 큰 메리트였지만, 부작용 또한 컸기에 저는 이걸 사용하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배연아는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저 병기는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정신이 피폐해져요. 환청이 들리고 환영을 보기도 하죠.”

“환청과 환영 말씀이십니까?”

“네. 저희 아버지와 할아버지께서는 저 병기를 굉장히 좋아하셨어요. 계룡 일대의 모든 거인들을 축출한 영웅으로 추앙받기도 하셨죠. 하지만 그런 영웅이셨던 아버지와 할아버지께서도 결국 환영과 환청에는 어쩔 수 없으셨죠.”

그 말을 들은 김만철이 답답함을 토로하며 되물었다.

“어쩔 수 없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는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배연아는 대답을 머뭇거렸다. 그래서일까?

미나가 나섰다.

“사람들을 혐오했나봐.”

“어?”

“같은 사람들을 벌레 보듯 혐오하고, 거리를 두려고 했어. 여기 탄 사람들은 모두 다 그렇게 됐어. 그래서 결국 병기에 탔던 사람들을 쫒아내기로 결정했던 거고, 그래서 성인 남자들은 아무도 남지 않은 거야.”

속사정을 알고 있는 미나를 놀란 얼굴로 바라보는 배연아.

그런 배연아에게 미나가 솔직하게 사실을 밝혔다.

“전 타인의 생각을 읽고 조정할 수 있어요. 그게 인간이든 인간이 아니든 그런 게 가능해요.”

“그랬구나. 다들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거구나?”

“네. 그래도 너무하네요. 한때 같이 살았던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미나의 질문에 배연아가 고개를 돌려 대답을 회피했다.

“언니한테는 힘든 질문인 거 알아요. 하지만 그들은 분명 언니와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이곳을 떠나는 결정을 했어요. 언니는 그걸 아셔야 해요.”

“그걸 알아야 된다니! 당연히 알잖아.”

“그들이 다들 인생을 망쳤다고 생각하잖아요. 틀렸어요. 그들은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서, 자신의 아내를 구하기 위해서, 여자친구나 가족들을 살리기 위해서 병기에 탔을 거예요. 부작용을 알면서도 계속 탔잖아요. 아닌가요?”

이 시점에서 배연아의 의식은 둘로 분리되어 있었다.

환청을 보던 남자들이 인간을 혐오하는 장면.

그리고 그들이 병기에 오르며 가족, 친구들을 위해 목숨을 거는 장면.

이를 분명히 알고 있는 미나였기에, 배연아의 내면에 강한 충격을 줌으로서 그녀를 설득하려 한 것이다.

“필요하면 가져가. 우리는 저거 필요 없어. 너희들 목적이 저 병기 아니었어?”

“아니에요. 저걸 타려고, 저걸 노리려고 온 게 아니었어요. 언니, 저희는 정보를 얻고 싶어서 온 거예요. 빛의 기둥에 대한 정보나 생존자, 그리고 과거에 대한 정보들이 궁금했을 뿐이에요. 그러니까 오해하지 마세요.”

“언제부터 내가 네 언니야?”

“네?”

“생각 읽는다고 날 통제할 생각하지 마. 우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제법 잘 꾸려가고 있고, 남자들 쫓아낸 거 후회한 적 없어. 난 내 결정을 믿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어.”

배연아는 자신도 모르게 속마음을 표출하고 말았다.

미나의 앞에서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는 오히려 화를 내며 감정을 폭발시켰다. 그로 인해 분위기는 삽시간에 삭막해져만 갔다.

그때 한 꼬마아이가 달려왔다.

“엄마! 엄마! 할머니도 치료하면 안 돼? 윤수가 치료해준다고 했어. 할머니 있는 데로 데려가자. 응?”

“진혁이 너! 할머니가 어디 있다고 그래?”

“지하에 있잖아! 다들 지하에 있잖아~ 엄마가 지하에 가둬놨잖아.”

그리고 또 다른 아이가 달려온다.

“엄마! 우리 엄마 치료하면 안 돼? 격리해놓은 거 풀어주면 안 돼? 윤수가 치료할 수 있대. 뭐든 다 치료할 수 있대.”

“지현이 너! 당장 안 가! 엄마가 그 얘기 하지 말라고 했지!”

“하지만! 치료할 수 있다잖아!”

아이들의 외침에 배연아는 곤란해했다.

이곳에서 배연아는 아이들에게 엄마로 불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가족은 지하에 별도로 격리되어 살고 있다.

그 이유는 마음이 병들었기 때문이라거나 전염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사실 그들은 병든 자가 아니라 남자들을 내쫓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 반대파일 뿐이었다.

강백현은 사실관계를 빠르게 파악하고 배연아에게 되물었다.

“저희를 구한 이유는 뭐죠?”

“사람이면 당연히 구해야 하는 거 아니야? 이유가 필요해?”

“그렇게 생각한다면 격리한 자들을 풀어줘요. 지하에 무려 10여 명이 더 있잖아요. 그들의 건강상태가 궁금해요. 얼른!”

“괜찮아. 우리가 먹을 것은 넣어주고 있으니까 문제없어.”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니잖아요.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고요.”

언뜻 보면 행복해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삶을 살았던 배연아.

그리고 그녀에게 맡겨진 아이들.

배연아와 함께 거주지를 꾸려가던 어른들도 하나둘 몰려와 배연아에게 묻는다.

“언니, 이 애라면 병을 고칠 수 있는 거 아니야?”

“언니! 언니! 무슨 말 좀 해 봐!”

배연아는 자신의 신념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그동안 쌓아올린 공든 탑이 무너졌을 때의 상황이 도저히 예측가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 일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건 그녀가 이룩한 모든 것이 허무하게 사라진다는 것을 뜻했다.

그런 그녀를 뒤로하고, 김만철와 김아람은 아이들과 함께 지하로 통하는 격리실 입구로 향했다.

그 문을 부수고 안쪽에서 사람들을 데리고 나왔다.

비실비실.

건강상태가 좋지 못한 그들은 지하에 들어오는 자그마한 햇빛에도 눈이 부신 듯 손으로 빛을 막았다.

“엄마! 엄마! 괜찮아?”

“으-으으으응.”

영양실조 때문에 제대로 대답도 못하는 10여 명의 격리자들.

그들을 보며 윤수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다 치료 못해. 너무 많아. 다 치료하면 윤수 지쳐. 힘들어. 죽을지도 몰라.”

그때 미나가 말했다.

“저걸 타면 돼. 저 병기를 타면 능력을 증폭시킬 수 있다잖아. 윤수 능력을 증폭시키면 돼.”

“환청이 보인다며.”

“내 능력이 있잖아.”

“아-.”

환청을 막을 수 있는 미나의 마인드 리딩.

그리고 윤수의 치료 능력.

그걸 증폭해주는 병기.

혹시나 해서 김만철이 먼저 병기에 탑승해본다.

만철이 병기를 만지자, 액체에 흡수되듯 안쪽으로 몸이 슥 빨려 들어갔다. 병기에 탑승한 김만철이 씩 웃었다.

“슈트 강화버전이네.”

“네?”

“슈트 입은 거랑 비슷해. 내가 움직이는 대로 움직이고, 가벼워. 신축성도 뛰어나고.”

“율리안이 똑똑하긴 했나 봐요. 안 그래요?”

강백현의 말에 김만철이 웃으며 말했다.

“윤수 태워도 될 것 같아.”

“네.”

윤수가 병기를 만지자, 윤수의 몸이 병기 안쪽으로 빨려 들어간다.

윤수가 탑승한 병기가 손을 내밀고, 윤수의 손인 듯이 녹색 빛이 흘러나와 주변에 퍼져 나갔다.

반짝반짝.

녹색 빛이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았던 사람들의 원기를 회복해준다.

그걸 보며 아이들이 환호하고, 격리되었던 자들도 감사함을 표시했다.

배연아는 무릎을 꿇고 주저앉은 채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다 끝났어.”

“그것보다 빨리 사죄하는 게 먼저예요. 격리라니, 아무리 그래도 너무 심했어요.”

* * *

하루를 더 머무른 백현 일행.

지하에 격리되었던 사람들은 의논 끝에 배연아에 대한 처분을 결정했다.

처분은 바로 지난 5년간의 기억을 소거하는 것.

3년간 최소한의 먹을 것만 제공받으며 고통스러운 순간에 겪었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굉장히 관대한 처분이었다.

“언니,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 있으세요?”

미나의 말에 배연아가 말했다.

“할 거면 빨리 해.”

“네. 알았어요.”

끝까지 반성하지 않는 배연아를 바라보며, 미나는 그녀의 기억을 지웠다.

한편, 남은 일행들은 새로운 정보를 취합했다.

첫째, 거인들은 저주파를 좋아한다. 그래서 방송시설로 거인들을 특정장소로 유도할 수 있었다.

둘째, 병기를 탑승하고 움직여도 슈트를 입으면 환청이나 환각을 보지 않는다. 하지만 슈트를 입지 않으면 환청을 본다.

셋째, 거인병의 치료제 연구는 제3경비구역에서 진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넷째, 빛의 기둥은 3개월마다 발생하며 장소는 일정하지 않으나 간격은 일정하다. 앞으로 약 40일 후 생겨난다.

한편 강미나는 병기에 탑승한 사람들이 환청을 보는 이유를 알고 기겁했지만 아무에게도 그 사실을 털어놓지 않았다.

‘병기는 사람들을 재료로 만들어졌어. 거인의 신체를 재료로 슈트를 만들었듯이, 병기의 재료는 인간이었던 거야. 그래서 사람들이 환청을 본 거고. 병기 안에 들어가면 사람들의 냄새, 생각, 상념 같은 게 전해지니까.’

생각에 잠긴 미나.

그런 미나를 돌아보며 강백현이 말했다.

“저분들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우리에게 환청은 문제없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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