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작별인사
최태우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실려 있었다.
제주도와 달리 안전한 공간이 없다는 게 어떤 건지 실감했기 때문이다.
바로 7시간 전까지만 해도 친근하게 인사를 주고받던 최형우란 인물의 죽음이 그에게는 너무나 크게 다가왔다.
최태우는 담담한 표정을 하고 있는 강백현에게 물었다.
“최형우 형님이 죽었어. 백현이 너는 아무렇지 않아? 아무 느낌도 없어?”
“네. 돌아가신 분은 돌아가신 분이고, 저희는 방주에 남아 있는 이들을 구해야 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잠시만 집중 좀 하겠습니다. 저번처럼 거인들한테 공격당하면 안 되거든요.”
레이더를 켜며 주변 거인의 움직임을 확인하는 강백현.
그는 쓴 웃음을 지었다.
'젠장, 미니맵 시간을 다 써버렸잖아.'
그러나 곧 초연해진 표정으로 모니터를 확인했다.
최태우는 놀라워했다. 죽음에 저렇게 빨리 초연해질 수 있다니.
그래서 더 걱정이다.
“괜찮은 거니? 불안하면 내가 운전하마.”
“아니에요. 익숙해요. 헤어짐은 언제 어디서나 찾아올 수 있는 거죠. 아무렇지 않습니다.”
강백현의 말에 최태우는 자신들이 왜 나약해졌는지 문뜩 깨닫게 되었다.
영원의 삶을 살면서 잃어버린 게 너무도 많았다.
죽음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간임을 버린 그들.
항상 인간이고 싶었지만, 죽는 건 또 싫었던 그들이었다.
오랜만에 사람의 죽음을 체험하니 허망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지? 인간이 되면 죽는데? 저렇게 허무하게 죽어버릴 수도 있는데?
그런 생각이 소용돌이쳤다.
“시간이 없습니다. 한순간이라도 빨리 과거로 돌아가야 합니다. 속도를 올리겠습니다.”
강백현은 시선을 정면 고정한 채, 자신의 메마른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 괜찮다고. 아무렇지 않다고.
저런 노인 죽은 거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고.
최태우의 눈에는 그렇게 외치는 것 같아 보였다.
“정말 괜찮은 거니?”
“네. 아무렇지 않습니다. 인간은 언젠가 죽잖아요. 어차피 죽을 거 조금 일찍 갔을 뿐, 결과는 어차피 같아요. 최형우 아저씨는 어차피 죽을 운명이었습니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고요. 단지 약간의 시간 차이일 뿐, 바뀌진 않습니다.”
“백현아.”
“모니터링에 집중해주십시오. 연료가 부족하면 안 되니까요.”
“……그래.”
최형우의 희생과 김아람의 폭주로 거인을 해치운 덕에 에너지를 얻었다.
현재 잔여 에너지는 13.3%.
자가복구하는데 사용한 에너지까지 계산해보면 최형우의 희생으로 약 4%의 에너지를 얻은 셈이었다.
귀중한 에너지를 낭비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문제의 그녀가 나타났다.
“백현아. 미안해. 정말 미안해.”
“뭐가 미안한데?”
“하나부터 열까지 다 내 잘못이야. 그러니까 나한테 차갑게 대하지 말아줘. 응?”
호소하는 듯한 김아람의 목소리는 강백현에게 통하지 않았다.
“그럴 시간에 엔진 효율 높일 생각이나 하는 게 어때? 방주가 좀 더 비행을 잘할 수 있게 공중으로 띄운다든가, 바람의 저항을 막아낸다든가, 좀 더 도움 되는 역할이 있잖아. 지금 감정놀이나 하자는 건 아니지?”
“감정놀이?”
“그래. 놀이가 아니면 뭔데? 왜? 내가 ‘다 괜찮아’라고 너 위로해야 해? 그런다고 형우 아저씨가 돌아오기라도 해?”
“백현아. 나는 정말…….”
“그만 하라니까!”
강백현이 인상을 쓰며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었다.
백현의 화내는 모습에 충격 받은 김아람이 울면서 뛰쳐나갔다.
최태우만이 백현의 옆에서 김아람을 안쓰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슬프지?”
“아뇨.”
“슬프잖아. 원망하는 게 보이더라.”
“아니요. 안 슬퍼요. 아람이한테 원망 안 해요. 아무도 원망하지 않아요. 다만…….”
“다만?”
“제가 약했어요. 안일했어요. 제가 끌고 갔어야 했어요. 세상은 저를 구세주라고 믿고 있었어요. 미나도, 나도, 율리만도 그리고 저를 거쳐 갔던 모든 사람들이 저를 위해 희생하고 있어요.”
백현의 망상에 최태우가 사실을 전하려 애썼다.
“아무도 널 구세주라고 칭송하지 않아. 아무도 너한테 모든 것을 떠맡으라고 부담주지 않아. 어느 누구도 너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의지하지 않아!”
최태우의 말에 강백현이 따지고 들었다.
“아저씨가 뭘 아세요?”
“뭘 아냐고? 네 나약하고 정신 빠진 모양새를 보면 누가 봐도 알겠다! 지금 뭐하는 거야? 네가 스스로를 리더라고 생각하면 더 동료들을 감싸고 동료들을 위하고, 동료들에 대한 감정을 똑바로 해야지. 흐지부지, 아무렇지 않은 듯 쌀쌀맞게 담담한 척하면 그만이야? 자신의 감정을 숨기면 그게 숨겨져?”
강백현은 차갑게 말을 돌렸다.
“운항중입니다. 지금 감정싸움 할 때 아닙니다.”
“그래. 그렇게 회피하겠지. 넌 인류를 구할 재목은 아니야. 사람은 좀 더 감정적이어야만 해.”
“뭐라고요? 아저씨가 뭘 아는데요? 저에 대해서 뭘 아시는데요?”
“뭐?”
“제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아세요? 여기까지 살아남으면서 얼마나 남을 챙겼는지 아세요? 저한테는 모두가 소중해요. 최형우 아저씨도 소중하지만, 미나도, 아람이도, 윤수도, 만철이형도 그리고 최태우 아저씨도 소중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더 강해져야 해요. 마음 다잡고 있는데! 저한테 왜 그러십니까? 네?”
“백현…….”
“저도 슬프단 말입니다. 제가 메말랐다고요? 저 진짜 죽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울면 다 울어요. 제가 감정에 놀아나면 인류가 위험할 수도 있어요. 혼자서 하는 생각 아니냐구요? 아니요, 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합니다. 아저씨가 제 상황을 100프로 이해합니까? 제 동생도 만철이 형도, 다들 애써 태연하려고 엄청 노력하는 거 안 보입니까?”
강백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제야 최태우는 강백현의 진심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은 흘릴 수 없는 눈물, 하지만 인간 그 자체인 백현의 눈물에는 그의 진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뒤쪽에서 그걸 지켜보고 있던 김아람이 안도의 눈물을 흘리고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역시…… 일부러 그런 거구나.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그런 거야.’
김아람이 아직 돌아가고 있지 않은 걸 눈치채고 있던 최태우였다.
최태우가 자신의 역할을 마치고는 백현을 다독였다.
“그래. 그럼 됐어. 그럼 된 거야.”
항상 뒤에서 지켜보고 중재하는 건 최형우의 역할이었다.
최태우는 그 역할을 앞으로 자신이 해야겠다고 판단했고 이제 처음으로 실행한 것이다.
다들 아람이가 싫어서 감정을 내보이려 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아람이가 미안해할까 봐서, 또 상처입을까 봐서, 그래서 아예 내색을 하지 않기로 서로 의논하고 함께 행동한 것이었다.
하지만 불안하고 괴로운 마음으로 최태우의 대화를 엿듣는 김아람.
그 마음을 엿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강미나였다.
강미나가 눈물을 흘리며 김아람에게 다가갔다.
“언니…… 미안해요. 일부러 그럴 생각은 없었어요.”
“아니야. 미나야. 정말 미안해. 내가 미안해! 내가 아저씨를 구했어야 했는데!”
“아니에요. 언니만의 잘못이 아니에요. 우리 모두의 잘못이잖아요. 우리가 다 챙겼어야 하는 거였잖아요. 언니 혼자 죄책감 가지고 살까 봐 못된 말을 내뱉었어요. 미안해요 언니.”
미나의 말에 펑펑 울기 시작하는 아람이.
그리고 그 뒤에서 윤수를 안은 채 걸어오는 김만철.
“아람아, 용서해라. 사실 우리도 정말 너무 슬프다…….”
“아니에요. 다들 날 위해서였잖아요.”
“흐으응. 윤수도 미안해.”
아람이는 모두의 마음을 이해하고 눈물을 닦았다.
세상은 절망적인데, 인류는 얼마나 생존해 있을까?
멸망한 세계에서 지금까지는 유일한 인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그들.
그들의 모습을 보며 최태우는 자신도 인간이 되겠다는 결심을 다시 한번 굳혔다. 그리고 모두를 소집했다.
“다들 모여줄래?”
“네?”
“최형우 형님이 남긴 메시지가 있어. 다들 같이 보자고.”
붉은 바위의 몸을 한 최태우의 주변에 모두가 하나, 둘 모여들었다.
최태우가 시스템을 조작해서 스크린을 켰다.
그리고 익숙한 얼굴이 방긋 웃으며 화면에 등장했다.
『태우야. 이거 녹화되는 거 맞지?』
『네. 형님, 맞아요. 지금 녹화중이에요. 이런 구시대적인 기능도 있었네요.』
『크크크, 애들 잘 때 영상편지나 쓸까?』
『영상 편지요?』
『그래. 혹시 모르잖아. 우리가 여기서 뒈질지 어떻게 아냐? 아직 철없는 녀석들만 남겨두고~』
『에이! 철이 없다뇨. 다 큰 애들이죠. 어엿하게 자기 몫도 하는 것 같던데요?』
『네 눈에는 그래 보이냐? 나한테는 전혀 아니거든. 아무리 쟤네들을 오래봐도 애들은 애들이더라. 내 얼굴 잡아! 영상 편지 하나 쓰게, 흐흐흐.』
『진짜 찍으실 거예요?』
『그럼 장난하겠니?』
『아~ 잠시만요!』
곧이어 화면이 지직거리더니 최형우의 생전의 모습이 다시 화면에 들어왔다.
그걸 보는 모두의 눈에 눈물이 글썽이기 시작했다.
“아~아! 최형우 아저씨다. 할아버지라고 해야 하나? 예끼 녀석들! 너희들하고 거의 6개월을 같이 보냈네.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늙은이 도와줘서 항상 고맙다.”
최형우의 말에 모두가 시선을 고정했다.
“할아버지는 말이야. 사실 경비실에서 바늘로 목을 찔러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었단다. 미나는 기억을 읽을 수 있으니 알고 있을 거야. 그때 만철이랑 미나, 그리고 백현이가 내 앞에 나타났지.”
최형우가 간직한 비하인드 스토리에 강백현과 김만철, 김아람이 눈물을 흘렸다.
“그때, 아람이가 죽는 줄 알고 얼마나 놀랬는지, 당시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떨려. 아람이 보면 아직도 손녀 같아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거야. 나한테 아람이는 그랬어. 미나도 그랬고, 백현이 너도 그렇고. 사장님이 너희를 얼마나 아꼈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더라. 아주 잘 자라주었다.”
최형우의 말이 나올 때마다 모두의 표정이 숙연해졌다.
“만철이! 너 인마! 선희한테 잘해! 내가 왜 항상 백현이 편 드는지 알지? 넌 철이 덜 들었어. 자식 같은 녀석들 이겨먹으려고 항상 경쟁의식에나 불타고 있고. 아람이랑 왜 싸우니? 너 몇 살이야?”
최형우의 갑작스런 호통에 울먹이던 일행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나이 36, 이제 37이겠고, 아람이는 21살인데, 너희 둘이 이곳 세계에서는 결혼했었다는 게 나는 믿어지지가 않는다. 물론 미나가 거짓말하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 아무튼 뭐 그건 그렇다 치고 만철이 넌 성격 꼭 바꿔야 해! 알았지?”
최형우의 말에 김만철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아저씨.”
그리고 최형우가 윤수를 향해 말했다.
“윤수야! 할아버지가 한마디만 하자.”
“네!”
“윤수는 우리의 희망이야. 윤수가 구해준 사람이 총 몇 명이지?”
“100명! 아니 200명!”
윤수의 대답을 듣기라도 한 듯 최형우가 방긋 미소를 지었다.
“그래. 윤수는 구원자야. 백현이가 구세주라면 윤수는 구원자! 그러니까 할애비 없어도 너무 슬퍼하지 말고! 씩씩하게!”
“네. 흐으으응. 흑흑. 넵! 씩씩하게!”
화면 속 최형우가 입술을 꽉 깨물더니 침을 꼴깍 삼켰다. 그리고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아람아.”
“네. 아저씨.”
“감정 조절 잘하고! 신중하게, 그리고 시야를 넓게 봐야 해. 내가 생각하는 아람이는 언제나 너무 성급했어. 그것만 고치면 최고의 신부감이 될 거야. 우리 아람이 이대로는 아무도 안 데려간다.”
“네?”
“시집가야지! 이곳 세계의 아람이는 가짜 아람이고, 내가 아는 아람이는 진짜 아람이니까, 우리 진짜 아람이가 좋은 남자 만나서 시집가길 이 아저씨, 아니 할애비는 응원하마.”
최형우의 말에 김아람이 결국 또 한 번 울음을 터트리며 대답했다.
“네. 신중할게요. 감정 조절 잘하고요.”
“이제 끝났나? 녹화 끝났어?”
최형우의 목소리가 끝나고. 화면이 종료되었다.
최형우는 결국 모두의 곁에서 떠나고 말았다.
숙연한 분위기. 하지만 최악의 분위기는 아니었다.
웃고 울게 만든 최형우의 마지막 영상메시지를 본 사람들은 다들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면서 그와의 추억을 가슴에 담고 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