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살아남은 인간들
김만철은 숙면을 취하고 돌아오는 강백현을 보며 화를 벌컥 냈다.
“언제부터 잤던 거야?”
“아까 아람이랑 미나 씻으러 가고 나서 얼마 안 돼서요. 무슨 일 있어요? 좀 소란스럽던데…….”
백현의 말에 김만철이 어이없다는 고개를 흔들었다.
“와, 미치겠네. 너 진짜 좋게 봤는데, 그 감정 후회된다.”
“그래요? 아~ 그나저나 한숨 자니까 좀 낫네요. 1호야. 무슨 일 있었어?”
“백현 님?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절 흡수하시겠습니까?”
“그래. 그렇게 하자. 다친 곳은 없지?”
“네. 신체 100% 완벽합니다. 이상 없습니다.”
분신이 백현을 만지자, 연기처럼 스르륵 사라지며 백현의 몸으로 파고들었다.
그러자 본체인 강백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전부 다 아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키메라가 출현했네요. 현재 조치중이고요.”
“대박! 기억도 전이되냐?”
“흡수한 분신의 기억은 저한테 이전되는 것 같아요. 물론 정신적인 통증이나 충격도 함께 옮겨오는 단점이 있지만, 그런 놈들은 흡수하지 않으면 그만이니까.”
강백현의 말에 김만철이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무슨 상황이야?”
“일단 게임을 해야겠네요. 기본적으로 이 방주를 만든 사람은 저와 사고방식이 비슷한 것 같아요. 제가 즐겨했던 게임들을 그대로 이식한 것 같거든요. 항공시뮬레이션 게임인 [더 에어플레인]의 기본 조작을 그대로 따라했고, 자동차 슈팅게임인 [퍼펙트 카레이싱]의 동작, 거기에 배를 조작하며 전투하는 건 [배틀쉽]의 조작방식과 95% 이상 유사해요.”
“그래?”
“아마도 율리안 박사는 저와 동시대부터 지금까지 살아남은 사람일 거예요. 그게 아니라면 저와 비슷한 게임을 했던 사람이든가. 아무튼 그렇네요.”
백현의 말에 김만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라? 율리안 박사는 백현이 아버님하고 비슷하게 생겼다고 최형우 아저씨가 그러지 않았었나?’
아무튼 질문은 다음에.
지금은 이곳을 공격하려 접근하는 키메라를 처리하는 게 급선무다.
강백현은 자신도 빈자리를 골라 앉아 날아다니는 키메라를 에너지 광선을 쏘아대며 하나하나 잡아냈다.
“아저씨도 앉아서 해보실래요? 제 분신들은 제 기억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익숙하게 잡고 있는 것 같네요.”
“난 소질 없어.”
“그럼 잠시 앉아계세요. 금방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요.”
한 발 쏠 때마다 한 마리씩, 백발백중으로 맞추는 강백현.
그래서일까? 화면 안에 포착된 키메라의 수가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모든 키메라의 접근을 차단하는 데 성공한 백현은 다른 두 분신에게 말했다.
“고생했다. 사라져!”
“네!”
대답과 동시에 두 분신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쟤네는 왜 흡수 안 해?”
“제가 소환한 거 아니에요. 아까 흡수한 제 분신이 만들어낸 분신이니까 굳이 제가 흡수할 필요는 없죠. 더구나 분신을 흡수하는 것도 체력을 소모하거든요.”
강백현의 대답에 김만철이 질문했다.
“분신이 분신을 만들어내는 게 가능해?”
“네. 보니까 2개까진 가능하더라고요. 다만, 제가 만들어낸 분신보다 지능이 떨어지긴 해요. 그것보다 아저씨!”
“어?”
“생각해보셨어요?”
“뭘?”
“선희 누나가 아저씨랑 결혼했잖아요. 그래서 윤수 아빠가 됐고요.”
강백현의 말에 김만철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래. 꼭 지금 얘기해야겠니?”
“일단 우리 둘밖에 없으니까 꺼낸 건데, 하지 말까요? 전 그래도 아저씨랑 이런 허심탄회한 이야기 하고 싶었어요. 아저씨도 이런 일이 생기고 나서 첫날에 만난 분이고, 선희 누나도 마찬가지고 윤수도 마찬가지잖아요. 남 일 아니잖아요. 안 그래요?”
강백현의 말에 김만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말이 맞다. 그런데 아직은 준비가 덜 된 것 같다.”
“그래요. 준비되면 말씀하세요. 아저씨가 원하신다면 미나 통해서 박진석씨는 되살리지 않는 방법도 있으니까.”
“아니야! 살리지 말란 게 아니야. 그 사람은 살아나도 페이즈 2 진입 전 상태잖아. 그게 무슨 말인 줄 알아? 자신이 범죄를 저지르기 전 상태로 깨어날 거라고.”
“그런데요?”
“그런데요? 그 사람이 심성이 착할 수도 있잖아. 실제로 그랬고! 너하고 미나 둘이 포인트 부족했을 때 구해준 사람도 박진석이었잖아. 그 사람이었잖아.”
“그랬죠. 그런데 마지막에 저희를 죽이려 했던 사람도 박진석이었죠. 저는 그 사람이 마지막에 어떤 선택을 내렸는지 똑똑히 기억해요. 살아나는 사람이 비록 클론이라고 해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아요. 아저씨가 클론임에도 김만철 아저씨란 사실이 변하지 않듯, 박진석이 되살아난다 해도 살인자 박진석임은 틀림없어요.”
백현은 잠시 숨을 돌리고는 더욱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미나의 발언은 용서해주세요. 미나는 저하고 견해가 다를 수 있겠지만, 미나의 말은 분명 아저씨한테, 그리고 윤수한테도 정신적으로 충격이었겠죠. 그 점에 대해서는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그러니까 아저씨도 회피하지 마시고 그 문제에 대해서는 확실히 해주세요. 선희 누나의 남편으로서 행동할 것인지, 아니면 어찌할 줄 모르고 이 상황으로부터 도망치기만 할 건지…….”
다소 격한 발언이었다.
강백현의 말은 가시는 물론 뼈도 실린 발언이었다.
김만철은 한숨을 내쉬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문제에 대해 결론을 내지 못한 것은 사실이었다.
“시간 가지고 좀 더 생각해볼게. 그 점은 나도 인식하고 있고, 어떻게 해야 할지 혼자서 결정할 사안은 아니야. 나중에 선희 씨 만나게 되면 같이 의논해볼게. 윤수도 마찬가지고.”
“네. 알겠습니다. 미안해요. 아저씨, 아니다. 미안해요. 형.”
“형?”
“네. 이제 형이라고 부를게요. 사실 그동안, 아저씨라고 부르는 게 미안하기도 했어요. 항상 형이라고 부르라고 했잖아요. 최형우 아저씨도 저한테는 아저씨고, 닥터 최태우도 저한테는 아저씨인데, 만철이 아저씨까지 아저씨라고 부르면 호칭 문제도 있고, 형도 형이라고 불러달라고 했으니까, 그게 편하겠다 싶어요.”
“그래. 그럼 좋지.”
“그래요. 만철이 형, 그거면 됐어요. 시간 참 빠르죠?”
“그런가?”
“네. 벌써 광주 상공 위를 지나고 있어요.”
“그래?”
눈 아래 펼쳐진 풍경은 광주광역시라고 보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숲이 울창했다.
도심지역의 파괴 이후 전혀 관리가 되어 있지 않았는지, 빌딩 사이사이로 나무가 자라고 있다.
본래 숲과 도심이 어우러져 있어야 보기 좋다지만, 지금은 숲이 95%, 그 외에 다 무너져가는 빌딩이 5%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점이라면, 간간히 보이는 초록색의 거인들.
그들은 빌딩만 한 크기의 몸을 가지고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었다.
“우와, 미치겠다. 왜 이렇게 크냐?”
“그러니까 미래에서 우리를 불렀겠죠. 정말 덩치가 장난이 아니네요.”
“그러게. 형우 아저씨도 진짜 크다고 생각했는데, 저것들은 도대체 얼마나 큰 거야?”
시간이 흘러 광주를 지나 김제, 논산, 공주. 그리고 천안의 상공을 날고 있는 참이었다.
그제야 다른 사람들도 휴식을 마치고 하나둘 백현의 조종석이 있는 통제실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백현은 일행들의 방문을 반갑게 맞이했다.
“백현아, 잘 가고 있어?”
“네. 문제없어요.”
최형우의 말에 방긋 웃는 백현.
“엉아! 나 운전해 봐도 돼?”
“안 돼! 윤수는 좀 더 크고 나서!”
“만지고 싶어.”
“안 돼!”
“히잉. 으. 진짜 운전해보고 싶은데!”
윤수는 곧바로 김만철의 옆자리로 가서 졸랐다.
그러자 김만철이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백현아, 라이트 켜고 끄는 건 만져도 되지?”
“아, 좋은 생각 아닌 것 같은데요.”
“한 번만 허락해줘라. 응? 별것도 아니잖아.”
“아, 책임은 형이 지세요.”
“알았어. 알았어.”
백현의 말에 김아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형?”
“응. 그렇게 부르기로 했어.”
김만철이 윤수의 손을 직접 가져다대면서 내부 전등을 켜고 끄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러면서 아람이한테 말했다.
“너도 오빠라고 부르든가!”
“미쳤어요?”
“뭐?”
“아저씨가 어떻게 오빠예요. 됐거든요?”
“왜? 오빠 될 수도 있지. 여기 세계에선 너랑 나랑 결혼도 한다며!”
그의 말에 최형우가 화들짝 놀랐다.
“그러냐? 그랬어?”
“아, 미나가 그러던데요. 저랑 아람이랑 결혼했다고. 아~ 물론 지금 제 마음 속에는 선희 씨뿐입니다. 그러니까 오해 마세요!”
김만철의 말에 김아람이 짜증을 부렸다.
“아- 어이없어. 누가 누굴 거절해? 미쳤나 봐. 미나야! 진짜야? 내가 저 주름 많은 노땅 아저씨랑 결혼했다고?”
그러자 미나가 곤란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나갔다.
그런데 갑자기 비행체가 흔들렸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진동이 밀려왔다.
자리에 앉지 않고 서 있던 사람들이 충격으로 넘어진 가운데, 백현이 레이더 화면을 확인했다. 그리고 아무 것도 잡히지 않자 미니맵을 켜서 더 넓은 범위를 보았다.
“윤수야! 너 뭐 만졌어?”
“엉아?”
“손 떼! 손 떼! 만철이 형! 윤수 데리고 나가요!”
“어? 어. 어. 무슨 문제 있는 거니?”
“큰일 났어요. 고도를 올려야 해요.”
“왜? 무슨 일인데?”
강백현은 말없이 다급한 표정을 지었다. 미나는 곧바로 마인드 리딩을 통해 문제를 확인하고 주변에 백현의 기억을 퍼트렸다.
백현이 본 미니맵 화면.
그곳에는 커다란 거인이 상공을 쳐다보고 있다.
그리고 녀석의 주먹에 무언가가 쥐어져 있었다.
백현의 기억을 엿본 최태우 닥터는 황당한 표정이었다.
“말도 안 돼! 뭔가를 던질 수 있는 지능이 있다고?”
거인들은 지능이 낮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녀석의 주먹에는 커다란 암석이 쥐어져있는 상태였다.
곧이어 거인이 백현 일행이 타고 있는 비행선을 조준하여 바위를 던졌다.
백현은 곧바로 자율방어 시스템을 가동했다.
그러나 바위가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마치 대포알 같은 바위가 운 나쁘게도 주요엔진을 정확히 맞추고 튕겨나갔다.
쿠쿠쿠쿵.
충격과 함께 갑자기 고도가 급하강했다.
백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최악의 상황을 상정했다.
“보조 엔진만 남았어요. 고도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 됐어요.”
“왜? 거인이 우리를 어떻게 발견한 건데?”
백현은 대답 대신 미나를 보며 생각했다.
‘아마도 보조등을 켜고 끄다가 시선을 끈 것 같아요. 윤수가 누른 버튼 때문에 거인들이 우리를 목표로 포착한 것 같습니다.’
미나가 백현의 생각을 윤수를 제외한 일행에게 전달해주었다.
김만철은 한숨을 쉬었다. 모든 게 자신의 탓 같았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김만철을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을 해결하려 몰두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돼?”
“일단 불시착을 해야 할 텐데, 이렇게 되면 어디로 떨어질지 결정해야 해요. 지금 수원, 오산 근처를 지나는 중인데…… 어디로 가야 하죠?”
백현이 말하는 동안 또 하나의 암석이 방주를 맞췄다.
백현의 입가에는 다시 한 번 쓴웃음이 걸렸다.
그때, 최태우가 입을 열었다.
“기왕 불시착할 거면 평택으로 가자.”
“평택이요?”
“응. 그곳에는 미군기지 활주로가 남아 있을지도 몰라.”
“네. 알겠습니다.”
고도가 점점 떨어지고 있다. 암석도 날아오고 있다.
집요하게 방주에 관심을 두는 거인이 암석을 쉴 새 없이 내던진다.
하지만 이후의 암석은 방주에 닿지 않았다.
빠른 비행속도 때문에 거인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엔진이 고장난 지금, 출력부족으로 인해 고도가 점점 하강하고 있었다.
평택 미군기지 쪽으로 한껏 방향을 돌리는 백현.
“활주로 있어요! 있는데!”
“있는데 왜?”
“5,000, 4,500, 4,000, 3,500…… 거리가 부족해! 이대로는 활주로에 닿지 않아요. 이대로는 활주로에 착륙할 수 없어요.”
방주가 파괴되면 인류가 멸망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방주를 지켜내야만 했다.
그때 구세주가 나타났다.
“으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아악!”
“아람아?”
“내가 버틸게. 버틸 테니까. 으으으으. 활주로까지 가!”
김아람이 방주의 하강속도를 염력을 이용해 늦추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서 윤수가 울면서 김아람을 회복시키고 있었다.
“누나, 미안해. 내 잘못, 내 잘못이야.”
아무도 탓하지 않았음에도 눈치로 무엇이 문제였는지 파악한 윤수였다.
강백현은 두 명의 도움 덕분에 희망을 찾았다.
100, 50, 30, 20, 10. 비상착륙을 위한 바퀴가 내려가고, 일행들은 무사히 활주로에 착륙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