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cm헌터-160화 (160/200)

160화. 불시착

나이에 의해 서열이 정해졌다.

최형우가 60대로 가장 위, 그 다음이 최태우, 김만철, 강백현, 김아람 그리고 강미나, 박윤수 순.

그런데 실질적인 발언력은 또 다르다.

“일단 저는 계속 운전해야 할 것 같으니까 여기 남아 있을게요. 혹시 모르니까 만철이 아저씨는 여기 남아주실래요?”

“나? 방금 전까지 일했는데?”

“저도 졸음 올지 몰라서요. 아저씨가 같이 근무한다 생각하시고 옆에 있어주시면 좋겠어요.”

강백현의 말에 김만철은 조금은 화가 났다.

평소라면 안 그랬을 텐데, 새로운 사람이 들어와서 그런지 서열 문제로 민감해진 모양이다.

“나 방금 전까지 통제한 거 몰라? 아람이 근무 세워. 미나 세우든지! 난 윤수 돌봐야 해.”

그런데 최형우가 그 말에 태클을 건다.

“만철아, 백현이 말 들어.”

“네?”

“네가 편한가 보지. 그리고 윤수는 너보다 나하고 같이 있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안 그래 윤수야?”

최형우의 말에 박윤수가 대꾸한다.

“응! 할아버지가 더 재밌어. 할아버지! 저번에 해주셨던 물레방아 소년 이야기 해주세요!”

“그래. 할아버지랑 뒤쪽으로 가자. 거기서 저번에 들려줬던 동화 마저 들려줄게.”

“넹!”

그리고 김아람도 부정적인 반응이다.

“아저씨! 왜 그렇게 까칠해요? 매운 맛 좀 볼래요?”

“뭐야?”

“아니! 뭐가 그리 힘드냐구요. 백현이 옆에 좀 있어줘요! 미나야! 샤워실 가서 씻자! 아까 보니까 물도 채워 주셨더라구.”

“네. 언니! 같이 씻어요.”

조종실과 연결된 객석.

퍼스트 클래스가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180도까지 펴져서 침대처럼 쓸 수 있는 의자, 영화를 볼 수 있는 스크린과 샤워실까지 없는 게 없었다.

당초에는 활용할 수 없는 공간이었다.

에너지 부족이 이유였다.

방주의 에너지가 5% 미만으로 하락하면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자동으로 폐쇄되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수백 마리의 익룡을 제물삼아 에너지를 충전했기에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단점도 있었으니, 방음이 안 되는 것.

“미나야. 아저씨들 코골이 너무 심한데?”

“지금은 최태우 닥터님이 주무시고 계시는데, 많이 심한 것 같아요.”

한편 조종석에서 강백현이 충혈된 눈으로 김만철에게 당부했다.

“아저씨, 저 졸면 바로 옆에서 깨워주세요.”

“많이 잤잖아.”

“네?”

“아까 계속 잔 거 아니었어?”

“아, 자려고 했는데요. 혹시 이륙할 때 실패할 수도 있어서 계속 시뮬레이션 돌려봤어요. 이륙할 때 눌러야 하는 버튼하고 고도 2000m 되면 조작해야 하는 사항이나 주의사항 같은 거요. 생각보다 알아야 할 내용이 많더라고요.”

물론 홀로그램으로 조종에 관련한 사항이 보이지만, 그걸로 학습까지 완료되는 것은 아니었다.

뇌의 단점은 망각.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금방 잊어버리는 신기한 기능.

그래서 수십 번, 수백 번 되뇌고 또 되뇌어야 됐다.

방주가 하늘을 날고 있다.

익룡을 태운 에너지를 영양분 삼아 하늘로 솟구치고 있다.

김만철은 강백현이 밤새 잠도 못자고 조종기술을 익혔다고 하자 자신의 발언을 후회했다.

“백현아, 미안하다.”

“네? 뭐가요?”

“아까, 내가 화낸 거.”

“아, 그거 화낸 거였어요? 일부러 장난 친 건 줄 알았는데.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이렇게까지 말하니, 김만철의 마음은 더욱 비참해진다.

제주도 상공으로 날아오르자 일행의 앞에는 경이로운 자연환경이 펼쳐졌다.

제주도 앞바다의 수많은 작은 섬들.

그 앞에 펼쳐진 푸른 바다와 하늘에 둥둥 떠다니는 솜사탕 구름.

경이로운 빛으로 세상을 밝게 비추는 태양까지.

“미세먼지 하나도 없네. 날씨 엄청 좋다. 제주도라 그런가?”

“아무래도 지금 시대에는 공장이 없으니까요. 거인들이 자연을 파괴하긴 하지만, 오염시키진 않으니까요.”

“생각해 보니 그렇네.”

백현의 말에 김만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궁금한 점이 생겼다.

“백현아, 하늘은 안전한 거니?”

“네?”

“익룡들도 살고 있었잖아. 바다에는 크라켄이 살고 있고, 육지에는 거인들이 살고 있는 거잖아. 그럼 하늘도 위험한 거 아니야?”

김만철의 걱정에 강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하긴 하죠. 확실히 그 점을 염두에 두긴 해야겠네요.”

“그렇지?”

“네. 일단 미니맵으로 살펴볼게요.”

강백현이 미니맵을 확인했다. 그러자 수많은 표시들이 강백현의 홀로그램에 나타났다.

“음, 아저씨 말대로 확실히 위험한 게 보이긴 하네요. 곧 레이더 화면에 나타날 것 같아요. 화면 띄워드릴게요.”

“레이더?”

“네. 조종석에는 전방 10km까지 확인 가능한 레이더 화면을 띄울 수 있어요. 레이더를 활성화시키면 분당 0.001%의 에너지를 소모하지만, 안전만 보장된다면야 쓰는 게 좋죠.”

백현이 버튼을 몇 개 누르자, 좌측 화면에 레이더 화면이 떠올랐다.

비행기 모양의 방주가 조그만 형태로 표시되고 그 주위로 원형의 파장이 5초 단위로 퍼져나가며 주변의 지형지물을 보여준다.

“10초 뒤에 보이기 시작할 거예요.”

미니맵을 볼 수 있는 백현.

그는 레이더보다 더 먼 거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확실히, 백현의 말대로 무언가를 레이더 끄트머리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방주보다는 작지만, 거대한 새.

그 모양이 왠지 익숙하다.

“독수리?”

“네.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거인병에 노출된 독수리 같아요. 크기가 꽤 크죠?”

“어. 그렇네.”

크기 25m짜리 독수리가 하늘 높이 날고 있다.

이곳이 상공 8,000m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 독수리는 에베레스트 정상을 날고 있는 거라고 봐도 무방했다.

추운 날씨, 엄청난 풍속의 바람을 거뜬히 이겨내는 독수리가 갑자기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다.

“엉? 거대화였어?”

“아니요. 하강하는 거예요. 지상의 먹잇감을 포착하고 사냥하려고 내려가는 거죠.”

거대독수리가 레이더 화면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갑자기 독수리보다 큰 녀석이 레이더 화면에 잡혔다. 심지어 점점 커지기까지 했다.

“백현아! 여기 점점 커지는 건 뭐냐?”

“지상에서 이쪽으로 올라오는 것 같은데요. 독수리를 잡으려는 걸까요?”

“그래? 뭐지?”

“글쎄요. 잠시만요.”

백현은 미니맵을 통해 지상에서 활공하는 생명체의 데이터를 확인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비닐봉투를 꺼내어 거기에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왜 그래? 멀미야? 두통 때문에 그래? 피곤해서 그런 거야?”

“아니요. 거대 독수리가 사냥당한 것 같아요.”

“그래? 다행이다. 무엇 때문에? 누가 독수리를 사냥했는데?”

“……보시면 알게 돼요.”

레이더 화면에 수많은 점들이 나타났다.

펄럭이는 날개가 보이자, 김만철이 환한 웃음을 짓는다.

“오, 멋있는데? 무슨 새야? 날개 엄청 크다!”

그런데 백현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웃고 있던 김만철마저도, 이제 레이더 화면을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백현아.”

“아저씨가 생각하는 게 맞아요.”

강백현은 미니맵의 상세메시지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글맨 ★★★》

독수리와 유전자를 합성한 인간들.

독수리와 합쳐지는 과정에서 지능을 잃고 조류의 본능과 날개를 얻었다.

단체사냥을 좋아하며 썩은 고기, 생고기를 가리지 않는다. 육식만을 즐기는 하늘의 포식자.

10km 이상 떨어진 피냄새도 맡을 수 있으며, 먹이를 끝까지 추적하는 특징이 있다.

추위에 강하다.

“독수리 인간들, 키메라네요. 이쪽으로는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키메라라고는 하지만 그들도 한때는 인간이었거나, 인간의 후손일 테니까.”

세상은 썩을 대로 썩어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온전한 인간을 만날 수나 있을까?

김만철은 현재의 세상을 알게 되는 것이 점점 두려워졌다.

미지에 대한 공포는 물론이고, 자신이 믿고 있던 신념이 하나하나 무너지는 좌절감.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경계를 넘어, 인간인지 인간이 아닌지 구별이 불가능한 생물체가 하나둘씩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다.

피시맨, 록맨, 거기에 이글맨까지.

그때 백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운이 나빴네요. 녀석들이 익룡을 태우는 냄새를 맡았나 봐요.”

“냄새?”

“네. 녀석들은 10km 바깥의 피냄새도 귀신같이 감지하고 따라오는 특징이 있어요. 미니맵에 그렇게 설명이 나오네요.”

백현의 말이 끝나자마자 독수리 인간들이 방주를 향해 날아들었다.

김만철이 백현을 안심시키며 말했다.

“내가 나가서 처리하마. 혼자 안 될 것 같으면 아람이도 합류시키고.”

하지만 백현의 생각은 달랐다. 자신만의 해결방법이 있는 듯했다.

“후후, 아저씨 미쳤어요? 여기 지상 아니에요.”

“뭐?”

“여기 상공 8천 미터라고요. 바깥 온도는 영하 30도 정도 되고요. 그런데 나가시려고요?”

“그래?”

백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기껏 모은 에너지를 소비하겠지만, 그래도 저들이 방주에 침입하는 것보다는 그게 낫겠죠. 뒤에 가서 모두에게 안전벨트 매 달라고 전해주세요. 지금부터 슈팅 게임 좀 해볼 거니까.”

그 말을 끝으로 백현의 정면 화면에 FPS모드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안내 멘트도 들렸다. 완벽한 한국어였다.

방주의 자기방어 시스템이 작동한 것이다.

《자율방어 시스템을 구축합니다.》

《잔여 에너지 21.5%, 자율방어 시스템 최저요건(10%) 달성. 자율방어 시스템 완전 구축까지 5, 4, 3, 2, 1. 자율방어 시스템, 구축 완료하였습니다.》

화면에 십자가 모양의 에임이 떠올랐다.

백현은 안전벨트를 착용하라고 안내하고 돌아오는 김만철에게 빙그레 웃었다.

“직접 쏘실래요? 아니면 자동사냥으로 놔둘까요?”

“뭐?”

“저는 손맛 좀 봐야할 것 같거든요. 안 그래?”

백현이 자신과 똑같이 생긴 3명의 분신들에게 말했다.

그러자 다들 빙긋이 웃으며 세 자리의 보조석에 나누어 앉았다.

“게임하듯 맞추면 되는 거지?”

“누가 많이 맞추나 내기할까?”

“좋지! 내가 1등 할 거야.”

“내가 1등이거든?”

백현의 능력에 의해 만들어진 분신들이 티격태격 대며 서로 실력을 자랑했다.

김만철은 이미 모든 것을 완벽히 준비해둔 백현의 본체를 향해 씩 웃었다.

“아마도 내가 처리하는 게 낫겠지?”

“아, 그럼 여기 앉으세요. 아 맞다. 아저씨!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어?”

“사실 저 본체 아니에요. 분신이에요.”

“뭐?”

“백현 님은 아까부터 퍼스트 클래스의 가장 뒷좌석, 승무원 전용 휴게실에서 주무시고 계세요. 주무신 지 3시간 됐으니까 깨워드리고 올게요. 잠시 맡아주실래요?”

분신 1이 조종석을 나갔다.

그러자 김만철이 멋쩍은 얼굴로 말했다.

“뭐야? 나는 그동안 분신이랑 얘기한 거였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