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비밀통로
나타샤는 2개의 출구를 알고 있었다.
피라미드 최상층으로 향하는 출구와 1층 입구.
그러나 최상층으로는 갈 수 없었다.
에반이나 자신의 펫이 황제처럼 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1층으로 가려는 것을 백현이 말렸다.
『그쪽은 이미 경비가 삼엄해요. 중앙 복도 지역으로 이동해야 해요.』
『중앙 복도? 아니, 그것보다 무슨 펫이 우리말을 할 줄 아는 거죠?』
나타샤의 말에 에반이 쉽게 설명했다.
『내 펫은 우리 거인처럼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어. 거기에 미니맵이라고, 주변 사물의 위치를 볼 수 있는 능력도 가지고 있고.』
『말도 안 돼. 그런 능력이라니.』
『못 믿겠지만 사실이야. 백현! 어디로 가야 해?』
『중앙 복도 3번째 미라 뒤편에 비밀통로가 있는 것 같아. 거기가 유일한 출구야.』
『비밀통로라고?』
비밀통로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황제와 비밀통로를 관리하는 수로관리자뿐.
강백현은 에반과 나타샤를 비밀통로로 인도했다.
미라 석상 뒤편의 문.
문을 밀자, 가운데를 중심으로 석판이 회전하며, 백현의 말대로 비밀통로가 나타났다.
비밀통로는 피라미드를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수로와 이어져 있었다.
각 건물들 밑에 수로가 지나듯, 피라미드 밑에도 수로가 흐르고 있었다.
어두컴컴한 통로.
거기에서 나타샤는 자신의 펫이 든 유리병을 꺼내 어둠을 밝혔다.
나타샤의 펫은 반딧불이었다. 조그마한 벌레.
손가락만한 벌레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몸을 산화해 빛을 내고 있었다.
『펫 괜찮아? 죽어가는 것 같은데…….』
『괜찮아요. 여유분이라면 얼마든지 있으니까.』
나타샤는 반대편 유리병을 하나 더 꺼내 보였다.
수십 마리의 반딧불이.
『반딧불이는 섬광 Lv1이란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저는 의식행사를 할 때 빛을 조절하는 무희 중 하나였어요. 제일 하찮은 역할이었죠. 그게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네요.』
미니맵 능력에 더하여 나타샤의 펫이 지닌 섬광 능력까지. 지하수로를 빠져나오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추적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
백현은 미니맵을 통해 그들이 비밀통로로 들어왔다는 점을 알았다.
지하수로의 상류에 접근하자 커다란 폭포 소리가 들려왔다. 에반은 그곳이 자신이 얼마 전에 왕자와 대결했던 장소란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수많은 원주민이 있던 장소. 지금은 의식행사가 끝나서인지 한 사람도 보이질 않는다.
나타샤가 탈출로에 대해 설명하며 에반의 의중을 물었다.
『구름다리를 건너면 곧 국경이에요. 하지만 신디아에 간다고 안전하다는 보장은 없어요. 오히려 지금보다 더 고난이 이어질 거예요. 적어도 여기에서 자수하면 목숨만은 건질 수 있겠죠. 어떻게 할 건가요?』
『답은 정해져 있잖아. 강행할 거야. 내 대륙, 내 직위를 찾을 거고.』
『알겠어요. 그럼 저도 에반, 당신에게 인생을 걸어볼게요.』
구름다리는 한눈에 봐도 위험했다.
작은 바람에도 흔들거리는 밧줄로 된 다리.
발판의 나무는 비와 바람에 얼마나 노출되었는지 썩어문드러진 게 태반이다.
에반이 의심스러운 얼굴로 백현에게 물었다.
『다른 길은 없어?』
『있긴 있는데 이 길이 최선이야. 다른 다리는 여기서 3km는 돌아가야 해.』
『할 수 없네.』
『응.』
흔들거리는 밧줄을 양손으로 잡은 두 거인이 외줄타기를 하듯 구름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아찔한 높이.
바닥이 보이지 않는 높이의 구름다리를 에반과 나타샤가 중간쯤 건넜을 때였다.
비밀통로를 통해 추적해온 무관들이 구름다리를 건너는 두 사람을 목격하고 당황했다. 설마 저 위험한 다리를 건너리라곤 생각지 못했던 무관들. 그들이 왕자에게 말했다.
『왕자님, 여길 건너는 건 위험합니다.』
『그럼 어떻게 하자고? 당장 잡아야지!』
『살려둘 필요가 없다면 다리를 끊어버리는 게 어떠십니까? 밧줄만 잘라버리면 저들은 낭떠러지 밑으로 추락할 겁니다.』
『당장 끊어버려!』
『네!』
왕자의 명령에 거인들이 자신의 펫을 동원해 밧줄을 자르기 시작했다.
맹수들 여럿이 거인의 명령에 따라 이빨로 밧줄을 물어뜯고 흔들기를 반복했다.
결국 밧줄 한쪽이 끊어지자, 에반과 나타샤의 몸이 한쪽으로 휘청거리며 한순간 중심을 잃어버렸다.
『괜찮아?』
『네.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말고 가야 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앞만 보고 가야 살 수 있어.』
『알았어요.』
초조함은 계속되었다.
이제 나무 발판만을 의지해서 걸어가야 했다. 그런데 그 나무 발판과 연결된 밧줄 부분도 맹수들에 의해 끊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나타샤는 발판 아래의 낭떠러지를 보며 불안해했다.
하지만 시간이 얼마 없었다.
『끊어질 것 같아요.』
『괜찮으니까 계속 걸어. 걸어.』
그러나 최악의 사태가 벌어졌다.
나무 발판을 지탱하던 밧줄이 맹수들에 의해 끊어지자 두 사람이 추락해버린 것이다.
『죽은 거야?』
『그런 것 같은데요. 왕자님. 지금 바로 아래쪽 수색해보겠습니다.』
『그럴 필요 있을까? 죽었겠지.』
『어? 왕자님! 저기! 저기를 보세요.』
끊어진 다리 아래에서 두 사람이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공중으로 비상하고 있었다.
천천히 하지만 안정적으로 올라오는 두 사람.
에반은 걱정스런 말투로 백현에게 물었다.
『괜찮아?』
『ㅆㅂ, 뒈질 것 같다. 말 걸지 마.』
『ㅆㅂ는 뭐야? 무슨 말인데?』
『알 거 없고, 말 걸지 마. 죽을 것 같으니까.』
강백현은 자신의 보호막으로 두 사람의 체중을 받쳐내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무슨 엘리베이터라도 되는 듯 상승하여 두 사람을 절벽 위로 올려놓았다.
그대로 탈진한 백현이 중얼거렸다.
“야. 저 여자한테 말해.”
“뭐를 말해?”
“살 좀 빼라고. 미친, 존나 무거워.”
* * *
다리가 끊어진 탓에 오히려 시간을 벌게 된 백현 일행.
그들은 국경 검문소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에반은 스마트폰을 사용, 다시 한번 검문소장으로 일하고 있는 앨버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전화가 연결되지 않았다.
《지금 고객님께서 전화를 받으실 수 없습니다……》
『아, 미치겠네. 검문소장 앨버트! 이 자식! 차단한 거 아니야?』
신호조차 울리지 않고 바로 연결음으로 넘어가는 전화.
몇 번을 전화해도 같은 음성 메시지만 출력될 뿐이었다.
『제가 해볼게요. 앨버트 소장님은 저도 아는 분이에요.』
『그래?』
나타샤가 자신의 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단번에 받는 앨버트.
- 『나타샤?』
『앨버트 소장님, 지금 에반 왕자님이랑 같이 가고 있어요.』
- 『무슨 소리야? 에반 왕자님은 죽었잖아.』
『아니에요. 살아 계세요. 제 옆에 계시고요. 5분 안에 들어가니까 바로 통과시켜주세요. 지금 추적당하고 있어요.』
검문소 지역.
국경 사이의 검문 절차는 굉장히 복잡하다.
지문도 찍어야 하고, 사진도 있어야 하며 출입국사무소에 인적사항도 기입해야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소지품은 물론 반입 펫들도 일일이 검사 받고 통과해야 했다.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앨버트 소장이 직접 나타샤와 에반을 마중나와 있었다.
『에반 왕자님?』
『앨버트!』
『살아 계셨습니까?』
『일단 들여보내줘. 지금 나 죽이려는 녀석들이 오고 있다.』
『누구요? 아르케 녀석들이요?』
『아니, 도르시안 녀석들.』
『도르시안에서 저희하고 원수질 일이 없을 텐데……』
『야! 그냥 들여보내! 너 왜 이렇게 말이 많아졌어? 어?』
『아, 죄송합니다. 빨리 들어오십시오!』
에반은 자신이 왕자였을 때처럼 당연한 듯 화를 냈다.
앨버트가 당황스러워하며 예의를 차리자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지금은 일단 자신과 나타샤의 안위가 우선이었다.
검문소에 들어간 후, 얼마 안 있어 CCTV에 도르시안 인들이 포착되었다.
녀석들은 검문소에서 대기 중인 거인들을 하나하나 훑어보기도 하고, 질문하기도 했다.
『이렇게 생긴 거인 못 봤어요?』
『성인 여자하고 남자, 못 봤어요?』
『잠시 모자 좀 벗어봅시다.』
앨버트가 아무렇지 않은 듯 그들을 응대했다.
『검문소장입니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아니! 범죄자 한 명을 찾고 있어서요. 혹시 남녀 거인 한 쌍이 이쪽으로 오진 않았나요?』
『아, 오늘은 없었거든요. 혹시 수상한 커플 보이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수확이 없는 무관들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검문소를 통과한 것 같진 않습니다. 주변 일대를 더 수색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빨리 찾아! 너희들! 오늘 걔네 못 잡으면 다들 좌천될 각오해야 할 거야. 알았어?』
『네. 왕자님!』
* * *
검문소장 앨버트의 방.
에반과 나타샤는 초조한 얼굴로 앨버트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타샤는 에반에게 물었다.
『펫 괜찮아요? 덕분에 살았어요.』
『아, 맞다. 이 녀석 괜찮은지 모르겠네.』
주머니에서 강백현을 꺼내든 에반.
얼마나 많은 힘을 썼는지 아직도 숨을 헐떡이고 있는 상태였다.
에반은 정수기에서 물을 떠서 백현에게 주었다.
『마셔.』
벌컥벌컥.
대답도 하지 않고 바로 물을 마시는 모습을 보며 에반이 강백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지 말아줄래?』
『뭐?』
『머리 쓰다듬는 거 하지 말라고.』
백현의 대답에 초조한 얼굴을 하던 나타샤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 나타샤를 향해 강백현이 다시 한번 핀잔을 늘어놓았다.
『아줌마는 왜 웃어? 이게 다 아줌마 때문에 그런 거잖아. 안 그래?』
『와, 진짜 우리 말 잘 한다. 신기해.』
『신기하고말고, 죽을 뻔한 거 살려줬으니까 나 좀 가만히 냅둬. 만지지도 말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 귀찮아. 말도 하기 싫어.』
실제로 그랬다.
너무 힘들어서 대답도 하기 싫은 상태.
그 작은 몸으로 거인 2명을 들어 올렸으니.
사실 백현은 자신의 힘이 생각보다 더 세다는 사실을 알고 기뻤다.
‘한 명은 더 들 수도 있어 보였어.’
그건 약 200kg의 힘을 낼 수 있다는 뜻이었다.
보호막 Lv3. 보호막의 변형도 자유자재가 되었지만, 더 대단한 것은 힘의 세기가 차원이 다르다는 점.
Lv4까지 투자하면 얼마나 더 강력해질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한편, 앨버트 소장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다 해결됐습니다. 일단 돌려보냈으니까 당분간은 이쪽으로 오지 않을 겁니다.』
『그래? 앨버트, 지금 상황은 어때?』
『4년 전하고 크게 달라진 점은 없습니다. 왕자님. 사실 저희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부분도 없었고요.』
『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니?』
『황권을 해체하지 않았습니까? 기사 작위나 귀족 작위를 받은 자들을 뿔뿔이 흩어지게 만들었죠.』
『그렇다고 보고만 있지는 않았을 거 아니야?』
『후후, 왕자님 저희가 뭘 어찌하겠습니까? 거인의 룰을 아시지 않습니까? 가장 강력한 펫을 가진 자가 황제가 됩니다. 그러므로 저희는 키메라를 펫으로 가진 현 황제를 어찌할 수 없습니다.』
키메라에 당한 황족들.
『그럼 지금 황제는 도대체 이 나라에서 뭘 하는데?』
『실질적으로 황제는 이 나라에서 아무 역할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냥 허수아비 왕일뿐이지요.』
『어디 있는지는 알지?』
『그것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이 대륙 내에는 있겠지요. 그것보다 왕자님 계획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전 그것부터 들어야겠습니다.』
앨버트의 말에 에반이 눈을 치켜 올렸다.
『아버지를 되살린다.』
『네?』
『소생의 돌 50개를 모아 아버지를 되살리고, 율리만 섬에서 소생의 돌을 다시 모아 죽은 형제들을 되살린다.』
『소생의 돌 50개는 어디서 구하실 건데요?』
『아버지와 우리 형제들만이 아는 비밀의 장소가 있어. 거기에 우리 가문이 이제까지 모아놓은 소생의 돌이 잠들어있지.』
에반의 설명에 앨버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의문이 들었다.
『왕자님, 그 전에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이번엔 또 뭔데?』
『저랑 한번 대결해주십시오.』
『너랑 대결을 왜 하는데?』
『전 황제께서 서거하시기 전, 저는 대륙에서 5위 안에 드는 실력자였습니다. 저조차도 이기지 못한다면 현 황제에게는 당연히 질 수밖에 없겠지요. 저를 이기신다면 제 모든 것을 걸고 적극 지원하겠습니다. 목숨도 걸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승부 피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앨버트의 결의에 찬 얼굴. 그걸 옆에서 보고 있던 강백현이 에반에게 소리쳤다.
『에반! 쟤 좀 짜증나려고 한다. 천천히 하자고 해. 나 힘들어.』
거인어를 하는 강백현.
그걸 보며 깜짝 놀라는 앨버트를 향해 에반이 웃어보였다.
『내 펫이 천천히 가잔다. 일단은 며칠 쉬고, 정보도 얻은 다음에 하자고. 지금 당장 너한테 목숨 걸라고 하진 않을 테니까.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