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화. 조작
조세핀은 미나의 입장에서 생각했다.
자신의 가족 또는 친구, 그게 아니더라도 어떤 이들이 다른 존재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과연 어떤 느낌일까?
정신적 충격과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자신과 같은 거인들은 죽음에 너무 익숙했다.
어릴 때부터 애완동물을 가지고 놀며, 강한 펫은 살아남고 약한 펫은 죽어야 한다는 개념에 익숙해졌다.
학교를 다니기 전부터, 학교를 다닌 후에는 더욱 더 그러한 개념을 주입시켰으니까.
사회 전반적으로 그랬으니까.
9살의 꼬마.
하지만 15세 정도의 지적 수준.
그래서 조세핀은 미나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할 수 있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한편, 미나는 죽은 사람들 사이에서 장복남 아저씨를 찾아냈다.
어떤 여성과 포옹을 한 채, 행복한 미소로 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진실을 들은 이상, 저건 행복한 표정이 아니었다.
‘잔인해. 안락사라고? 안락사를 시켰다고?’
미나는 자신이 벌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했던 바람.
그게 무슨 말인지 너무나 잘 알게 되었다.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하지만 저렇게 타의에 의해서 죽는 것은 도저히 지켜볼 수가 없었다.
장복남 아저씨의 허벅지에는 주사바늘 자국이 남아있었다.
그 사람뿐만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도 전부 주사바늘 자국이 있었다.
‘오빠는? 오빠는 어디 있는 거야?’
뚝뚝.
흘러나오는 눈물.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참을 수 없었다.
버틸 수 없었다.
그래도 두 눈을 부릅뜬 채, 30명을 처음부터 다시 한 번 훑었다.
오빠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백현 오빠는 다행히 저 사람들 중에는 없었다.
안락사 당하지는 않은 것이다.
장복남 아저씨.
탈출할 때 딱 한 번밖에 보지 못한 아저씨지만, 인연이 있기에 미나는 잠시 고민했다.
품 안에 든 소생의 돌.
시체만 있다면, 소생의 돌을 사용하여 죽은 생명체도 살릴 수 있다.
하지만 미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건 최후까지 아껴둬야 해. 오빠만을 위해서 써야 해. 오빠를 잃을 순 없으니까. 내 가족은 백현 오빠뿐이니까!’
미나는 잔혹하고 냉정한 판단을 내린 자신에 대해 혐오감을 느꼈다.
‘그래. 난 나쁜 년이야. 사람도 죽였고. 이제는 돌이킬 수 없어.’
천사의 게임에서의 일.
승부에서 이기기 위해서라지만 사람을 죽였다.
그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마지막까지 저주를 퍼붓던 그들의 망령이 자신의 주변을 맴도는 것만 같았다.
갑자기 고통이 밀려왔다.
정신적 충격과 공포.
혼자서는 극복할 수 없는 스트레스가 자신의 가치관과 충돌하자 마음의 병이 생긴 것이다.
미나가 머리를 쥐어싸맸다.
고개를 숙이고 시야를 좁혀,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격리시켰다.
미나의 상태가 심각한 것을 알고 조세핀은 집에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고맙습니다. 많은 공부가 된 것 같아요.』
『꼬마아가씨, 어쩌죠? 하필 저희 칼스 님이 출근하신 시간이라서…… 만나 뵙지를 못하고 가시네요.』
『괜찮아요. 칼스 아저씨하고는 나중에 통화할게요.』
『네. 돌아가시는 길은 어떻게…….』
『택시 부를게요.』
『알겠습니다.』
스마트폰을 켜자, 부재중 통화가 무려 20통이었다.
조세핀은 당황했다.
『아빠가 알아차렸어.』
아니나 다를까? 바로 전화가 왔다.
-『조세핀! 어디야? 전화는 왜 안 받아?』
『잘못했어요. 아빠. 1시간 안에 들어갈게요.』
- 『그래. 들어가서 이야기하자. 집에 빨리 들어가.』
빠른 사과.
빠른 대처.
다행히 아빠로부터 더 이상 혼나진 않았다.
조세핀은 생각했다.
빨리 집에 들어가자고.
* * *
같은 시각.
강백현의 원 주인 브래드는 학교에 있었다.
브래드는 강백현을 잃은 후 매일같이 후회했다.
강백현을 펫으로 정식등록했으면 적어도 뺏기진 않았을 텐데.
자신의 안일함이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
지금 자신이 가진 임시 펫은 아빠한테 받았다.
하지만 보잘 것 없었다.
약하고 힘없는 곤충.
그걸 보며 비웃는 친구들.
어김없이 프란스가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우리 쫄보 브래드! 어디다 숨겼어? 그놈 어디다 숨겼어? 야! 붙자니까! 붙어! 붙어!』
황소개구리를 잃은 후 프란스는 매일같이 브래드에게 시비를 걸었다.
친구들의 압박에 대결을 피할 수 없었던 브래드.
그래서 싸웠다.
강백현을 잃은 후 그가 얻은 새로운 펫은 방아깨비였다.
높은 도약력, 종이도 씹을 수 있는 강한 턱힘.
그러나 그게 다인 곤충.
반면, 황소개구리를 잃었던 프란스의 현재 펫은 흑쥐.
방아깨비와 흑쥐의 싸움은 당연히 흑쥐의 승리였다.
흑쥐가 방아깨비를 뜯어먹자 프란스가 브래드를 밀치며 말했다.
『다음부터 개기지 마라. X밥이 어디서 덤벼? 쫄보 새끼!』
브래드가 넘어지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브래드 짝궁 조안나가 소리쳤다.
『브래드한테 왜 그래? 그만해! 이제 그만하라고! 벌써 한 달 내내 괴롭히잖아.』
브래드는 조안나의 부축을 받고 일어났다.
그러자 프란스가 조안나의 심기를 건드리기 시작했다.
『얼레리꼴레리! 조안나는 브래드를 좋아한대요! 좋아한대요! 좋아한대요!』
『좋아하면 어때서! 좋아하는데 네가 보태준 거 있어?』
조안나는 자신의 할 말을 다 내뱉었다.
그러자 프란스와 그의 친구들이 한참을 비웃었다.
『그럼 네가 좋아하는 브래드 대신 나랑 싸우든가? 왜? 그건 싫어? 싫지?』
조안나는 자신의 펫을 감싸며 말했다.
『안 돼. 싫어. 그만해!』
『왜? 왜 싫어? 좋아한다며! 좋아한다며!』
프란스가 자신의 펫을 꺼냈다.
그리고 브래드를 보며 명령했다.
『가랏!』
흑쥐가 찍찍 거리더니 브래드의 신발을 통해 다리, 허리까지 올라간다.
그러자 놀란 브래드가 뒷걸음치다 다시 넘어졌다.
프란스와 친구들은 겁먹은 브래드를 보며 비웃음을 지었다.
그러자 조안나가 화가 난 듯 말했다.
『싸워. 붙어! 붙어!』
조안나의 말에 반장이 유리사육장을 가져온다.
유리사육장.
유리사육장은 둘 중 하나가 죽을 때까지 싸움이 끝나지 않는 데스매치를 뜻한다.
브래드가 울먹이며 말렸다.
『나 때문에 싸우지 마. 너 그거 아꼈잖아. 싸우지 않기로 했잖아.』
『친구를 괴롭히는 건 용서 못해. 싸울 거야. 말리지 마.』
결국은 싸우게 된 조안나.
브래드는 이런 상황이 자신 때문이란 것을 알고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응원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조안나의 펫이 프란스의 흑쥐를 이겨줬으면 했다.
조안나의 펫은 햄스터.
귀여운 골든 햄스터다.
흑쥐와 골든햄스터가 유리사육장에 들어갔다.
반장은 프란스의 흑쥐 위에다가 꿀을 발랐다.
조안나의 골든 햄스터에도 꿀을 발랐다.
서로를 유혹하고 공격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골든 햄스터와 흑쥐가 충돌했다.
손과 날카로운 앞니로 서로를 노리는 동작들.
몸싸움이 치열한 가운데 서로 부딪히고 뒤집어지고 또 뒤집히는 골든 햄스터와 흑쥐.
그런데 골든 햄스터가 뒤집어진 채 다시 바로 서질 못한다.
4개의 발을 허둥대며 흑쥐가 공격하지 못하게 발버둥칠 뿐이었다.
흑쥐는 강했다.
야생에서 길러진 흑쥐는 골든햄스터와 달리 노련했다.
흑쥐가 골든 햄스터의 목덜미를 물더니 고개를 왔다갔다하며 녀석의 몸을 흔들었다.
움직이지 않는 골든 햄스터.
꿀 바른 골든 햄스터의 목덜미를 갉아먹기 시작하는 흑쥐.
승리자는 흑쥐.
조안나는 골든 햄스터가 죽자 펑펑 울며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고, 브래드는 친구들에게 자신의 여자도 지키지 못한다며 조롱 섞인 야유를 들었다.
* * *
택시를 탄 조세핀이 집에 도착했다.
집에서는 브래드 오빠가 기다리고 있었다.
『야! 어디 갔다 왔어? 계속 찾았잖아.』
『오빠가 알 거 없잖아.』
냉랭한 분위기.
조세핀은 브래드와 사이가 안 좋았다.
그건 브래드가 강백현을 뺏겨버렸기 때문에.
그런데 브래드가 오늘은 심상치가 않다.
『그 암컷 어딨어?』
『오빠가 그걸 왜 찾아?』
『내 놔. 조안나 줘야 해. 조안나한테 줄 거야.』
브래드가 조세핀의 주머니를 뒤졌다.
주머니 안.
유리병 안에 강미나가 있다.
잠들어 있다.
강미나를 발견한 브래드가 유리병을 빼앗았다.
하지만 그냥 뺏길 조세핀이 아니었다.
오빠와 힘싸움을 하는 조세핀.
하지만 오빠의 힘이 더 강했다.
유리병을 힘으로 빼앗은 브래드가 조세핀에게 말했다.
『이거 나 가진다. 어?』
그런데 조세핀은 고개를 저으며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 허락 없이 안 돼. 이미 등록했어.』
『뭐?』
『내 펫으로 정식 등록했다고.』
조세핀의 말에 브래드가 짜증을 부렸다.
『빨리 해제해! 해제해!』
『싫어. 싫어!』
『해제하라니까!』
오빠와 동생 사이.
심한 언성이 오가고.
유리병은 바닥에 떨어져 깨졌다.
미나는 당황했다.
깨진 유리병 사이로 몸에 상처가 생겼다.
미나가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브래드가 미나를 향해 달린다.
직접 잡기 위해서였다.
조세핀은 필사적이었다.
미나를 지키기 위해 오빠의 다리를 붙잡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신체의 차이.
성장격차.
브래드가 조세핀을 밀어내고 미나를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미나가 소리쳤다.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그러나 브래드는 오히려 미나의 발악에 웃음을 짓는다.
『‘우리말을 할 줄 아는 걸 안다면 조안나도 좋아해줄 거야. 날 용서해줄 거라고.’』
자신을 다른 거인에게 넘기려는 것을 알게 된 미나가 분노했다.
생각해보니 백현 오빠를 위험에 빠트린 것도 저 브래드란 거인이었다.
그런데 지금도 자신을 위험에 빠트리려 하고 있다.
조세핀도 같은 마음이었나 보다.
『기억 지워! 지워 버려!』
하지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미나는 브래드의 머리를 향해 자신의 능력을 사용했다.
역시나 멀쩡하다.
그런데 조세핀이 이상한 이야기를 했다.
『우리들의 뇌는 머리가 아닌 가슴에 있어! 가슴에 대고 사용해!』
그래서 능력을 사용했다.
현재 마인드 리딩 Lv4. (Max)
조세핀의 포인트로 올린 레벨.
그러자 거인의 마음을 읽는 것은 되었지만 조작은 할 수 없었던 능력이 처음으로 통했다.
브래드의 기억이 보이기 시작했다.
Lv2와 달리 Lv4가 되자 거인의 기억도 통제가 가능해진 것이다.
미나가 브래드의 기억을 동결시켰다.
그러자 브래드가 갑자기 동작을 멈추더니 초점을 잃는다.
미나는 그런 브래드의 손에서 빠져나와 브래드의 옷을 잡고 주르륵 바닥으로 내려왔다.
그러자 조세핀이 물었다.
『미나야. 우리 오빠 어떻게 된 거야?』
『기억을 동결시켰어.』
『뭐?』
『나에 대한 것도, 우리 오빠에 대한 것도 기억하지 못할 거야. 나머진 괜찮을 거야. 일상생활하는 데 문제는 없을 거야.』
잠시 후, 눈에 초점이 돌아온 브래드가 동생 조세핀에게 물었다.
『어? 내가 여기 왜 있지?』
조세핀은 금세 상황을 파악했다.
『오빠, 조안나 언니한테 펫 사줘야 한다고 말했었어.』
『어? 그랬어?』
『응. 그것 때문에 나한테 물어보려고 온 거야.』
『아…….』
『나한테 묻지 말고 빨리 조안나 언니한테 전화해서 물어봐. 그게 제일 빨라.』
『응.』
브래드가 조세핀의 방에서 나갔다.
그리고 조세핀이 미나에게 말했다.
『많이 놀랐지?』
『괜찮아.』
『다쳤잖아. 잠깐만!』
조세핀이 컴퓨터를 사용해 검은 구체를 불렀다.
정식으로 등록된 펫.
1,000포인트짜리 엘릭서를 구입한 후 미나를 향해 뿌려준다.
미나의 상처가 낫기 시작했다.
조세핀은 미나가 회복되는 것을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런데 아빠가 집에 왔다.
『조세핀! 조세핀! 페트라 가문에는 도대체 왜 간 거니? 응? 칼스 본부장님 집에는 왜 간 거야?』
아빠 거인의 등장.
조세핀은 그런 아빠의 핀잔에 미나를 보며 생각했다.
『‘미나야. 아빠 기억을 지워줘.’』
『뭐?』
『‘내 마음 읽을 수 있으니까 무슨 뜻인지 알잖아. 아빠한테 혼나지 않게 오늘 있었던 일을 아빠 기억에서 지워줘.’』
미나가 조세핀의 말에 아빠 거인의 기억을 동결시켰다.
그리고 잠시 후 도착한 엄마 거인.
조세핀은 미나한테 돌이킬 수 없는 명령을 내렸다.
『엄마 기억에서 네 존재를 지워줘. 아니, 우리 가족들이 네가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 모르게 기억을 조작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