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흑막
김아람과 김만철의 대회 출전이 확정되었다.
수많은 신청자들. 그러나 이들 외에도 신청자는 많았다. 참여는 자유롭게 가능했고, 참가비는 단돈 5,000제니 뿐이니까.
버키와 바키는 이번 행사를 위해 두 사람의 거금을 투자했다.
한편, 강미나와 조세핀은 검은 구체를 통해 강백현의 주인이 에반 슈트리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르케 5-6 지역이면 어디야?』
『부촌일 거야.』
『부촌?』
『응. 우리 지역에서 가장 잘 사는 사람들은 우리처럼 도시 중심가에 살거나, 자연환경이 빼어난 외곽 지역에 살아. 그중 5로 시작하는 구역은 스포츠 선수들이나 방송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으로 알고 있어.』
『그래? 그럼 우리 오빠의 주인은 굉장히 부자라는 거네?』
『그럴지도 모르겠어. 너희 오빠 일은 미안해. 브래드 오빠한테 맡기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되진 않았을 텐데……』
『괜찮아. 살아있으면 됐어. 이제 다시 만날 거잖아?』
『응. 만나면 내가 협상해볼게. 아직 주인으로 등록한 지도 얼마 안 됐으니까, 잘 말하면 펫 해제하고 다시 돌려받을 수도 있을 거야. 여차하면 우리집도 부자니까 다시 사면 되고.』
『응. 고마워.』
미나와 조세핀이 서로 대화를 나누며 걸어갔다.
조세핀은 택시 정류장 앞에서 미나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말하면 안 돼. 엄마가 너 우리말 하는 거 들키면 안 된다고 했어.』
『응. 알았어. 조심할게.』
『응.』
택시 정류장 앞에 서 있는 수많은 택시들.
파란색, 노란색, 빨간색 등 형형색색의 유선형 디자인.
그런데 이 택시들의 색깔이 다른 데는 이유가 있다.
그건 등급 때문에.
노란색 택시.
비싼 요금, 그러나 가장 빠르고 안전한 이동수단.
조세핀이 모범택시라고 불리는 노란색 택시에 탑승했다.
택시 운전수는 꼬마 조세핀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꼬마 아가씨, 어디로 모실까요?』
『아르케 5-6 지역으로 가주세요.』
『어? 거기는 출입허가가 있어야 하는데요. 혹시 신분이 어떻게 되시나요?』
『아빠가 연구소에 다녀요. 합성종연구소요.』
조세핀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는 택시 운전수.
최상위. 가장 높은 신분의 자제.
그렇다면 이견은 없다.
『아! 그러셨구나. 그럼 가능하죠. 출발하겠습니다. 안전벨트 꼭 매주세요.』
『네.』
택시 기사가 안전벨트를 매달라고 했다.
교통사고 때문에 그런 게 아니었다.
중력의 힘 때문에 매달라고 한 것이었다.
모범택시!
모범택시는 도로를 통해 이동하지 않는다.
5m 상공으로 부양하는 택시.
공중에서 목적지까지 직선방향으로 바로 이동한다.
이게 첨단 도시 아르케의 걸작.
모범택시의 수준.
차량이 출발하자, 조세핀이 스마트폰을 꺼냈다.
스마트폰 화면.
거기에는 목적지까지 가는 지도가 펼쳐져 있었다.
조세핀은 미나를 위해 머릿속으로 중얼거렸다.
『‘15분이면 도착할 것 같아.’』
미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제 조세핀과 미나는 서로 한마음이었다.
조세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미나.
그렇기에 조세핀이 생각만 해도 미나는 알아들을 수 있다.
계약을 통해.
펫 정보를 통해 그 사실을 알게 된 조세핀이 방긋 웃었다.
사실 꺼림칙한 능력.
하지만 주인이 된 조세핀은 아무 리스크가 없다.
원할 때 그 기능을 해제시키면 되니까.
물론, 검은 구체가 옆에 있을 경우에 한해서지만.
택시 운전수가 1지역과 5지역의 경계 앞에서 차량을 하강시켰다.
날아다니는 자동차여도 지켜야 할 룰이 있다.
그건 지역과 지역을 넘나들 때 검문소를 지나가야 한다는 점.
천민들이 허락 없이 이동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자 만든 것이다.
택시 운전수가 조세핀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런 구시대적인 법은 하루빨리 없어져야 하는데, 천민들 때문에 괜히 시간만 잡아먹네요.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아, 바로 수속 끝내겠습니다.』
『네.』
검문소에서 검은 구체가 앞을 막았다.
스캔. 그리고 홀로그램 메시지.
《정상 처리되었습니다.》
택시 운전수가 통과하고, 조세핀도 무사히 통과한다.
《정상 처리되었습니다.》
택시 운전수가 방긋 웃으며 조세핀에게 말했다.
『10분 안에 도착합니다.』
『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아이 보호 시스템.
10살이 넘지 않은 아이가 지역을 넘으면 자동으로 부모한테 연락이 가는 자동보호체계.
『‘어떻게 해? 아빠가 알아차렸어.’』
아빠에게 전화가 와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조세핀.
미나가 양손으로 X자 표시를 하며 받지 말라고 전했다.
스마트폰을 꺼놓은 조세핀이 입을 다물었다.
『‘다 아빠가 잘못한 거야. 미나 오빠는 내가 찾아줄 거야. 내가 찾을 거야.’』
10분 뒤. 택시 운전수가 방긋 웃으며 조세핀에게 말했다.
『꼬마아가씨?』
『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홍채를 스캔해주시겠어요?』
택시 정면에 달린 소형 구체에 조세핀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소형 구체에 조세핀의 얼굴이 나타났고, 두 개의 원이 보였다.
조세핀은 익숙한 듯 자신의 두 눈을 원에 맞췄다.
그러자 반짝 하는 섬광과 함께 소형 구체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2,700제니가 결제되었습니다.》
조금은 비싼 금액.
하지만 조세핀에게는 전혀 부담스러운 금액이 아니었다.
부자였으니까.
엄마, 아빠가 잘사니까.
택시가 떠나고.
조세핀은 에반 슈트리거가 살고 있다는 집 문을 두드렸다.
그런데 인기척이 없었다.
조세핀이 잠시 고민하다가 미나한테 물었다.
『안쪽에 아무도 없어? 생각하는 거 안 들려?』
『응. 없는 것 같아.』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문이 조금 열려 있었다.
『들어가 보자.』
『응.』
에반의 집.
허름한 원룸이나 다름없었다.
조그마한 집 안에 침대랑 책상. 옷장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책상 위에 액자가 보였다.
『잠깐만! 저거 미나 네 오빠 아니야?』
조세핀이 먼저 발견하고 컴퓨터 책상 위에서 액자를 들어올렸다.
미나가 그 사진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오빠 맞아. 우리 오빠 맞아. 맞아!』
못 본지 무려 한 달이 넘었다.
미나는 오빠가 살아있음을 직감하고 눈물을 흘렸다.
조세핀은 주변을 살펴보았다.
노동자 옷이 보인다.
저 옷이 무슨 의미인지는 알고 있었다.
애완동물 관리사.
그리고 그 명찰에 소속까지 적혀있었다.
『이 사람 페트라 가문에서 일해.』
『뭐?』
『페트라 가문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천민 같아.』
조세핀의 말에 미나가 억장이 무너졌다.
도심지역에서는 공간이 협소하여 애완동물의 수에 제한을 둔다.
하지만 외곽지역은 남아도는 게 땅이었다.
값싼 노동자들을 고용하여 애완동물을 관리하는 사람들.
걸어서 30분 거리.
택시를 부를까 했지만, 미나는 거부했다.
조세핀과 걸으면서 대화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곳은 부촌이야. 부자들이 살지만, 부자들이 고용한 노동자들도 많이 살아. 어떻게 보면 다행일 수도 있어.』
『다행이라니?』
『부자들은 예비 펫을 많이 길러. 투자도 많이 하지만, 약해지고 쓸모가 없어지면 쉽게 버려지지. 아마 페트라 가문도 마찬가지일 거야.』
『마찬가지라니? 뭐라도 알고 있는 거야?』
『응. 페트라 가문은 많은 애완동물을 수집하는 걸로 유명해. 다양한 종을 키우기 위해서 1지역에서 5지역으로 이사 간 케이스거든. 1지역에서는 50마리 이상 키울 수 없게 제한을 두고 있으니까. 페트라 가문의 칼스 씨는 아빠하고 같은 연구소에 다니는 직장 상사야. 그래서 잘 알아.』
『칼스?』
『응. 칼스 본부장님이라고 있어.』
미나는 오빠의 행방을 몰라 마음이 아팠다.
‘오빠는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오빠처럼 미니맵 능력을 가졌다면 이렇게 고생하지도 않았을 텐데…….
하지만 곧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다.
그렇게 해야 마음이 안 아프니까.
페트라 가문 주택 입구에 선 조세핀이 초인종을 눌렀다.
그러자 노동자 한 명이 앞으로 나왔다.
『어? 무슨 일로 오셨나요?』
『칼스 아저씨 찾아왔는데요. 칼스 페트라 아저씨요.』
『어? 주인님을 어떻게 아세요?』
『아빠랑 아시는 분이라서요. 수집한 애완동물 저번에 구경시켜 주신다고 하셨거든요.』
『아, 주인님 지금 출근하셨는데…….』
조세핀이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노동자가 꼬마 조세핀을 향해 말했다.
『애완동물은 제가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나중에 칼스 님한테 꼭 말해주세요. 제가 아가씨한테 애완동물 자세히 소개해드렸다고. 해주실 수 있죠?』
『네!』
노동자는 조세핀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정확히는 페트라 가문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호의를 베풀었다.
넓은 정원.
그리고 수많은 사육장.
미나는 그것을 보며 경악했다.
‘동물원이나 다름없잖아.’
미나를 본 노동자가 씩 웃었다.
『어? 꼬마 아가씨도 휴먼 종을 가지고 계시네요?』
『네?』
『저희도 이거 많이 키우거든요. 지금 30마리 정도 키우고 있어요.』
노동자의 말에 조세핀의 얼굴이 환해졌다.
『거기부터 볼 수 있을까요?』
『네!』
노동자는 조세핀을 데리고 인간을 키우는 방으로 이동했다.
도베르만이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컹컹!
위협적인 울음소리.
그러나 노동자는 씩 웃으며 고기 한 점을 던져주었다.
도베르만이 기분 좋은 듯 고기를 물어뜯으며 울음을 멈췄다.
방문이 열리자, 원룸 같은 작은 방에 수많은 인형의 집이 보였다.
미나는 경악했다.
‘오빠……. 설마 여기 있진 않겠지?’
이상했다.
동물이라도 미나한테는 마음의 소리가 들려야 했다.
그런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왜? 인형의 집에 들어가 있는 거 아니야?
다들 자고 있는 건가?
그런데 다른 거인이 말을 걸었다.
『어? 신입! 여긴 왜 들어왔어?』
『아~ 파브 선배님, 칼스 님 아시는 분이 여기 구경하고 싶다고 하셔서요.』
선배님이라고 불린 노동자.
그는 조세핀을 향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애완동물 총 관리자를 맡고 있는 파브입니다. 어떤 게 궁금하신가요?』
조세핀은 파브의 웃는 얼굴에 대답했다.
『사실 에반이란 분을 만나고 싶었거든요.』
『네? 에반이요? 그 친구 도망쳤어요.』
『도망이요?』
『네. 지금 지명수배자 명단에 올라가있죠.』
충격과 공포.
미나는 당황했다.
그런데 파브가 미나를 발견하고 미소를 지었다.
『어? 휴먼 종을 키우시네요?』
『네.』
『아~ 그러시구나. 저희 페트라 님께서 이번에 조사받으면서 불법으로 들여온 애완동물 다 처분하라고 하셨거든요. 정식으로 구입한 거 말고는 싹 치우라고……. 그래서 치우고 있었는데, 아쉽네요. 조금만 더 일찍 오셨으면 저희가 보유한 다양한 컬렉션들을 보여드릴 수 있었을 텐데……』
『네?』
『시체라도 보실래요? 안 그래도 오늘 다 안락사시켰거든요.』
파브가 상자 하나를 보여주었다.
그 안에 널브러져 있는 다양한 인종들.
흑인, 백인, 황인, 아이, 어른, 노인 할 것 없이 모두 웃는 표정으로 움직이질 않는다.
미나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그리고 곧이어 비명을 질렀다.
미나의 비명을 듣고 어이없는 표정으로 웃는 파브.
그가 조세핀에게 말했다.
『많이 겁먹었나 봅니다. 죄송하네요. 저는 그만 일하러 가보겠습니다. 신입! 이왕 여기까지 오셨는데 다른 데도 보여드려.』
『네.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