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지상낙원
백현의 어디예요? 라는 질문에 장복남이 말했다.
“낙원. 지상낙원.”
“네?”
“일단 밥이나 챙겨. 여기 그릇 가져왔다.”
“아…… 네. 아…… 정신이 몽롱하네요.”
“그래. 금방 괜찮아질 거야.”
수면가스를 들이마신 탓인가 정신이 온전치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맑아지는 정신.
그리고……
떠오르는 동료들의 생사.
미니맵을 켰다.
그런데 보이지가 않는다.
범위가 한정적이다.
이곳 밖에.
이 방 밖에 서치가 되지 않는다.
“아…….”
“왜? 미니맵이 안 보여서?”
“네. 어떻게 아셨어요?”
“오늘 저녁때까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뭐든지 다 알아. 한 번씩 겪었으니까. 아마 벽 안은 텅스텐으로 마감이 되어 있을 거야. 문도 마찬가지고.”
“아…….”
난감한 상황.
“괜찮아. 다들 살아있을 거야. 죽어도 할 수 없지. 지들 운명이라고 생각해야지. 일단 먹고, 배 좀 불려. 말랐다. 너무 말랐어.”
“네. 알겠습니다.”
손으로 버튼을 누르자, 정수된 물이 쪼르르 흘러나왔다.
그걸 입으로 받아먹는 백현.
그러자 인형용 장난감 그릇을 가져온 장복남이 그 위에 시리얼 2조각을 챙겼다.
“이거 가지고 우리 집으로 가자. 들어가서 알려줄게.”
“네.”
도배된 바닥을 지나 인형의 집으로 걸어가는 두 사람.
그리고 그걸 집 안에서 창문 너머로 신기하게 바라보는 사람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말도 안 통하니까.
쟤네들은 한국어를 못하는 녀석들이니까.
* * *
인형의 집 안.
장복남이 의자를 가리키며 백현에게 말했다.
“불편해도 일단 앉아.”
“네.”
수평, 균형이 잘 맞지 않는 의자가 앉을 때마다 삐걱삐걱 거린다.
그래서 백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의자에 앉았다.
그러나 마찬가지.
“균형 맞는 건 없어. 애초에 장식용이었지, 실제로 사용하라고 만든 건 아니니까.”
“네. 디테일이 많이 부족하네요.”
“그래도 여기 침대는 꽤 괜찮아. 딱딱하긴 해도, 이불용으로 만든 천조각이 꽤 따뜻하지.”
강백현은 사실 장복남이 마음에 들진 않았다.
그래서일까?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날 원망해?”
“……아니요.”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
장복남은 알고 있었다.
강백현이 자신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는 것을.
하지만 티를 잘 내지 않는 것을 보면 나름 어른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때, 녀석이 물었다.
“아저씨, 하나만 물을게요. 아저씨가 본 미래는 뭐였어요? 만약 저희가 탈출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강백현의 진지한 얼굴에 장복남 또한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 그대로를 말했다.
“페이즈 4. 수중감옥.”
“네?”
“생존자 모두가 어항에 빠진다. 거기에서 24시간 동안 살아남아야 하지. 거기서 네 동생이 죽어. 아, 물론 나도 죽지. 대부분이 죽어.”
장복남의 말에 강백현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생존자는 5% 미만으로 예상한다. 페이즈 4에서 내가 살아남는 미래는 없었어. 네가 죽는 걸 본 것도 5번은 넘을 거야. 넌 동생을 구하기 위해 필사적이더라. 왜? 왜 그렇지?”
“미래를 봤다면 아시지 않나요?”
“아니, 네 동생에 관한 이야기는 넌 뻥긋도 안 했어. 동생과의 무슨 비밀이 있는 거겠지.”
강백현이 그의 추리력에 감탄했다.
하지만 표정으로 드러내진 않았다.
밝히고 싶지 않으니까.
동생 때문에 이 사태가 벌어졌다고 오해를 살 수도 있었으니까.
“그럼 페이즈 5로 가보신 적은 없는 거네요?”
“그래. 가 본 적은 없지. 아마 너도 못 갔을 거야. 간다해도 의미가 없고.”
“그럴까요? 저 키메라라는 것을 만났어요. 사람과 동물이 합쳐진 종이었어요. 인간의 말을 할 줄 알고요.”
“그래. 거인들이 데리고 다니는 애완동물 말하는 거지?”
“알고 계셨네요?”
“그래. 알아.”
“그 키메라를 만나니까 메인 페이즈라는 홀로그램이 생겼어요. 키메라를 죽이고 강해지래요. 아저씨도 떴어요?”
강백현의 이어지는 질문에 장복남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는 그런 거 뜬 적 없어. 뜰 일도 없을 거고. 없어야겠지.”
“네?”
“아니야. 혼잣말이야. 다른 거 궁금한 건 없어?”
“동생의 생사가 궁금해요. 지금쯤 어떻게 하고 있을까요?”
“그거야 나도 모르지.”
“미래를 봤다면서요.”
“그래. 하지만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미래에서 네 동생을 만난 일은 없었어. 미래 예지는 10일까지만 유효했으니까. 그리고 그 10일째가 오늘이고.”
“네?! 오늘이 10일째라니요? 겨우 이틀 지났어요. 동생하고 헤어진 지 겨우 한 시간도 안 된 것 같은데요?”
“시간 보고 올래? 벽 위에 시계 달려 있으니까.”
장복남이 창문 바깥을 가리키며 말했다.
방 안에는 시계가 걸려 있었다.
오후 12시 55분.
“…….”
학교 끝난 시간이 오후 2시였다. 그리고 집에 와서 씻다가 거인에게 잡혀서 실험실로 갔고, 실험실에서 키메라를 만나 싸웠다.
키메라가 죽고 난 뒤 수면가스에 노출되어 쓰러졌고, 여기서 다시 정신을 되찾았다.
하루가 지났다?
아니다. 하루만 지난 게 아니었다.
“아저씨! 진짜 열흘이 지난 거예요?”
“그래. 내가 뭐하러 거짓말을 하겠어?”
그러고보니 자신이 삐쩍 말라있었다. 얼마나 자고 있었던 걸까?
그때, 누군가가 인형의 집을 두드렸다.
그러자 장복남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문을 열어주었다.
“하이! 하이! 도죠!”
문 밖에 있는 사람은 동양인.
이목구비를 보니 40대 일본인 여성이다.
그녀가 밝은 웃음을 지으며 장복남에게 인사를 건넸고, 장복남은 그녀의 손을 잡더니, 강백현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에리카랑 같이 밥 먹으러 가자. 식사 시간 다 됐네.”
“네?”
“에리카! 백현! 강백현!”
“아? Musuko(아들)?”
“NoNo. 아는 동생!”
“Shitte iru otōto?”
“오케이오케이!”
거인이 들어와서 먹이를 쏟기 시작했다.
그런데 거인만 들어온 게 아니다.
붉은 구체가 같이 들어왔다.
검은 구체와 다른 점은 거인을 따라다닌다는 점.
그건 장복남으로부터 알 수 있었다.
“붉은 구체는 개인용이야. 검은 구체는 국가용이고.”
“아저씨, 제가 탈출 시도해서 성공한 적이 없었나요?”
“그래. 단 한 번도 없었어. 저 구체의 레이저 광선에 맞아 죽기도 했고, 거인한테 밟혀 죽기도 했지. 아~ 창문으로 올라갔다가 내려오질 못해 거인한테 걸려 잡아먹히는 것도 봤다. 그래서 내가 말했지? 넌 탈출에 성공한 적 없으니까 시도하지 말라고.”
오늘의 먹이는 마시멜로였다.
그러자 인형의 집에서 사람들이 하나 둘, 나와 중앙으로 모였다.
마시멜로를 들고 가기 위해서였다.
한 사람당 하나 또는 2개를 들고 갔다.
“2개 집어도 돼. 백현아. 얘네도 알바 하는 중이야.”
“네?”
“이 거인은 주인이 아니고. 하인이라고.”
“아…….”
그의 말에 왜 자신을 잡은 거인이 아닌 다른 거인이 등장했는지 이유를 알게 되었다.
오늘 먹이를 주러 온 거인은 사람들이 먹을 게 부족하면 더 나눠주었다.
사람 얼굴 크기만 한 마시멜로를 나눠주는 거인의 얼굴엔 행복감까지 느껴졌다.
아마도 이 일을 좋아하는 거인인 것 같았다.
그런데 사건이 발생했다.
인디언 복장을 한 남자가 거인이 열어둔 방문 방향으로 뛰었다.
엄청난 속도였다.
있는 힘껏 도망치기 위해 뛰고 또 뛰었다.
그러자 마시멜로를 주던 거인이 소리쳤다.
『안 돼! 가지마! 가지마!』
그러나 거인의 비명에도 인디언은 멈추지 않았다. 용맹하게 달리고 또 달려 문턱을 넘었다.
도망치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거대한 그림자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날카로운 이빨.
두껍고 어두운 피부에 짧은 털
무엇보다 익숙한 저음의 짖는 소리.
『컹! 컹! 컹! 컹!』
문 입구에는 집을 지키는 존재가 있었다.
사냥개로 유명한 도베르만이었다.
도베르만은 달려오는 인디언을 덥석 물더니 아작아작 씹어버렸다.
그걸 보며 거인이 비명을 내질렀다.
사체를 수습하는 거인.
남성형 거인이 인디언의 죽음에 울음을 터트렸다.
붉은 구체가 시신을 수습했다.
시체를 가루로 조각내고,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였다.
사람들은 놀라긴 했지만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는지, 큰 동요 없이 마시멜로를 들고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건 장복남도 마찬가지였다.
“먼저 집에 가 있어. 나는 에리카하고 잠깐 놀다 올게.”
“네? 뭐하고 노시는 데요?”
“그런 게 있어. 너무 알려고 하지 마.”
장복남이 에리카와 함께 블링블링한 분홍색 인형의 집으로 들어갔다.
백현은 미니맵을 확인했다.
인형의 집에 같이 들어간 두 사람이 붙어 있다.
붙어 있는 두 사람의 간격이 떨어질 줄을 모른다.
‘연인 사이였구나.’
강백현이 민망한 표정으로 미니맵의 방향을 돌렸다.
강백현의 머릿속에는 탈출 밖에 없었다.
도망치고자 하는 생각 밖에 없었다.
미니맵을 통해 여러 가지 탈출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 방은 CCTV가 천장에 달려 있었다.
붉은 적외선이 인간의 움직임을 추적한다.
눈과 CCTV가 마주쳤을 때 반짝이는 붉은 레이저가 그 사실을 증명해주었다.
그리고 입구에는 도베르만이 있다. 그 외 또 어떤 생명체가 인간의 목숨을 노리고 있을지 모른다.
거사를 치르고 온 장복남이 강백현에게 말했다.
“탈출할 생각일랑 하지 마. 네 목숨만 잃을 뿐이야. 미래를 본 나를 믿어.”
“그렇겠죠. 죽었겠죠. 아저씨가 정보를 안 주셨으니까. 도베르만이 지키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정보를 줬을 때도 넌 탈출하려다가 죽었어. 내가 말했잖아. 네가 탈출한 적은 없다고. 저 밖에는 우리 인간들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사나운 포식자들이 사육되고 있어. 도베르만? 한 마리가 아니야. 수십 마리가 있어. 그것 뿐만이 아니야. 구체는 어떻게 하게? 어떻게 도망치게?”
오후 7시. 거인의 등장. 저녁을 주기 위해서다.
방문 앞에는 여전히 도베르만이 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시골에서는 키우는 닭이 오소리나 족제비한테 잡아먹히지 않도록 닭장 앞에 개를 두고 키운다.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인간들을 혹시 모를 포식자들로부터 지키기 위해 집채만 한 개들을 방 앞에 놓아두었다.
닭이 개와 친하지 않듯, 사람들도 개와 친하지 않다.
그러므로 그의 말대로 나가자마자 저 개에게 물어뜯기는 상황이 나올 수도 있다.
“그 다음은 어떻게 죽어요?”
“글쎄? 내가 예지할 수 있는 건 오늘 밤 6시 50분까지였어. 그 이후야 나는 모르지. 이제 처음 겪는 거니까. 그러니까 이상한 생각 하지 마. 탈출할 생각도 말고, 그냥 현 상태 유지하면서 목숨이라도 보존해. 알았어? 네가 말이 통하니까 나도 조언하는 거야.”
“…….”
“그럼 됐고. 밥이나 받으러 가자.”
“아저씨, 전 탈출할 겁니다.”
“뭐?”
“반드시 죽으라는 법도 없잖아요. 6시 50분 이후에는 제가 살아서 이 방을 나갈 수도 있다는 말이잖아요. 안 그래요?”
“그냥 살아. 여기가 제일 안전해. 내가 겪어본 미래 중에 여기보다 안전한 미래는 없었어. 그러니까! 너도 여기서 살자고! 어? 넌 네 목숨이 아깝지도 않아?”
강백현은 그게 싫었다.
가능성을 믿어보고 싶었다.
자신에겐 능력이 있다.
스스로 지킬 힘도 있고, 지혜도 있다.
백현은 생각했다.
난 사람이라고.
똑똑하다고.
힘이 없었더라도 뛰어난 머리로 상황을 극복할 수 있었을 거라고.
강백현의 머릿속에 3가지 탈출 방법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가 그 방법 중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을 선택했다.
“전 거인과 같이 이곳을 빠져나가겠어요. 아저씨가 저랑 같이 가실지 말지는 스스로 판단하세요. 어떻게 하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