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3cm 헌터의 시작
강백현에겐 가족이 단 한 명밖에 없다.
여동생, 그녀의 이름? 강미나.
왜 둘만 남았냐고?
2년 전, 세 가족이 탄 승용차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불행히도 그 자리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여동생인 미나는 혼수상태에 빠져버렸다.
5개월 후.
부모님을 납골당에 모신 백현은 병원에서 퇴원한 동생과 단둘이 살기로 했다.
사고가 남긴 상처.
시간이 흘러 정상을 되찾아가는 몸과 달리, 치유되지 않는 마음의 병.
그것은 사고 후유증.
불쌍하고 가여운 미나.
그녀는 항상 환청이 들려온다고 했다.
오빠 앞에서는 지극히 정상이지만, 타인 앞에서는 대화 한마디조차 꺼낼 수 없는 외톨이.
백현은 동생의 증상 때문에 여러 병원을 다녔다.
전국 방방곡곡, 잘한다는 병원은 다녀봤는데, 뚜렷한 치료 방법은 찾지 못했다.
그렇다고 하나뿐인 여동생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킬 수는 없었던 오빠는 중대한 결심을 했다.
그녀의 곁에 평생 있어주겠다고.
그래서 다니던 고등학교도 포기하고, 검정고시로 대체했다.
다행히 여동생은 사람들과 멀리한 후 증상이 좋아졌다.
아직 사람들을 만나 대화할 정도는 아니지만, 인터넷 웹 활동도 하고, 영화도 보고, 공부에 대한 의지도 불태우며, 차근차근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미래가 썩 불안하진 않았다.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부모님이 남겨주신 재산도 있었고, 여동생 또한 자신의 직업을 정했기 때문이었다.
동생이 하고 싶은 직업은 바로 작가.
최근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제목은 평범했다.
『작은 세상의 공주님이 살아남는 방법』
하지만, 평범한 제목에 비해 소설 내용은 정말 특이했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설정과 잔인한 사건들로 빼곡하게 채워진 이야기.
백현은 여동생의 소설 도입부를 읽다가 궁금한 점을 물었다.
“소재는 정말 특이하네. 사람들이 다 개미만큼 작아져?”
“응. 그래서 사람들이 쥐한테 잡아먹히고, 거미한테도 잡아먹히고 그래.”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으으- 소름!”
“괜찮아. 인간들은 너무 많은 생명체를 죽였어. 같은 인간도 죽일 정도로 잔인한 종족이니까 죽어도 싸.”
“……미나야. 말이 너무 험하잖아.”
“소설이잖아. 내가 실제로 그런다는 것도 아니고…….”
백현은 동생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교통사고 이후 생긴 타인에 대한 혐오.
자신 앞에서는 한없이 착한 동생이지만, 소설에 반영되는 그녀의 생각과 가치관.
그녀의 심정을 간접적으로 알게 된 것도 그 때문.
자신 또한, 한때는 부모를 죽인 뺑소니범들을 원망했었기에.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동생과 나는 아직 젊고 남은 인생은 길어. 세상을 원망할 시간에 하루라도 더 열심히 살아야 해.’
미래지향적이고, 긍정적인 마인드. 그게 바로 백현의 장점이었다.
그는 소설을 살펴보며, 조금은 안심했다.
암울한 내용만 있던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미나야. 여기 묘사되어 있는 공주님이 너 맞지?”
“아니?”
“아무리 봐도 넌데?”
백현의 말에 표정을 감추던 동생 미나가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응. 킥킥, 맞아. 나야.”
“그런데 미나야. 한 가지 물어보자. 공주가 죽으면 세상 사람이 다 죽는 거야?”
“웅. 다 죽어. 공주가 죽으면 그들은 다 죽어.”
“미나야. 이러면 인기 없을 것 같은데? 바꾸는 게 좋지 않을까?”
“아니, 그게 룰인걸? 대신 공주한테는 자신을 지켜 줄 오빠가 있어. 그게 이 소설의 포인트야.”
“그래. 네가 생각한 게 있겠지.”
마음이 아파온다.
백현에게만 마음을 여는 동생의 생각이 이 소설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씁쓸하다.
* * *
한 달이 흘렀다.
여동생은 집에서 홀로 울고 있었다.
“미나야. 왜 울어?”
그녀가 우는 이유는 실패 때문이었다.
“투고 했는데 안 된대.”
“왜?”
“주인공이 여자라서 안 된대. 판타지는 주인공이 여자면 안 본대.”
독자들의 성향이 확고한 판타지 장르.
투고한 여동생의 소설이 반려되었나 보다.
“다른 작품 다시 써보자. 이제 오빠가 도와줄게.”
그러나 동생의 상처는 생각보다 큰 듯했다.
“이런 세상, 망해버렸으면 좋겠어. 사람들 다 소설 속 내용처럼 작아져서 거미한테 먹히고, 쥐한테 잡아먹혀서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미나야! 아무리 상실감이 커도 그런 말 하면 못써!”
“싫어! 오빠는 내 편이 되어줘야지! 왜? 오빠도 나 미워하는 거야?”
“그럴 리가 없잖아. 나한테 가족은 너밖에 없는걸……”
“으아앙! 으아아아아앙!”
* * *
자고 있는 동생을 뒤로 하고 백현이 밖으로 나왔다.
동생이 좋아하는 마약 떡볶이를 사기 위해서였다.
떡볶이집.
대형마트 2층 엘마트 방배점.
기다란 줄. 마침내 순서가 왔다.
“마약 떡볶이 얼마에요?”
“1인분에 3,000원!”
“6인분 포장해주세요.”
“6인분이나? 많은데 괜찮겠어?”
“괜찮아요. 여동생이 많이 좋아하거든요.”
백현의 얼굴엔 미소가 걸렸다.
생각보다 가격이 비쌌지만, 동생을 위한 거라 아깝지 않았다.
‘이거 먹고 기분이 좀 풀렸으면……. 출판사도 참! 계약 좀 해주지. 매정하게 거절을 하고 너무하다, 너무해.’
백현은 아주머니가 포장해주는 동안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
북적북적.
주말이라 그런지, 가족이랑 같이 온 등산복 입은 아저씨도 있었고, 혼자 장을 보러 온 아주머니, 애완견과 같이 방문한 가족쇼핑객도 있다.
그때였다.
스스슥-
거뭇한 무언가가 지나갔다.
백현은 그 형체를 보며 소스라치며 놀라 말했다.
“으악! 아줌마! 뒤에 쥐 아니에요?”
“쥐?!”
“네. 검은색 커다란 놈이었어요. 환풍구로 도망갔어요.”
“학생 미안. 며칠 전부터 나타나는 것 같아서 전문처리업체를 불렀는데, 잡지를 못하네.”
“……죄송한데, 떡볶이 취소할게요.”
위생에 문제가 있는 거 같아서 떡볶이를 구입할 수 없었다.
‘일부러 여기까지 왔는데……. 다른 곳을 가야 하나?’
백현은 고개를 저었다.
기과한 일은 그때 시작되었다.
“끼야아악!”
갑자기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백현은 또 쥐가 나타난 줄 알았다.
호기심에 주위를 돌아보던 그때.
『두근……두근…….』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두근! 두근! 두근!』
심장 박동소리가 점차 크게 들려오고.
『쿵, 쿵, 쿵!』
그 진동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스르르륵.
옷가지가 떨어지고.
바지가 벗겨지고.
팬티가 땅에 떨어진다.
그리고 어느새 백현의 몸은 허공에 떠있었다.
발에 아무것도 닿지 않는다는 걸 인지한 순간.
“으아아아아-!”
자신의 몸을 인정사정없이 바닥으로 끌어당기는 중력.
극한의 공포 속에서 백현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이 순간, 자신이 왜 갑자기 공중에 떠있게 된 건지 의문을 느낄 새도 없이.
그리고…….
터억-
떨어지던 백현은 부드러운 재질과 충돌한 채, 정신을 잃었다.
* * *
“으아아아아앙!”
“이게 어떻게 된…….”
“내 몸이…… 내 몸이…….”
“이건 꿈이야! 씨발 꿈이라고!”
백현이 정신을 차린 건 희미하게 메아리치는 사람들의 울부짖음 때문이었다.
“…… 으으…….”
그는 부스스 고개를 들며 주변을 바라보았다.
커다란 천이 자신의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천 조각의 무늬가 어쩐지 익숙하다.
‘내…… 팬티?’
그리고.
그의 눈앞에 미지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작은 세상에 입장하였습니다.]
“뭐?”
미지의 창들이 펼쳐지고.
벗겨진 알몸이 시야에 포착된다.
‘잠깐! 잠깐!’
그러고 보니 주위 풍경이 너무나 광활하다.
반경 수 킬로미터는 되어 보이는 대리석으로 된 광장.
수백 미터는 되어 보이는 높은 천장.
‘설마…… 아니야!’
저 멀리 듬성듬성 보이는 커다란 천 조각과 그 사이에서 빠져나오는 사람들.
『반짝!』
섬광과 함께 자신의 몸에 입혀진 천 옷과 바지, 운동화.
그와 동시에 떠오르는 메시지창.
[초보자용 장구류가 지급되었습니다.]
[사용자 정보가 잠금 해제되었습니다.]
[사용자 정보를 열람합니다.]
《사용자 정보》
○ 직업 : 왕자 (Prince)
○ 나이 : 19세
○ 키 : 3.44cm
○ 몸무게 : 35g
○ 고유스킬 : 보호막 Lv 1.
[새로운 메인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메인 퀘스트 : 공주님을 찾으세요.]
백현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실려 있었다.
미지의 창.
자신에게는 일어날 수 없는 일.
아니,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
동생이 말한 왕자.
그리고 자신의 직업 또한 왕자.
‘설마 아닐 거야. 아니겠지? 미나야, 미나야!’
그때 다시 한 번, 떠오르는 상태창.
[미니맵 기능이 활성화 되었습니다.]
[직업 : 왕자는 공주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습니다.]
커다란 지도.
대형마트를 표시하는 모습.
그리고 공주의 위치는?
손을 휘저을 때마다 백현의 앞에 있는 지도가 옆으로 이동한다.
그는 혹시 몰라 자신의 손을 미니맵 방향으로 가리키며, 양 손을 안쪽으로 모았다.
그러자 미니맵이 확대된다.
‘잠깐만……. 이거 현실이야?’
믿을 수 없는 현재의 상태.
뺨을 꼬집어봐도, 허벅지를 꼬집어봐도 정확히 느껴지는 통증.
이건 곧 현실.
‘젠장!’
백현은 미니맵을 향한 양손을 바깥으로 벌렸다.
그러자 지도가 축소되며, 보다 넓은 지역을 가르쳐준다.
그제야 보이는 미니맵상 공주의 위치는 바로 자신의 집.
‘미나가 저기 있어? 공주가 미나 맞지?’
백현은 휴대폰을 찾았다.
강제로 벗겨진 바지.
그 안에 든 스마트폰.
그것을 있는 힘껏 당겨보는 백현.
그러나 스마트폰이 꺼내지질 않는다.
젠장…… 젠장.
그때, 주변에서 너무나 큰 굉음이 들려왔다.
《끼야아아아아아아》
높은 고음.
공간 전체를 울리는 무시무시한 방송 스피커와 같은 울림.
백현의 시선이 그쪽을 향했다.
아득하게 높은 곳.
빌딩 25층짜리 높이.
너무나 높아서 머리를 끝까지 올려야만 확인할 수 있는 높이.
거기에는 한 여자 거인이 위치하고 있었다.
백현은 그 거인이 누군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마약 떡볶이 아줌마…… 분식집 아줌마잖아.’
그런데 그녀 또한 자신과 같은 증상이 온 것 같았다.
심장이 벌렁벌렁.
쿵쾅쿵쾅 미친 듯이 뛸 때 느낀 소름 끼치는 기분.
그래서 소리를 지른 것.
백현의 예상이 들어맞았다.
아줌마의 옷이 훌렁 벗겨지고.
그녀가 들고 있던 냄비 또한 땅으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작아지기 시작한 것.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분식집 아줌마가 거인에서 자신들과 같은 크기로 작아지는 모습을 신기한 듯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런데……
깡!
냄비가 바닥에 떨어지자, 들려오는 엄청난 소음.
그리고 이어지는 진동.
『지-이--이이이이이잉』
그에 따른 고통.
사람들은 소음 때문에 생긴 엄청난 통증에 귀를 막았다.
“으아아악! 으으으으으!”
설상가상.
냄비에 담겼던 무언가가 바닥에 퍼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붉고 뜨거운 마그마였다.
아니…….
마약 떡볶이의 뜨거운 국물.
거기에 사람들이 무차별적으로 노출되기 시작하고, 비명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기 시작한다.
“끼야아아악!”
“아아아악!”
사람들이 백현이 있는 방향을 보며 살려달라며 울부짖었다.
“살려…… 살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