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401화 (401/425)
  • 만화왕 (6)

    지로의 말에 놀라 다시 물었다.

    “증쇄요?”

    내 말에 작업 중이던 어시들이 놀란 얼굴로 날 쳐다본다.

    그런 그들을 보면서 손을 휘적거렸다.

    그들이 기다리는 소식이 아니라는 뜻으로.

    전화기 너머에서 지로의 대답이 들렸다.

    -네.

    “좋은 소식이네요. 증쇄라니.”

    -그건 그렇습니다만.

    물론 머신건 잭이 아니라 소년 히어로 쪽이다.

    그게 아쉬운지 지로도 한숨을 푹 쉬었다.

    당연히 지로의 입장에서도 그쪽 직원인 이상 소년 히어로가 잘 팔리면 나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담당으로서의 아쉬움이 더 클 테니.

    당연히 내 입장에선 더 그렇다.

    그렇다고 대놓고 그렇게 얘기하긴 좀 그렇고.

    소파에 앉아있던 이대봉이 슬쩍 다가와서는 귀를 쫑긋 세우며 입모양만으로 물었다.

    ‘증쇄? 뭐를?’

    그 입모습을 보며 나도 입모양만으로 대답했다.

    ‘소년 히어로’

    ‘아.’

    그제야 이대봉도 쩝하며 입맛을 다시더니 머리를 끄덕이고는 물러선다.

    많이 아쉽다는 표정으로.

    그때 지로의 음성이 다시 들렸다.

    -잡지는 많이 팔려서 편집부의 분위기가 상당히 좋긴 합니다만. 그래도 좀 아쉽네요.

    “머신건 잭은 얼마나 팔렸는데요?”

    잠시 뜸을 들인 지로가 대답했다.

    -150만부는 넘겼다고 하더군요.

    기대이상이다. 저번보다 30만부 이상 더 팔렸으니.

    “150만부면······ 엄청 팔렸네요.”

    -그건 그렇습니다만.

    초판을 너무 무리하게 찍어낸 게 문제긴 하지만.

    그래도 이정도면 출판사 기록이고, 일본전체로 봐도 몇 없으니까.

    -출판부에서는 이것도 기적이라고 하더군요.

    “그야 그렇겠죠.”

    -그래도 처음부터 반대하던 입장이라, 그것 때문에 말들도 많은 것 같고요.

    아무래도 찍어낸 양이 많았던 만큼 팔리지 않으면 손해도 클 테니.

    그래도 뭐 사장이 까라면 까야했을 테고.

    이즈미도 욕을 좀 먹을 것 같은데.

    뭐 그 여자가 욕을 먹는 게 걱정되는 건 아니지만.

    지로가 담담한 음성으로 말했다.

    -아직 시간은 있으니, 조금 더 반응을 보겠습니다.

    초판이 나온 지 시간이 조금 흘렀다.

    덕분에 이젠 기대하기 어려운 분위기이긴 하다.

    그래도 담당으로서 포기하는 모습을 보여주긴 싫을 것이다.

    “네. 그렇게 하세요.”

    -그럼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수고하세요.”

    -네. 안녕히 계세요.

    전화를 끊고 나자 주변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150만부나 팔렸어?”

    요즘 거의 매일 찾아오는 이대봉이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어.”

    내 대답에 손뼉을 짝하고 치더니 머리를 감탄한 표정으로 말했다.

    “와, 엄청나다. 150만부면 올해 일본에서 팔린 만화책 중 10위안에 들어가지 않아?”

    “5위 안에 들어갈 거다.”

    실버의 대답에 깜짝 놀란 이대봉이 그쪽을 돌아봤다.

    “5위? 진짜?”

    이번엔 내가 입을 열었다.

    “정확하게는 2위야.”

    “2위?”

    “어. 올해.”

    머리를 끄덕였더니 이대봉이 입을 떡 벌린 채로 굳어버렸다.

    어시들도 꽤 놀란 표정이다.

    “점프에서도 드래곤볼 하나 밖에 없다던데, 제 말이 맞죠?”

    박소미의 말에 내가 머리를 끄덕였다.

    “네.”

    입을 아직 다물지 못한 이대봉이 그 모습으로 날 돌아봤다. 그리고는 자신의 턱을 손으로 밀어 올리는 시늉을 했다.

    마치 미국만화 속 캐릭터처럼.

    “와, 드래곤볼이랑 경쟁상대라니. 너무 부럽다. 얼마 전에 나온 우리 드래곤수프는 30만부였는데.”

    “그래도 30만부면 엄청나네.”

    “이름만 같은 드래곤이 들어가지 상대도 안 되는데.”

    이대봉의 말에 박소미가 펜을 다트 핀처럼 들고는 던질 것 같은 시늉을 했다.

    “엄살은 진짜. 그래도 돈은 엄청 벌었을 거 아니야.”

    슉 던지는 듯한 동작에 이대봉이 움찔하며 피하는 모습을 하며 대답했다.

    “그야 뭐······, 그렇긴 하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덕분에 우리 제임스 오빠, 더 한량이 되어가고 있고.”

    “뭐라는 거야! 나 지금 열심히 하고 있는데. 그리고 그만 좀 해. 무섭잖아.”

    “장난이잖아, 장난.”

    그렇게 말하며 펜을 거두자 그제야 이대봉이 안심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고.”

    “헛소리를 하는 개구리면 맞아도 할 말 없지.”

    “너는 왜 갈수록 실버를 닮아가는 거니?”

    “내가?”

    박소미가 그렇게 말하며 실버를 돌아봤다.

    실버는 그저 재밌다는 듯 두 사람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런 실버를 보던 박소미가 다시 이대봉을 돌아보며 말했다.

    “어쨌건 오빠는 하루 만에 일주일치 스토리 끝내고 나머지는 싸돌아다니잖아.”

    박소미의 말에 이대봉이 버럭 했다.

    “그건, 구상하는 거고! 영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니? 99퍼센트의 영감이 없으면 이야기가 만들어지지 않아.”

    “처음 듣는 말이네.”

    “너는 스토리를 쓰지 않으니까 그렇지.”

    그렇게 말한 이대봉이 이번엔 날 보며 말했다.

    “넌 이해하지? 내 말.”

    “모르겠는데.”

    “야.”

    솔직히 머릿속에서 완벽하게 떠올리고 스토리를 쓴다는 건 천재들이나 하는 방식이지.

    나 같은 사람은 계속 쓰면서 생각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 내 모습을 평소에 봐온 박소미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선생님을 보라고. 매일 구상하고, 쓰고, 수정하고. 얼마나 부지런하셔. 그렇게 하고나서 부러워하라고.”

    “작업 방식이 달라, 방식이.”

    “아, 그렇구나.”

    별로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하고 건성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대봉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너 지금 인정하는 얼굴이 아닌데. 내 말이 맞지?”

    “아닌데.”

    “아니긴.”

    이대봉이 투덜거렸다.

    사실 박소미의 말대로다.

    스토리도 대충 설정만 짠 채로 거의 라이브로 만들고 있으니.

    하지만 달리 말하면 그만큼 이대봉이 천재적이라는 뜻도 된다.

    그가 일본에서 활동하는 스토리작가였으면 더 큰 대작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날 만나지 않았다면 이대봉은 지금쯤 뭘 하고 있었을까?

    내 지식 속엔 이대봉이 존재하지 않았으니, 도중에 만화를 그만두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식당을 차렸거나, 요리전문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기분이 좀 묘하다.

    내가 이대봉의 인생에도 많이 개입했다는 생각에.

    그런 내 눈빛을 느낀 이대봉이 날 돌아봤다.

    “왜?”

    “아무것도 아니야.”

    내 대답에 이대봉이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

    “날 좋아하는 건 알겠는데, 그렇게 노골적인 눈빛을 보낼 필요는 없어.”

    그 말에 내가 피식 웃었다.

    “생각해보니까, 없었네.”

    “응? 뭐가?”

    “형이 나한테 맞은 적이.”

    이빨을 드러내며 살짝 웃었더니 이대봉이 움찔한다.

    실버가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이번 기회에 경험해보는 건 어때? 나도 궁금한데.”

    “경험하긴 뭘 경험해?”

    그렇게 말한 이대봉이 날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실버는 몰라도 넌 진짜 같은 기분이 드니까, 그런 농담은 하지 마.”

    “농담 아닌데.”

    “왜 그래 진짜. 무섭게. 농담 맞잖아. 그치?”

    “······.”

    내 눈치를 보던 이대봉이 헛기침을 하고는 곧 말을 돌렸다.

    “그나저나 좀 아쉽기는 하다. 230만부를 찍어냈는데, 이렇게 끝나서.”

    그 말에 이번엔 다시 실버가 입을 열었다.

    “끝나다니, 아직 팔리고 있는 중인데.”

    “눈에 띌 정도는 아니잖아.”

    “그래도 모르는 거지.”

    “뭐라는 거야. 남은 책이 80만부야 80만부. 어지간한 인기 작가들 초판으로도 못 팔정도의 분량이 아직 남았어.”

    “······.”

    이대봉의 말대로 지금 남은 양이 팔릴 거라고 생각하긴 힘들다.

    솔직히 앞으로 많아야 10만부 내외.

    현실적으로는 5만부도 어렵겠지만.

    “그래도 150만부를 넘겼다는 것만으로 축하할만한 일이잖아요.”

    “그렇기야 하지. 하지만, 그래도 기록을 세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맞아요.”

    어시들도 아쉽다는 표정들이다.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거죠?”

    차미정이 묻자 내 대신 이대봉이 입을 열었다.

    “갈리는 거지. 슥슥.”

    그렇게 말하며 손을 기괴한 방향으로 이리저리 돌렸다.

    “폐지가 엄청 나오겠다.”

    “엄청난 정도가 아니지. 아마 집채만 할걸?”

    “아휴, 정말 아깝다.”

    “그러게.”

    “그냥 놔두면 안 되나? 나중에라도 팔수 있을 텐데.”

    “보관창고비가 더 들어.”

    “아.”

    뭔가 분위기가 이상해서 내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기록을 세웠으니까, 오늘은 일찍 마치고 회식이나 합시다.”

    그 말에 침울했던 분위기가 대번에 밝아졌다.

    그때 머리를 번쩍 든 선희가 작게 말했다.

    “뭐 먹을 거야?”

    “피자.”

    그 말에 만족했는지 머리를 끄덕이고는 다시 숙인다.

    이번엔 경희가 부엌에서 밝은 표정으로 튀어나왔다.

    “피자? 이태원에 있는 피자핫?”

    “어.”

    “아싸싸!”

    그렇게 말하며 폴짝 뛰더니 다시 들어갔다.

    이대봉도 밝은 얼굴로 물었다.

    “보너스는?”

    “당연하지.”

    그 말에 어시들이 환호했다.

    이대봉도 덩달아 좋아한다.

    그러자 박소미가 그런 이대봉에게 말했다.

    “오빠는 아니잖아.”

    “아.”

    멈칫한 이대봉이 곧 시무룩해졌다.

    “돈도 많은 놈이 무슨······.”

    실버의 말에 이대봉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래도 기분이 그렇잖아, 기분이.”

    “미친놈.”

    * * *

    출판사 옥상의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겨있던 지로에게 미치코가 다가가 말했다.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그 150만부면 엄청난 기록이잖아요.”

    “실망하지 않았어. 그냥 좀 아쉬울 뿐이지.”

    “150만부 이상 팔린 작가의 담당이 그런 말을 하다니. 이상하잖아요.”

    “그런가?”

    “당연하죠.”

    지로가 옅은 웃음을 지었다.

    “생각해보니 그렇긴 하네.”

    “그렇다니까요. 지금 우리 출판사에서 가장 부러움을 받고 있는 분이 그런 말씀이라니. 누가 들으면 욕할걸요.”

    “하긴.”

    “처음 100만부 달성에, 이번엔 150만부까지. 보너스도 엄청나게 받을 거잖아요.”

    “돈은 뭐······, 그렇지.”

    그 모습을 보던 미치코가 갑자기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회사 내에선 선배가 다른 출판사로 스카우트가 될 거라느니, 따로 출판사를 차려 나갈 거라느니 말도 많고.”

    “그런 소문이 있어?”

    “네. 저도 좀 궁금하긴 하고요.”

    “그랬구나.”

    남 얘기를 들은 것 마냥 머리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며 미간을 찌푸린 미치코가 물었다.

    “어때요?”

    “뭐가?”

    “그 소문들요.”

    “그게 왜?”

    “그러니까······, 그 소문이 사실이 아니에요?”

    “관심 없어. 그냥 여기가 내 자리라고 생각하니까.”

    “아.”

    그제야 미치코가 조금은 안심한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한참동안 두 사람은 말없이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그때 소년 히어로의 편집부 직원 하나가 옥상으로 뛰어올라왔다.

    “팀장님!”

    그 말에 움찔한 미치코가 슬그머니 지로에게서 한발 물러섰다. 그리고는 직원을 보며 목 인사를 했다.

    그런 그녀를 슬쩍 힐끔거린 직원이 머리를 한번 숙이고는 곧장 지로에게 다가갔다.

    무심한 얼굴로 돌아본 지로가 직원에게 물었다.

    “왜?”

    “편집장님이 부르세요.”

    “편집장님이?”

    “네.”

    머리를 끄덕인 지로가 서둘러 내려갔다.

    *

    지로가 깜짝 놀랐다.

    “네? 특촬 공연요?”

    “그래, 머신건 잭을 특촬용 복장으로 만들어서 공연한다고 하던데, 몰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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