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352화 (352/425)

안나와 블랙 (1)

“안녕하십니까!”

나준호가 화실에 들어와서는 모두에게 큰소리로 인사했다.

그 때문에 대부분의 화실식구들이 반가워했다.

“준호네. 어서와.”

“조금 있으면 점심 먹을 거니까, 같이 먹어.”

부엌에서 나온 경희의 말에 나준호가 웃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에이, 동갑인데. 그냥 말 놔.”

“아, 그, 그럴까?”

“곤란 하무니다!

류타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하자, 경희와 나준호가 돌아봤다. 그리고 경희가 류타니를 보며 묘한 얼굴로 물었다.

“뭐가 곤란해?”

“반말은 아니되무니다.”

“동갑이니까, 상관없잖아.”

“개조구보, 되무니다.”

“개조구보······, 개족보? 그건 또 뭔 소리야?”

나준호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개족보는 또 어디서 배운 거야?

그때 실버가 낄낄거리더니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개족보가 맞지.”

“어째서요?”

“준호가 경희, 너한테 반말을 하면, 선희 랑도 반말을 할 테고, 그렇게 되면 여기 화실 애들이 선희에게 선생님이라고 존칭 쓰는 것도 이상하게 되거든. 너한테도 선희 때문에 존칭 쓰고 있는데.”

실버의 말에 류타니가 머리를 눈을 감고는 음미하는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나도 반말 못하잖아. 그건 불편한데.”

경희의 말에 류타니가 손을 휘적거렸다.

“아가씨는 괘찬으무니다.”

그 말에 나준호가 인상을 팍 쓰며 류타니를 쏘아봤다.

“왜 경희, 아니 경희 씨만 반말이 가능한 건데?”

나준호의 말에 류타니가 썩소를 날리며 팔짱을 꼈다.

“더러우면 성공하시믄 되무니다.”

그 말에 화실 식구들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시선을 피하며 웃기 시작했다.

실버도 재밌다는 표정으로 박수를 치며 좋아한다.

“맞는 말이야, 맞는 말! 준호, 너 앞으로 크게 성공해라, 경희에게 반말하려면.”

“아, 진짜.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어딨긴, 여기 있지.”

실버가 그렇게 말하며 낄낄거리자 다른 어시들도 머리를 숙인 채 계속 어깨를 들썩거리고 있다.

그런 분위기에 나준호가 불만 섞인 표정으로 류타니를 쏘아봤다.

류타니도 절대 지지 않겠다는 표정으로 마주 쳐다봤다.

뭔가 알 수 없는 라이벌적 기운이 감돈다.

그나저나 나준호 저 녀석 요즘 자주 오고 있다.

어제도 와서는 저녁밥을 먹고 간 주제에.

언제든지 오라고 한 내 잘못인가.

뭐, 그래도 와서는 나름 일도 도우면서 자신의 원고 준비도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그때 같이 웃던 경희가 입을 열었다.

“자, 식사 준비 다 되어가니까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그때 인상을 쓰고 있던 나준호가 얼른 표정을 풀고는 손을 번쩍 들었다.

“경희 씨 저도 식사 돕겠습니다!”

“그래, 고마워.”

“넵!”

그렇게 대답한 나준호가 경희를 따라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런 나준호의 모습을 류타니가 찌푸린 얼굴로 쳐다봤다.

물론 그런 류타니를 어시들은 웃으며 힐끔거렸고.

뭔가 얽히고설킨 인간들의 관계랄까.

묘하게 재미가 있다.

그런 와중에 선희는 작업에 여념이 없다.

머신건 잭의 데생은 진즉 끝났지만, 새로운 콘티 작업 때문에 바쁜 것이다.

바로 한동안 쉬고 있던 메갈로폴리스 인 캣의 새로운 에피소드였다.

새로운 에피소드에 대한 구상은 엊그제부터 시작한 모양인데, 그것이 끝났는지 머신건 잭의 데생이 끝나자마자 콘티를 시작한 것이다.

사실 며칠 전에 나랑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때 주로 얘기한 것이 바로 인공지능에 대한 것이었다.

실제 요즘 방송중인 ‘전격Z작전’이라는 미드에 등장하는 키트라는 인공지능 때문에 호기심이 생겼던 모양이었다.

지금 시대의 대부분 사람들은 2000년이 넘어가면 이런 수준의 인공지능이 당연히 툭 튀어나올 것처럼 얘기하지만, 이단 내가 살던 2018년에 가장 유명한 인공지능이라고 해봐야 이세돌을 바둑으로 이긴 ‘알파고’ 정도가 전부라.

물론 내가 인공지능 분야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꽤 길게 하기는 했었으니, 아마도 새로운 에피소드는 그런 것이 아닐까 싶기는 하다.

시끌시끌하던 점심때도 선희는 혼자 콘티노트를 보며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저녁까지 그 상태다.

모두가 퇴근을 하고 난 뒤에도 선희는 계속 콘티에만 빠져있어서, 하는 수 없이 나도 화실에 계속 남아있어야만 했다.

물론 경희도 남아서 책을 읽으며 선희를 기다렸다.

그리고 저녁 11시 쯤 되어서야 선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표정을 보니, 콘티를 마무리한 모양이었다.

“다 끝났어?”

“응.”

선희가 머리를 끄덕이더니 작업한 콘티를 내게 가져왔다.

“읽어보라고?”

“응.”

“알았다.”

선희에게 받아든 노트를 곧장 펼쳤다.

간단하게 그리는 일반적인 콘티가 아니라는 건 알지만, 이번엔 연필로 작업했음에도 상당히 고퀄이다.

그냥 이걸 그대로 펜선 입히지 않고도 원고가 될 정도였다.

아직은 고민보다는 그림에 더 익숙하고 쉬운 탓인 모양이지.

아무튼 천천히 첫 페이지부터 살펴봤다.

비오는 날 고층빌딩이 즐비한 미래도시의 저녁.

골목 안에 있는 대형 쓰레기통 아래에 웅크리고 있는 검은고양이의 모습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눈을 감고 있던 시끄러운 소리에 흠칫 놀라며 눈을 떴다.

그리고 맞은편에 파편들이 바닥을 이리저리 구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고양이가 머리를 슬쩍 들어올렸다.

아마도 건물 어딘가에서 떨어진 물건인 것 같다.

고양이는 잠시 올려다보다 곧 다시 몸을 웅크렸다.

뒷골목이야 늘 쓰레기들이 많이 굴러다니는 곳이니, 특별한 일은 아닌 것이다.

그나마 먹을 거면 좋겠지만, 그것도 아니니 관심을 가질 이유도 없다.

그런데 떨어진 장소에서 미세한 기계음이 울렸다.

무시할까도 싶었지만, 묘하게 신경 쓰여 할 수없이 몸을 다시 일으켜 그곳으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쏟아지는 빗물을 뚫고 그곳으로 다가간다.

그리고 곧 부서진 파편의 물건들 사이에서 뭔가가 눈에 들어왔다.

인간이 만든 복잡한 기계의 파편.

그 중에 붉은 불빛이 고양이의 시선을 끌었다.

고양이는 앞발로 그것을 툭툭 건드렸다.

칙칙 거리는 소리가 울렸지만, 붉은 빛에 정신을 완전히 빼앗긴 탓에 계속 건드리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

그런데 그때였다.

갑자기 기계가 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붉은 빛이 강해졌다.

깜짝 놀란 고양이가 팔짝 뒤로 뛰었다.

그런데 그때 붉은빛 속에서 여러 가지 색이 떠오르며 점점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놀라 멀어졌던 고양이가 다시 빛에 호기심을 보이며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빛은 초점이 잡히지 않은 영상처럼 흐렸지만, 곧 노이즈가 생기며 형상을 갖추었다.

그것은 조그마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애매한 느낌이지만 그런 것엔 상관없이 고양이는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앞발로 그것을 툭툭 건드려 보려했지만 만져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노이즈가 일고 있던 그것은 고양이를 주시하며 말했다.

[친구가 되어 주겠니?]

고양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노이즈 속 작은 인간은 웃었다.

[고마워. 내 이름은······ 안나야. 넌 이름이 뭐니?]

[응, 그럼 앨리 캣이라고 부를까?]

[아, 미안. 그럼 블랙은 어때?]

[이건 마음에 드는 모양이구나. 알았어. 이제부턴 블랙이라고 부를게.]

그렇게 검은고양이와 작은 인간이 친구가 되었다.

평상시엔 고양이가 기계를 물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그러면서 작은 인간은 새로운 세상에 즐거워한다.

묘한 것은 고양이의 생각을 이 작은 인간은 잘 이해하고 있었고, 고양이 역시 여자의 말을 알아들었다.

그렇게 한동안 도시의 구석구석을 돌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일상의 모습이 보인다.

가장 높은 도시의 옥상부터, 하수구 지하의 모습, 인간들 사이를 이리저리 돌며 그들의 여러 가지 모습을 엿보기도 한다.

그러다 어느 날이었다.

작은 인간이 고양이에게 말했다.

[블랙, 너와 이젠 헤어질 때가 된 것 같아.]

실은 얼마 전부터 고양이도 조금씩 느끼고 있던 것이다.

노이즈의 영상이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빛을 잃기 시작했으니까.

[바다를 직접 보고 싶어. 내 소원을 들어줄 수 있겠니?]

그래서 마지막으로 작은 인간을 데리고 바다를 간다.

노을이지는 바다.

그리고 어둠이 오는 동시에 작은 인간도 빛을 완전히 잃는다.

고양이는 빛을 잃은 기계를 품은 채 모래사장에서 밤을 샌다.

그리고 다음날, 땅을 파서는 기계를 묻는다.

다음 장면은 커다란 병원.

미래의 발달된 장비와 첨단 로봇 간호사들이 돌아다니는 풍경.

그곳의 병실모습.

천으로 덮여진 곳 앞에서 중년의 남녀가 울고 있다.

의사는 간호로봇을 데리고 그곳을 나간다.

중년의 여자가 남편에게 안긴 채 하염없이 울고 있다.

그런 그녀의 등을 토닥거리는 남자.

그들의 등 뒤로 보이는 창밖엔 다시 먹구름이 몰려들고, 빗물이 창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안겨 눈물을 흘리는 여자가 창밖으로 뭔가를 본다.

얼핏 여자아이 같은 형상.

깜짝 놀란 여자가 남자에게서 떨어지더니 곧장 창문을 열었다.

비가 안으로 몰아쳐 들어온다.

여자는 창밖을 이리저리 살펴봤지만 15층인 그곳에 뭔가 있을 리 없다.

여자는 뭔가를 봤다면서 남편에게 말했지만 그는 그저 쓴웃음을 짓고는 문을 닫으려한다. 그때 창밖 어디에 있었는지 알 수 없던 검은고양이 한마리가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하지만, 그런 고양이를 보고도 두 사람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그들의 슬픔이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 들어왔던 고양이가 몸을 털고는 곧장 침대위로 뛰어 올라갔다. 그리고는 사람을 덮고 있던 하얀 천위로 올라가 웅크렸다.

그런 고양이를 본 남자가 인상을 쓰며 치워내려 한다.

그러나 여자가 말렸다.

“고양이는 죽은 사람을 볼 수 있다고 들었어요.”

“······.”

“어떠니? 우리를 대신에 안나에게 인사해 줄 수 있겠니?”

고양이는 아무 말 없이 그냥 웅크리고만 있을 뿐이다.

“이 세상 누구보다 사랑했었다고 전해주렴.”

그렇게 말하며 여자는 다시 울기 시작했다.

그런 여자를 남편이 다시 안고는 토닥거린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난 뒤 비가 그쳤다.

그리고 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왔다.

빛이 두 사람을 지나 고양이에게 비추고 고양이는 인상을 쓰며 몸을 일으키고는 땅으로 뛰어 내렸다.

그런 고양이를 내려다보던 여자가 웃으며 말했다.

“찾아와 줘서 고마워.”

그런데 그때였다.

하얀 천이 살짝 움직인 것이다.

그것을 본 여자가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것을 남편에게 말한다.

하지만 남자는 그저 쓰게 웃을 뿐이다.

그런데 다시 꿈틀했다.

이젠 남편도 놀라 벌벌 떨리는 손으로 천을 살짝 들어올렸다.

어린 여자아이의 얼굴이 드러난다.

그리고 아이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기 시작한다.

놀란 부부는 곧장 버튼을 눌러 의사를 불렀다.

잠시 후.

의사와 간호로봇이 달려 들어오고 곧장 여자아이를 살핀다.

곧 의사의 표정이 밝아졌다.

의사가 뭔가를 이야기하자 부부의 두 눈엔 기쁨의 눈물이 흘렀다.

저녁이 되고 병실의 침대에 누워있던 여자아이가 몸을 일으켰다.

그런 그녀의 앞에 검은 물체가 다가왔다.

바로 검은고양이.

고양이고 그녀의 침대위로 풀쩍 뛰어올랐다.

그런 고양이를 보며 여자아이가 입을 열었다.

“고마워, 블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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