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304화 (304/425)
  • 데빌 바이러스 (6)

    모레까지 원고를 완성하겠다는 말에 어이가 없어진 지로가 혹시나 하는 생각에 물어봤다.

    “미리 작업해둔 원고가 있습니까?”

    - 전 그딴 짓 안 해요. 그때, 그때의 감각으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으니까.

    “······.”

    - 천재들에게 정해진 스토리란 필요 없어요. 오히려 작업하는 순간의 상상력만 방해할 뿐이니까.

    본인을 천재라고 말하는 것임에도 이상하게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실제로 그녀는 그런 말을 해도 될 정도로 천재였으니까.

    “그럼, 정말로 모레까지 완성하겠다는 겁니까?”

    - 그래요.

    “지금 것도 괜찮아 보이는데, 굳이 그렇게 무리를 할 필요가 있습니까?”

    -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잖아요. 똑같은 말 자꾸 하게 하지 마세요.

    더 묻는다고 대답할 것 같아 보이지도 않아서 그냥 머리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모레 오후 3시까지 원고를 완성하세요. 시간에 맞춰서 코지마가 찾아갈 겁니다.”

    - 코지마? 그게 누구죠?

    “이즈미 선생님 담당입니다.”

    - 제 담당이라고 인정한 적 없는데요. 난 당신이 해줬으면 좋겠다니까요.

    “그건 선생님 마음대로 하는 것도 아니고, 제 마음대로 하는 것도 아닙니다.

    - 그럼 누구마음대로인데요?

    “누구 마음대로가 아니라, 전 이미 담당하고 있는 선생님이 있으니까, 회사에서 다른 직원으로 임명한 거죠.”

    - 정말 실망이네요.

    “실망하셔도······.”

    - 아무튼 그 담당이라는 사람이 굳지 찾아올 필요는 없어요. 시간에 맞춰 구로다가 원고를 가지고 갈 테니까.

    이즈미의 말에 지로가 노인을 슬쩍 봤다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전화기를 노인에게 건네주었다.

    전화기를 받은 노인이 전화기를 들고 간단한 얘기를 나누고는 끊더니 곧장 지로에게 인사를 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편집부를 나섰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코지마가 지로에게 말했다.

    “팀장님, 설마 모레 오후까지 원고가 오겠어요? 제 생각엔 힘들 것 같은데.”

    “그건 모르지. 지금부터 매달리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니까.”

    실제로 하루만에 20페이지를 완성하는 만화가들도 간혹 있었다.

    “나카야 선생님, 어시 없다고 하지 않았어요?”

    “네가 담당이면서 그걸 내게 물으면 어떡해?”

    그 말에 코지마가 지로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말이 담당이지, 직접 만난 적도 없고, 전에 찾아갔을 땐 문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했는데요.”

    그 정도일거라고는 지로도 짐작하지 못했는지 인상을 썼다.

    “······.”

    “담당이 이런 소리를 해서 죄송합니다.”

    “내게 죄송할 필요는 없어.”

    “······.”

    “아무튼 나도 혼자 나카야 선생님이 혼자 작업한다는 걸로 들었으니까.”

    “그렇죠? 그럼 혼자서 20페이지를 거의 이틀 만에 다 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렇지.”

    “그게 가능 할까요?”

    “그런 건 나중 문제고, 넌 언제라도 원고 넘길 수 있게 준비만 하면 되는 거야.”

    “네. 알겠습니다.”

    * * *

    전화기 너머에서 강한 어조의 음성이 들려왔다.

    - 이번에야말로 절대로지지 않을 거예요.

    “······.”

    - 써니 선생님에게 내 말을 꼭 전해주세요. 이번엔 제대로 내 실력만으로 도전하겠다고, 그런 짓 따윈 앞으로······. 아니, 그건 됐어요. 아무튼 기대해도 좋아요.

    딸깍.

    이즈미, 이 여자는 또 자기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기대라니, 내가 그런 걸 왜 해?

    황당한 표정으로 전화기를 내려놓자, 실버가 물었다.

    “이번엔 또 뭐라고 했는데?”

    “또 이기겠다고.”

    그 말을 들은 실버가 낄낄거렸다.

    “어지간히도 너희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모양이다. 저렇게까지 전화를 걸어대는 걸 보면.”

    “······.”

    “그나저나 이번 2위는 좀 의외였어. 나름 순위가 높을 거라고는 예상하고 있었지만, 단번에 저렇게 2위까지 치고 올라갈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도 실버랑 비슷했다.

    단번에 그리는 실력 때문에 선희와 비슷한 종류의 천재라고는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첫 화부터 엄청난 임팩트가 있었냐면 그런 건 아니었으니까.

    물론, 나름 괜찮은 이야기라는 건 인정하지만.

    그나저나 이번엔 제대로 자신의 실력으로 도전하겠다니, 그건 무슨 말이었지?

    그렇게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곧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 * *

    “아직 안 도착했는데, 어쩌죠?”

    코지마가 발을 동동 구르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때 지로가 시계를 슬쩍 올려다보더니 다시 시선을 거두고는 말했다.

    “아직 15분 남았잖아.”

    “그런데, 모두 편집이 끝난 상태라고 언제 끝나냐고 자꾸 전화가 와서요.”

    “출판부에서?”

    “네. 엄청 욕먹었어요. 신입이 건방지다고.”

    그 소리를 들은 지로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알았어. 어쨌든 나도 여기에 어느 정도 책임은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전화기를 들었다. 출판부에 전화를 걸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 편집부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바로 이즈미를 항상 따라다니던 그 노인이었다.

    그 모습을 본 코지마의 표정이 확 밝아지며 서둘러 노인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노인이 코지마에게 원고가 든 봉투를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원고 가져왔습니다. 식자 작업도 다 완성했으니, 확인해 보십시오.”

    “아, 네. 고맙습니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봉투를 받은 원고를 꺼내 확인하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네, 식자는 되어 있네요. 수고하셨습니다.”

    “전의 원고는 돌려주시겠습니까?”

    “아, 네.”

    그렇게 대답한 코지마가 자신의 책상에 놓여있던 원고 봉투를 노인에게 내밀었다.

    “여기 있습니다.”

    그러자 노인도 봉투 속을 확인하더니 곧장 머리를 끄덕였다.

    “맞군요. 그럼 저는 이만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노인이 가볍게 인사를 하고 몸을 돌렸다. 그런 그에게 코지마와 지로가 인사했다. 그리고는 코지마가 한숨 놓았다는 표정으로 지로를 돌아봤다.

    “아, 늦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어서 원고부터 읽어봐.”

    “아, 네.”

    코지마가 원고를 서둘러 읽기 시작했다.

    늦었긴 하지만, 그래도 엔딩 부분에 편집자의 멘트는 남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읽어가던 코지마의 손이 멈칫했다.

    그리고는 원고에 머리를 가져다대며 자세히 보기 시작했다.

    “어?”

    “왜 그래?”

    “이, 이거요.”

    “무슨 문제 있어?”

    “아, 아뇨. 그런 게 아니라······. 엄청나요.”

    “엄청나다니.”

    “그림이 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대단해서요.”

    그렇게 말하며 원고를 돌려 지로에게 보여주었다.

    지로도 코지마가 보여준 원고를 보고는 놀란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확실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더니, 그림에 공을 많이 들인 모양이군.”

    “그런데 스토리도 전과 달라요.”

    “스토리도? 조금 수정한 건가?”

    “아뇨, 전과 전혀 다른 진행인데요?”

    “전혀 다르다고?”

    “네.”

    그렇게 말하며 코지마가 계속 읽어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원고를 다 읽었는지 원고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런데 표정이 아까보다 더 심상치 않다.

    “또 왜 그래?”

    “그림보다 스토리가 더 대단해요.”

    “뭐?”

    * * *

    “윤환아, 소포.”

    “아, 고마워.”

    성준희에게 받은 소포를 받아 곧바로 뜯었다.

    평소처럼 미리 발행된 소년 히어로 두 권이 들어있다.

    모처럼 일찍 화실에 놀러온 이대봉이 한권을 받아들고는 뒤적거렸다.

    그 모습을 본 실버가 인상을 썼다.

    “너한테도 책이 가잖아. 왜 여기 와서 이러는 거야?”

    “여기서 보면 더 재밌잖아.”

    그렇게 말하며 소년 히어로를 열심히 뒤적거린다.

    “뭘 그렇게 찾는데?”

    “당연히 데빌 바이러스지. 아, 찾았다.”

    그렇게 말하며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

    나도 가장 먼저 찾은 건 이대봉처럼 데빌 바이러스였다.

    며칠 전에 전화까지 걸어 그렇게 큰소리치던 이즈미를 떠올림과 동시에 지로의 말도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 이미 재출했던 원고를 다시 찾아가서는 거의 이틀 만에 완성해서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그림의 퀄리티가 상당히 높아서 놀랐습니다. 그런데 더 대단한 건 스토리였습니다.

    하지만 지로는 스토리에 대해 더 이상 자세한 얘기는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자신이 담당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더 이상은 곤란하다는 눈치였다.

    그래서 도대체 뭐가 얼마나 변했는지 그게 알고 싶었다.

    애초에 다시 수거해간 원고를 본 일은 없지만, 그것보다 훨씬 퀄리티가 높아졌다면 그것만으로도 1화보다 더 나을 거라는 건 예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데빌 바이러스 표지를 찾았다.

    그런데 첫 번째 페이지부터 뭔가 다르다.

    처음 데빌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던 소녀의 얼굴인데, 얼굴 정중앙으로 좌와 우가 다르다.

    좌측은 원래 소녀의 얼굴.

    우측은 그 골격 그대로지만 악마 같은 얼굴이다. 그런데 왼쪽과 오른쪽의 대비가 엄청나다.

    왼쪽은 도자기처럼 깨끗한 느낌이라면, 왼쪽은 그야말로 지옥에서 살아나온 악마처럼 흉측하다. 그런 그림이 화면 전체를 가득채운 것도 모자라 섬세하기까지 해서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다.

    과연 이것이 연필데생도 없이 그려진 그림일까?

    얼핏 봐서는 절대 그렇다고 보기 힘들다.

    선희도 그리던 그림을 멈추고, 어느새 내 곁에 다가와 같이 보고 있다.

    “이건 어때? 이것도 데생 없이 그린 것 같아?”

    “응. 맞아. 바로 그린거야.”

    “진짜?”

    “응. 힘들게 그린 것 같아.”

    그림만 보면 당연한 소리 같지만, 그 건방진 이즈미가 힘들게 그렸다고 생각하니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

    아무튼 그림만 보고 이런 것을 단번에 꿰뚫어보는 선희도 진짜 괴물은 괴물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페이지를 넘겼다.

    그런데 표지만 그렇게 그린 게 아니었다.

    처음 등장할 때부터 이즈미가 얼마나 독을 품고 그렸는지 알 만큼 엄청난 퀄리티 그림들의 향연이다.

    같은 그림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변해버린 그림에 또다시 소름이 돋는다.

    일반 독자들에게는 조금 더 그림이 요란해지고 복잡해진 정도겠지만, 우리처럼 만화와 접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게 얼마나 엄청난 변화인지 알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페이지를 넘겨 가면 넘겨갈수록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데생을 안 하고 바로 그린다는 것을 모른다고 해도 놀라운 수준이었으니까.

    그런데 스토리에서도 솔직히 놀라고 있었다.

    2화부터는 1화와 같은 이야기임에도 전개하는 느낌이 전혀 다른데다가 몰입도의 차원이 다를 정도였다.

    장면, 장면 흐름도 좋았고, 페이지를 멈추는 것도 쉽지 않다.

    거기다 주인공 미구엘의 대사도 멋들어졌다.

    1화에서의 느낌은 다소 평면적인 느낌이었는데, 2화부터는 입체적인 캐릭터로 단숨에 변해버렸다.

    이정도면 그림뿐만 아니라 스토리에서도 상당한 변화다.

    과연 지로가 놀랐다고 하더니, 납득이 갈 정도였다.

    그런데 진짜 놀라운 건 마지막 장면이었다.

    데빌 바이러스가 본격적으로 퍼져나가면서 도시 중앙에 생겨난 거대한 악마의 꽃봉오리.

    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알몸의 미소녀.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으로 도시 한가운데 모습을 드러낸다.

    높이는 족히 백여 미터는 될 정도의 거대한 키.

    그런 모습에 압도당한 도시의 사람들.

    이 모든 장면이 너무 실감날 정도로 섬세하게 그려져 있었다.

    현세의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아름다움.

    이제까지 등장했던 모든 사람들에 비해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뽐내며 서있는 여자의 모습이었다.

    “이, 이거 뭐야? 엄청나잖아!”

    이대봉도 그림과 스토리에 압도당했는지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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