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303화 (303/425)

데빌 바이러스 (5)

그 질문에 이즈미가 멈칫했다.

그리고는 잠시 동안 말없이 니시다를 빤히 쳐다봤다.

뭘 생각하는지 알기 힘든 표정을 하고서.

그런 이즈미에게 다시 니시다가 말했다.

“말이 없는 걸 보니, 사람들의 의심이 사실인 모양이네요.”

“의심?”

“그런 일이 있었으니 의심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말을 들은 이즈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진실이라면 어쩔 건데요?”

“역시 그렇군요.”

그렇게 말한 니시다가 입술을 비틀었다. 그리고는 이즈미를 다그쳤다.

“그런 야비한 술책으로 1위를 하고 싶었던 겁니까? 그렇게까지 1위를 빼앗으면 뿌듯하다고 생각하나요?”

“1위를 얻는 건 뿌듯하고 뭐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그럼 뭘 위해서 1위를 하고 싶은 건데요? 당신에게 돈은 큰 의미가 없을 거고.”

“맞아요. 돈 따위를 위해 1위를 하고 싶은 건 아니에요.”

“그렇다면 뭡니까? 명예? 긍지?”

니시다가 재촉하자 잠시 동안 그를 노려보던 이즈미가 팔짱을 끼며 콧방귀를 뀌었다.

“내가 왜 그걸 당신에게 일일이 다 고해성사하든 말해야 하는 거죠?”

“나도 같은 잡지에 연재를 하고 있으니, 들을 권리 정도는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아뇨. 그딴 걸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때 잠자코 듣던 키도가 입을 열었다.

“그건 나도 궁금한데. 정말 말해줄 수 없겠나? 왜 그런 짓까지 했는지.”

“······.”

이즈미의 눈썹이 몇 번 실룩거렸다.

그녀의 표정에서 불편함이 느껴지던 그때, 키도 부인이 차를 가지고 나타났다.

“차를 가져왔어요. 홍차랍니다.”

그리고는 이즈미 앞에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이즈미가 멈칫하더니 키도부인을 올려다봤다. 그런 그녀를 향해 키도부인이 웃었다.

“흥분을 가라앉히시고. 차를 마셔보는 건 어때요? 기분전환이 될 거예요.”

“······네?”

“흥분하는 건 여자의 피부에도 좋지 않아요. 이렇게나 예쁜 얼굴이 지금처럼 보기 흉한 것도 좋지 않고.”

“······아, 네. 고마워요.”

그렇게 말하며 약간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찻잔을 들어 입에 가져갔다. 그리고는 맛을 본 뒤 이즈미의 눈이 부릅떠졌다.

“마, 맛있어.”

“그렇죠? 스페셜이랍니다.”

키도부인이 합장을 좋아한다.

그 모습을 멀뚱거리며 바라보던 두 사람에게 키도부인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로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는 게 어떻겠어요?”

“네?”

“무슨 소리야, 그만 하라니.”

“이 아가씨에게는 좀 버거운 것 같으니까.”

“하지만.”

“알겠죠?”

“크음. 뭐, 당신이 그렇게까지 말한 다면이야.”

“니시다 선생님도요.”

“아, 네. 알겠습니다. 사모님.”

그렇게 말하며 니시다도 자신의 앞에 있는 차를 천천히 마시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이즈미도 계속 차를 마시며 편안한 표정을 짓자, 키도부인이 만족한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인다.

“당신도 차 드려요?”

“아, 그래.”

“알겠어요.”

그렇게 대답한 키도부인이 웃으며 다시 부엌으로 돌아갔다.

그 때문에 한동안 화실은 평온함과 정적이 감돌았다.

그런 분위기에 가장 어리둥절한 건 어시들이었다.

방금까지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시끄러웠던 화실이 키도부인의 등장과 함께 쥐죽은 듯 고요해졌으니까.

때문에 그들도 서로 눈치만 볼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잠시 후.

이즈미가 찻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잠시 입을 다문 채 눈을 감고 있던 그녀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저는 이만 돌아가 볼게요.”

“어, 그, 그래.”

키도가 얼떨결에 대답하자 그녀가 몸을 돌리자 근처에 있던 노인이 다가와서는 그녀의 어깨에 밍크코트를 걸쳐준다.

그리고 그녀가 화실 문을 나며서 말했다.

“홍차······, 잘 마셨다고 부인께 전해주세요.”

“응. 알았어.”

“그럼 이만.”

그렇게 말한 이즈미가 화실을 나섰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가 완전히 문을 닫고 사라지자 방안에 있던 사람들이 경직된 몸을 풀었다.

그때 키도부인이 차를 가지고 들어오다 이즈미가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머, 벌써 가셨나보네요. 쿠키를 굽고 있었는데.”

“잘 마셨다고 하더군.”

“그래요? 어머나, 기뻐라.”

키도에게 차를 건네주고 난 키도부인이 정말로 기분이 좋은지 펄쩍 뛰며 기뻐했다. 그리고는 곧장 총총걸음으로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부엌으로 돌아갔다.

그 모습을 보던 키도가 니시다를 돌아보며 말했다.

“뭐,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야 하겠군.”

“그렇군요.”

머리를 끄덕이며 그렇게 대답한 니시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도 이만 가보겠습니다.”

*

키도의 화실 대문을 나서던 이즈미가 다시 돌아서며 건물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잠시 멈칫하더니 노인에게 말했다.

“구로다.”

“네, 아가씨.”

“돌아가면 소파를 보내주도록 해요. 더 좋은 걸로.”

이즈미의 말에 노인이 머리를 갸웃했다.

“좋은 거라면 어떤 걸로?”

“아침에 내방에 들여놨던 그걸로.”

그 말에 노인이 깜짝 놀랐다.

“아, 아가씨. 그건 이태리 최고의 장인인 알베르토 레오네 선생님이 1년 동안 매달려 만든 최고급 소파 아닙니까?”

“맞아요. 그거.”

“그건······, 다시 주문하셔도 예약 때문에 3년은 더 걸릴······.”

“괜찮아요. 그만큼 가치가 있었으니까.”

“뭐가 말입니까?”

“홍차.”

“······.”

“돌아가면 바로 보내도록 해요. 다시 제대로 포장해서.”

“아, 알겠습니다.”

노인이 정말로 놀랐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노인이 서둘러 근처에 세워진 고급벤츠의 뒷문을 열자 그녀가 자연스럽게 차에 올랐다.

뒷문을 닫은 노인이 운전석에 올라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시키려던 그때 이즈미가 말했다.

“잠시만.”

“네.”

이즈미의 시선이 다시 키도의 화실 쪽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니시다가 나오고 있는 모습을 본 탓이었다.

잠시 그녀가 니시다를 향해 바라보자 니시다도 멈칫하더니 그녀를 향해 시선을 돌린다. 차 안에 있던 그녀와 눈이 마주친 니시다가 굳은 표정으로 잠시 그녀를 보더니 곧장 시선을 돌려 걸어갔다.

그러자 그런 니시다를 보던 이즈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가요, 구로다.”

“네, 아가씨.”

이즈미가 타고 있던 고급 벤츠가 출발했다.

“구로다.”

“네, 아가씨.”

“아까 그 이야기 구로다도 들었죠?”

“아, 네.”

“구로다가 지시한 건 아니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하긴.”

머리를 끄덕인 이즈미가 뒷좌석에 있던 카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번호를 눌렀다.

* * *

“네? 원고를 다시 돌려달라고요?”

얼마 전에 새롭게 입사한 편집부 직원인 코지마가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그러자, 그의 앞에 있던 노인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저희 아가씨께서 다시 돌려받아오라고 하셨습니다.”

“아니, 이미 제출하신 원고를 왜?”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고 하십니다.”

노인의 말에 코지마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

“원고 돌려주시겠습니까?”

“저기, 마감이 모레까지 에요.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원고를 가져가시겠다면 어떡합니까?”

“죄송합니다만, 저는 그저 원고를 가져오라는 명령만 받았을 뿐이라.”

“이러면 펑크라고요, 펑크.”

코지마가 자신의 머리를 양손으로 헝클어뜨리며 말했다. 그렇지만 노인은 요지부동이었다.

“아, 정말.”

그때 근처에 있던 지로가 다가왔다.

“죄송합니다만 그렇게 마음대로 원고를 다시 가져가는 건 곤란합니다.”

지로가 끼어들자 코지마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노인의 태도에는 변화가 없었다.

“원고를 가져가는 것은 제 일입니다.”

“곤란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말에 노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지로가 쉽게 원고를 내어줄 것 같아 보이지 않자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리고는 조용한 구석 쪽에 가서는 자신이 가져왔던 커다란 전화기를 들어서는 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누군가 짧은 통화 후 다시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바꿔 달라고 하십니다.”

“누가요?”

“저희 아가씨입니다.”

“전화 받아.”

지로의 말에 코지마가 화들짝 놀랐다.

“네? 제가요?”

“당연하잖아. 자네가 담당인데.”

“하, 하지만······.”

뭔가를 떠올렸는지 코지마가 울상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전화기를 받으려하자 노인이 입을 열었다.

“아카기 씨로 바꿔 달라 십니다.”

“네? 저요?”

“그렇습니다.”

그 말을 들은 코지마가 다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마치 지옥에서 구원이라도 받은 듯한 표정으로.

지로가 노인이 건넨 커다란 전화기를 받아 귀에 가져갔다.

“네, 아카기입니다.”

- 왜 당신이 담당이 아닌 거죠?

“그건 전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 원고를 가져다주는 것도 구로다가 할 거고. 식자도 저희가 다 완성해서 드린다고 했잖아요. 그럼 아카기 씨가 할 일은 그저 원고를 보는 것뿐인데, 그게 그렇게 힘들어요?

이즈미의 억지스러운 말에 지로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렇게 모두 직접 다 하실 거면 굳이 편집자가 필요하지는 않지요.”

- 그냥, 담당만 되라고요. 담당만.

“여러 번 말씀 드리는 것 같기는 한데, 곤란합니다.”

그러자 전화기너머로 흥분한 이즈미의 씩씩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 ······진짜, 만화가나 편집자나 답답한 사람들뿐이네.

“만화가요? 누구, 써니 선생님 말씀이십니까?”

“다른 사람들이요.”

“다른 사람? 누구 말씀이시죠?”

“······그러니까.”

뭔가를 말하려다 말더니 곧 전화기 너머에서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 그 얘긴, 됐어요. 뭐, 좋은 차도 마셨으니까.

“네? 좋은 차요?”

지로가 무슨 얘긴지 통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하지만 이즈미는 자세한 내용을 말하기 싫다는 듯 이야기를 바꿨다.

- 그건 됐고, 그나저나 원고는 돌려줬으면 좋겠는데.

언제나 그렇지만 이즈미라는 여자는 자기중심적인 여자일 뿐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도 다른 이야기로 느닷없이 넘어가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편집자 생활을 하다보면 별의별 성격의 만화가들을 보게 된다.

아무래도 폐쇄적인 생활을 주로 하는 사람들이라 그렇기도 할 것이다. 거기다 지금 자신이 상대하는 여자는 재벌가의 외동딸이 아니던가.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게 이상한 일도 아닌 것이다.

그런 잡념에 빠졌을 때 전화기 너머에서 다시 소리가 들려왔다.

- 왜 말이 없어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전화기가 왜 이래? 고장 났나?

“듣고 있습니다.”

- 그런데 왜 말을 안 해요? 답답하게. 아무튼 원고는 돌려줘요.

“말씀드렸지만, 모레가 원고마감이라 곤란합니다. 빈자리를 메울 단편도 준비된 게 없고요.”

- 원고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런다니까요.

“이해는 하지만, 연재는 독자와의 시간약속도 포함이 됩니다. 그냥 그렇게 마음대로 하시면 안 되는 일입니다.”

그 말에 잠시 말이 없던 이즈미가 다시 입을 열었다.

- 원고 마감이 모레까지라고 했죠?

“네. 오후 3시입니다.”

- 알겠어요. 그때까지 완성만 하면 되는 거죠?

“······.”

- 왜 대답을 안 해요? 맞아요, 틀려요?

이즈미가 다그치자 지로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렇긴 합니다만.”

- 그럼, 그때까지 완성할 테니까 그 원고 넘기지 마세요, 알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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