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사라 멀티버스 (9)
내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그때 이대봉 뒤에서 중년의 남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편안해 보이는 인상의 남녀였다.
겉모습만 보자면 인자한 느낌이 들었다.
“어서 들어가세요.”
이대봉의 말에 머리를 몇 번 더 숙이며 인사하던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이대봉이 내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쪽이 이 화실을 이끌어가는 친구에요.”
“아, 네.”
“안녕하세요.”
두 사람이 머리를 푹 숙이며 인사하자 나도 덩달아 같이 머리를 숙였다.
“네. 어서 오세요.”
“기별도 없이 불쑥 찾아와 죄송합니다.”
류타니의 아버지가 송구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하며 들고 왔던 선물로 보이는 종이봉투를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든 이대봉이 요란하게 손사래를 쳤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안 그래도 류타니에게 소식이 없어서 궁금해 하고 있던 참이거든요.”
그 말에 이번엔 류타니의 어머니가 이대봉을 쳐다봤다가 다시 내 쪽으로 돌아보며 말했다.
“네, 안 그래도 그 문제 때문에 부모 된 입장에서 꼭 와야 한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직접 찾아오게 되었어요.”
“그러시구나.”
그렇게 대답한 이대봉이 그들을 이끌고 소파 쪽으로 다가왔다.
“자, 일단 두 분 다 편안하게 앉으세요. 내 집이다 생각하시고.”
그러자 두 사람이 내 앞에 있는 소파에 와서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류타니의 아버지는 자리에 앉자마자 주변을 슬쩍 돌아보더니 약간 놀라는 모습이다.
“일본 전통식 집이군요. 한국에서 이런 집을 볼 거라고는 생각 못했습니다.”
“네. 오래전에 일본인이 살던 집인데 실내는 손을 좀 많이 봤습니다.”
내 대답에 그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대략적인 건 에이지에게 들었습니다. 따끔하게 야단도 치시고, 이런 저런 말씀도 해주셨다고요. 그리고 저희에게 허락도 받아오라고 하셨다던데.”
“네, 아무래도 아직은 어린 나이라 부모님의 동의를 받아오는 게 순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시군요.”
류타니의 아버지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애가 돌아와서는 많이 달라졌더군요. 전에는 자신의 미래에 대해 그렇게 진지하게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이번엔 확실히 자신의 이야기를 하더군요. 아버지로서 솔직히 기뻤습니다.”
그러면서 류타니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커가면서 겪었던 친구들과의 일들,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해 집에서 외부로 나가지 않게 되었던 일 등등.
그 일이 있고나서부터는 집안에 틀어박혀 외부와 단절된 생활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전형적인 히키코모리의 생활.
자신의 방에서 나오지 않고, 식사도 혼자 하는 생활의 반복.
아무것도 관심을 가지는 일 없이 그저 방안에 처박혀 TV만 무한시청을 할 뿐인.
그러다가 우연히 여동생의 친구가 들고 온 소년 히어로의 잡지를 통해 삼사라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 처음으로 부모에게 삼사라 단행본을 갖고 싶다는 부탁을 했을 땐 어머니도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영원히 자식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혔던 어머니에겐 그런 사소한 일마저 감정이 북받치게 했던 모양이다.
아무튼 그 이후로 조금씩 아들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 가끔이지만 외부로 나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던 류타니가 다시 충격에 빠진 일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삼사라가 완결된다는 소식을 접한 뒤라고 했다.
그 덕에 다시 류타니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버렸고, 그 때문에 부모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게 되었다.
그런데 여동생이 삼사라관련 잡지가 발행된다는 소식을 먼저 접하고, 그것을 오빠에게 알려준 것이다.
그 이후 류타니는 공모전을 준비했고, 그것의 결과물이 바로 ‘나가’였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 이후로는 류타니에게 들은 대로였다.
“에이지가 한국에서 일하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땐,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솔직히 부모 된 입장에서 에이지가 다시 학교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몇 년 만에 진지하게 제대로 부탁한 일을 그냥 무시할 수는 없어서 일단 한국에 가서 네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직접 알아본 뒤에 결정하는 게 어떻겠냐고 했죠. 물론 집사람은 반대 입장이었습니다만.”
“아직은 어린 아이라······.”
어머니의 말에 이대봉이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
“그럼요. 어리죠. 이해해요. 저라도 그렇게 쉽게 보내줄 수 없을 거예요.”
이대봉의 말에 류타니의 어머니가 묘한 동질감을 느꼈는지 ‘이해하시죠?’라고 눈빛을 보낸다. 그러자 이대봉은 머리를 끄덕이며 ‘그럼요. 당연하죠.’라는 표정이다.
이 와중에도 이대봉의 미친 친화력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아무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대단한 능력자라는 건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류타니의 아버지는 나와 대화를, 그리고 어머니는 이대봉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한참을 그렇게 류타니와 앞으로 할 일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아까부터 계속 이대봉과 대화를 나누던 류타니의 어머니가 결심한 듯 말했다.
“에이지가 잘 견뎌낼 수 있을까요?”
“네?”
“역시, 제가 그동안 편견에 빠져 있었던 모양이에요. 이런 곳이라면, 에이지가 머물러도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아니, 제 입장에선 오히려 부탁드리고 싶어요.”
아까까지만 해도 부정적인 느낌이 강했는데, 이대봉과 무슨 대화를 나누었기에 이렇게 갑자기 마음이 바뀐 걸까.
아무튼 그런 그녀의 반응이 가장 놀란 건 다름 아닌 류타니의 아버지였다.
“여보, 괜찮아?”
“네. 괜찮아요. 이제까지 제가 에이지를 너무 유약한 애로 만들었던 모양이에요. 이번 기회에 류타니가 더 큰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주고 싶어요.”
“······.”
“선생님. 부족하지만 저희 류타니를 잘 부탁드립니다. 못하는 것이 있으면 따끔하게 말씀도 해주시고, 세상이 만만치 않다는 것도 일깨워 주세요.”
그렇게 말하던 류타니의 어머니가 깜짝 놀랐다.
“제가 무슨 소리를······. 죄송해요. 이제부터는 제가 참견할 일도 아닌데.”
“아뇨. 괜찮습니다.”
그렇게 류타니의 한국행을 처음엔 반대했다던 어머니는 결국 이대봉과의 대화를 통해 한국행에 적극적으로 찬성하게 되었다.
내가 류타니의 아버지와 대화하는 동안 두 사람이 엄청 친해진 모양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자리에서 일어난 두 사람이 결국 류타니를 잘 부탁한다는 얘기를 끝으로 돌아갔고, 며칠 후 한국에 들어온 류타니가 본격적으로 화실에 들어와서는 인사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러자 화실 식구들도 그를 환영했다.
무뚝뚝한 실버도 그런 류타니에게 한마디 했다.
“대충은 없으니까, 제대로 해.”
“네. 알겠습니다!”
* * *
첫 번째 책의 판매량은 다른 출판사들에게도 꽤나 주목을 받았다.
어찌 보면 코미케 같은 곳에서나 팔릴 듯한 잡지가 정식으로 출간되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그것이 나름 성공을 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아직은 창간호라 성공이라고 말하는 것 너무 이르다고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어쨌건 반응이 폭발적이라는 건 분명했다.
판매량에 비해 상당한 반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삼사라의 판매량이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기존에도 상당한 판매를 보인 삼사라 단행본이 연재를 끝으로 서서히 판매량이 줄어들기 시작했음에도 이번 삼사라월드가 출판되면서 다시 판매량이 늘어난 것이다.
그리고 더불어 얼마 전에 두 권으로 완결된 절망의 페르소나도 다시 판매가 늘었다.
물론 그런 현상은 현재 연재중인 머신건 잭 역시 마찬가지.
덕분에 기존의 외전으로 계속 연재 중이던 암흑왕도 주목을 받았다.
결국 삼사라는 연재 중이던 때보다 더 인기가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새로운 현상은 바로 라바나와 나가의 팬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음에도 이전 삼사라와는 다른 진행방식에 다른 주인공, 그들의 활약이 팬들에게 새로운 기쁨을 준 것이다.
더불어 팬들 사이에서는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삼사라의 세계를 확장시키는 이른바 삼사라 멀티버스의 붐이었다.
*
직원 중 한명이 종이봉투를 잔뜩 들고 삼사라월드 편집부로 들어왔다.
“어? 뭐야? 또 소포야?”
“네. 이번에도 많아요.”
“그거 다 원고나, 콘티 그런 건가?”
“아마도 그런 것 같아요. 묵직한 걸 보면.”
그렇게 대답한 직원이 자신의 책상위에 소포들을 낑낑거리며 내려놓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것들을 내려놓고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이거, 생각보다 반응이 뜨거운데요. 첫 호 나가고 나서 들어오는 소포의 양이 더 늘었어요.”
“다음 달 원고까지는 확보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조금 불안했었는데 이건 뭐······. 일감이 너무 많아서 직원들 계속 야근해야 할 분위긴데?”
“그러게요. 이번에는 다른 편집부 도움은 힘들겠죠? 안 그래도 저번에도 힘들다고 모두 여기엔 오기 싫다고 했다는 모양인데.”
“그렇겠지. 우리도 그렇게 힘들었는데.”
“하지만, 모험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잘 되니까 기분은 좋네요.”
“그건 나도 그래.”
그때 팀장이 그들을 향해 말했다.
“자자, 이제 그만 떠들고 소포 확인해봐. 지금은 연재가 확정된 작품은 몇 개 안 되니까 빨리 작품부터 확보해야 돼.”
그 말에 모두가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시각.
아래층에 있던 소년 히어로 편집부의 지로도 바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전화기를 든 채로 인쇄공장의 직원과 한참동안 통화를 한 뒤 전화를 끊고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모습을 보던 미치코가 다가와서는 그에게 음료수 캔 하나를 내려놓았다.
“이거 드시고 좀 쉬었다가 하세요.”
“아, 고마워.”
그렇게 말한 지로가 캔을 단숨에 들이켰다.
“어휴, 천천히 좀 마셔요. 체하겠어요.”
그 말에도 음료수를 목구멍에 탈탈 모두 털어놓고는 ‘후아’하며 숨을 몰아쉰 지로가 피식 웃었다.
그 모습을 본 미치코가 콧잔등을 찌푸렸다.
“뭐가 그렇게 좋아서 그래요?”
미치코의 잔소리에도 지로는 입 꼬리를 끌어올리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깊기 묻으며 말했다.
“일이 넘치니까, 좋은 거지.”
“무슨 소리에요? 일이 넘쳐서 좋다니. 그런 괴상한 소리는 외삼촌에게 들은 이후로 처음이에요.”
“외삼촌?”
외삼촌이 이곳 출판사의 사장이라는 사실을 떠올린 지로가 쓴 웃음을 지었다.
하긴, 이만한 회사를 크게 일으키려면 그런 얘기를 밥 먹듯이 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하지만 미치코는 팔짱을 낀 채로 불만 섞인 음성으로 말했다.
“일은 적당한 게 좋아요. 일에만 너무 빠져 있으면 부인도 싫어하고. 저희 외숙모가 그러시거든요. 같은 여자로서 그 마음이 이해가 된다니까요.”
“난 부인이 없으니까 상관없잖아.”
“앞으로 생길 거잖아요.”
“그건 모르지. 그리고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주술사야?”
지로의 농담 같은 되물음에도 미치코는 진지한 표정으로 오른쪽 주먹을 불끈 쥐며 강렬한 포스를 발산했다.
“전 알아요. 그리고 반드시 그래야 하고.”
“뭐?”
지로가 황당한 표정을 짓던 그때 부편집장이 그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웃으며 말했다.
“아카기, 좋은 소식이야.”
“네? 좋은 소식이요?”
“그래. 너 팀장으로 승진했다.”
“······.”
지로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