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신건 잭 (6)
도쿄의 한 대학교의 오래된 별관건물.
그곳 구석에 있는 낡은 동아리방.
입구엔 ‘만화연구회’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실내엔 몇 명의 남녀가 모여 있는데 대부분 만화책을 보거나, 혹은 만화를 그리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은 꽤 괜찮던데? 솔직히 저번 나우시카는 너무 무거운 내용이기도 했지만, 엔딩이 너무 대충 마무리된 것 같아서 좀 아쉬웠는데 이번 라퓨타는 상당히 가볍지만 상당히 재미있었어. 컨셉도 괜찮았고.”
“라퓨타는 3년전에 이미 잡지에 컨셉아트가 공개된 거였잖아. 물론 그때 공개된 건 나우시카랑 라퓨타가 뒤섞인 형태였지만.”
“그거 코믹박스였지, 아마?”
“맞아, 1983년도에 나온 거. 2월인가 3월호 일거야.”
“나도 그거 읽었어. 이거 일미합작인 리틀네모 때 미야자키가 제출한 시놉시스였데.”
“또 있지. 그거 제출해서 튕기니까, NHK TV애니메이션 컨셉으로도 제출했는데, 그게 또 차였거든.”
“그러니까, 답답해서 본인이 직접 이번에 사람들을 모아, 도쿠마쇼텐 지원까지 받아서 제작사를 만들었고, 그것의 첫 번째 작품으로 만든 게 라퓨타구나.”
“그렇지. 만약 나우시카가 성공하지 못했으면 불가능했을 프로젝트였다더라.”
“그나저나 이번 라퓨타 보니까 미래소년 코난도 생각나던데. 특히, 시타는 라나랑 성격도 판박이고.”
“뭐, 미야자키가 가장 좋아하는 여성상이 강한 여성상이라고 하더라고. 특히 나우시카는 강함의 절정이었지.”
“그런데 라퓨타에 나오던 로봇 말이야, 그거 엄청 인상이 강하던데. 꽤나 기억에 남아. 그리고 잠자리처럼 날던 플랩터도 그렇고.”
“라퓨타 로봇 그거, 예전에 ‘루팡 3세’에서 나온 거랑 닮았더라. 아마도 거기 영향 받은 것 같더라고.”
“애초에 루팡 3세에서 나온 로봇도 미국의 오래된 고전애니인 슈퍼맨 에피소드에 등장한 거에서 따온 거래.”
“젠장, 오리지널이 아니었어?”
“요즘 오리지널이 어딨어? 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발전하는 거지.”
“하긴.”
그렇게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 ‘천공의 성 라퓨타’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있던 그때였다. 갑자기 문이 활짝 열리며 뚱뚱한 체형의 안경 낀 사내가 들어오며 소리쳤다.
“새 소식이야! 새 소식!”
그렇게 들어오던 남자가 입구에서 다리가 꼬였는지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 철푸덕 하며 쓰러졌다.
그 때문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더니 이내 버럭 하며 소리쳤다.
“야, 그러다가 진짜 크게 다친다니까. 좀 살살 좀 다녀.”
“맞아. 그리고 그렇게 문을 거칠게 열지 말라니까! 오래된 문이라 안 그래도 간당간당하는데.”
“학교에서도 문 부서지면 우리가 직접 자비로 고치더라도. 그러니까 좀 살살 열어.”
모두가 질타했지만 넘어졌던 남자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표정으로 일어나서는 몸을 털었다. 그때 그의 코에서 피가 찔끔 흐르자 한명이 소리쳤다.
“야, 코피!”
“자 휴지 여기 있어.”
그러자 그것을 받은 남자가 코에서 삐질 흘러나온 코피를 대충 닦았다.
“잘 닦아. 대충하지 말고.”
하지만 그런 반응에도 뚱뚱한 남자는 입이 근질거리는지 서둘러 입을 열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정말 대단한 소식이 있다니까.”
“그게 중요하지 않다니, 뭔 소리야. 회비로는 문을 수리할 비용을 감당 못해.”
“맞아. 만화책 사기도 빠듯한데.”
“난 얼마 전에 젤다의 전설 사느라 빈털터리야.”
사람들이 투덜거리자 뚱뚱한 남자가 손을 휘적거리며 그들을 진정시키며 다시 말했다.
“중요한 소식이라니까.”
그런 말에도 동료들은 여전히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알아, 라퓨타 말이지? 그거 우리 다 봤다고. 네가 오히려 늦은 거지.”
“그래. 너도 그만 호들갑 떨고, 토론이나 해.”
“나 참, 노자키 쟨, 늘 저렇게 한발 늦다니까.”
그 말에 곧 노자키라 불린 뚱뚱한 남자가 허리에 손을 턱 하니 올리더니 콧방귀를 뀌었다.
“라퓨타는 나도 이미 봤거든.”
“오, 그래? 그럼 무슨 새 소식인데?”
“설마 갈포스 이터널 스토리 극장판 이야기는 아니겠지?”
“그것도 벌써 봤어. 사람 무시하지 마.”
“그럼 뭔 얘긴데.”
“애니메이션 이야기가 아니야. 바로 신작만화.”
“신작 만화? 뭐가 나올게 있나?”
그렇게 서로를 쳐다봤지만 대부분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본 노자키가 입 꼬리를 끌어 올리며 턱을 바짝 세웠다.
“역시, 이 소식은 몰랐을 거라 짐작했지.”
“허세 그만 부리고 어떤 소식인지 말이나 해봐. 별거 아니면 각오하고.”
그런 협박에서 전혀 기죽지 않던 노자키가 실실 웃으며 입을 열었다.
“써니의 신작!”
그 말에 모여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멈칫했다가 곧 벌떡 일어났다.
“뭐! 신작!”
“벌써! 그거, 확실한 정보야?”
“아직 소년 히어로 잡지에서도 홍보하지 않았는데,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그런 반응을 예상하기라도 했다는 듯 노자키는 여전히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팔짱을 꼈다.
“전에 우리 형 친구 중에 소년 히어로 편집부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다고 내가 얘기한 적 있었던가?”
“그런 얘기 한 적 없었거든. 아무튼 잔말 말고 얼른 얘기해봐!”
“그래, 얼른, 얼른!”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본론만 이야기 해!”
사람들이 벌떼처럼 일어나자 슬쩍 물러난 노자키가 빠르게 머리를 끄덕였다.
“알았어, 알았어.”
그래도 동료들의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다시 거들먹거리는 표정으로 변했다.
“이번 소년 히어로 합본 호 뒤에 나올 다음 잡지에서 신작에 대한 기사가 실릴 예정이래. 그거 편집부 직원들만 보고 외부엔 알려지지 않았다고 하더라.”
“자자, 사족은 그만하고.”
“죽고 싶냐!”
“알았어. 너무 재촉하지 마.”
그렇게 말하더니 목을 가다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이번 써니 신작은 모험 판타지라더라. 그것도 가벼운 느낌의.”
그 말에 모두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가벼운 느낌의 모험 판타지? 삼사라랑은 좀 많이 다르네.”
“그러게. 난 차기작이 엄청 암울한 내용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드래곤 퀘스트 같은 스타일?”
그러자 노자키가 손을 휘적거렸다.
“중세느낌의 판타지는 아니고, 1800년대에서 1900년대 초반의 과학력에 사막배경의 매드맥스 같은 분위기래. 뭐, 그렇다고 북두의 권 같은 느낌은 아니고. 메카닉 디자인 같은 경우엔 토리야마 아키라의 표지 그림 같은 느낌의 디테일한 스타일과 닮았고, 인물 캐릭터는 삼사라 캐릭터가 약간 순해진 느낌 같다고 하더라.”
“오, 묘하게 느낌이 좋은데?”
“글쎄, 난 잘 모르겠는데. 써니의 강점은 리얼함이잖아.”
“난 기대가 돼. 이번에도 텐겐과 써니가 합심한 작품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괜찮은 작품이 나올 거야.”
“야, 당연히 같이 작업했겠지. 남매인데.”
“모르지. 원래 남매가 잘 싸우잖아.”
“그것도 사람 나름이다. 애초에 이렇게 꾸준히 동업하는 걸 보면, 남매 사이도 좋은 모양이고.”
“그거야 우리 같은 팬들이 바라는 거지. 두 사람의 조합이라면, 뭔가 대단한 게 나올 것 같은 기대가 되니까.”
“벌써부터 신작에 대한 기대감이 술술 피어오르는데?”
“그 홍보기사 합본 호 다음에 나온다고 했지?”
“어. 그러니까 대충 일주일 정도 남았네.”
“아, 궁금하다, 진짜.”
“나도.”
모두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수긍한다는 듯 머리를 끄덕였다.
* * *
단체 피서를 다녀오고 나서 바로 시작된 휴가도 벌써 일주일이 지나, 오늘부터 작업을 시작하는 날이다.
나와 우리가족은 그동안 제주도를 다녀왔다.
물론 누나랑 경희는 대입학력고사 때문에 휴가지에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바닷가 근처에서 민박을 하며 보낸 일주일은 그런 대로 나쁘지 않았다.
어머니 빼고는 시골생활 경험이 없던 누나와 쌍둥이들도 모처럼 새로운 경험에 즐거워보였고.
아무튼 어제 돌아오고 나서는 휴가 후유증 때문인지 가족 전체가 축 늘어져 있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고.
당연히 오늘은 출근 날이라 일찍 나오긴 했지만, 소파에 늘어져 있었다.
그나마 선희는 도착했을 땐 피곤해 보이더니, 화실로 와서 그림을 시작하자 다시 싱싱한 화초처럼 생기가 넘친다.
쟤는 그냥 그림을 그리며 사는 게 가장 행복한 모양이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어시들이 한꺼번에 인사를 하며 화실에 들어왔다.
같이 들어오는걸 보니 오다가 만난 모양이다.
그런데 모두 우리 가족들처럼 피곤해 보이는 모습이다.
그러면서 화실에 들어와 자리에 앉자마자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아, 쉬는 게 더 힘들더라고요. 피곤하기만 하고. 그래도 뭐 재미는 있었죠.”
“저는 준모가 하도 졸라서 같이 우뢰매 보러 갔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죽는 줄 알았어요. 그래도 생각보다 재밌었어요. 준모도 좋아했고.”
“그거 요즘 남자 아이들이 엄청 좋아하더라고요. 준모 7살이죠?”
“네.”
“몇 달 후면 학교 들어가겠네.”
“전 그거 봤어요. 구니스. 인디아나 존스에 나오던 그 동양인 남자애 나오던데, 엄청 재밌더라고요.”
“저도 봤어요. 그리고 공포의 외인구단이랑 해리슨포드가 나온 위트니스도요.”
“해리슨포드면 인디아나 존스 주인공 맞지?”
“네. 맞아요. 스타워즈에도 나왔는데.”
“스타워즈는 안 봐서 모르겠다.”
“실버 오빠는 뭐 봤어?”
박소미의 말에 실버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난 아무것도 안 봤어. 그냥 부산 집에서 뒹굴 거리다가 왔어. 보고 싶은 것도 없고. 뭐, 굳이 보려면 화실에서 비디오로 보면 되니까.”
“그래도 극장에서 보는 거랑 비디오로 보는 건 다르지.”
“맞아. 느낌이 완전히 다르지.”
그 말에 실버가 얼굴을 찌푸렸다.
“작년에 서면에 있는 극장에 갔는데, 화장실 냄새가 어찌나 진동하던지. 그 경험 하고 나서는 절대 여름엔 극장에 안가.”
그 말에 모두의 표정도 같이 찌푸려졌다.
하기야, 지금 시대엔 멀티플렉스 극장이 없던 시절이라, 시설도 동네마다 제각각이니 저런 극장이 많은 것도 이해는 된다.
나도 작년 12월에 코만도를 보러 갔었는데, 문득 영화를 보다가 극장 천장을 봤더니 구멍이 숭숭 뚫려있을 정도로 낡아 있던 모습에 신기해하기도 했었다.
물론 영화는 단순한 스토리였지만 재미있었고.
아무튼 모두가 그렇게 휴가동안 겪은 일들을 이야기하며 떠들고 있을 때, 전화기가 울렸다.
그리고 전화를 받은 성준희가 날 불렀다.
“윤환아. 아카기 씨.”
전화를 받고는 서로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나자 지로가 본론을 꺼냈다.
- 어제 ‘머신건 잭’의 홍보 기사가 실린 소년 히어로가 발행되었는데요. 반응이 상당히 뜨겁습니다.
“그거 다행이군요.”
홍보를 위해 미리 보냈던 3화분의 원고를 가지고 편집했다고 하던데, 반응이 좋다니 한숨 놨다.
솔직히 삼사라와 다른 스타일이라 조금 걱정이 많았는데.
물론 아직 본격적인 연재를 시작하기 전에 속단하는 건 금물이지만.
- 그런데, 이번 홍보용 기사가 나가고 나서 의외의 일이 있었습니다.
“의외의 일이라뇨?”
- 게임회사에서 전화가 왔거든요.
“게임 회사요?”
- 네. 얼마 전에 ‘젤다의 전설’로 유명해진 곳 있잖습니까. 그 왜 슈퍼마리오 시리즈를 만든 회사 말입니다.
“닌텐도요?”
- 아, 네. 잘 아시네요.
“거기서 연락이 왔다고요?”
- 네. 거기서 이번 만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답니다. 이걸로 신작 게임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
이건 정말 예상 밖의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