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282화 (282/425)

머신건 잭 (5)

“아, 방학인데 기분이 축 처지네. 마음도 싱숭생숭하고.”

이른 아침.

어시들의 출근 전이지만 일찌감치 화실로 온 경희가 거실에 앉아 축 처진 얼굴로 투덜거렸다.

“원래 고3이 다 그런 거지.”

“그게, 아니라. 얼마 안 있으면 고등학교 생활도 끝이 난다고 생각하니까, 어쩐지 섭섭해서.”

“섭섭해? 힘든 게 아니고?”

“쬐금 힘들기는 해도, 역시 고등학교 생활은 즐겁거든.”

그렇게 말하더니 살며시 입 꼬리를 끌어올리며 웃는다.

“전에 있잖아. 오빠가 고등학교 가라고 했던 그 날. 그 이후로 가끔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어. 지금생각하면 당연한 것 같지만, 그전의 오빠는 좀 그랬잖아.”

그렇게 말하며 내 눈치를 살핀다.

그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도 가끔은 중학교 졸업하고 공장 취직하는 꿈을 꾸기도 해. 그러다가 깨면 안도하고. 나 이상하지?”

“별로.”

저 기분 알 것 같다.

나도 제대하고 나서 다시 군대 가는 꿈을 수시로 꾸었으니까.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어느새 고3, 그것도 1학기가 벌써 끝이 났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좀 그래서.”

뭔가 씁쓸한 표정이다.

그런 경희의 머리를 손으로 헝클었다.

“야, 나이도 아직 어린 녀석이 무슨 그런 노인네 같은 말을 해. 대학에 들어가서 낭만의 캠퍼스 생활도 경험해야지.”

그러자 경희가 헝클어진 머리를 손으로 얌전히 정리하며 웃는다.

“맞아. 이젠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는 거니까. 학비도 내가 번 돈이면 충분하고.”

“짜식이. 네 돈은 그냥 나중에 시집갈 때나 써. 너희들이랑, 누나는 내 돈으로도 충분하니까.”

“오호, 그럼 오빠 돈을 좀 팍팍 써볼까?”

그렇게 말하며 좋아한다.

그때 우리 그림을 그리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선희가 우리 둘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

“왜?”

“나, 경희랑 같은 대학 갈래.”

그 말에 경희가 화들짝 놀랐다.

“엥? 왜! 너 정도면, 가장 좋은 대학도 들어갈 수 있을 건데.”

“다른 곳은 관심 없어. 그냥 너랑 같은 곳에 갈 거야.”

그 말에 경희가 곧 인상을 팍 썼다.

“아, 진짜. 이렇게 되면 엄청 부담스럽잖아. 내가 너무 못해서 이상한 곳에 들어가면, 쌍둥이가 같이 망하는 거잖아.”

“괜찮아.”

선희의 대답에 경희가 버럭 소리쳤다.

“내가 안 괜찮아!”

그 모습을 보고 내가 한마디 거들었다.

“그럼, 뭐 죽도록 열심히 해야겠네. 안 망하려면.”

“히잉.”

울상이 된 경희를 보던 선희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망해도 괜찮은데.”

“안된다니까!”

“······.”

두 녀석들을 보고 있으니 웃음이 튀어나왔다.

“오빠는 웃지 마!”

“······.”

잠시 후 어시들이 화실에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네. 어서 오세요.”

사람들이 들어오며 인사를 하더니 곧바로 에어컨이 있는 곳으로 달려간다.

“와아, 시원해. 역시 여기가 천국이라니까.”

“멀리 휴가 갈 필요 없이 여기서 그냥 피서를 보내도 될 것 같아요.”

“그러게.”

“전 이번 주말부터 화실에서 지낼 생각이에요. 집이 너무 더워서 잠을 못자겠거든요.”

“그럼 나도 그럴까? 그럼 오늘 퇴근하면 옷가지를 좀 꾸려야 할 것 같네.”

“저도 그럴까요?”

어시들이 마치 수학여행이라도 가는 것처럼 들뜬 모습이다.

물론, 화실의 2층엔 빈방이 여럿이라 상관없다. 물론, 에어컨도 위층에 여럿 있고.

예전처럼 조그마한 화실에 옹기종기모여 잘 필요도 없다.

마침 초창기 어시들도 예전에 화실에서 모여 잤던 이야기를 수다스럽게 하고 있다.

“좁은 화실에서 자는데도 어찌나 행복하던지. 삼복더위에 시원하게 잘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엄청난 일이었거든.”

“지금도 그건 마찬가지죠. 저희처럼 여름이라고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주는 화실 거의 없을걸요.”

“맞아. 그런데, 지금은 너무 익숙해져서, 그냥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오늘은 무슨 날인가?

경희도 그렇고, 어시들도 다 예전의 추억을 이야기하는걸 보면.

* * *

이글거리는 날씨, 7월의 마지막 주에 발행된 주간소년 히어로에 실린 절망의 페르소나가 완결이 되었다.

마지막 화는 50페이지짜리의 많은 분량이어서 독자들을 행복하게 했지만, 동시에 제목대로 절망적인 마무리를 하는 바람에 논란이 되기도 했다.

팬들이 모이는 카페에서도 절망의 페르소나에 대한 이야기로 뜨거웠다.

“그냥, 죽음의 땅이 되어버렸다는 식의 결말이라, 뒷맛이 씁쓸해.”

“나도. 만화라서 그래도 한줌의 희망을 보여줄 거라 생각했는데.”

“어쩔 수 없지. 처음부터 원자력발전소의 폭발이라는 소재를 사용할 때부터 예견된 거잖아.”

“작가 본인이 그렇게 말한 적 있었나? 난 그래도 조금은 희망을 기대했는데.”

“대상은 방사능이라고. 발전소에서 계속 누출되고 있는 상황이니, 그것을 막지 않은 이상 결국 일본은 죽음의 땅으로 변할 테니까.”

“그래도 주인공이 그것을 막아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주인공도 죽었잖아. 나름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다했고. 하지만, 결국 혼자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게 문제였지.”

“와, 진짜 이거 보면 절대로 원자력발전소 사고는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라는 걸 세삼 느낀다.”

“그랬으면 좋겠지만, 작중에도 등장했지만, 바다 인근에서 엄청난 지진과 쓰나미로 결국 파괴된 거니까. 자연재해를 인간이 막을 수는 없잖아.”

“그래도 더 큰 피해가 생기지 않게 할 수 있었는데, 높은 녀석들이 일을 숨기고 멋대로 결정을 내려서 일이 더 커진 거잖아. 나도 회사를 다니고 있지만, 이거 충분히 그럴 듯 하다고 생각했을 정도거든.”

“맞아. 무서울 정도로 리얼해서, 정말 더 찝찝한 건 사실이지.”

“그래도. 너무 일찍 끝나니까, 아쉽기는 하다.”

“삼사라도 끝난 마당이니, 더 그렇지. 물론 파시엔시아도 있지만, 그쪽은 취향이 아니라서. 그나마 다크 프린세스는 삼사라의 외전격 이야기니까, 그거라도 보면서 위안을 삼아야지. 물론 월간지인 게 문제긴 하지만.”

그렇게 팬들이 모여 절망의 페르소나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완결의 아쉬움을 달래고 있었다.

그 시각 편집부에서는 써니의 신작에 대한 이야기로 시끌벅적 했다.

“와, 써니 선생님은 쉬지도 않네. 벌써 신작이 대기 중이라며?”

“네. 써니 선생님의 신작 때문에 따로 회의실에서 편집장님, 부편집장님, 그리고 아카기 씨랑 그쪽 팀장님이 몇 시간 동안이나 있었던 모양이에요.”

“그랬어? 언제?”

“모르셨어요? 어제 저녁쯤인데.”

“그래, 그럼 결론은?”

“뭐, 보나마나죠.”

“하기야. 써니, 텐겐 조합이라면 뭐.”

“그런데, 얼핏 듣기론 이번 작품이 엄청 재미있다는 모양이에요. 그리고 스케일도 엄청 크고.”

“그래? 네임이 꽤 긴 모양이지?”

“아마도 그런 모양이에요. 15화 분량 이상이라고 하던데.”

“그럼 최소 한 권 분량이 넘잖아.”

“그렇겠죠.”

“내용은 어떤 거래? 삼사라 비슷한 건가?”

“뭐, 듣기론 판타지 종류라는 것 같던데.”

그 말에 선배직원이 알 것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삼사라 비슷한 건가보네. 이번에도 좀 어두운 이야기려나?”

“그럴까요?”

“그렇겠지. 이번에 끝난 절망의 페르소나만 해도 현실적이면서 얼마나 어두운 얘기야. 아무래도 어둡고 사실적은 스타일로 자리를 잡은 모양이지.”

그 말에 후배직원도 납득한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겠네요. 그럼 이번엔 북두의 권 같은 스타일일까요?”

“글쎄. 그림 스타일은 전혀 다르지만,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직원들의 예상은 빗나갔다.

며칠 후 편집부 내에 원고의 일부가 공개되었다. 그런데 삼사라와 달리 가벼운 느낌의 스팀, 디젤펑크 스타일의 판타지이라는 사실에 직원들이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어? 삼사라랑 완전히 다른 느낌인데?”

홍보용으로 제작된 몇 페이지의 인쇄물을 보며 누군가가 말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일제히 그 종이를 보며 떠들었다.

“탱크도 은근히 아기자기하게 잘 디자인이 되었어요. 마치 토리야마 선생님의 만화 표지에 등장하는 장갑차 느낌이에요.”

“써니 선생님한테 이런 센스가 있었나? 여고생이 이런 메카닉까지 잘 그리면 어쩌라는 거야?”

“탱크에 사용된 선도 붓이라 묘하게 투박해요. 그러면서도 상당히 디테일하고.”

“상당히 실력 있는 어시들이 많다더니, 이런 느낌으로 표현이 가능하구나.”

그러다가 종이를 이리저리 살피던 누군가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거, 소년 히어로 속지로 들어가는 거예요?”

“그런 모양이에요.”

“와, 풀 컬러로 여섯 페이지라니, 이번에 편집부에서 작정하고 미는 모양이야.”

“그렇겠죠.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이 차기작을 기대하고 있으니까요. 덕분에 아카기 씨는 계속 바쁘다고 하더라고요.”

“요즘 아카기 씨. 눈 밑에 다크서클이 엄청 진하던데, 괜찮나?”

“아, 맞다. 전에 그 신입여직원은? 이름이 모모코라고 했던가?”

“맞아요. 이즈미 모모코.”

“걘 왜 안 보여? 아카기 씨 보조일 한다지 않았어?”

그 말에 후배 직원이 주변을 슬쩍 둘러보다가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다.

“아카기 씨가 거절한 모양이더라고요.”

“뭐? 일이 바쁘다며? 그런데 왜? 거기다 그렇게 예쁜데.”

“그야, 모르죠.”

“그럼 신입 걔는 어디 갔어?”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난 모양이더라고요. 디자인 잡지 쪽.”

“엥? 뜬금없이 그쪽엔 왜?”

“처음부터 만화엔 관심 없었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이쪽 일손이 부족해서.”

“그래서, 아카기 씨에게 보낸 거구나.”

“아뇨. 오자마자 아카기 씨 보조를 하게 해달라고 했다더라고요.”

“뭐, 우리 편집부에서 가장 잘 나가는 편집자니까, 당연하겠지. 아무튼 걔 없으면 다시 뽑는 건가?”

“그건 아닌 모양이에요. 요즘 카와다 씨가 틈틈이 돕는 것 같던데요.”

그 말에 선배직원이 깜짝 놀랐다.

“그랬어? 어쩐지 요즘 자주 보인다더라니. 그나저나 너무 부럽구만. 아카기 씨에겐 저렇게 미녀가 주변에 많아서.”

“그러게요. 저도 저렇게 일해보고 싶어요.”

후배직원이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얘기하자, 선배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나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담당인 선생의 레벨이 다르잖아. 우리도 써니, 텐겐 같은 선생을 담당하게 되면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르지.”

그 말에 후배가 어깨를 더 축 늘어뜨렸다.

“차라리 복권에 당첨되는 게 더 확률이 높을걸요.”

그 말에 선배직원이 머리를 끄덕였다.

“맞아. 그렇겠지.”

그때 후배가 머리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이상하네요.”

“뭐가?”

“이거요. 이거.”

잡지에 실리게 될 홍보용 인쇄물 몇 장을 살펴보던 후배직원이 특정 장면을 가리켰다.

그건 주인공 잭의 오른손이었다.

“이게 왜?”

“이쪽 손에 아까 기관총이 달렸었던 같은데, 아니에요?”

“어? 그러고 보니 그러네.”

다른 장면에선 오른손을 뻗어 기관총을 난사하는 장면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후배가 가리킨 장면에선 손이 멀쩡하다.

“아, 이거. 코브라에 나오는 그 사이코 건이랑 비슷한 모양이네.”

“그런데, 이 장면을 보세요.”

“어? 총이 다르네?”

“그렇죠? 총의 종류가 달라졌어요. 같은 기관총인건 맞는데, 아래엔 대포 비슷한 것도 달려있고. 마치 유탄발사기처럼 보이기도 하잖아요.”

“그러네. 이거 그럼 총도 바뀌는 그런 건가?”

“그런 모양이에요. 와, 이거 삼사라와는 다른 화끈한 화약무기 싸움이 많겠는데요.”

“뭔가 제목다운 느낌이네, 이거.”

“그러게요. 스토리만 받쳐주면, 다시 삼사라 정도의 인기를 얻을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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