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270화 (270/425)
  • 이렇게 막장일리 없다 (2)

    “아무리 권력을 유지하고 싶어도 나라를 통째로 소멸시키려고 생각하는게 아니라면 이건 좀······. 만화 속 이야기고 리얼하긴 하지만, 이건 미스라고 생각하는데.”

    “그래. 국민이 죄다 멍청이도 아닌데 아무리 연예인이라도 이런 광고를 받아들일 리 있겠냐고.”

    “그럴까? 세상의 모든 일이 상식대로 움직인다고 생각해? 일본만 봐도 이상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 거기다 지금 국회의사당에 있는 노인네들을 보라고. 그런 작자들이라면 충분히 이런 일을 벌이고도 남을 걸?”

    “그 노인네들이 무능한 거야 다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나간 거 아닌가?”

    “어쨌든 아무리 미래라고는 해도 현실적이라는 건 변함이 없어. 갈수록 이렇게 흥미진진해지니까 다음 주도 엄청 기다려져.”

    “하긴, 나도 그래.”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사람들이 이렇게 떠들며 대화하는 사이, 아직 그 대화에 끼어들지 않았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아, 진짜. 너무한데, 이러면?”

    “만화잖아. 비현실적이라고 너무 흥분하지······.”

    “그게 아니라, 이거 연재 두 권 분량에서 끝난데.”

    그의 말에 모두가 멈칫했다.

    “뭐?”

    “······.”

    “말도 안 돼!”

    모두 충격을 받았는지 비명에 가까운 음성으로 말했다.

    그리고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표정을 모자 쓴 남자 한명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거 어디에서 들었어? 혹시 헛소문 아니야?”

    말을 꺼냈던 남자가 소년 히어로를 들고는 천천히 흔들며 말했다.

    “마지막 페이지 바로 앞장을 봐.”

    그 말에 모두가 서둘러 소년 히어로의 페이지를 넘겨 살핀다. 그리고는 모두 경악했다.

    “미친 거 아니야! 이걸 두 권에서 마무리 한다고!”

    “악! 이럴 수가! 절대로 이런 건 받아들일 수 없어! 마음에 준비도 안되었다고!”

    “이렇게 재미가 있는데, 왜 그러는 거야? 이런 식의 진행이라면 훨씬 길게 가도 될 텐데.”

    그때 다른 한명이 그들을 진정시켰다. 그러고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이거 혹시 압력을 받은 거, 아니야? 요즘 TV광고 엄청 나오고 있잖아.”

    “아, 전력회사에서 하는 광고?”

    “그래. 원자력은 안전하다며 떠들던 그 광고.”

    “에이, 그건 말이 안 되잖아. 그럼 당장 연재부터 중단시키지 왜 2권이나 여유를 줘.”

    “아니지, 네 말대로 그렇게 중단시키면 말이 나올 테니까. 그러니까 빠르게 마무리하라는 걸로.”

    “오, 그럴 듯한데?”

    * * *

    “압력이요? 그런 거 받은 적 없습니다.”

    - ······!

    “그러니까, 그런 일 없다니까요. 그리고 요즘에 그런 거 하면 큰일 나요.”

    - ······!

    “죄송하네요. 그렇다고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는 말씀드릴 수가 없네요. 그럼, 네. 네.”

    전화를 끊은 직원이 찌푸린 얼굴로 말했다.

    “나 참, 정부 압력을 받았냐니, 벌써 이런 전화를 네 번이나 받았다니까요.”

    “어쩌겠냐. 재미있는 만화가 2권에 끝나면 이런 생각을 할만도 하지. 거기다 요즘 이거 민감한 이슈잖아. 얼마 전에 소련에서 발생한 큰 사고도 있었으니까.”

    “그래도 이건 아니죠. 이런 걸로 일일이 정부가 압력을 넣는다는 말이 돼요?”

    그 말에 선배 직원이 한심하다는 듯 바라본다.

    “너도 참 순진한 구석이 있구나. 아직 사회생활을 오래하지 않아선가?”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렇잖아. 그런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뭐야, 그럼 이런 일이 많다는 거예요?”

    “많다 뿐이야? 수도 없이 일어나는 일이야, 이런 건.”

    “······.”

    “사회생활 오래 해보면 알아.”

    “뭘요?”

    “세상엔, 상식적인 일보다 그렇지 않은 일들이 더 많이 일어난다는 걸.”

    “······.”

    선배의 말에 입을 다문 직원이 멍한 얼굴로 있을 때, 외근 나갔던 지로가 들어왔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왜 그런 표정들입니까? 무슨 일 있어요?”

    그 말에 선배직원이 머리를 끄덕였다.

    “압력 받았냐고 묻는 전화가 너무 많아서 말이지.”

    “아, 그거요? 죄송해요. 신경 쓰이게 해서.”

    “아니지. 이런 건 회사 일이니까, 아카기 씨가 미안할 필요 없어.”

    그때 우울해하던 후배직원이 머리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는 지로에게 다가왔다.

    그 때문에 지로가 흠칫 놀랐다.

    “왜 그래?”

    “아카기 선배, 정말로 고생이 많으시네요.”

    “응? 뭐가?”

    “실은 이런 저런 일로 압력을 많이 받으시죠?”

    “뭐? 갑자기 무슨 소리야? 내가 압력을 누구에게 받아?”

    그때 선배직원이 그런 후배의 목덜미를 확 끌어당겼다.

    “이 녀석, 뭐라는 거야? 그새 우울모드냐? 나랑 우롱차나 한잔 하자.”

    그렇게 말하며 그를 끌고 휴게실 쪽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보던 지로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곧장 전화기를 들었다.

    * * *

    내가 전화기를 든 채 황당한 음성으로 물었다.

    “협박이요?”

    - 네. 너무 빨리 끝날 거라고 예고를 하는 바람에 그렇게 생각하는 팬들이 많은 모양입니다.

    “햐, 그래도 저를 생각해주는 분들이 많아서 기분은 좋네요.”

    협박을 받은 건 아니지만, 충분히 가능한 얘기긴 하다.

    최근 일본에선 원전이 안전하다는 캠페인 방송도 많은 것 같으니까.

    아무래도 체르노빌사고 때문에 분위기도 흉흉할 텐데 원전이 위험하다는 내용의 만화까지 등장했으니, 당연할지도 모른다.

    물론, 내가 스토리에서 강조한 것은 원전의 위험보다는 사고 이후에 일어난 정부의 어처구니없는 대책이 주 내용이긴 하지만.

    - 그래도 이만큼 이슈가 커서 작품에 대한 관심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건 고무적인 일이죠.

    “그건 그러네요.”

    - 아, 그리고 이번 화에서 가장 팬들에게 주목받은 말은 ‘먹어서 응원하자’였습니다. 뭐랄까, 굉장히 교묘한 말이면서도 현실적인 말이라 저도 놀랐습니다. 마치 실제로 이런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면 참담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래도 현실이 아니라서 다행이긴 하지만요.

    미래에서 실제로 있었던 말이라 별 생각 없이 쓴 건데, 이게 또 과거의 일본인에게는 이렇게 받아들여진다는 게 놀랍다.

    그만큼 미래의 일본에서 벌어진 일이 비상식적이었다는 거겠지.

    - 아, 그리고 이번에 삼사라 결말에 대한 이벤트 말인데요.

    “비슷하게 예상한 사람이 있었습니까?”

    - 그게, 놀랍게도 그런 사람이 12명이나 됩니다. 비슷한 게 아니라 거의 똑같은 것 같았습니다.

    “어? 정말이요? 그렇게 뻔 한 결말이었나?”

    - 아뇨. 제 입장에선 예상 밖의 결말이었습니다. 이게 쉽게 떠올릴만한 결말은 결코 아니었거든요.

    내 생각도 그렇다.

    제법 고민을 많이 한 결론이었고, 또 화실 식구들도 결말이 예상 밖이라는 소리를 들었으니까. 특히 칭찬에 인색한 실버마저 결론이 예상 밖이면서도 마음에 든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는데.

    “그래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선물.”

    - 아, 그거요. 일단 편집장님에게 말씀드리긴 했는데. 뭐, TV는 좀 그렇고, 워크맨정도는 괜찮다고 하시니까요. 물론 TV는 추첨으로. 누굴 따로 선정하기가 어려워서.

    “그렇군요.”

    - 그런데, 혹시 말입니다만, 부탁을 하나 드려도 될까요?

    “말씀해보세요.”

    뭔가 긴장이 되는데?

    무슨 부탁을 하려고 이렇게 목소리가 진중한 건지.

    - 마지막 권에 사인을 해주셨으면 해서요. 괜찮을까요?

    “아, 그거요.”

    괜히 긴장했네.

    “그렇게 하도록 하죠.”

    - 네, 감사합니다. 실은 제가 팬 모임에도 나가고 하니까, 이런 분들의 특징을 좀 알고 있어서요. 상품도 상품이지만, 써니 선생님이랑 텐겐 선생님 사인을 굉장히 받고 싶어 하실 것 같아서요.

    “그럼 당연히 해야죠.”

    - 책은 카와다를 통해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친구가 가면 그때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요.”

    그렇게 대답했다가 문득 떠오른 것이 있었다.

    “그런데 말이에요.”

    - 네?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카와다 씨말인데요.”

    - 카와다가 왜요? 그 녀석 무슨 문제라도 일으킨 건······.

    “아니요. 그건 아니고······, 아 뭐 됐어요.”

    - ······?

    “이런저런 일이 많아서 저희 때문에 힘든 건 없나 해서요.”

    - 아, 그건 괜찮습니다. 본인이 좋아서 하는 거라니까.

    “그럼 다행이고요.”

    사장의 딸이면 뭐 어쨌다고.

    모른 척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게 몇 마디를 더 나눈 뒤 전화기를 끊었다.

    “이야, 이번 이야기는 진짜 장난이 아니다. 너 갑자기 일본이 싫어지기라도 했냐?”

    오랜만에 찾아온 이대봉이 최근 연재된 절망의 페르소나를 모두 읽었는지 혀를 차며 물었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그렇잖아. 이렇게 일본이 완전히 망가져버린 미래라니. 이걸 그냥 만화로만 받아들이기엔 너무 내용이 진짜 같아서 내가 일본인이면 마음이 착잡하겠다.”

    이대봉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과장 섞인 표정을 지어보였다.

    “만화를 보고 너무 현실로 받아들이면 곤란하지. 그렇게 말하면 멸망을 다룬 다른 만화들도 몇 있는데.”

    “그거랑 이건 다르지. 누가 봐도 그쪽 만화들은 상상이라는 게 느껴지잖아. 그런데 이건 좀 다르거든. 그리고 일본에서 전문가들이 이거 현실에서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라고 했다며. 그래서 이거 때문에 시끄러웠던 거고.”

    이미 일본의 상황을 다 전해 들었던 모양이다.

    아마도 중원요리왕 담당이 이야기를 해준 것일 테지.

    “멍청한 소리 하지마라. 암울한 미래를 그렸다고 일본을 미워한다니, 사이버펑크를 그리는 사람은 다 그런 생각을 한다는 거냐?”

    작업 중이던 실버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끼어들자, 이대봉이 쀼루퉁한 얼굴이 되었다.

    “그거랑은 다르다니까. 뭐랄까 진짜 그렇게 될 거라고 믿는 것 같은 느낌이 난다고.”

    뜨끔.

    예리한데?

    “세계관을 짤 땐 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만드는 거지. 그럼 일부러 구라처럼 보이게 할까봐 그러냐. 거기다 원래 윤환이 스토리가 현실감 있어.”

    그 말에 이대봉이 콧방귀를 뀌었다.

    “그림쟁이들은 모르는 이야기꾼의 감성이 있다고.”

    “감성은 개뿔이.”

    “진짜, 너는 나한테 뭐, 감정 있냐?”

    “네가 여자냐? 감정은.”

    “말장난하지 마, 망할 해적아!”

    “뭐야, 해적질 끝낸 게 언젠데, 아직 그런 소리를 하고 있어!”

    그런 두 사람의 다툼이 이제는 익숙한지 어시들은 그런 그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으며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때 요즘 사구의 지옥 콘티작업에 여념이 없던 박상식이 내게 말했다.

    “그런데 ‘먹어서 응원하자’ 그거 있잖아.”

    “그게 왜?”

    “그 연예인들은 정말로 원자력발전소 인근의 시골에서 생산한 음식을 먹은 거야?”

    “그래.”

    그 말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솔직히 나도 상식적으로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럼, 연예인들에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나?”

    “일어나겠지. 아무래도 애국심이 넘치는 사람도 있으니, 더 적극적인 사람도 있을 거니까.”

    “그럼, 그 사람은 어떻게 되는데?”

    “내부 피폭이 생기는 거지.”

    “내부 피폭이 뭔데?”

    “방사능이 몸속에 침투한다고.”

    “그럼······?”

    “뭐, 몸속 조직이 파괴되는 거지. 암세포도 증가하고.”

    내 말에 박상식이 입을 딱 벌렸다.

    “······.”

    그때 한참 실버와 싸우던 이대봉이 우리 쪽을 보며 낄낄거렸다.

    “저거 봐. 일본에 뭔가 감정이 있는 게 분명하다니까. 너무 막나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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