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269화 (269/425)
  • 이렇게 막장일리 없다 (1)

    모자를 푹 눌러쓴 남자가 깜짝 놀랐다.

    “토다 씨가 연락이 안 된다고요?”

    “그런지도 벌써 3주가 넘었는데요, 뭐.”

    키가 작고 배가 툭 튀어나온 중년의 남자는 여전히 귀찮다는 표정으로 담배를 입에 문 채 투덜거렸다.

    “뭐가 그렇게 바쁜지, 매일같이 출근하기가 무섭게 취재한다며 싸돌아다니더니, 결국 연락두절이에요.”

    “혹시 짐작이 가는 건 없어요?”

    “제가 그걸 어떻게 알겠어요. 일전에 편집장님이랑 크게 대판 싸우고 나서는 매일 혼자 조사한다며 설쳤는데. 어쩌면 다른 신문사로 옮겼을지도 모르죠. 예전에도 몇 번 다른 신문사에서 스카우트 하려했다는 얘기는 들었거든요. 만날 이상한 것만 취재 다니는 이상한 사람인데, 윗선에선 실력 있다고 추켜 세워주는 모양이니까.”

    뭐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가래까지 뱉으며 인상을 쓴다.

    그런 그에가 모자 쓴 남자가 머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알겠습니다. 바쁘실 텐데 시간 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지폐 몇 장을 남자의 주머니에 슬쩍 찔러준다.

    그러자 뚱뚱한 남자가 슬쩍 시선을 돌리며 모른 채 하더니, 곧 입 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 정도야 뭐. 아, 그런데. 그쪽은 토다 씨랑 무슨 관계요?”

    “치, 친척입니다. 집안 일 때문에.”

    “아, 그러시구만. 쯧, 하여튼 집안에 그런 꼴통들이 꼭 하나씩은 있지.”

    그의 말에 모자 쓴 남자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때 땅이 살짝 진동했다.

    부르르르르.

    근처 창문들이 살짝 떨어대자 뚱뚱한 남자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눈알을 데굴거렸다. 그리고 곧 그 진동이 멈추자 몸을 바로 세우더니 다시 담배를 한 모금 빨며 투덜거렸다.

    “젠장, 요즘 들어 더 자주 이 지랄이라니까.”

    그렇게 말하고는 모자 쓴 남자를 슬쩍 힐끔거렸다.

    “볼일 끝났으면 난 들어갈게요. 바빠서.”

    그렇게 말하며 물고 있던 담배꽁초를 바닥에 툭 던지더니 바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던 모자 쓴 남자가 약간 움츠린 자세에서 몸을 돌렸다. 그리고 곧 움츠렸던 몸을 반듯하게 세우더니 무표정한 얼굴을 들어올린다.

    ‘이걸로 실종된 기자가 모두 일곱. 역시 뭔가가 있구나.’

    그렇게 생각하고는 곧바로 걸어간다.

    그리고는 근처에 있던 공중전화 쪽으로 다가가 주변을 살폈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그가 전화기를 들어 거기에 뭔가 장치를 꽂더니 곧바로 번호를 누른다.

    잠시 후.

    상대방의 음성이 들리자 곧 입을 열었다.

    “토다 씨도 실종이에요. 이젠 더 이상 찾아갈 곳도 없는데.”

    - 그런가.

    전화 너머의 중후한 남자 감정 없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역시 정부의 소행이지 않을까요?

    - 아마도.

    “이젠 어떡하죠?”

    - 어쩌긴 일단 돌아와서 다시 대책을 강구해야지. 도쿄로 그냥 돌······.

    그때 폰부스 주변에서 소란한 싸움이 벌어졌다.

    “야 이 새끼야, 사람을 쳤으면 사과해야 할 거 아니야!”

    “뭔 헛소리야! 어깨를 친 건 당신이잖아!”

    “당신?! 이 어린 노무 새끼가!”

    주변이 소란스러워지자, 전화기 너머에서 물었다.

    - 뭐야? 갑자기.

    “전화박스 앞에서 싸움이 난 것 같아요.”

    - 싸움?

    “네. 그런데 아까 뭐라고 하셨죠?”

    그런데 그때 잠시 말없이 조용하게 있던 전화기 속 음성이 갑자기 커졌다.

    - 전화 끊고 빨리 그곳에서 벗어나!

    “네?”

    - 어서 빨······.

    그 순간, 방금까지 싸우던 남자 중 한명이 갑자기 전화를 걸고 있던 모자 쓴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의 손이 어깨를 살짝 스쳤다.

    푸슉!

    그런데 갑자기 피가 튀었다.

    돌아보니 남자에 손에 들려진 것은 커다란 칼이다.

    모자 쓴 남자가 인상을 팍 쓰더니 몸을 돌려 남자의 몸을 발로 퍽 차버린다. 그리고는 폰부스를 빠져나오자 이번엔 다른 남자가 달려들었다. 그의 손에도 방금 그 남자와 비슷한 칼이 들려있다.

    몸을 살짝 틀어 피해 내고는 곧장 어퍼컷을 날렸다.

    퍽.

    “크악!”

    몇 대의 이빨을 흩뿌리며 남자가 쓰러진다.

    두 사람이 쓰러진 사이 모자 쓴 남자는 서둘러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때 주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들 모두가 흉흉한 눈빛으로 뭔가 무기가 될 만한 것들을 하나씩 쥐고 있다.

    남자가 ‘젠장’이라고 중얼거리면서 사방을 둘러보는데 그때 낡은 승용차 한 대가 그들 사이를 덮쳤다.

    그리고는 모자 쓴 남자 앞에서 끽 하고 급정거를 한다.

    “타요! 어서!”

    여자의 음성이다.

    하지만 누군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모자 쓴 남자가 승용차의 조수석에 올라탔다.

    그러자 차의 뒷바퀴가 빠르게 회전하며 연기를 뿌리더니 곧장 그곳을 빠져나갔다.

    - To Be Continued -

    “부인과 뱃속의 아이를 잃은 남자의 사투라······. 이젠 정부로부터 쫓기는 테러리스트로 몰리니까, 더 긴박한 느낌이네. 그리고 가볍게 등장했던 남자의 변화도 이젠 슬슬 주인공다워지고 있고. 진실을 쫓던 남자가 테러리스트라. 그리고 모든 국민의 공적으로 몰린다니, 재미있네.”

    만화책을 보던 중년의 남자가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다음 편을 바로 펼쳤다.

    지금 그가 보고 있는 만화책은 잡지에서 같은 만화만 따로 잘라내 묶어놓은 엉성한 책이다.

    책이 너덜너덜해서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내용에 빠져 있으니 그런 것 따위는 어느 샌가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주인공 남자가 부인의 뼛가루를 뿌리고 나서부터는 한동안 폐인처럼 지내다, 그것이 방사능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이야기가 숨 쉴 수 없이 빠르게 진행된다.

    그러다보니 정신없이 이야기에 몰두하게 되었고, 어느새 넘겨가던 종이의 끝이 보이고 있다.

    “이거 생각보다 재밌네. 솔직히 삼사라는 내가 안 봐서 모르겠는데, 이거 보니까 그거도 괜찮을 것 같고. 음, 가만있자. 그런데 이거 제목이 뭐였지?”

    너덜너덜한 책을 살짝 돌려서 첫 페이지를 살핀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말끔하게 생긴 안경 쓴 남자가 답답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절망의 페르소나요. 아까도 여러 번 말씀드렸는데. 거기다 한편 끝날 때마다 제목도 나오고요.”

    “그래. 내용에 빠져 있느라 매번 나오는 제목도 읽지 않았군. 나도 참.”

    피식 웃던 그가 다시 남은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보며 안경 쓴 남자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정말로 아직 삼사라를 안 봤어요?”

    “뭐, 아무래도 그런 종류의 만화는 취향이 아니라서. 그런데, 지금은 흥미가 생기네. 이렇게 긴장감 넘치는 연출에 이만한 스토리를 쓰는 만화가라면 그것도 재미있을 것 같고.”

    그의 반응에 안경 낀 남자가 흥분하며 신나게 떠들었다.

    “그림이랑 스토리가 따로 분리되어 있는 작가들이에요. 작화는 써니, 듣기론 여고생이라는데 보시다시피 그림에 천재죠. 연출, 캐릭터묘사, 배경구도. 모든 게 완벽하다는 소리를 듣고 있어요. 그리고 스토리는 텐겐이라는 작가인데, 이 사람은 이거 말고도 꽤나 많은 작품에 관여했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대부분 히트했고요.”

    “오, 그래? 미다스의 손인가?”

    “맞아요. 금손 이래요. 금손. 만지면 다 히트작이 되어버리는.”

    “하하. 재미있는 조합이군. 한쪽을 그림천재에, 다른 한쪽은 스토리 천재라.”

    그 말에 안경 낀 남자가 손뼉을 짝하고 친다.

    “맞아요. 아무튼 삼사라도 꼭 보세요. 그림도 그림이지만 스토리가 엄청 좋아요. 만화가들 사이에서도 꽤 유명한가 보더라고요. 누가 그러던데, 만화가들의 교과서라고 하더군요.”

    “그래?”

    하지만 말과는 달리 별로 관심 없어 보인다.

    “요즘, TV 안보세요? 이 작품 때문에 시끌시끌하잖아요. 전문가들이 모여서 검증하는 프로그램도 있었고.”

    “그건 알아. 그래서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거니까. 얼마나 대단한가 싶어서.”

    그렇게 말하며 다시 만화에 열중한다.

    그러더니 어느덧 마지막 페이지를 모두 읽고 나자, 그가 다시 머리를 들어 돌아봤다.

    “더 없어?”

    “재밌죠?”

    “더 없냐고.”

    그 말에 화들짝 놀란 안경 쓴 남자가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게 다에요.”

    “······그래?”

    그렇게 말하며 아쉬운지 입맛을 다셨다.

    “애매한 순간이 잘도 자르는구만. 장사를 할 줄 아는 만화가네.”

    “그런데 혹시 관심이 가시는 거예요?”

    “지금까지는 뭐, 꽤 재밌네.”

    “진짜요?”

    “그래, 하지만 결론까지는 쭉 지켜봐야 하겠지.”

    그 말에 안경 쓴 남자가 놀란 표정이 되었다.

    저 말은 어쨌거나 계속 만화를 보겠다는 뜻이니까.

    아무튼 중년의 이런 반응을 확인하지 흥분이 되었다.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남자가 이런 식으로 관심을 보인 작품이 손에 꼽을 정도로 작았고, 그나마 그 관심을 받았던 작품들은 일본에서 크게 성공을 했으니까.

    바로 눈앞의 남자는 일본의 유명 영화감독인 마스다 다카시였다.

    다소 충격적인 소재를 주로 사용하는 그는 일본에서도 거액을 쏟아 붓는 대작을 만드는 감독으로도 유명했다.

    그가 만든 영화는 거의 제작비가 10억 엔 이상이 투입될 정도로 커서 그가 일단 작업에 돌입하면 모든 매체가 관심을 가질 정도다.

    그런 와중에 최근 1년 반 이상을 쉬고 있던 그가 다시 관심을 가진 작품이었으니 안경 쓴 남자가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혹시······. 도전해 보고 싶으십니까?”

    “글쎄······.”

    말을 그렇게 하지만, 관심이 있다는 표정이다.

    “그럼, 출판사랑 접촉해 볼까요?”

    “아니, 일단 완결이 되고나서 보자고. 이렇게 거창하게 시작해서 멍청한 마무리를 하는 작자들도 많으니까. 그리고 이런 만화들은 보통 수십 권씩 나올 테니까, 아직은 두고 보자고.”

    “네. 알겠습니다.”

    * * *

    남자가 소년 히어로의 신간을 들고 서둘러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익숙한 얼굴이 보이는 곳을 발견하고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벌써, 다 모여 있었네?”

    그러자 모여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서늘하다.

    그런 표정을 짓던 사람들 중 날카롭게 생긴 남자가 입을 열었다.

    “뭘 새삼스럽게 그래? 늘 네가 제일 늦으면서.”

    “에이, 이번엔 어쩔 수가 없었다고. 소년 히어로를 사느라······.”

    그때 모여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책자를 들어올렸다.

    모두 소년 히어로의 신간.

    그것을 확인한 남자가 어색하게 웃었다.

    “버, 벌써 다 구입한 거야? 모두 행동이 빠르네.”

    “네가 느린 거라니까.”

    “······.”

    어색한 표정으로 자리를 잡고 앉더니 곧바로 사람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그럼, 벌써 다 본거야?”

    “아니, 다 도착하면 보기로 했잖아. 그러니까, 너 때문에 아직 못 보고 있는 거지.”

    “아, 미안.”

    “그럼, 모두 보자고.”

    그렇게 리더 격 남자가 말하자 모두 잡지를 펼쳤다.

    그리고는 잠시 후 절망의 페르소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더니 모두 잡지를 덮었다.

    그런데 모두의 표정이 흥분으로 얼룩져 있다.

    “와, 마지막이 진짜 충격이다.”

    “그러게. 정부가 제대로 미쳤다, 정말.”

    그때 그들 중 한명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맞아. ‘먹어서 응원하자니, 이게 말이 돼? 이런 걸 광고방송 한다고? 완전 미쳤구나, 미쳤어.”

    실제로 벌어진 일이 아님에도 마치 그런 일이 진짜로 벌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모두가 충격에 빠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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