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들을 무시하지 마 (4)
도쿄 시내 한 서점의 만화부스.
그곳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신간 주간소년 히어로를 들고 웅성거리고 있다.
그런데 그 분위기는 썩 좋지 않았다.
“와, 이게 뭐야? 써니가 한국인? 그것도 파시엔시아의 작가인 텐겐도 한국인?”
“거기다 두 사람은 팀이래. 그러니까, 스토리는 텐겐이 담당, 작화는 써니.”
“그러니까, 파시엔시아도 결국 써니가 그렸다는 거야?”
“그래.”
“와, 소름. 그러니까 이런 사실을 몇 년간 잡지사가 숨겨왔다는 거였어? 진짜 실망이다. 한국인이었다니.”
“나도, 나도. 한국인이라는 걸 알았다면,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을 거야.”
“젠장, 난 이제 소년 히어로 안 볼래. 이것들이 독자를 우롱하고 있어.”
“맞아. 완전 실망이야. 삼사라도 써니도.”
“혹시 써니라는 그 여자도 실은 다른 사람이 대신해서 그린 거 아냐?”
“모르지. 이제까지 속이고 있었다면.”
삼상오오 모인 사람들 대부분이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나서며 말했다.
“속였다고는 할 수 없지. 이제까지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고.”
“숨겼잖아. 그게 속인거지.”
“그래도 실력은 인정해줘야지. 한국인이 뭐가 문제라는 건지 모르겠네.”
“너는 일본인 아니야? 무슨 소리를 하고 있어?”
“이게 일본인이랑 무슨 상관인데!”
“칫, 배신자구만.”
“뭐라는 거야?”
일부에서는 이렇게 다투는 모습도 보였지만, 대부분은 부정적인 반응이다.
그들 사이에서 소년 히어로를 든 채로 아무 말 없이 기사를 읽고 있는 여자가 있다. 그녀는 별다른 표정변화 없이 읽다가 책을 원래자리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생각보다 반응이 격하네. 놀라워. 그나저나 이거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네. 설마, 그 남자가 텐겐이라는 걸까?”
이런 식으로 다른 스캔들 잡지보다 한발 늦었던 건 있었어도, 본인에게 뒤통수를 맞은 건 처음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분하다는 건 아니다.
그저 이런 상황이 재미있을 뿐.
“언제, 시간나면 다시 찾아가봐야지.”
그렇게 말하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때 부스스한 머리를 한 남자 하나가 그녀 쪽으로 다가온다.
옷도 지저분하고 때도 꼬질꼬질해서 흡사 노숙자를 연상시키는 분위기다.
그런 남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더니 인상을 쓰며 좌우로 멀찌감치 물러난다.
그리고는 곧 몇몇은 코를 감싸 쥐기도 한다.
“윽, 뭐야? 이 냄새는······.”
“어맛, 나 코 떨어질 것 같아.”
남자가 여자에게 다가오더니 멈칫하고는 인상을 쓴다.
여자가 들고 있는 만화잡지를 보니 짜증이 밀려온 것이다.
“여기서 뭐합니까? 미네 선배. 또 만화 봐요? 삼사란가 뭔가 그거?”
“어? 나 여기 있는 거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긴, 선배를 내가 하루 이틀 보는 것도 아닌데.”
그 말에 여자가 웃었다.
“그래, 무슨 일?”
“무슨 일이긴, 오늘 하루카 추적하기로 했잖아요. 제 2의 마츠다 세이코라고 불리는 여자. 벌써 잊어버렸어?”
그제야 생각이 났는지 미네라 불린 여자가 아차 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래, 혹시 뭐 알아낸 거 있어?”
“뭐라는 거야? 오늘부터 다시 잠복해야지. 나 혼자 그걸 어떻게 다 조사해?”
“아, 그렇겠네.”
그 반응을 본 남자가 눈을 가늘게 뜨더니 묘한 표정으로 물었다.
“오늘따라 참 이상하네? 뭔 일 있어요? 설마 남자?”
“남자는 무슨! 헛소리 말고, 빨리 가기나 하자.”
그렇게 말하며 남자의 팔을 끌었다.
“흐흐, 뭐야? 그럼 내 생각하고 있었나?”
“좀 씻고 나서 그런 말 해. 주변에 있는 여자들 반응도 안보나?”
“난, 저런 여자들에게는 관심 없거든.”
“또 맞을래?”
“헤헤.”
“바보처럼 웃지 말고 빨리 가자고.”
“알았어요, 알았어.”
그렇게 말하며 미네에게 끌려가듯 따라간다.
* * *
며칠 후.
주간소년 히어로의 편집부.
최근 써니가 한국인이라는 기사가 나간 뒤로 평소보다 더 분주하다.
물론 처음보다는 덜 하긴 해도 아직 불만 섞인 전화가 오는 것도 여전한 편이고.
덕분에 직원들 사이에선 이번 일로 인해 불만을 가진 사람도 제법 많았다. 그리고 그런 불만은 지로에게 향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렇다고 눈앞에서 그 불만을 얘기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아무튼 그런 뒤숭숭하면서도 분주한 분위기에서 누군가 편집부 내부로 들어서며 큰 소리로 말했다.
“앙케이트에요, 앙케이트!”
그러자 순간 직원들이 그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평소라면 직원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종이를 받아 앙케이트 순위를 확인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요 며칠간 독자들의 항의 전화와 엽서까지, 그야말로 삼사라의 분위기는 최악이었으니까.
고로 이들의 궁금증은 과연 삼사라가 어디까지 추락했을까하는 점이었다.
거기다 덤으로 파시엔시아까지.
물론 그러한 사실이 결코 좋은 현상이 아니다. 하지만 사람의 궁금증이란 그런 것이니까.
누군가 가장 먼저 종이를 받아 그것을 확인하고는 눈을 크게 떴다.
“아! 삼사라······, 7위야!”
“진짜?”
“와, 엄청 떨어졌네?”
직원들이 놀란 표정으로 수군거렸다.
“한 주 만에 이렇게 심하게 떨어지다니, 그래도 3위권은 지킬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러게. 그만큼 독자들이 실망했다는 건가?”
“그럴지도.”
“그나저나 덕분에 진심의 남자는 오랜만에 1위 탈환인가?”
“2위인 에스퍼 존과도 제법 표차가 벌어졌어. 이전처럼 키도 선생님의 독주시대가 열리는 걸까?”
“와 부럽네. 테고시. 그런데 이 친구는 어디 갔어? 1위인데.”
“아마 키도 선생님에게 갔겠지.”
“순위도 확인 안했잖아.”
“뭐, 대충 예상하지 않겠어? 저번 주도 에스퍼 존보다 득표수가 훨씬 좋았으니까.”
“하긴.”
“어쨌건 그렇게 승승장구 하던 아키기 씨도 이젠 위기라는 건가?”
“성적을 확인하면 충격이 상당할 텐데.”
“쉿, 조용해.”
그때 인쇄공장에 갔던 지로가 편집부 내부로 들어오자, 모두 그를 힐끔거린다. 그런 분위기가 이상해 돌아보자 모두 헛기침을 하며 주변으로 흩어진다.
그때 직원 하나가 다가와 A4용지 하나를 내밀었다.
“앙케이트입니다.”
“아, 네.”
그렇게 말하며 종을 펼쳐본다.
그리고 지로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진다. 그런 모습을 직원들이 힐끔거리며 쳐다본다.
지로가 한참동안 앙케이트 순위표를 바라보다 곧 머리를 들었다. 그리고는 표정을 굳히며 전화기를 들었다.
*
지로의 말을 듣고 나서는 내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 ······앞으로 더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각오하고 있는 일인데요 뭐.”
- ······괜찮으신가요?
“당연히 안 괜찮죠. 하하”
내 웃음이 이상했는지 전화기 너머에서 아무런 말이 없다.
때문에 내가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그런 어색한 침묵이 잠시 이어지다 지로가 입을 열었다.
- 일단은 제가 삼사라연구회 같은 팬 모임에 직접 찾아가서 반응을 좀 더 살펴보고 전화를 드리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서 소파 등받이에 몸을 팍 기댔다.
그리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라고는 해도 일주일 만에 1위에서 단숨에 7위로 추락이라니, 좀 많이 충격 먹었다.
한국인에 대한 거부감이 많을 거라고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렇게 팔짱을 낀 채로 생각에 잠겨있자 모두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해있다. 내가 고개를 돌리자 모두는 다시 시선을 거둔다.
내 표정에 문제가 있었던 건가?
그렇게 큰 소리를 쳐 놓고 이런 표정으로 있으면 당연히 걱정을 하겠지.
나도 참.
그때 전화기가 울린다.
전화기 근처에 있던 경희가 수화기를 들었다.
그리고는 잠시 후 놀란 표정을 짓더니 곧바로 날 보며 말했다.
“오빠, 전화야, 전화.”
“누군데, 그렇게 호들갑이야?”
“드, 드래곤!”
“뭐? 드래곤? 그게 뭔데?”
“그러니까, 그 뭐냐, 드래곤······, 아! 그래! 드래곤볼!”
“드래곤볼?”
“응. 그 작가 선생님!”
“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내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전화기를 받았다.
*
며칠 후, 오후.
“저 왔어요! 선생님! 그리고 모두 다 안녕하신가요!”
“어서 오세요, 카와다 씨.”
정미자의 담당으로 한국을 자주 찾아오는 미치코였다.
그런 그녀를 보며 박수미가 반갑게 물었다.
“미자 언니 화실에 다녀오시는 건가요?”
“아뇨, 공항에서 바로 오는 길이에요. 여기 가져다 드릴 것도 있고 해서.”
“아.”
가끔 지로가 미치코를 통해 팬레터라거나 자료 같은 것을 보내오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어떡해요? 삼사라 순위 많이 떨어져서.”
미치코가 가방을 내려놓으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뭐, 어쩌겠어요. 어차피 겪어야 할 일인데.”
“그래도, 순위가 그렇게 떨어지다니. 앙케이트 순위가 잘 못 된 줄 알았어요.”
그렇게 말하더니 가방을 열심히 뒤적거린다. 그리고 곧 뭔가를 찾았는지 표정이 밝아지며 책자 몇 권을 꺼냈다.
“어? 그게 뭐예요? 만화잡지?”
“네. 지루할까봐 공항에서 산 건데, 여기 재미있는 게 보여서요.”
“재미있는 거요?”
“네. 이것 좀 보세요.
그렇게 말하며 가장먼저 소년점프를 내게 내밀었다.
“제일 마지막을 보세요.”
“마지막? 작가 후기 말입니까?”
“네. 거기 좀 보세요.”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마지막 장을 펼쳤다. 그러자 역시 그곳엔 많은 작가들의 후기가 보인다.
뭘 보라는 거지?
먼저 드래곤볼의 작가인 토리야마 아키라의 후기를 확인했다.
[써니 선생님, 텐겐 선생님. 힘내세요. 두 분의 국적이 어떻던, 저는 항상 팬입니다. 파이팅!]
아주 짧은 글이지만, 나도 모르게 등골이 짜릿해진다. 그리고 동시에 감격의 눈물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이다.
가끔 이런저런 일로 연락을 주고받기는 하지만, 이런 식으로 응원을 하니 또 기분이 색다르다.
내가 씨익 웃으며 그것을 보고 있는데, 그때 미치코가 나를 툭 치며 말했다.
“다른 것도 읽어보세요.”
“네?”
“다른 만화가 선생님들도 응원 글을 쓰셨으니까?”
“······?!”
깜짝 놀란 내가 다른 만화가들의 후기도 읽어봤다.
시티헌터의 호죠 츠카사.
[삼사라, 다크 프린세스 파이팅!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만화입니다. XYZ로 연락주세요.]
북두의권 하라 테츠오.
[넌 이미 최고가 되어있다! 힘내세요!]
근육맨 유데 타마고.
[친구란! 같이 웃어 줄 사람. 같이 울어 줄 사람. 기쁨도 슬픔도 함께 하며 같이 싸워 줄 사람. 친구란! 가장 귀한 재산이고 지극한 기쁨이며 애정으로 포장하고 완벽으로 줄을 맨 사람. 친구란! 하늘로부터의 선물. 파이팅!]
그리고 다른 만화가들 역시 우리에게 힘을 내라는 글이 쓰여 있다.
“······.”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워 할 때, 다시 미치코가 말했다.
“여기 다른 잡지의 만화가들도 응원의 글을 올렸어요. 보세요.”
“······.”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거지?
이거 진짜 실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