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192화 (192/425)

사상최악의 사고 (2)

놀란 니시다가 되물었다.

"방금 방송에서 123 이라고……."

확인하듯 말하는 아줌마의 말에 니시다의 얼굴색이 확 변하더니 곧장 전화기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허둥지둥 어딘가로 다이얼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돌리는 손이 몇 번 미끄러지며 다시 버튼을 누르고는 처음부터 다이얼을 새로 돌린다.

그러기를 몇 번.

제대로 전화가 된 것인지 신호를 기다리며 당황한 표정으로 수화기를 딱 붙인 채 서 있다.

그런데 그의 손이 그 순간에도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

그 와중에도 TV 속의 뉴스방송은 계속되고 있었다.

[……도쿄 하네다 공항을 출발하여 오사카로 향하던 일본항공이 점보 747 기가 군마 현 부근에 추락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자세한 사고 경위에 대해서는…….]

한쪽 귀에 하얀색 이어폰을 끼고 안경을 쓴 아나운서가 같은 상황을 여러 번 알려주고 있다.

아마도, 아직 자세한 사고 상황이 알려지지 않은 모양이다.

긴급 속보라 화면속의 방송국 상황도 분주하기만 하다.

아나운서 주위로 사람들이 이리저리 이동하며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있어, 중간 중간 말이 잘 들리지 않기도 한다.

화면 하단에는 '일본항공123편 점보 747 추락'이라는 자막이 커다랗게 쓰여 있다.

아나운서는 급하게 상황을 전달받고 방송을 하고 있지만, 정보가 부족한지 아까부터 같은 이야기만 계속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 화면 속엔 공항에서 찍은 사진으로 보이는 점보 747기의 사진이 계속 보인다.

계속 같은 말만 듣고 있으니 답답해서 곧장 채널을 돌렸다.

다른 방송국도 뉴스속보를 전하고 있다.

특집 프로를 방영하다 속보소식에 방송을 중단하기도 하고, 어떤 곳은 방송 아래 작은 화면으로 상황을 전하기도 한다.

그런데 아직 제대로 소식이 모두에게 알려지지 않은 탓인지 대체적으로 비슷한 내용을 이야기 한다.

그런 와중에도 탑승자의 숫자는 통일되지 못했는지 좀 다르게 말하기도 했다.

ANN 방송에서는 479명이라고 하더니, 다른 방송에서는 500명이 넘는다는 말도 있다.

아직 탑승인원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다시 니시다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전화가 아직 연결되지 않는지 계속 미간을 찌푸린 채다.

"……이를 어째, 이를 어째……."

근처에 있던 가정부아줌마는 연신 안전 부절하지 못하고 있다.

그때 선희가 일어나 아무 말 없이 아줌마의 손을 잡아준다.

경희도 걱정스러운지 그저 입을 손으로 가린 채 가만히 있을 뿐이다.

키도 역시 지금의 상황에선 그저 긴장한 얼굴로 말없이 TV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모두 심각한 분위기에 빠져 있을 때, 아직 통화가 연결되지 않는지 니시다가 다시 다른 다이얼을 돌린다.

이번엔 전화번호 수첩을 확인하며 다이얼을 돌린다.

아마도 다른 곳으로 전화를 거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한참동안을 그렇게 전화기와 씨름만 할뿐 결국 연결이 되지 않았다.

그 때문에 니시다는 답답하다는 표정이 된다.

그러면서도 계속 다이얼을 돌리며 신호를 기다린다. 하지만 그럼에도 상황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아. 이럴 땐 정말 휴대폰은 없는 시절이라는 것이 답답하기만 하다.

그리고 인터넷도.

이런 일이 생기면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나 사고현장 인근에 있는 사람들이 상황을 직접 영상으로 알려주면 그것이 인터넷을 통해 순식간에 외부로 알려질 텐데.

물론 세세한 사정이야 사고현장 수습이 될 시점에 알려질 테고, 하지만, 지금은 오로지 라디오나 TV를 통해서만 소식을 들을 수 있을 뿐이니.

아무튼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 있던 그때 어딘가에서 삐삐삐 하는 소리가 들린다.

순간 니시다가 자신이 허리에 달린 것을 확인한다.

삐삐다.

한국에선 아직 제대로 사용되지 않는 물건인데, 이곳에선 가끔 보이는 물건이다.

아무튼 니시다가 삐삐를 재빨리 확인하고는 곧바로 전화를 건다.

그리고 이번엔 금방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는지 빠르게 말했다.

"네, 니시답니다."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전화를 건 니시다가 누군가와 통화를 한다. 걱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곧 안도의 한숨을 쉬기 시작했다.

"아, 다행이군요. 네. 네."

그제야 가정부아줌마도 긴 숨을 내쉬며 안도한다.

잠시 후 통화를 마친 니시다가 잠시 휘청거린다. 긴장이 한꺼번에 풀린 탓인지 정신이 없어 보인다.

그리고 곧 정신을 추스르더니 아줌마에게 말했다.

"……비행기가 123 인건 맞는데, 다행히 다른 시간대였답니다. 아마 국내선이라 하루 동안에도 몇 번을 운행한 모양이에요."

그 말에 아줌마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다행이군요. 정말 다행이에요!"

"네. 이모가 걱정할까봐 전화로 연락을 줬어요."

"전, 비행기 이름이 같아서 어쩌나 했어요."

"저도요. 전혀 이동시간이나 방향을 몰라서……."

두 사람의 반응을 보고 나서야 우리도 긴장이 풀린다.

경회도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선회를 껴안기까지 한다. 비록 아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니시다가 절망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으니까.

나도 어찌나 긴장했던지 쥐고 있던 손바닥에 땀이 흥건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어쨌건 여객기가 추락을 한건 엄청나게 큰 사건이다.

특히 지금은 명절이라 가족들이 모여 방송을 보고 있는 가정이 상당수였을 테니, 갑작스런 소식에 충격이 얼마나 클까.

내가 살던 시절이나, 지금이나 이런 큰 사건은 늘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러고 보니 10여일 전에도 미국 여객기가 공항에서 제대로 뜨지 못하고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났다는 뉴스를 본 것 같은데, 또 이런 일이 벌어진 건가?

그 이전에도 7월에 러시아 항공기, 6월엔 인도항공기가 테러로 폭발한 사건까지 생각해보면 정말 올해는 무슨 마가 낀 건가 싶기도 하다.

그리고 문득 일본은 국내 이동시 주로 열차나 버스를 이용한다는 이야기를 다시 떠올렸다. 그 원인이 과거에 있었던 비행기추락이었다는 것도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고, 생존자가 거의 없었다고 했던가?

설마, 이게 그 사건인가?

나도 모르게 머리가 멍해진다.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그런 생각에 잠겨있는데 아줌마가 니시다에게 수건을 가져다준다.

니시다는 자신의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내며 계속 TV에 집중했다.

불행한 사건이긴 하지만, 일단 가족이 얽히지 않았다는 사실에 그저 안심하고 있는 모습이다.

다른 사람의 불행이 안타깝지만 가족이 아니라 안도하는 묘한 기분일까.

그런데 그때였다.

그동안 조용히 있던 키도가 극도로 긴장된 분위기가 그래도 조금 가라앉자, 그제야 입을 열었다.

"우리는 이만 돌아가도록 하자."

키도의 말에 내가 머리를 끄덕이고는 쌍둥이들을 불렀다.

"얘들아."

내 말에 쌍둥이들이 내 쪽으로 다가온다.

그때 니시다가 우리를 보며 말했다.

"제가 다시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아뇨. 그냥 집에 계세요. 놀라셨을 텐데."

"별일은 없었으니까요. 일단 세분부터 먼저 데려다드리죠. 키도 선생님도 같이 데려다 드릴게요."

그 말에 키도가 끄덕인다.

"그래."

그러고는 모두 니시다의 자택을 나섰다.

나서는 동안에도 우리사이엔 무거운 침묵이 흐른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와는 전혀 다른 공기곧장 니시다가 차고에서 승합차를 끌고 나오자 모두 올라탄다. 그리고 차문이 닫히자마자 곧바로 출발했다.

어두워진 밤.

거리엔 사람들이 한적하다.

그러다 시내에 들어서자, 거리 곳곳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 보인다. TV가 있는 곳에는 사람들이 모여 뉴스에 열중하고 있다.

곧바로 니시다가 라디오를 틀었다.

칙칙 거리는 소리, 빠르게 주파수를 조정하자마자 역시 뉴스가 흘러나온다.

[……아직 추락한 정확한 장소와 상황이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정부에서는……]

비행기가 레이더에서 사라진 시간이 오후 6시 30분정도였다면 벌써 한 시간이 훨씬 더 지난 시간이다.

지금 날씨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다가 그치기를 반복하는 중이고, 그런데 그때 무거운 침묵을 깨며 키도가 거친 음성으로 말했다.

"젠장, 추락했으면 빨리 구조대가 가야지, 뭘 이렇게 꾸물대고 있는 거야?"

키도도 나처럼 그런 날씨가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아직 뉴스에선 별 말이 없었잖아요. 지금 수색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지금 대책반도 만들어진 모양인데."

"벌써 한 시간 반 이상이 흘렀는데도 아무런 말이 없잖아. 이렇게 날씨가 좋지 않은 날 숲속은 사람이 견디기 힘든 곳이야.

어쩌면 생존자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지금은 일분일초가 급박한 상황이잖아."

"……너무 흥분하지 마세요."

"젠장!"

사실, 키도의 말대로다.

이런 대형사고의 경우엔 구조대가 얼마나 빨리 장소에 도착하느냐에 따라 구할 수 있는 생명의 수가 확연히 달라지니까.

그런데도 뉴스에서는 구조대에 대한 소식이 전혀 없다.

아직 위치를 정확히 몰랐다고는 해도 일단 가장 가까운 곳에서 헬기를 이용해 빠르게 수색부터 하고, 구조대를 투입하는 건 상식이다.

설마, 이런 큰 사건을 두고서 어영부영하는 건 아니겠지.

여름이긴 해도 비가 온 숲속의 추위는 상당할 테니까.

아무튼 그렇게 뉴스가 실시간으로 속보를 보내오는 동안, 어느새 스미레의 집 근처에 다다랐다.

얼른 승합차에서 내리고 나자 간단한 인사 후 곧장 출발한다.

스미레의 동네도 평소와 달리 조용하다. 낮에만 해도 명절분위기 때문에 사람들이 꽤 많이 보였는데, 아마도 뉴스로 인해 모두 집에서 뉴스를 보고 있는 모양이다.

스미레의 집에 도착한 뒤, 안으로 들어갔더니, 스미레의 가족도 모여앉아 심각한 모습으로 TV를 보고 있다.

스미레가 우리를 보자마자 말했다.

"큰일이 벌어졌어요."

"어, 알고 있어. 우리도 뉴스를 보고 들어온 거야."

"그러셨군요."

그런데 그때 방송에서 탑승자 중 유명인이 몇 명 포함되었다는 기사가 나온다.

그리고 이름을 확인하던 스미레의 가족이 경악했다.

이름은 사카모토 큐.

가수라는데, 꽤 유명한 사람인 모양인지 가족 전체가 그 이름에 엄청난 충격에 빠진 모습이다.

그런데 탑승객중 한국인도 6명이나 된다는 소식도 보인다.

내가 한국인이라서 그런 것인지 내게 이게 더 큰 일로 느껴진다.

아무튼 탑승객이 모두 524명이라는 구체적인 숫자도 확인되었다.

"이를 어째."

"……."

분위기가 너무 무겁다.

스미레의 가족들과 우리들은 너무나도 충격적인 뉴스 때문인지 밤이 깊어가도록 말없이 뉴스만 바라볼 뿐이었다.

다음날.

뉴스 소식이 궁금했던 스미레의 가족과 우리들은 아침 일찍 TV앞에 모였다.

아침인데도 뉴스는 계속 이어지고 있어서 TV를 켜자마자 비행기추락에 대한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항공 자위대의 헬기가 추락현장에 아침이 되여서야 파견되었다는 소식이다.

그 말은 듣자마자 스미레의 아버지가 흥분하며 말한다.

"뭐야? 이제 구조대가 파견되었다는 거야?"

"가족들은 잠도 못자고 기다렸을 텐데."

나도 아침이면 대충 사고현장이 발견되고 사망자를 수습하고, 혹시 있을 생존자들을 빠르게 병원으로 보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무리 날씨가 좋지 않은 밤이었다고는 해도 어제 키도의 말대로 구조대는 무조건 빠른 시간에 투입되었어야 한다.

방송에서는 그냥 사건에 대한 이야기, 탑승객이야기만 하고 있지만, 정부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이 없다.

아침에 배달된 신문에도 온동 추락한 비행기 소식이지만, 중요한 현장 소식에 대한 이야기는 빠져있다.

그래서인지 모두는 아침식사도 잊은 채 방송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현상사진과 영상이 TV를 통해 보여지기 시작했다.

많은 군인들과 카메라를 둘러맨 기자들이 모습이 분주하다.

산 중턱에 이리저리 부서져 흩어진 비행기의 잔해들.

그리고 잠시 후 생존자에 대한 소식이 올라왔다.

처음엔 생존자 숫자도 오락가락 하는 것 같더니, 곧 4명이라는 소식이 전해진 524명의 탑승자 중 생존자는 불과 4명.

이 충격적인 소식에 결국 할 말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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