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90화 (90/425)

< 삼사라, 바람을 타다 (1) >

- 개인적으로 아쉽습니다.

“뭐, 어쩔 수 없죠. 진심의 남자, 저번 편도 그렇지만 이번편도 장난이 아니던데.”

- 하지만 10표 차이밖에 나지 않았으니까요.

지로가 정말 아쉬운지 한숨을 푹푹 쉰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의 음성에서 그의 마음이 바로 느껴진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완패에 가깝다.

월등히 유리한 상황에서도 전혀 따라잡지 못하고 있으니까.

어째서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분명한건 키도가 제대로 각성했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지금의 키도라면 파시엔시아로는 이기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

도쿄 시내에 있는 2층의 한 카페.

이곳의 주인이 만화 연구회 출신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탓인지 만화에 빠진 오타쿠들에게 이곳은 유명한 곳이다.

그래서인지 내부는 만화관련 상품과 캐릭터 개러지 킷, 프라모델, 각종 브로마이드, 그리고 애니 전문잡지들을 비치해 두고 있다.

그런 곳에 십여 명의 인근 대학 만화연구회 모임이 창가 쪽 자리에서 시끄럽다.

아니, 이곳은 그런 사람들이 많은 곳이라 특별한 광경은 아니다.

아무튼 그들은 지금 현재 소년 선데이에 연재중인 인기 만화 아다치 미츠루의 ‘터치’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있었다.

“카즈야의 사망에 대한 복선은 이미 몇 번 나왔었어요.”

“그런 게 있었어?”

“뭐야? 몰랐어? 미나미가 '카즈야는 다른 사람을 너무 신경써줘서 오래 못 살 거야'라는 말 했었잖아. 그리고 그거 말고도 몇 곳 더 있어. 점을 쳤는데

이상하게 나왔다거나······.”

“제목에서도 나왔잖아. 터치라고.”

“그게 어째서 복선인데?”

“바통 터치. 자리가 바뀐다는 의미잖아.”

“아, 나 처음 알았다. 놀라운데?”

“나도. 설마 제목에 그런 뜻이 있었을 줄은 몰랐어.”

몇몇은 정말 놀랐다는 표정이 되었고, 나머지는 한심하다며 그들을 쳐다본다.

“그래도 카즈야의 죽음은 정말 충격이었다. 아다치 선생 작품을 계속 봐왔지만, 설마 러브코미디인 터치에서 주인공이나 다름없는 카즈야가 죽을 거

라고는 상상도 못했어.”

“난, 오래전에 밍키가 죽는 것을 보고 충격 받은 이후에 처음이야.”

“난 거신 이데온의 몰살 때가 가장 충격이었지.”

“야야, 갑자기 터치 이야기하다가 이야기가 빠지는 거야? 주제에 집중하라고!”

그렇게 한참을 토론하던 남녀대학생들이 잠시 후 터치에 대한 대화를 자연스럽게 마무리하고 곧장 신작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그리고 가장 먼저 나온 이야기는 최근 그들이 가장 관심 있게 보는 만화 ‘삼사라’였다.

“저번 화에서 등장한 상급 좀비 ‘바루나’에 대한 의견 있어?”

“앞전에 등장한 녀석이 인드라고 이번에 등장한 녀석이 바루나니까, 앞으로 상급 좀비가 여섯은 더 남았다는 뜻이 아닐까?”

“어째서?”

“인도신화에서 여덟 방위를 나타내는 신중 동쪽이 인드라고 바루나가 서쪽이니까. 남은 건 남쪽, 북쪽, 그리고 동남쪽, 동북쪽, 남서쪽과 서북쪽이 남

았거든.”

그의 말에 모두가 ‘오.’하며 감탄한다.

“야, 그런 건 어떻게 알았어?”

“인도신화를 좀 찾아봤지.”

그렇게 말하며 안경 낀 남자가 으쓱하며 콧대를 세운다.

그러다 누군가 새로운 이야기를 꺼낸다.

“그나저나 지금 삼사라 소년 히어로에서 순위가 너무 낮은 거 아니야?”

“그래.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좀 신경이 쓰이더라. 얼마 전에 다른 학교 연구회 애들이랑 모인 적 있는데, 거기서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어.”

“무슨 얘기?”

“삼사라가 소년 히어로에 연재되는 바람에 단명할지도 모른다고.”

“단명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순위가 낮으면 만화가 연재중단이 되잖아. 그래서 그거 막으려고 연구회 수십 곳에서 잡지 구입과 동시에 앙케이트 엽서를 무조건 보냈데.”

“아, 그래서 요즘 순위가 10위 언저리를 맴돌았구나.”

“그래. 안 그랬으면 진작 하위권으로 밀려서 사라졌을 거래.”

“설마, 그래도 그만한 만화를 연재중단 시키기야 하겠냐? 그래도 명색이 만화잡지사인데.”

그 말에 뚱뚱한 청년 하나가 흥분한 채로 벌떡 일어섰다.

“출판사를 운영하는 인간들이 그런 걸 신경 쓸 거 같냐? 그놈들의 무식함 때문에 사라진 명작이 하나둘 인줄 알아?”

“야야, 넌 또 왜 그렇게 흥분하고 그래.”

한사람이 나서서 그를 진정시킨다.

하지만 흥분한 남자는 멈추지 않았다.

“그냥 보고만 있으려했는데 요즘 삼사라 순위보고 있으니까 속 터져서 안 되겠어.”

“그럼 어쩌려고?”

“어쩌긴 앙케이트를 보내야지. 이제까지는 꼬맹이들이나 보내는 거라고 무시했는데,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야.”

“그랬어? 나도 이번부터 보내야지.”

“나도.”

***

“안녕하세요. 선생님.”

“어서 오세요. 어?”

지로가 커다란 박스를 두 단으로 얹은 채 화실에 들어오면 인사를 한다.

그런 그가 위태롭게 보여 박상식이 서둘러 박스하나를 받았다.

“아, 고맙습니다.”

“그 박스들은 뭡니까?”

내 질문에 지로가 박스를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네. 파시엔시아 팬들과 삼사라 팬들이 보낸 겁니다.”

작업 중이던 어시들도 지로의 말에 놀랐는지 일제히 머리를 번쩍 들어올린다. 그리고 모두의 눈이 초롱초롱 빛나기 시작했다.

선희는 언제 왔는지 쪼그리고 앉은 채로 박스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는 반짝이는 눈으로 날 보며 묻는다.

“이거 뜯어 봐도 돼?”

“그럼. 너에게 온 거나 마찬가진데.”

그 말에 지로도 머리를 끄덕인다.

“그럼요. 풀어보세요.”

선희가 살짝 미소를 머금은 채로 박스를 뜯기 시작한다.

그때 어시들도 다가와 선희가 뜯은 박스 속을 들여다보았다.

“어머, 이거 전부 편지에요?”

“도대체 몇 통이야? 백통도 넘겠는데?”

“453통, 그 박스에 든 건 모두 파시엔시아 팬들이 보낸 겁니다.”

지로의 설명에 모두 눈이 크게 떠진다.

선희는 편지 묶음 몇 개를 들어 올리더니 그중 하나를 뜯어 살펴보기 시작했다.

편지를 모두 읽은 선희가 그것을 테이블에 조심스럽게 내려놓고는 이번엔 다른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호기심에 다가온 어시들이 주변에 기웃거렸지만, 모두 일본어로 적혀있으니 그저 입맛만 다실분이다.

박소미가 선희에게 다가가 슬쩍 말했다.

“작은 선생님. 좀 읽어주시면 안돼요? 내용이 너무 궁금해요.”

“······?”

“우리가 일본어를 모르잖아요.”

그제야 선희가 이해했는지 곧바로 자신이 들었던 팬레터를 소리 내어 또박또박 읽기 시작한다.

“텐겐 선생님께. 안녕하세요. 저는 소학교 5학년인 쇼타라고 해요. 전 꿈이 축구선수······.”

“······.”

“······.”

몇 개의 편지를 더 읽어봤지만 전형적인 일본의 소학교, 중학교 아이들이 쓴 편지라 전형적이고 유치하다.

그래서인지 선희의 편지 낭독을 듣던 어시들이 어색하게 웃으며 선희에 말했다.

“아, 이제 괜찮아요. 소리 내어 읽으시지 않으셔도요.”

그렇게 말하며 슬금슬금 자기들의 자리로 물러난다.

아무래도 편지내용이 그래서 흥미가 떨어진 모양이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내가 웃음을 지었더니 선희가 날 보며 묻는다.

“왜, 웃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편지는 재밌냐?”

내 질문에 선희가 머리를 힘차게 끄덕인다.

“어, 재밌어.”

“그래?”

“응. 오빠랑 나에게 보낸 편지잖아. 나 이런 편지 처음 받아봐. 그래서 기분이 좋아.”

“아······, 그랬냐?”

짜식이 또 이 오빠의 마음을 울리고 있어.

그때 지로가 뭔가 생각났는지 내게 말했다.

“아 그리고 곧 단행본이 나올 시기가 다 되었으니까 표지 부탁드리겠습니다.”

“안 그래도 미리 구상해둔 표지가 몇 개 있습니다.”

“네?”

“선희야.”

내 말에 선희가 읽던 편지를 내려놓고는 자기 자리로 가서는 몇 장의 그림을 가져나온다.

컬러가 전문이 아닌 관계로 흑백상태의 표지 열장을 나에게 건네주고는 다시 편지가 쌓여있는 곳으로 가서 마저 읽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지로가 놀라 물었다.

“와, 열장이나 하셨어요?”

“나도 이렇게 많이 한 줄은 몰랐는데.”

그렇게 말하며 선희를 돌아봤다.

녀석 표지로 쓸 거 두세 장 정도만 그리랬더니 이렇게나 많이 그렸구나.

“이정도면 너무 아까우니까, 단행본 뒤에 스페셜 일러스트로 사용하면 되겠어요.”

“그래도 됩니까?”

“그럼요.”

그렇게 말하며 표지를 살핀다.

“와, 하나만 고르기 어렵군요. 선생님은 어떤 게 좋으신지.”

“저도 뭐 다 비슷한 느낌이라.”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주인공이 텅 빈 옥상에서 석양을 바라보는 장면이다.

뭔지 모를 묘한 느낌이지만 붉은 노을의 컬러가 들어간다면 묘한 여운을 줄 것이다.

“괜찮네요. 다른 분들은 어때요?”

어시들이 모두 모여 그림을 살펴보더니 결국 지로가 선택한 그림이 가장 많은 지목을 받았다.

“그럼 이걸로 하죠.”

***

미쯔다쇼텐 건물의 5층 휴게실.

그 곳에서 주간소년 히어로의 편집장 스도 싱고와 출판부장 사이토 진이 열을 올리며 소리치고 있었다.

“4만부 이상은 괜찮다니까.”

“야, 이 친구야. 4만부가 장난이야? 내가 지금 말한 2만부도 많다니까 그러네.”

“지금 삼사라 때문에 소년 히어로 판매부수 오른 건 네가 알려준 사실이잖아.”

“내가 언제 삼사라 때문이라고 했어? 20대 이상의 독자가 늘어난 것 같다고 했지.”

“그러니까, 그 말이 그 말이지.”

“뭔 소리야. 지금 그쪽 1위 작품이 진심의 남자잖아. 그럼 그 만화 때문일지도 모르잖아.”

“상식적으로 연재를 하자마자 그렇게 판매량이 팍 오를 수 있냐? 벌써 16만부라고 16만부.”

“그럼 삼사라 때문인 건 상식이고? 말 같은 소리를 해야지. 그리고 최근 삼사라 순위도 좀 올랐고 삼사라가 성인 취향에 맞기도 하니까, 그나마 2만부

라고 결정한 거야. 그러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야, 이게 나 혼자 결정이 아니라니까. 편집회의서 직원들하고 몇 시간이나 토론해서 내린 결론이야. 그런데 그렇게 단번에 반 토막을 내는 게 어딨어?”

“너희들끼리 회의하고 통보하면 내가 ‘예, 알겠습니다.’하고 그 결정대로 찍어내야 하는 거냐?

“넌 어떻게 말을 해도 그렇게 삐딱하게······.”

“너도 적당히 좀 해라. 전에도 뭐였지? 몬스터가 주류인 만화 그거. 음 아무튼 그게 될 거라고 난리법석을 떨어서 초동으로 3만부 찍었던 거 생각 안

나? 그때 결과가 어땠어? 어?”

출판부장이 편집장의 말을 단번에 자르고 들어오며 아픈 옛날이야기를 꺼내자 표정이 일그러진다.

“······그건.”

“젠장, 1만 2천부가 반품되고 그거 모조리 폐지처리 했잖아. 그 때문에 회사 손실 엄청 생겨서 그걸로 내가 시말서 쓴 거 몰라? 전무님한테도 끌려가

서 몇 시간이나 욕먹었어. 하마터면 오사카 쪽으로 발령 날 뻔 했다고.”

“또, 그 얘기냐. 그건 전에도 미안하다고 했잖아.”

그렇게 말하며 편집장이 출판부장을 슬쩍 외면했다.

솔직히 그 사건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있었으니까. 물론 그 때 부사장이 도와줘서 대충 무마되긴 했지만, 아무튼 그 일 이후론 툭하면 그

얘기를 꺼내는 덕분에 출판부장을 상대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요즘 잡지 분위기도 좋아지고, 판매부수도 엄청 늘었잖아. 그러니까 너무 조급해 하지 말라고. 그리고 영업부 쪽에서도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운 좋

으면 증쇄를 할지도 모르고.”

“······.”

***

- 삼사라 최신 화 순위가 많이 올랐습니다.

지로가 전화로 인사를 끝내자마자 삼사라 얘기를 꺼냈다.

그런데 순위가 올랐다고?

“몇 위인데요?”

- 4위입니다.

< 삼사라, 바람을 타다 (1) > 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