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1화 (5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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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는 또다시 다음 행위로 이어졌다.

한층 더 과격해진 몸짓으로 그녀를 가지는 그는 흡사 짐승 같았다. 그런 그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그녀 역시 짐승과 진배없다.

그녀를 돌려 눕힌 그가 다시 몸을 드리웠다.

등 뒤에서 거칠게 움직이는 그가 그녀의 허리를 어루만졌다. 거친 호흡이 귓바퀴를 적셨고, 땀이 흥건한 몸이 미끄러지듯 스쳤다.

견디지 못한 그녀가 침대로 허물어지자 그가 상체를 바짝 붙인 채 허리를 움직였다.

머릿속에서 폭죽이 펑펑 터지고, 온몸에 전기가 흘렀다 사라지길 몇 번이고 반복했다.

짐승의 포효처럼 거칠게 신음한 그가 나른하게 무너지자 해주의 몸도 그와 함께 가라앉았다.

겹쳐진 몸이 한동안 떨어질 줄 몰랐다.

호흡을 고르며 그녀의 몸을 매만지는 은호의 손길이 뜨거웠다.

그의 손에 제 손을 겹친 해주가 아직도 찌릿찌릿한 감각을 잊으려 애쓰며 나직이 말했다.

“씻을래요.”

“조금만 더 이러고 있다가.”

하지만 은호는 그녀를 쉽사리 놓아주지 않았다.

그에게서 떨어지기 위해 해주가 몸을 바르작거렸을 때다. 은호가 힘겹게 신음을 흘렸다.

“자꾸 움직이지 마. 그렇게 움직이면…… 자극이 엄청나.”

귓등까지 빨개진 해주가 움직임을 멈췄다. 온갖 야한 짓은 다 해 놓고, 사소한 말 한마디에 얼굴을 붉히다니 웃기는 일이다.

“조심해. 또 하고 싶어지니까.”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 해주가 얌전히 늘어졌다.

그 모습에 엷게 미소 지은 은호가 그녀의 귓등에 입을 맞추었다.

“1분만. 1분 뒤에는 놔줄게.”

약속한 일 분이 지나자 은호가 몸을 물렸다. 그러고는 그녀를 번쩍 안아 들었다.

“씻자. 씻고 밥 먹으러 나가자.”

* * *

호텔을 벗어난 시간은 저녁 7시 무렵이었다. 호텔에서 멀지 않은 식당으로 들어간 두 사람은 음식을 주문했다.

“많이 먹어. 체력 보충해야 해.”

붉은 기가 살짝 도는 방어회 한 점을 해주의 앞접시에 올린 은호가 빙긋 웃었다.

“뭘 더 시키려고 체력 보충을…….”

“하루 반을 굶었어. 죽지 않으려면 체력 보충해야지. 시키긴 뭘 시켜.”

그의 말에 입술을 볼통하게 내민 해주가 방어회를 삼켰다. 오물오물 예쁘게 먹는 모습에 다시 웃음을 흘린 은호가 한 점을 더 건넸다.

“그건 어차피 굶어도 잘만 하는데 뭐.”

“이젠 안 할 거야. 짐승 같아.”

해주의 하얀 얼굴이 붉게 물들어 갔다.

그 모습이 예뻐서 빙긋 웃은 그가 회를 한 점 입에 넣으며 그녀를 불렀다.

“해주야.”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그가 계속 웃고 있다. 해주는 아까부터 계속 예쁘고.

“네가 날 거부할 수 있을 것 같아? 절대 거부 못 해.”

일종의 확신이었다. 아니, 자신이랄까.

그런데 해주는 그런 그의 말이 썩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다.

“왜요?”

미간을 좁히고서 이유를 묻는 그녀가 날을 바짝 세웠다.

“내가 당신 사랑한다고 해서요?”

그의 말이 그녀의 자존심을 건드린 모양이다.

“사랑은 하지만, 복종은 안 해요.”

도도하게 턱을 들어 올린 그녀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은호가 다시 웃었다.

“사랑과 별개로, 네 몸이 날 원하잖아. 아주 예민하게 하나하나 다 반응하잖아.”

그러자 대번에 얼굴이 빨개졌다. 아니라고 펄쩍 뛸 줄 알았는데, 나긋하게 반박했다.

“사랑하니까…… 그런 거죠.”

그녀가 말하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어째선지 가슴 한편을 간지럽혔다.

“하나만 묻자.”

젓가락을 내려놓은 은호가 테이블에 팔꿈치를 올렸다.

“우리 관계에 있어서, 사랑이 중요해?”

질문을 던지는 은호의 표정이 사뭇 심각했다. 질책하는 건 아닌 듯해 안심한 해주가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중요하다기보다는 그냥 자연스러운 거니까요.”

그를 사랑하는 그녀의 마음은 물이 높은 곳에서 아래로 흐르듯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첫눈에 반했고, 기꺼이 첫사랑으로 인정했다. 그런 그와 결혼했고, 3년을 함께 보냈다. 이젠 그에게 몸까지 던졌으니 사랑하지 않을 재간이 없다.

“불편하면 돌아가요. 숨기는 것도 버거우니까.”

묘하게 어긋나는 은호의 표정을 바라보며 마음을 굳힌 해주가 말을 이었다.

“회사도 그만뒀고, 이혼도 요구해 뒀어요. 당신 부모님께는 미움받게 생겼고, 난 어차피 막다른 길이야.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내 맘대로 살 거예요.”

선전포고라도 하듯 말을 마친 해주가 방어회를 집어 입 속으로 욱여넣었다. 오물오물, 입술을 꼭 닫고 볼을 움직이는 게 예뻐서 은호가 엷게 웃었다.

“불편한 거 아니야. 궁금해서 그래.”

행여 체할까, 컵에 물을 채운 은호가 해주 앞으로 내밀었다. 해주가 얼떨결에 컵을 받아 들자 마시라며 눈짓하고는 말을 이었다.

“네가 말하는 사랑이라는 게 과연 뭔지.”

궁금했다. 지해주가 생각하는 사랑의 정의. 그건 도대체 뭘까.

“그건 변하지 않는 건지. 그 사랑이라는 놈이 널, 그리고 날, 갉아먹지는 않을는지. 궁금해.”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운 은호가 심각하게 말하자 해주의 얼굴도 점점 굳었다.

“왜 그렇게 사랑에 부정적이에요?”

3년 전, 그가 결혼을 처음 제안했을 때부터 묻고 싶었던 질문이다.

그를 첫사랑으로 간직하고 있는 해주에게, 그에게 첫눈에 반해 버린 해주에게, 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에게 마음이 설레는 해주에게, 은호는 무척이나 잔인한 말을 던졌더랬다.

[우리가 하는 계약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조는 이거야. 사랑이라는 감정을 철저히 배제한다.]

[그게 무슨……?]

[사랑은 안 돼. 날 사랑하지 마, 나도 널 사랑하지 않을 테니까.]

심장이 산산이 조각나는 기분이 들었지만, 애써 감정을 숨겼다.

“내가 아는 사랑은…….”

그때는 묻지 못했던 이유를 이제야 물었고, 그의 대답을 듣게 되었다.

“쉽게 변질되고, 불규칙적이고, 무자비한 희생을 강요하고,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하는 가학적 화학반응이지.”

귀를 의심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사랑이라는 것을 이런 식으로 재단할까.

당황으로 물들어 가는 해주에게 은호가 또 한 번 훅을 날리며 들어왔다.

“내가 널 두고 그딴 걸 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 중이야.”

놀란 해주가 방금 집어 들었던 방어회를 놓치고 말았다.

“내가 아직까지 여기 있는 걸 보면, 회사보다 널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건 틀림없어.”

해주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지금도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다. 일 중독자 차은호가 여기 있다니. 미친 듯이 달려 간신히 부회장 자리에 앉았는데, 여기서 도대체 뭘 하는 건지.

“그러니까 돌아가라고 했잖아요.”

돌아가서 당신 자리를 지켜요.

하지만 뒷말을 잇지는 못했다. 은호가 그녀의 입에 방어회 한 점을 물려 주었기 때문이다.

“안 돌아가. 말했잖아. 네가 더 소중하다고.”

미간을 슬쩍 좁힌 은호가 진담인 듯 아닌 듯, 모호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못다 씹은 회를 꿀꺽 삼킨 해주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기뻐해야 해요?”

앙큼하기 짝이 없는 질문이었다. 이미 심장은 기쁨을 넘어서 폭주하고 있는데 말이다.

“기뻐해 주면 기쁘고.”

젓가락을 내려놓은 은호가 뭉근한 눈빛을 그녀에게 보냈다. 그러고는 무감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말해 봐. 이게 사랑이야?”

“당신 마음을…… 내가 어떻게 알아요.”

대답하는 해주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입 안이 바짝 마르고 목 언저리가 빠듯하다. 차은호가 사랑을 논하다니.

“네가 울면, 가슴이 아파.”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가 그녀의 심장을 움켜쥐기라도 하는 듯 가슴 가운데가 저릿했다.

“네가 웃어도 가슴이 아파.”

까만 눈동자가 평소보다 한층 짙은 색을 발하며 그녀를 차분히 담아냈다.

“네가 눈앞에서 사라져도 가슴이 아프고, 나타나도 가슴이 아파.”

그의 눈동자는 텅 빈 듯 공허해 보이면서도 온갖 감정이 얽혀 있는 듯 복잡하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고, 알면 알수록 더 알고 싶어.”

잔뜩 긴장한 해주가 마른침을 삼켰다.

온몸의 세포가 아우성을 치기라도 하는 듯 솜털이 일어나고, 피가 빠져나가기라도 하는 듯 아득한 기분마저 든다.

어쩔 줄 몰라 달싹이는 해주의 입술을 은호가 지그시 바라보았다.

“야하게 말해 볼까?”

테이블 쪽으로 상체를 바짝 기울인 은호가 한쪽 입술을 비스듬히 말아 올리며 은밀하게 속삭였다.

“회사 따위 그만두고 너랑 호텔에 처박혀서 섹스나 하며 살까, 고민 중이야.”

무슨 말을 하나 했는데.

붉은 기가 해주의 뺨을 물들이며 빠르게 번져 나갔다.

“네 입술을 잘근잘근 씹고 싶어. 쇄골에 이를 박아 넣고 내 흔적을 깊이 새기고 싶어.”

귓등까지 빨개지는 모습을 눈에 담은 은호가 좀 더 짓궂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터지도록 주무르고, 깊게 박…….”

순간, 손을 뻗은 해주가 그의 입을 막아 버렸다.

“미, 쳤나 봐.”

미치지 않고서야 차은호가 이런 난잡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질 리가 없다.

“응. 미쳤어.”

제 입을 가린 해주의 손을 은호가 살며시 거머쥐었다. 그러고는 그녀의 손바닥에 입술을 꾹 눌렀다.

그 행위가 지독히도 야해서 해주는 발가락 끝까지 힘을 주며 어깨를 웅크렸다. 그러지 않았다면 아마 신음을 흘렸을 것이다.

“말해 봐, 해주야.”

입술을 떼지 않은 은호가 시선만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까만 눈동자가 찐득한 늪이라도 되는 듯 그녀를 빨아들였다.

“이게 사랑이야? 이 미친 마음이 사랑인 거야?”

그의 숨결이 닿아 간질거리는 손바닥을 빼내지도 움키지도 못한 채 얼어붙은 해주를 은호가 집요하게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맥이 뛰는 손목에 다시금 입을 맞췄다.

“내가 너 사랑하는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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