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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의 마리오네트-111화 (111/162)
  • 111화

    왜 울었냐고? 음.

    “별거 아니에요. 그냥 악몽?”

    그래.

    이제 향수병이라고 스스로를 속일 수는 없겠다.

    신전으로 돌아가는 건 내겐 끔찍한 악몽이었다.

    바깥 생활이 너무 적성에 맞았던 건지, 내가 실은 사람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건지.

    그러나 인정한 것과 별개로 언젠가 신전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은 여전했다.

    그걸 생각하면 당장은 암담하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니까.

    “또 울려 그러네.”

    “아닌데요.”

    “악몽을 꿨다고 그렇게 울어요?”

    “내가 눈물이 많아서 그래요.”

    “전엔 눈물이 없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게 말한 적 없는데요. 나 없는 새 누굴 만나고 다닌 거예요?”

    나는 일부러 크루엘로에게 눈을 흘겼다.

    그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방심한 틈을 타서 공격!

    “그러면 크루엘로는 여기 왜 왔어요? 이번에야말로 나를 암살하려고?”

    내게 돌아온 영혼 조각은 나를 찾아오기 전까지만 해도 크루엘로의 곁에 있었다.

    그래서 그의 최근 행보도 어렴풋이 엿볼 수 있었다.

    그래, 비가를 되살리려던 그 일 말이다.

    당연히 그게 성공했을 리는 없다.

    문제는 부활에 실패한 크루엘로가 왜 이리로 왔냐는 것이다.

    설마 내가 그 타이밍에 쓰러진 걸로 의심하는 건!

    너무 앞서 나간 생각이지, 아무리 내가 이야기 신의 신도라고 해도 말이다.

    “장례식장에 금방 돌아가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늦어졌더라고요. 혹 열쇠를 찾았나 물어보러 왔어요. 워낙, 긴급한 일이잖아요.”

    거짓말쟁이.

    나도 모르게 눈이 가늘어졌지만, 일단은 순순히 답했다.

    “못 찾았어요. 다른 사람인 척 네 번이나 헌화했는데도 없더라고요.”

    당연하다.

    열쇠는 수년도 전에 크루엘로의 손아귀에 들어갔으니까.

    그걸 넘겨준 게 다름 아닌 나라는 점에서 어디 따질 수도 없었지만.

    “그래서 말인데요, 혹시 열쇠가 에덴한테 있는 건 아닐까요?”

    “에덴이요?”

    “네. 제가 귀가하기 직전에 깨어났는지 장례식장에 왔더라고요. 한 번 만나 보면 좋을 것 같은데.”

    자연스럽게 화제를 에덴으로 끌고 가면서도 회의감이 일었다.

    지금 뭘 하는 건지.

    정확히 내 어떤 기억이 크루엘로에게 전달됐는지는 모르겠으나, 이후의 행적을 보면 그가 에덴을 믿지 않게 된 건 분명했다.

    그리고 나 또한 에덴이 검은 뱀의 배후라는 걸 안다.

    서로가 다 아는데도 의심받지 않으려고 빙빙 돌려 말하려니 답답해 죽겠다.

    침묵하란 계시만 아니었어도 에휴.

    “에덴이라면 지금 대신전에 있어요. 만나긴 힘들 거예요.”

    “네?”

    “이번 일로 지병이 악화된 모양이더라고요. 대신관이 셋이나 붙어 있다는데도 이번 주를 넘기긴 힘들 것 같다고 들었어요.”

    나는 가만히 눈가를 찡그렸다.

    그가 정말로 아플 리도 없는데, 대신관이 그렇게나 붙었다니 배알이 꼴렸다.

    숨은 사정은 차치하더라도 네크로맨서 수장의 자식한테 그게 말이나 될 법한 대우인지.

    “하는 수 없죠. 그러면 공작저 내 에덴의…….”

    뺙.

    “뺙이라도……. 엥?”

    거처라도 뒤져 볼 수 있겠냐.

    말하려던 내용은 그랬는데 애먼 단어가 끼어들었다.

    고개를 내리니 동글 넓적한 뱁새가 나를 반겼다.

    뺙!

    “……볍씨?”

    상대가 피아니시모라니 기척을 못 느낀 이유는 알겠는데 얘가 왜 내 침실에?

    잠깐만.

    피아니시모가 여기에 왔다는 건 그 주인도……!

    머릿속에 종이 울린 순간 벌컥 문이 열렸다.

    옆에 크루엘로 있는데!

    나는 휙, 하고 고개를 돌렸으나 옆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빠르다!

    “시오라!”

    나는 되도록 자연스럽게 고개를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문을 열어젖힌 사람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정확히는 ‘사람들’이라고 해야겠다.

    밤이라 그런지 결 좋은 은발에 흰 얼굴들이 꼭 달이 두 개 뜬 것처럼 보인다.

    나는 되도록 뻔뻔하게 손을 흔들었다.

    “좋은 밤이야, 둘 다.”

    “깨어났으면 깨어났다고 말을 해야 할 거 아냐!”

    “아니, 너무 새벽이라서. 걱정했어?”

    “그럼 안 하게 생겼어?”

    미뉴엣이 짜증을 토해 냈다.

    화를 낸다면 가보트일 줄 알았는데.

    “갑자기 전조 증상도 없이 애가 넘어가는데, 의사를 부르든 신관을 만나든 이상 없다는 헛소리만 반복하고.”

    “그뿐이냐. 저택에 데려다 놔도 의식이 없어서 대신전에 가려고 했더니, 이미 대신전은 급하게 돌보는 환자가 있어서 안 된다잖아.”

    “그래서 또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아니, 불 좀 켜고 얘기해.”

    미뉴엣이 몸소 등을 켰다.

    침실 안이 환하게 물들었다.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빛에 적응하지 못하고 나는 눈을 찡그렸다.

    그러나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너……. 울었어?”

    그렇네, 얼굴을 닦았다고 해도 티가 나겠지.

    나는 눈을 굴리며 변명을 찾다가 좀 전에 쓴 걸 재활용했다.

    “으으음, 악몽을 좀 꿔서.”

    “무슨 악몽을 꿨길래 눈이 붕어가 되도록 우냐.”

    “가보트가 죽는 꿈이었어.”

    “뭐!”

    놀리는 게 얄미워 지어 낸 말에 가보트가 떡하니 입을 벌렸다.

    재밌다.

    “감동적이었지. 언제나 겁에 질려 호들호들 떨던 가보트가 주변 사람들을 지키고 희생해 죽는 꿈이라니 다시 봤지 뭐야.”

    “난 겁 없거든!”

    “너만 그렇게 생각할 거야, 바티.”

    “야, 미뉴엣!”

    “그래서 왜 울었는지는 기어이 말할 생각이 없단 거지.”

    “아니, 진짜 별것도 아닌, 잠깐만.”

    저게 뭐람.

    나는 미뉴엣의 왼손을 덥석 붙잡고 끌어당겼다.

    “남 말 할 처지가 아닌데? 미뉴엣, 너 손등에 이게 뭐야?”

    “아, 이거.”

    작고 동그란 흔적이 두 개.

    피가 비치거나 멍이 난 건 아니어도 마치 뱀의 잇자국처럼 보이는 상처였다.

    “아까 장례식장에 다녀오니 이렇더라. 어디 찍힌 모양이야.”

    “뱀한테 물린 거 아니고?”

    “독 검사도 해 봤는데 이상 없었어. 지금이 내 걱정할 때야?”

    미뉴엣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지만 아무래도 찝찝했다.

    하필이면 그것이 뱀의 흔적을 닮아서 그랬다.

    원래 뱀을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겪은 일들만 봐도 내 기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막 시오라의 몸에 돌아온 상황에 무리하면 안 되겠지만.

    그래도 조금쯤은 괜찮지 않을까.

    나는 멋대로 판단하고 성력을 끌어 올렸다.

    그리고.

    “우웨엑!”

    “시오라!”

    피를 토했다.

    한 번 나갔다 왔다고 몸이 아주 누더기가 됐군.

    그래도 미뉴엣의 손등에 성력을 퍼부었으니 의식을 잃으면서도 안심할 수 있었다.

    ***

    그 밤, 나는 커다란 뱀한테 온몸이 돌돌 말려 잡아먹히는 꿈을 꿨다.

    악몽, 악몽 운운했더니 진짜로 악몽을 꿔 버렸다.

    그리고 그런 꿈을 꾼 이유는 이튿날 눈꺼풀을 들어 올린 순간 알 수 있었다.

    “……이게 뭐야?”

    몇 겹씩이나 되는 이불이 온몸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아니, 그냥 덮여 있는 것도 아니었다.

    붕대라도 감듯이 나를 돌돌 감아 묶었는데 덕분에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뭘까, 천장은 여전히 보네티의 내 침실 같은데 어디 조사실에라도 끌려온 걸까?

    그때 아는 이가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아, 깨어나셨어요, 시오라 아가씨?”

    “베티!”

    나는 반가워 이불에 묶인 채로 바동거렸다.

    “이 이불 뭐야, 설마 내 잠버릇이 여기까지 온 거야?”

    “아니요, 그건 제가 묶었어요.”

    천진난만하게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백작님께서 당분간 근신하시래요.”

    “뭐? 조금만 더 이러고 있으면 죽을 것 같은데?”

    “사인은요?”

    “어……. 더워서 죽는 거니까 갈사?”

    “그러면 아.”

    베티의 말에 반사적으로 입을 벌렸더니 달고 시원한 게 들어왔다.

    소르베였다.

    냠, 맛있어.

    “그래도 너무 많이 드시면 안 돼요. 식사하실 때 입맛 떨어지면 안 되니까요.”

    “내가 애도 아니고.”

    투덜거리면서도 나는 새 새끼처럼 입을 벌렸다 다물기를 반복했다.

    이불에 돌돌 감겨 시원한 소르베를 먹으니 온도가 딱 맞았다.

    솔직히 조금 행복했다.

    “오늘 계속 이러고 있어야 해?”

    “백작님께서 외출했다 돌아오실 때까지는요.”

    “온종일 잠만 자야겠네.”

    “참, 오늘 아가씨를 찾아온 손님이 계세요. 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만나실 건가요? 물론 여기서 만나셔야 해요.”

    이 꼴로 누굴 만나.

    투덜거리려다가 말고 멈칫했다.

    잠깐만. 손님을 만나는 동안은 베티도 나가 있겠지?

    잘만 꾀어내면 자유를 찾을 수 있다.

    나는 순순히 답했다.

    “만날게. 그런데 누구─.”

    타이밍이 공교롭게도 그렇게 말하자마자 누군가 침실 문을 노크했다.

    처음에는 보네티의 사용인인 줄 알았으나 아니었다.

    베티가 태연히 말했다.

    “어머, 손님께서 바로 오셨나 봐요.”

    “뭐? 아, 잠깐만. 이런 식으로 등장할 만한 사람은─.”

    “들어오세요, 공작전하. 시오라 아가씨께서 허락하셨어요.”

    아니나 다를까, 벌컥 열린 문 너머엔 크루엘로가 서 있었다.

    품에 제 눈만큼이나 붉은 꽃다발을 가득 안고 그가 사르르 눈을 휘었다.

    “안녕, 자기.”

    “그러면 두 분, 즐거운 시간 나누세요.”

    베티는 자연스럽게 침실을 나섰고 크루엘로는 안으로 들어와 베티가 앉아 있던 자리에 앉았다.

    교대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 나는 그저 어처구니가 없었다.

    “포인세티아예요. 별로 병문안에 쓰는 꽃은 아니지만, 건강해 보여서 이걸로 가져왔어요.”

    “꽃은 아무래도 상관없는데요. 지금 내 꼴이 멀쩡해 보이나요?”

    “그러게 좀 얌전히 살지 그랬어요.”

    “혹시 내가 누구 때문에 요란하게 살아왔는지는 기억하죠?”

    “하하.”

    “웃지 말고 이불 풀어 줘요.”

    “안 돼요. 백작이 달링의 손끝이라도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엄포를 놨는걸요.”

    그 말이 그런 뜻이 아니잖아.

    나도 아는 걸 크루엘로가 모를 리 없는데 뻔뻔스럽긴!

    그는 꼰 다리에 턱을 괸 채, 비스듬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그의 눈이 묘하게 휘었다.

    “달링은…… 사랑받고 있네요.”

    그 의미심장한 말에, 나는 일단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기, 이런 상황에서 분위기 잡아 봐야 웃기기만 하니까 이불 좀 풀어 줘요.”

    “……알았어요.”

    드디어 내 몸은 자유를 되찾았다.

    그러나 풀려난 건 상반신뿐이었다.

    “마법 고장 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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