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92화 (292/342)
  • 292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106화

    [아 참, 죽이면 안 되지? 까불긴 했어도 소중한 공양물이니까. 이거 까딱 잘못했다가 큰일 날 뻔했군.]

    압도적이다.

    너무나도 압도적이다.

    제우스는 분명 최상급 지배자 중에서도 정점에 선 존재다. 괜히 올림포스의 수장이라는 위치를 오랜 세월 지켜온 게 아니라는 뜻이다.

    한데 그런 제우스를, 혼돈의 군주는 너무나도 쉽게 제압해 버렸다.

    가히 비현실적인 힘의 차이가 이안은 물론 지배자들 모두의 뇌리를 깊숙하게 파고들었으니, 다시 한번 각인시켜야겠다던 혼돈의 군주의 의도는 그야말로 완벽했다.

    [음, 그건 그렇고 다들 미안하게 되었어. 설마 아버지께서 변덕을 부릴 줄 누가 알았을까? 아무리 제멋대로인 분이셔도 그렇지, 한평생 당신을 아버지라고 칭송해 온 지배자들마저 잡수시겠다니! 심지어 그 결정권을 수행자 나부랭이였던 놈한테 주겠다니? 내가 생각해도 좀 너무한 것 같더라고.]

    여전히 커다란 그림자 손아귀로 제우스의 머리를 잡고 있는 혼돈의 군주가 과장되게 중얼거렸다.

    그 존재의 목소리에는 지극히 의도적으로 진심이 느껴지지 않았으니, 이는 명백한 조롱의 뜻이었다.

    [근데 뭐 어쩌겠어? 까라면 까야지. 나도 그렇고, 그대들도 그렇고, 힘으로는 도저히 아버지를 이길 수 없는데, 내가 괜히 그분 하수인 노릇이나 하면서 사는 게 아니거든. 답이 없어. 솔직히.]

    그리 읊조리며 손에 쥔 제우스를 이리저리 살피는 혼돈의 군주였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묻지. 칼리두 와탕카, 정말 이 녀석, 제우스를 아버지께 공양하기로 한 거 맞아? 이대로 끌고 가면 돼?]

    그러고는 이안을 바라보며 물었다. 워낙 압도적인 광경을 봐서 그럴까? 이전까지의 만만함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느껴지지 않았다.

    “……제우스를 바치면, 저를 포함해서 나머지 지배자들한테는 정말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겁니까?”

    [그야 물론이지. 문제는 우리 은근히 입맛 까다로우신 아버지께서 고급 공양물에 맛이 들려 버리신다는 부분인데…… 뭐 그건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 다음 포식까지 수천 년은 족히 더 걸리기도 할 거고.]

    무려 수천 년이란다.

    이안으로서는 까마득한 세월.

    하지만 나머지 지배자들의 얼굴은 달랐다. 수천 년이 짧게 느껴지는 듯, 그리고 그다음 차례가 자신이 되면 어찌하느냐는 듯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으니까.

    ‘첩첩산중이군.’

    이안의 계획은 그랬다.

    먼저 혼돈의 군주가 경고했던 것처럼 너무 쉽게 크로노스를 되감지 않는다. 그리고 매 시간대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본다.

    이번 시간대의 목표는 바로 이것이다. 될 수 있는 한 높은 경지에 이르러보는 것, 하여 이쪽 세계의 강자들과 격차를 가늠해보는 것.

    지배자들은 물론이거니와, 혼돈의 존재들과의 격차 역시 궁금했다.

    ‘솔직히 이 정도일 줄이야.’

    궁금증은 해결되었다.

    다만 그 격차가 너무 심하다.

    튀폰 사태 당시 눈먼 아버지가 보여줬던 힘, 그리고 지금 제우스를 상대로 혼돈의 군주가 보여준 압도적인 힘, 그 두 가지는 무리해서 여기까지 올라온 이안조차 엄두도 못 낼 만큼 높기만 했으니까.

    ‘저 괴물들한테 닿으려면 여기서 더 무얼 해야 하지? 정말 모든 지배자의 격을 빼앗기라도 해야 하는 건가? 아니, 그래서 이길 수 있었다면 진즉 그렇게 했겠지. 제우스든, 오딘이든, 누구든 간에.’

    제우스는 여태껏 수장 자리를 지키며 세력을 불렸다. 오딘도 그럴 것이고, 하데스 역시 은밀하게 명계의 세력을 무한 확장 중이다.

    그것은 곧 개인의 힘으로는 혼돈의 전당에 대항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는 뜻일 터. 이안이라고 그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리라.

    ‘이 시간대에 계속 머문다면 말이지.’

    이 시간대에 계속 머물면 저들과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크로노스를 되감으며 돌파구를 찾는다면?

    모르긴 몰라도 큰 차이가 있겠지.

    ‘이래서 그런 경고를 한 건가? 재구축을 너무 남발하지 말라고, 결국 내 칼끝이 자신들한테 겨누어질 거라는 걸 알고 있을 테니까.’

    결국 이 모든 걸 끝내기 위해서는 시계탑을 무너뜨려야만 한다.

    그리고 시계탑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높은 확률로 혼돈의 군주와 눈먼 아버지를 제거해야겠지.

    그 말인즉 모두가 적이다. 저들도 이안의 목적을 아는 이상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러니 교란을 시도한 건 아닐까? 밑도 끝도 없이 크로노스를 되감지 말라는 애매한 경고 몇 마디로 말이다.

    ‘……하지만, 그럴 바에는 그냥 나를 죽여 없애면 되잖아? 굳이 애매모호한 경고 따위로 나에게 혼란을 줄 필요가 없을 텐데?’

    힘의 차이는 극명하다.

    만약 혼돈의 군주가 마음만 제대로 먹는다면 이안이 크로노스를 되감기 전에 제거할 수 있을 터.

    그럼에도 이리 애매모호한 경고와 견제만을 일삼는다는 건, 아마 이안을 죽일 수 없는 피치 못할 사정이나 이유가 있다는 뜻이리라.

    ‘도대체 뭘까? 나를 죽이지 못하는 이유, 이런 식으로 견제만 하는 까닭, 그리고 나한테 바라는 것.’

    이안이 혼돈의 군주를 바라봤다.

    그 존재는 이안의 눈빛을 읽기라도 한 건지 의뭉스러운 미소로 화답하며 이안의 답변을 기다렸다.

    “……좋습니다. 그럼 예정대로 제우스를 바치도록 하죠. 누구도 그를 대신해서 인신공양의 제물로 바쳐질 생각은 없어 보이니까요.”

    그리 읊조리며 다시 한번 지배자들을 쭉 들러보는 이안이었다.

    역시 아무도 이안과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으니, 이는 제우스를 인신공양의 제물로 바치겠다는 암묵적인 동의나 마찬가지였다.

    [그대들의 뜻이 그렇다면야, 내 다음부터는 이런 불상사가 없도록 최대한 노력할 테니 걱정들 하지 말고, 아버지께서 워낙 본능에 충실하셔서 그렇지, 배부를 때는 또 우리 말을 잘 들어주시는…….]

    혼돈의 군주가 어울리지도 않게 너스레를 떨어대는 그 순간이었다.

    쿵……!

    그것은 육중한 무언가가 시계탑 아래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였다.

    [……설마?]

    그 무언가의 정체를 가장 먼저 파악하는 것은 혼돈의 군주였다.

    그의 얼굴을 이룬 그림자가 사색이 되는 것으로 미루어보건대, 분명 뭔가 크게 잘못된 것 같았다.

    대체 무엇이 추락한 걸까?

    [이 버러지 같은……! 그깟 벼락 몇 줄기 제대로 제어하지 못해서 저길 맞춰? 네놈이 그러고도 번개의 지배자를 운운할 자격이……!]

    도대체 뭐가 어찌 된 일이냐?

    간단하다. 제우스가 혼돈의 군주에게 퍼부었던 벼락 중 일부분이 시계탑 최정상, 눈먼 아버지의 거처를 포격했다. 덕분에 시계탑 건축물 중 일부가 파손되어 추락했으니, 이는 곧 그 안에서 휴식을 취하던 누군가가 깨어남을 뜻했다.

    그것도 몹시 불쾌한 상태로.

    우 - 우 - 우 - 우 - !

    잘 모르겠다.

    뭔가 울음소리에 가까운 것 같기는 한데, 절대 인간의 울음소리는 아니다. 그렇다 하여 짐승이나 괴물의 울음소리 같지도 않았다.

    정말이지 기괴한, 나아가 굉장히 기분 나쁜 울음소리, 그런 소리가 파손된 시계탑 꼭대기로부터 들려왔다. 심지어 조금씩 가까워졌다.

    우 - 우 - 우 - 우 - !

    비록 정체를 알 수 없는 울음소리였으나, 그 소리를 누가 내는 것인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 정원의 모두가, 아니, 슈페리어의 심장 내 모든 이들이 알 수 있었다.

    ‘……아버지.’

    허공을 부유하는 거대한 눈.

    마치 깊은 잠에서 깨어난 듯 징그러운 핏줄이 사방팔방으로 뻗어 나가 있는 그 거대한 눈의 그림자가 널따란 하늘 정원에 드리웠다.

    우 - 우 - 우 - 우 - !

    본디 나타나서 아무 말 없이 튀폰만 죽이고 사라졌던 첫 번째 만남과는 달랐다.

    그 존재는 아까부터 원하는 것이 있는 듯, 혹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기괴한 울음소리를 내기 바빴다.

    눈밖에 없는 괴물이 무슨 수로 저런 소리를 내는가 싶었으나, 지금은 그런 사소한 의문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아, 우리 우둔하고 눈먼 아버지시여. 이건 전적으로 사고입니다. 절대로 아버지께 위해를 가할 의도는 없었으니, 조금만 여유를 갖고 기다려주신다면 금방 해결을…… 커, 커허억……!]

    제우스조차 단숨에 제압할 만큼 압도적인 존재, 혼돈의 군주가 너스레를 부렸음에도 먹히지 않았다.

    오히려 아버지란 존재의 고요한 응시에 숨통이 막히는 듯 제 목을 부여잡고 휘청거렸으니, 비단 그 응시의 여파는 혼돈의 군주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커, 커헉……!]

    [쿨럭! 쿨럭……!]

    [격이, 내 격이……!]

    [어, 어째서 우리까지……?]

    혼돈의 군주를 포함한 모든 지배자들이 똑같은 증상을 겪기 시작했다.

    단순히 숨만 막히는 게 아닌, 목구멍으로부터 격이 강제로 뽑혀 나와 아버지라는 존재한테 모조리 빨려 들어가는 형국이었다.

    “으윽……!”

    그리고 그 빨아들임의 범위는 이안을 빗겨가지 않았다. 이안 역시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격이 뽑혀져 나가는 고통을 느꼈으니까.

    ‘이건…… 위험하다. 많이.’

    상대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아니, 아예 대화할 생각조차 없어 보인다. 가능한지도 확실치 않고.

    그러니 이 상황은 위험하다.

    가만히 있다간 격이 모조리 뽑혀져 나가 죽음을 맞이하게 될 터.

    ‘……지금일까? 지금이야말로 크로노스를 되감아야 하는 순간일까?’

    이안이 깊은 고뇌에 빠졌다.

    그러면 그럴수록 몸속에 축적된 격이 생명력과 함께 뽑혀져갔다.

    이제 정말 시간이 없다. 어떤 확실한 결론을 내려야 하는 순간.

    ‘침착해라, 그리고 생각해라. 내가 원하는 건 충분히 얻었나? 만약 부족하다면 여기서 더 버틴다고 해서 얻어낼 가능성이 있는가?’

    이안이 얻고자 했던 것.

    그것은 여러 가지 정보다.

    적의 구체적인 규정, 그 적이 보유한 힘과 세력, 적을 무찌를 수 있는 수단과 방법, 그리고 이쪽 세계의 전체적인 구조에 이르기까지.

    ‘먼저 나의, 그리고 내 고향의 주적은 시계탑이다. 놈들이 보유한 힘과 세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지금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광경만 봐도 알 수 있다. 전체적인 구조 역시 지금껏 과업을 수행하며 얻은 정보들, 최상급 지배자로 거듭남으로써 보이기 시작한 것들, 특히 프로메테우스의 기억 덕분에 대부분 파악이 완료되었다. 결국 남은 건 시계탑을 무너뜨릴 수 있는 수단과 방법뿐인데…….’

    그것은 아직 답이 나오지 않았다.

    제아무리 다양한 경우의 수를 고려해도 마찬가지다. 현재로써는 시계탑을 무너뜨릴 방법 따윈 없다.

    ‘그럼 여기서 더 버틴다고 그 방법이란 걸 알아낼 확률이 높은가?’

    ……아니, 아니다.

    애석하게도 그렇지 않다.

    당장 더 버틸 가능성조차 낮다.

    혼돈의 군주조차 무너지고 있거늘, 자신이 어찌 버틴단 말인가?

    ‘그렇다면 역시…….’

    그래, 지금이다.

    드디어 때가 왔다.

    모든 것을 되돌릴 순간이.

    그리고 그 기회로 하여금 좀 더 정답에 가까워질 수 있는 순간이.

    ‘……가자, 더 망설일 필요 없어.’

    남아있는 격이 다 뽑혀져 나가기 전에 재구축을 끝내야만 한다.

    그 이후에는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도 그럴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그 어떤 후유증이나 변수가 있다 한들, 내가 쥐고 있는 가장 확실한 무기는 바로 이것이니까……!’

    결심은 곧 행동으로 이어졌다.

    크로노스를 되감는 마법, 이른바 ‘재구축’은 이안 특유의 마나와 격으로 하여금 고요히 울려 퍼졌다.

    [라 - 후스 - 에키로……!]

    [로 - 쿠베르가토……!]

    [젠 - 쉬나가스……!]

    그리고 그 순간.

    반쯤 파손된 시계탑 꼭대기의 거대한 시계가 움직이기에 이르렀다.

    언제 봐도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던 시침과 초침이 고장이라도 난 듯 되감기기 시작했으니까.

    […….]

    또한 어째서인지.

    화가 잔뜩 난 듯 난동을 부리고 있었던 거대한 눈, ‘아버지’란 존재가 잠시 멈춘 채 이안을 바라봤다.

    그간 감정이라는 것이 읽히지 않았던 그 커다란 괴물의 눈에서.

    이안은 정체 모를 감정을 느꼈다.

    그 감정의 이름은…….

    * * *

    “쿨럭……!”

    이안이 다시금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진 변화는 다름 아닌 신체였다. 항상 당연히 느껴졌던 무언가가 느껴지지 않았거든.

    ‘……손이.’

    사라졌다.

    정확히는 왼쪽 손목 위로 모든 것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