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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269화 (269/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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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2부 83화

    ‘위험했다.’

    돌이켜보면 새삼 그랬다.

    죽을 위기가 제법 있었다.

    특히 세 번째 번외 과업에서 혼돈의 군주와 마주했을 때, 그리고 마지막 번외 과업에서 아테나가 분노했을 때, 그 두 번의 위기는 이안의 개인기보다 운이 더 크게 작용했다.

    ‘특히 혼돈의 군주와 마주했을 때에는…… 결과적으로 잘 풀렸다지만, 사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크로노스를 되감는 게 옳은 판단이었어. 버티는 건 너무 도박이니까.’

    이번에야 성공적인 도박이었다지만, 앞으로 계속 성공하리란 보장이 없다. 조심할 필요가 있으리라.

    ‘문제는 그 혼돈의 군주라는 자가 내 정체를 알고 있다는 건데…….’

    알면서도 살려두는 까닭.

    그 의도를 파악하기 어렵다.

    특히 마지막에 들렸던 중얼거림.

    아직 해석조차 어려운 그 중얼거림은 무엇을 뜻하는 말이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절대 아군은 아니라는 거. 날 살려줬다고 해서 아군으로 여기기에는 꺼림칙한 부분이 많아.’

    어쩌면 지배자들을 넘어서 이안의 여정 끝자락에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적, 그들이 바로 눈먼 아버지와 혼돈의 자식들일 터.

    아무리 당근을 던져줄지언정 끝까지 경계할 필요가 있으리라.

    [수행자도 이미 체감하고 있겠지만, 그대는 이제 명실상부 올림포스 역사상 최강의 수행자로 거듭났다. 정말 대단하군. 축하한다.]

    이안의 생각이 깊어질 무렵.

    올림포스 신전에 설치된 아테나의 석상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수행자의 격은 크기로만 따진다면 이미 최하급 지배자들과 겨루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다. 훗날 그대가 지배자의 격을 허락받는 순간이 벌써부터 기대되는구나.]

    아직도 이안의 눈치를 보고 있음이 확실해 보이는 말투와 목소리.

    관계가 완전히 역전되어버린 지배자와 수행자의 흔한 풍경이었다.

    “말씀은 무척 감사합니다만, 그건 앞으로 남은 네 번의 과업을 완수했을 때 이야기니까요. 모쪼록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테나 님.”

    [그, 그래. 나도 잘 부탁하마. 알지 않느냐? 나의 다재다능함, 분명 수행자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아직은 수행자를 존중하며 대화하는 것이 어색하기만 한 아테나.

    [아, 그리고 이것은…….]

    그가 무언가를 공양그릇으로 전송했다. 이안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내 그대가 위로의 선물로 내어줬던 황금 사과를 불태운 것이 마음에 걸리더구나. 해서 준비해 본 것이니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군.]

    “이건……?”

    겉보기로는 평범한 방패였다.

    둥근 모양의 라운드 쉴드.

    특이한 점이라면 방패 한가운데 어떤 괴물의 머리 같은 것이 조각되어 있다는 건데, 가만히 보고 있자니 매우 흉물스러운 장식이었다.

    [아이기스라는 방패다. 제우스 님의 번개에도 끄떡없으며, 격이랄 게 없는 평범한 족속들은 그 방패의 장식만 보고도 겁에 질려 도망을 치지. 내 보물 같은 방패란다.]

    “그런 보물을 저한테 주셔도 되는 겁니까? 조금 부담스러운데…….”

    [나는 이번에 새로 하나 장만했거든. 더는 필요하지 않아서 주는 것이니 마음 편히 받아도 된다.]

    “……그리 말씀해 주신다면야.”

    평소 방패는 써본 적이 없어 잘 모르겠지만, 받아둬서 나쁠 것도 없을 것 같았다. 함께 싸울 누군가한테 양도하는 방법도 있으니까.

    “감사히 받겠습니다. 아테나 님.”

    [많이 아끼던 보물이니만큼 부디 요긴하게 쓰였으면 좋겠구나.]

    새삼 고생이 많다.

    번외 과업 막바지 당시에는 살아남기 위해서, 그리고 지금은 격까지 걸고 맹세한 약속을 유지하기 위해서 사력을 다하는 모습.

    분명 처음에는 이안이 아부를 떠는 위치였건만, 겨우 하루아침에 참 많은 것이 바뀌어버렸다.

    “그럼 저는 아홉 번째 과업을 시작하기 전에 잠시 준비부터 하고 오겠습니다.”

    [아, 그렇게 하도록. 아직 쉬지도 못하였겠지. 번외 과업을 치르느라 고생이 많았다. 칼리두 와탕카.]

    읍하며 물러난 이안이 빠르게 올림포스 신전을 빠져나왔다.

    휴식도 휴식이지만, 그보다 빨리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있었거든.

    ‘시끄러워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

    아까부터.

    정확히는 번외 과업이 끝난 직후부터 시끄럽게 울려대는 목소리.

    “뭐 때문에 그러는지는 대충 알겠는데, 1,600명으로 만족하십쇼.”

    그 목소리에 관한 대꾸를 이제야 한다. 짜증을 조금 섞기도 했다.

    “마지막에 몇 명 살린 거, 그건 나름의 수 싸움이었습니다. 하데스 님 정도 되면 아실 거 아닙니까?”

    그렇다.

    이안을 괴롭히는 목소리의 주인.

    그것은 동업자 정신의 부재를 참으로 아쉬워했던 명계의 지배자.

    하데스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마지막에 남은 것들이 알짜배기임을 모르느냐? 그깟 1,600명보다 값어치 있는 인재들이라고! 근데 그걸…….]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해는 하는데 만족하십시오. 그 문제에 관해서 드릴 말씀은 이것뿐입니다.”

    [……역시 네놈은 동업자 정신을 배워야 한다. 그따위로 해서야 누가 네놈과 일을 함께 하겠느냐?]

    “지금 하데스 님께서 해주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걸로 만족합니다.”

    [어휴, 말이나 못 하면…….]

    하데스가 한숨을 푹 쉬었다.

    정말 여러모로 신기한 놈이다.

    [……그래도 뭐, 솔직히 통쾌하긴 했다. 아테나 그 맹랑한 꼬맹이가 수행자한테 쩔쩔매는 모습, 나쁘지 않더군. 보기 드물기도 하고. 아무튼 간만에 좋은 구경이었어.]

    그거 하나는 좋았다.

    같은 최상급 지배자가 하찮게 여겼던 수행자한테 설설 기는 거.

    그 모습은 정말이지…… 훗날 명계의 군단 아래 무릎 꿇을 시계탑의 모습처럼 보여 매우 흡족했다.

    “하실 말씀 끝났으면, 이제 제가 몇 가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그런 하데스의 반응을 가만히 살펴보던 이안이 나지막하게 물었다.

    [말해라.]

    “제 고향 상태가 궁금합니다. 그러니까, 시계탑 평의회의 동향 말이죠. 제가 그 분석관이란 놈을 죽이고 번 시간도 꽤 지났으니까요.”

    슬슬 불안하다.

    물론 양쪽 세계의 시간 흐름이 다르다고는 하나, 어느 쪽을 기준으로 하든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아닌가?

    [아, 그 부분은 걱정할 필요 없다. 내 알아서 잘 처리해 뒀으니.]

    “그러니까 어떻게…….”

    [네 손에 죽은 분석관을 내 직속부하로 바꿔치기했지. 분석관의 보고가 차일피일 미뤄지지만 않는다면 딱히 큰 문제는 없을 거다.]

    “……그렇군요.”

    딱히 안심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방법이 없는데.

    [그렇게 못 미더우면 직접 가 보든가. 아무도 몰래 보내줄 테니까.]

    “아닙니다. 믿습니다.”

    [안 믿는 거 다 알아.]

    “……믿으려고 노력 중입니다.”

    [그래, 그래야지. 이제야 조금은 동업자 정신을 깨달은 것 같군. 역시 지성체는 배워야 한다니까?]

    매우 흡족한 미소.

    그런 하데스에게 이안이 두 번째 질문을 던졌다. 이번에는 하데스가 다소 뜨끔할 만한 질문거리였다.

    “그리고 이건 아까 들은 건데.”

    [음? 뭘 들었지?]

    “그 혼돈의 군주라는 존재한테 아테나 님께서 변명을 하시더군요. 제가 그 연구실로 향하는 것을 하데스 님께서 말해주지 않았다고. 그게 정확히 무슨 뜻입니까?”

    혼돈의 군주와 마주했던 당시.

    부리나케 달려온 아테나의 변명은 생뚱맞게도 하데스였다.

    [아, 그거? 별거 아니다. 워낙 게임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다 보니, 이제 아테나가 몇몇 지배자들한테 특정 그룹의 감시를 부탁했지. 나 역시 너희와 몇몇 팀을 맡았는데, 아마 그 얘기일 거다.]

    “듣기에 따라서는 일부러 말씀하지 않으신 것처럼 들리는데요? 저를 그 존재와 만나게 하려고요.”

    [그럴 리가, 오해다.]

    “오해면 풀어주시죠.”

    [풀고 자시고 할 게 없다. 그냥 재밌으니까, 아테나가 공들여 만든 놀이를 망치는 게 재밌으니까 그리했을 뿐.]

    “뭔…….”

    [어차피 내가 문책당하지도 않을 텐데, 이런 재미를 놓칠 순 없지.]

    “……취미가 참 고약하네요.”

    [그걸 이제 알았나? 당장 네놈이 우승한 번외 과업을 봐라. 말이 좋아서 과업이지, 그냥 학살 아니었느냐? 우리 지배자들의 눈 밖에 난 수행자들을 몰살하려는, 그게 고약한 취미가 아니면 뭐겠어?]

    “…….”

    이건 뭐, 할 말이 없다.

    자기객관화가 잘 되어 있잖아?

    물론 믿지는 않는다. 후자 말고.

    재미로 그랬다는 전자 말이다.

    “솔직히 안 믿기는데, 일단은 그냥 넘어가도록 하죠. 말해줄 생각이 전혀 없으신 것 같으니까요.”

    [어허, 그건 좀 너무한데? 몇 번 더 물어봐 주면 어디가 덧나나?]

    “시간 낭비는 취미가 아니라서.”

    이안이 시원하게 손을 뗐다.

    대신 몇 가지 추측은 가능했다.

    예컨대 혼돈의 군주와의 만남은 하데스가 의도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 그리고 그 추측이 옳다면 둘은 어떤 이해관계를 맺었을 거라는 점까지.

    ‘지금은 거기까지만 알아놓자고.’

    정보는 중요하다.

    하지만 아직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정보 때문에 굽히고 들어갈 필요는 없다. 좀 더 나중에, 정말 필요하게 되었을 때 굽혀도 된다.

    “더 하실 말씀 없으면 가 보겠습니다. 슬슬 아홉 번째 과업도 준비해야 하고, 따로 처리할 일도 있고.”

    [바쁘구먼. 고작 수행자 주제에.]

    “고작 수행자니까 바쁜 거죠. 누구들처럼 여흥이 어쩌고 할 만큼 한가롭지 않으니까요.”

    [그 누구들에서 나는 빼줬으면 좋겠군. 네놈도 알다시피 내가 좀 바쁘더냐? 신경 쓸 일이 한두 개가 아니에요. 한두 개가.]

    “빼 드릴 테니까 이제 그만 뭐라고 하십시오. 시끄러워 죽겠습니다.”

    [그거야 이번에 들어온 1,600명의 신입생들한테 달렸지. 만족스러우면 덜할 거고, 역시 그 진짜배기들이 필요하다면 더 심해질 거고.]

    “……좋을 대로 하십쇼.”

    이안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이쯤 되면 둘 중 누가 동업자 정신이 없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다.

    “아, 그리고.”

    떠나려던 이안이 한마디 덧붙였다.

    “프란 페이지, 그 양반한테 전해주십시오. 하고 싶은 말 있으면 직접 와서 하라고. 괜히 또 누구 시켜서 장난칠 생각 하지 말고. 확 소멸시켜 버리는 수가 있으니까.”

    그것은 하데스의 부하로 활동 중인 ‘애증인’을 향한 전언이었다.

    * * *

    새로운 과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이안은 먼저 몇 가지 처리할 일 을 빠르게 끝냈다. 그중 첫째는 흑요석 광산과 약초밭 관리, 그리고 고향을 향한 수확물 배달이었다.

    [추가 물자를 보냅니다.]

    [시간은 아직 꽤 넉넉한 것으로 파악되었으니, 조금은 여유롭게 진행하셔도 됩니다. 너무 서두르면 일을 그르치는 법이니 말입니다.]

    [가능하면 잠깐이라도 내려가서 폐하와 가족들, 그리고 지인들을 만나 뵙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마음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럼 다음 물자수송 때 다시 편지로나마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모두 건강하시길.]

    한 장의 쪽지가 포함된 물자배달.

    그것을 끝낸 이안의 두 번째 목적지는 중간계 어나더 어스였다.

    지속적인 관리를 아폴론과 약속한 만큼 자유로운 출입이 가능했는데, 수련을 끝낸 차민성이 슈페리어 차원으로 넘어오는 것을 돕고 나서야 이안은 비로소 아홉 번째 과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달그락!

    하데스의 조언을 따르면, 아홉 번째 과업의 계시자는 시계탑을 통틀어 가장 인자하고 자애로운 성품을 가졌다고 한다.

    따라서 나무 가락지 하나만 공양그릇에 올려도 기꺼이 나타날 거라는 조언이었는데, 이안은 그 조언에 따라 황금 사과를 쾌척했다.

    ‘정말 그런 성품이다? 더 좋아하면 좋아했지 괜한 걸 올려놓았다고 화를 내지는 않을 테니까.’

    그리고 그 예측은 절묘했다.

    석상에 들어오는 안광으로부터 감출 수 없는 환희가 느껴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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