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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181화 (외전) (18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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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81화

    외전. 그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까닭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이안은 한 가지 ‘의혹’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달리 말하자면 ‘놀림거리’이기도 했다. 도대체 어떤 의혹이자 놀림거리냐고? 간단하다.

    “일부러 내리게 한 거지? 비.”

    “…….”

    그랬다. 이안이 9년 만에 돌아왔을 당시, 즉위식 하늘을 가득 채웠건 먹구름, 비, 천둥.

    그 모든 요소가 이안의 소행이라는 의혹, 놀림거리, 심지어 소문까지 돌았다.

    “은근히 주목받는 거 좋…….”

    “그런 거 아닙니다.”

    “9년간 관심에 목말랐으니 그럴 만도 한데, 그래도 이안, 너무 그러면 안 된단다. 자칫 병으로 번진다구. 병! 내 듣자하니 ‘관심병’이라고 해서, 아주 위험한…….”

    “아닙니다.”

    어머니의 장난에 단호한 정색을 선보이는 이안이었다.

    어느덧 서른 줄을 밟았으나, 어머니 앞에서는 아직도 귀여운 아들에 불과했다.

    “그럼 도대체 왜 날씨가 그랬던 거야? 설마 정말로 그때 딱 비가 내렸다고? 에이, 아닌 것 같은데?”

    물론 어머니의, 아니 뭇 사람들의 의심과 소문 또한 근거가 없지만도 않았다. 갑작스레 몰려든 먹구름, 그로부터 뿜어져 나온 천둥과 비. 누가 봐도 자연스럽지 않았으니까.

    “이거 봐, 대답 못 하잖아?”

    “…….”

    어머니의 장난기 가득한 추궁에도 이안은 입가를 굳게 다물었다.

    마음속으로는 벌써 수천 번, 아니 수만 번 이상 반박하고 또 반박했으나, 단 한 번도 그 반박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이 억울함에 몸서리 친 지만 벌써 일 년이 넘었다.

    ‘참자. 생색내서 좋을 건 없어.’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는 이안이었다. 동시에 더 이상 의혹과 놀림으로부터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가장 가까이 꽂혀 있던 서책을 펼침으로써 말이다.

    “요즘 이 책이 그렇게 재밌다던데, 아시죠? 왜 우리 고향에 루카님. 저랑도 잘 아는 분이고.”

    나아가 대화의 주제까지 돌려 버렸다.

    얼마 전부터 그린리버 제국은 물론이거니와, 대륙 전체를 뜨겁게 달구기 시작한 화제의 소설, ‘황태자의 지팡이’을 펼치며 말했다.

    “이게 그분 신작이거든요. 원래는 저를 주인공으로 삼겠다던 양반이, 9년 만에 돌아오고 보니까 전하, 아니 폐하께 푹 빠져 버…….”

    “이안.”

    “린…… 네?”

    “말 돌리려는 거, 티나.”

    “…….”

    “애쓰지 마렴. 어차피 오늘은 이쯤만 해두려고 했어. 우리 아들, 은근 놀리는 맛이 있다니깐?”

    “…….”

    “푸흡!”

    웃음과 함께 이안의 서재에서 퇴장해버린 어머니 베네사, 그리고 그녀가 사라진 자리를 멍하게 바라보는 이안이었다. 한참을 그랬다.

    “……내가 왜 그래가지고.”

    이내 시선을 거둔 이안.

    그가 생각 속에 잠겼다.

    일 년하고도 반년 전.

    장장 9년 만의 복귀.

    당시가 떠올랐다.

    * * *

    “많이 변했네.”

    그날, 저택 밖으로 나온 이안의 첫마디였다.

    표현처럼 당시 세상은 변화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이안의 장원으로부터 시작된 그 변화가 문명의 근간 자체를 뒤흔들었으니까.

    “근데 왜 이렇게 사람이 없지?”

    동시에 그런 의문도 생겼다. 도시 어디를 봐도 사람의 수가 적었다. 아직 환한 낮 시간대였다. 본디 그린리버디움은 언제든 사람으로 북적거리기 마련이거늘. 9년이란 세월 간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걸까?

    “잠시 말씀 좀 묻겠습니다.”

    그래도 아예 없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조용한 도시를 순찰 중인 경비병의 모습도 보였으니까. 이안이 말을 건 이는 바로 그들이었다.

    “무슨 일이십니…… 어?”

    경비병들 또한 이안을 바라봤다. 동시에 낯빛이 조금씩 변질되었다. 마치 못 볼 것이라도 본 듯 양쪽 눈을 깜빡거리기에 이르렀다.

    “저, 저기 혹시…….”

    “아마 그 혹시가 맞을 겁니다.”

    “허억……!”

    제국의 상아탑주.

    대륙 전체의 은인.

    드래곤마저 초월한 마법사.

    이안 페이지가 확실한 것 같았다.

    “사, 상아탑주를 뵈옵니다!”

    비록 9년이 지났지만, 제국의 근위병으로서 이안 페이지를 몰라볼 리 없었다. 애당초 도시 내 고위관계자의 초상화를 외우는 것부터가 수습교육의 시작이었으니 말이다.

    “저도 반갑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먼저 확인을 좀 하고 싶은 게 있어서 말이죠. 두 가지인데.”

    총 두 가지의 의문.

    먼저 9년이라는 세월이 정말 지났는가. 그것이 첫 번째 문제였다.

    “지금이 몇 년입니까?”

    “예?”

    “제국력 말입니다.”

    “아, 제국력. 그러니까 제국력이 올해로…… 오, 오백십구 년일 겁니다. 아니, 확실합니다. 올해가 황태자 전하의 즉위 해니까요.”

    9년의 세월이란 거짓이 아니었다. 심지어 더욱 놀라운 일 하나가 더 있었다. 즉위라니, 그 말은 즉 황태자가, 그 ‘하이든 그린리버’가 황제의 자리에 군림한다는 건가?

    “……전하께서 말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오늘입니다.”

    “오늘?”

    “보자, 지금쯤이면 슬슬 시작되고 있겠네요. 공개 즉위식이라 저희도 참석하고 싶었는데, 보시다시피 도시의 치안도 큰 문제 아니겠습니까? 아쉽지만 별수 없지요.”

    경비병 하나가 자신들의 책무를 자랑스레, 한껏 생색내며 말했으나 이안은 들리지 않았다. 너무 갑작스러운 정보를 받아들인 탓이었다.

    ‘그 황태자가 황제라니. 물론 9년씩이나 지났으니 변하기는 했겠다만…… 그래도 좀 갑작스러운데.’

    이안으로서는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었다.

    제아무리 황태자가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해도, 무려 9년씩이나 잠들어있던 이안이 그 사실을 체감할 순 없을 터.

    “흐음…….”

    이안의 생각은 금방 끝났다. 즉시 경비병에게 즉위식장의 위치를 물어본 뒤, 언제나 그랬듯 비행하기 시작했다. 바글바글한 인파를 우려, 텔레포트 주문은 사용하지 않았다.

    ‘만백성에 개방된 즉위식이라…… 재미난 생각을 하셨군. 다른 사람들이 권했을 리는 없고, 보나 마나 황태자 전하의 뜻이겠지.’

    피식 웃은 이안이 빠른 속도로 성벽을 넘어갔다.

    즉위식장은 도시와 크게 떨어져 있지 않았으나, 성벽을 넘는다 하여 딱 보일 정도로 가깝지만도 않았다. 물론 이안에게는 일분 거리조차 되지 못할 테지만.

    “음?”

    조금만 더 나아가면 경비병에게 전해 들은 즉위식장이 시야 안쪽으로 들어올 터, 그 순간이었다.

    툭!

    자그마한 물체가 비행 중인 이안의 어깨를 스쳤다. 원형의 백색 결정이었다. 일말 냉기도 느껴졌다.

    “우박……?”

    이안이 공중에 우뚝 멈췄다. 나아가 사방의 날씨를 느꼈다.

    절정의 마법사 이안 아니겠는가? 하늘을 관측하는 학자, 하늘의 기운을 전문적으로 읽어내는 마법사보다 훨씬 더 정확했고, 범위마저 넓었다.

    ‘……무슨 이런 날에 즉위식을.’

    이안이 읽어낸 하늘의 흐름.

    단언하건대 최악 중 최악이었다.

    ‘이건 뭐, 거의 반역 수준인데?’

    고개가 절로 저어지는 이안이었다. 물론 그린리버 제국의 날씨, 그중에서도 그린리버디움이 속한 영토 일대가 유난히 변덕스럽긴 하다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었다.

    ‘막지 않으면 큰일 나겠구먼.’

    새로운 황제의 즉위식이다. 심지어 공개적으로, 야외에서 진행되거늘, 이런 날 빗줄기를 넘어서 우박까지 쏟아진다고?

    뒤따라올 수군거림을 고려한다면 반대세력의 반역행위라 해도 믿어버릴 판국이었다.

    ‘정말 그럴 리는 없겠다만.’

    9년이란 세월이 흘렀다고는 하나, 그새 반역의 무리가 탄생했을 것 같진 않았다.

    하니 더더욱 문제였다. 이런 날을 잡아준 상아탑도 문제이거니와, 이런 날 거행될 즉위식도 문제였다. 뿐일까?

    몰려든 인파에 우박이 떨어진다. 즉 부상자가 속출할 가능성이 농후할 터.

    ‘내가 없으니까 상아탑이 개판을 치는군. 로난 님은 뭐하는 거야?’

    상아탑주가 공석일 경우 임시로 탑주의 자리를 역임하는 고위마법사 로난, 그의 통솔을 문제 삼았던 이안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본격적으로 먹구름까지 몰려들었다. 곧 우박이 본격적으로 쏟아질 터.

    ‘당장 기상 자체를 바꿀 순 없다. 아니, 가능하긴 하겠는데…….’

    이안의 경지라면 충분하다.

    다만 시간적 여유가 문제였다.

    ‘그때는 너무 늦어. 벌써부터 한두 덩이씩 떨어지기 시작했으니까.’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최선보단 차악을 선택한다. 먼저 쏟아지기 시작한 우박을 녹인다. 우박이 아닌 ‘비’가 쏟아지도록 만드는 거다.

    ‘우박보다야 낫겠지.’

    일단 부상자 걱정이 없다.

    그 점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흡……!”

    이안이 마법으로 하여금 빚어낸 기운을 내뿜었다. 그것은 마치 반 투명색 아지랑이와도 같았다.

    스스스스스……!

    그 반투명 아지랑이가 원형의 고리를 그려내며 널따랗게 퍼져나갔다. 순식간에 제국의 중심, 그린리버디움 일대를 아울러 버린 거다.

    (녹여라.)

    이안의 명령은 적중했다. 본격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한 우박이 반 투명색 고리를 통과하는 순간, 그대로 녹아내려 몇 방울 빗줄기로 변해버렸다. 예정되었던 우박의 세례가 찰나 소나기로 둔갑한 거다.

    쏴아아아아아……!

    가볍게 고개를 끄덕거린 이안.

    하지만 문제가 끝나지는 않았다.

    ‘이대로라면 황태자 전하의 즉위에 불순한 소문이 돌겠지.’

    하필 새로운 황제의 즉위식 날 비가 온다. 천둥도 친다. 잘못은 상아탑의 기상관측부와 기후학자들이 저질렀지만, 그로 인한 부정의 화살은 오롯이 황태자를 노릴 터.

    ‘아무래도 나한테.’

    이안이 즉위식장 하늘로 향했다.

    이미 쏟아진 비는 어쩔 수 없다.

    ‘모든 관심을 집중시켜야겠어.’

    이후부터는 즉위식에 참석한 전체가 목격했던 그대로였다.

    식장 상공의 모든 빗줄기와 먹구름, 천둥의 기분까지 깔끔하게 집어삼켰다.

    * * *

    “에휴.”

    이안의 기나긴 한숨이 서재에 깔렸다. 고개도 절레절레 흔들었다. 물론 오해까지는 인정한다. 그토록 요란하게 등장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문제는 그 오해의 종류였다.

    “아무리 그래도 관심병이라니. 아니, 애초에 그런 병이 있긴 있나?”

    그 어떤 의학서적에도 ‘관심병’이란 병명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안은 확신할 수 있었다. 즉, 어머니께서 직접 창조해 낸 병명이란 거다.

    “하아…….”

    더 생각해 봐야 무엇하리?

    이안이 애써 잡념을 떨쳐냈다. 동시에 서책을 펼쳤다. 대화의 주제를 돌리고자 무작정 잡았던 소설책, 바로 루카의 최신작 ‘황제의 지팡이’였다.

    과거 대초원 토벌에서 황태자가 보여줬던 위용에 큰 감명을 받은 루카가 집필한 역작이었다.

    “예전에는 날 모델 삼아 마법사를 주인공으로 쓰신다더니만, 그새 폐하 쪽으로 마음이 기운 건가?”

    왠지 모르게 유치한 생각이 들었다. 괜히 진 것 같고 그랬다.

    탁!

    결국 서책마저 덮어버린 이안.

    유치함이 끝을 달리는 그때였다.

    달칵!

    굳게 닫혔던 서재의 문이 열렸다.

    또 어머니일까? 이번에는 아예 더글라스와 아버지까지 몽땅 끌고 와 이안 자신을 놀리려는 걸까?

    “아무리 재미지셔도 말이죠. 그렇게 자주 하시면 금방 질려요.”

    “…….”

    “어머니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

    이안은 고개조차 들지 않은 채 그리 중얼거렸다. 한데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새로운 장난일까?

    “이, 이안 님?”

    “……!”

    전혀 다른 여인의 목소리였다.

    나아가 무척 익숙하기도 했다.

    “공주마마?”

    이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시큰둥했던 표정마저 밝아졌다.

    표현 그대로 ‘급격한 변화’였다.

    “어쩐 일이십니까? 연락도 없이.”

    무심한 듯 말하면서도 표정이 좋았다. 방금까지의 그 유치한 투정, 억울함이 일시에 소멸한 눈치였다.

    “아, 저기, 그게…….”

    이안의 물음에 공주, 하이리 그린리버가 목소리를 더듬었다. 세월이 꽤 흘렀음에도 여전한 미모였다.

    “그…… 어쩌다 보니까요.”

    “예? 무얼 보셨습니까?”

    “상아탑…….”

    “상아탑?”

    잠시 말문을 멈춘 공주.

    이내 그녀가 용기를 짜냈다.

    하고자 했던 말을 힘껏 내뱉었다.

    “상아탑 뒤뜰 숲에 꼬, 꽃이 잔뜩 피었더라고요. 그래서 말인데…… 혹시 한가하시거나, 꽃구경하는 거 좋아하신다면 저랑…….”

    “가죠.”

    “같이…… 네?”

    “꽃구경 말입니다. 마침 저도 기분전환이 좀 필요하던 참이라서.”

    이안은 마치 별거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흡사 그깟 꽃구경이 무에 대수라고 말까지 더듬느냐는 어조였다. 하물며 앞장서기까지 했다.

    “걸어갈까요?”

    “거, 걸어서요?”

    “날씨도 좋으니까.”

    “……아, 네! 그래요!”

    한 박자 늦게 이안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붙는 공주 하이리였다. 겉보기론 완벽하게 휘둘린 모양새였다만, 글쎄, 과연 그녀가 알 수 있을까?

    지금 심장이 콩닥거리는 건 그녀 자신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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