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180화 (1부 완결) (180/342)
  • 180

    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80화

    69. 즉위식(2)

    한차례 소란이 있었던 다음 날.

    황태자와 올리버는 모그리안 영지의 중심부, 영주성에 도착했다. 더불어 모그리안 일가와 함께 수도로 향하는 ‘직행 비행선’을 탔다. 물론 생포한 비적 무리의 처분 역시 영지 군영으로 넘겨버렸다.

    “세상 참 좋아졌습니다. 모그리안 영지부터 황성까지 삼일이면 충분한 날이 찾아올 줄이야. 이것이 모두 우리 영지의 자랑거리, 상아탑주 이안 공 덕분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슬슬 노년의 나이에 접어들고 있는 대영주, ‘마커스 모그리안’이 읊조렸다.

    그는 상아탑주 이안 페이지를 ‘모그리안 영지의 자랑’이라 칭하며 출신성분을 강조했다.

    “장인어른의 말씀이 옳으십니다. 물론 ‘이안의 장원’에서 불철주야 재능을 쏟아내는 장인들의 노고도 큽니다만, 그분들 또한 상아탑주가 불러온 인재 아니겠습니까?”

    황태자가 말하는 ‘장인어른’이란 모그리안 영지의 대영주, ‘마커스 모그리안’을 뜻했다.

    과거 이안에게 영원한 귀빈의 증거로서 반지를 선물했던 바로 그 귀족 말이다.

    어째서 마커스 모그리안이 장인이냐고?

    이유는 간단했다. 그의 막내딸이자 이안과도 인연이 있는 ‘마가렛 모그리안’, 그녀가 황태자 하이든의 ‘아내’였으니까.

    백년가약을 맺은 지만 어느덧 2년이 흘렀다.

    전혀 접점이 없을 것 같은 두 남녀의 연결고리, 그것은 다름 아닌 ‘이안’이었다.

    황태자에게는 이안의 가족 말고도 함께 이안을 추억할 사람이 필요했고, 모그리안 영지가 그 조건을 충족시켜줬다.

    특히 대토벌 당시부터 인연이 있었던 소설가 ‘루카,’ 그리고 ‘마가렛 모그리안’이 무척 이상적인 ‘친구’였다.

    “전하, 하온데 말입니다. 소인의 딸은 어찌하시고 이렇게 매번 바깥 행보에 나서시옵니까? 아직 젊은 나이에 벌써부터 독수공방을…….”

    하물며 마가렛은 황태자와 공통점까지 갖고 있었다.

    아주 희소성 넘치면서도 어리석은 공통점인데, 이는 바로 이안과의 ‘첫인상’이 결코 좋지가 않았다는 점이었다.

    아니, 단순히 좋지 않음을 넘어서 ‘개판’이었다고 표현할 수 있으리라.

    “아, 아닙니다. 장인어른! 남편으로서의 도리는 충분히 해내고 있으니, 걱정하실 필요는 없으십니다.”

    물론 두 사람 모두 첫인상을 고치는 데 성공하긴 했다.

    마가렛은 이안과 이안의 어머니에게 사과를 하면서, 황태자는 아예 열렬한 지지자까지 자처하며 과거의 실수를 씻어냈다.

    설마 그 부끄럽고 아련한 추억이 백년가약의 단초가 되어버릴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흐음, 즉위식 이후부터는 이런 질문도 드리기가 조심스러울 것 같으니, 말 나온 김에 지금 드리겠습니다. ‘충분하게 해내고 있다’는 그 말씀, 정말 믿어도 되겠습니까?”

    결국 황태자와 마가렛은 그 유일한 동질감을 매개체로서 급격히 가까워졌다.

    이보다 더 잘 맞을 수가 없을 정도로 ‘천생연분’이었다.

    “저만 믿으십시오.”

    “그런데 왜 아직도 후사가…….”

    “곧 좋은 소식, 드리겠습니다.”

    황태자 하이든과 대영주 모그리안, 사위와 장인이자 백성과 신하가 극히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지금, 그 모두를 태운 비행선이 구름을 가르며 전진했다. 목적지는 제국의 수도 그린리버디움, 본디 여러 달을 걸쳐 오가야만 했던 거리가 이제 하루면 충분했다.

    * * *

    새로운 황제, 하이든 그린리버를 맞이할 즉위식 준비가 막바지로 치달았다.

    이제 정말 즉위식의 거행이, 지난 역사의 종결이자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 고작해야 한 시간도 채 남지 않아버린 것이다.

    “야! 거기! 카펫선 똑바로 안 맞춰? 이게 무슨 너희들 생일파티라도 되는 줄 알아?”

    워낙 역사적인 현장을 준비하느라 그럴까? 준비에 투입된 하인들 사이에서도 심심치 않게 고성이 오고 갔다. 그야말로 살벌한 분위기였다.

    “이봐! 거기는 자유 참여석이잖아! 대충 하고 이쪽으로 오라고!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려줘야 해? 어?”

    “죄, 죄송합니다!”

    황태자 하이든의 즉위식은 여러모로 남달랐다.

    과거 초청된 자들만 참여할 수 있었던 황궁 내 즉위식과는 달리, 도시 바깥에 따로 차려진 즉위식장을 통하여 대대적으로 치러질 예정이었으니까. 자연스레 초청의 여부도 존재하지 않았다.

    참석하고 싶은 자는 그냥 참석하면 된다. 단언컨대 제국역사뿐만 아니라, 대륙역사를 통틀어도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닐 즉위식이었다.

    “그런데 하녀장님. 정말 즉위식이란 행사가 이래도 되는 건가요?”

    “또 뭐가?”

    “아무리 백성을 위하셔도 그렇죠. 별의별 어중이떠중이들까지 마음대로 들락날락 거리는 즉위식이라니…….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요?”

    어린 하녀의 물음에.

    “어휴! 머리가 그렇~ 게 돌덩이니까 간단한 일도 만날 헤매지!”

    하녀장이라고 불리긴 하나, 사실 나이 많은 하녀에 불과한 여인이 콧대를 한껏 올리며 대답했다. 실로 오만하기 짝이 없는 태도였다.

    “잘 들어. 핵심은 두 가지야.”

    “두, 두 가지요……?”

    “그래, 두 가지.”

    늙은 하녀가 손가락 두 개를 쭉 펼쳤다.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럴까, 주름이 자글자글한 손가락이었다.

    “첫째! 올리버 레이우드 경!”

    “그, 그분께서 왜…….”

    “용조차 때려잡는 기사가 눈 시퍼렇게 뜨고 감시할 텐데, 감히 어떤 겁대가리 상실한 작자가 수작을 부리겠니? 아니, 부려도 문제야. 살심 한번 품는 순간 목이 달아날걸?”

    틀린 말도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정확했다.

    마법사조차 뛰어넘어버린 검.

    올리버 레이우드경이 존재한다.

    이외 또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리고 두 번째! 이게 제일 중요해. 어려운 거야. 정치! 높으신 분들의 정치적인 메시지이거든.”

    “저, 정치적 메시지요?”

    “그렇지. 잘 들어봐. 이건 일종의 과시야. 자기과시. 이렇게 공개적으로 즉위식을 열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나는, 나의 제국은, 나의 수하는 전부 다 최고니까! 어디 건들 테면 건드려봐라! 단, 쏟아질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다면!”

    “우와…….”

    늙은 하녀의 일장연설에 젊은 하녀가 입을 벌렸다. 제대로 알아듣지는 못했으나, 왠지 대단해 보였다. 무려 정치적 메시지라니, 단어만 들어도 겁이 날 지경이었다.

    “대, 대단하세요! 하녀장님. 어떻게 그런 정치적인 일들까지…….”

    “내가 원래 머리는 좀 타고났거든. 아마 남자로 태어났으면 지금쯤 한자리 차지하고 있었을걸?”

    늙은 하녀의 입으로부터 뜻밖에 맞는 말만 흘러나왔다. 크게 축약된 감이 컸지만, 어찌 되었든 두 번째 이유도 비슷했다.

    예전 같았다면 언급할 가치도 없이 기각되었을 ‘공개 즉위식’. 하나 이번만큼은 여러 상황과 까닭이 합쳐져 지금과 같은 결론을 이루어냈다.

    “아무튼, 알아들었으면 할 일이나 해! 꾸물거릴 시간 없으니까!”

    “네, 넵!”

    이제 정말 코앞까지 다가왔다. 즉위식의 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사람들 또한 하나둘씩 몰려왔다. 도시의 백성은 물론 인근 마을의 주민들, 먼 곳에서 구경나온 사람들까지 그야말로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었다.

    물론 황제와 황태자가 입장할 붉은색 카펫의 길목을 기준으로 신분적 구역이 나뉘기는 했지만, 이 정도면 가히 축제라 일컬어도 충분할 정도였다.

    “이쪽으로 오세요!”

    “더글라스, 너무 깊게 들어가지는 마라. 우린 어디까지나 초대석으로 들어가는 입장이니까…….”

    “에이, 아버지. 그러면 다 무슨 소용이에요? 이럴 때일수록 사람들 틈바구니에 껴서 즐겨야죠. 축제잖아요? 제국 전체의 축제!”

    그 수많은 인파 사이로 베네사와 더글라스, 래디오의 모습이 보였다. 고양이로 둔갑한 페어리 퀸 역시 베네사의 품에 쏙 안겨있었다.

    “그래도 초대석이 더 편할…….”

    “가봤자 고리타분한 귀족 나리들이나 만날 텐데, 어머니께는 기분전환이 필요하다고요. 남편씩이나 돼서 그런 것도 제대로 몰라요?”

    “이, 이 녀석이……!”

    “그렇죠, 어머니?”

    아비인 래디오를 신나게 골려 먹은 더글라스, 그가 베네사를 부르는 호칭이 무려 ‘어머니’였다.

    베네사와 래디오가 새롭게 부부의 연을 맺었으니, 호적으로 따지자면 이안의 동생으로 들어간 셈이었다.

    “좋지. 그렇지 않아도 귀족부인 분들 사이에 끼는 건 조금 불편했단다. 공주마마라도 계시면 모를까, 지금은 그것도 아니니…….”

    베네사가 둘째 아들 더글라스의 말에 동의하며 말했다. 공주마저 황족의 자리를 지켜야 하는 이상, 그녀가 구태여 초대석에 앉을 필요는 없었다.

    본디 미천한 출신이었던 만큼 딱딱한 격식과 고상한 분위기의 자리보다야, 이렇게 왁자지껄 모여 축제의 활기를 만끽하는 편이 수십 배, 아니 수백, 수천, 수만 배 더 즐거울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이리 나와 있어도 되는 건지 모르겠구나. 이안만 남겨두고 나온 적은 처음이라,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벌써 9년째 잠들어있는 아들, 이안의 걱정부터 앞서는 베네사였다.

    이러니 지난 세월 얼마나 좌불안석으로 살았겠는가? 집 밖을 마음 편히 나와 본 경우가 손으로 꼽혔다.

    [흥! 별걱정을 다하는구나. 전에 그놈 머리통 위로 유리잔 떨어뜨렸던 실수를 잊었느냐? 아주 박살을 내다 못해 소멸시키지 않더냐?]

    베네사의 걱정을 가만히 듣고 있었던 분홍색 고양이, ‘페어리 퀸’이 콧방귀를 흥 뿌리며 일갈했다.

    [무려 9년씩이나 나자빠져 있으면서도, 제 몸뚱이 하난 기가 막히게 지켜내는 놈한테 걱정? 하! 도대체가 무슨 헛짓거리란 말이냐?]

    페어리 퀸의 말이 결코 틀리지 않았다. 어찌 된 건지 이안은 수면 상태에 빠졌음에도 자기방어 마법을 발동시켰다.

    이안에게 위해를 가할 존재라면 암살자는커녕, 모기 한 마리조차 얼씬거리지 못할 터.

    “그건 그렇지만…….”

    하나 어디 부모 마음이라는 게 그러기가 쉽겠는가? 제아무리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라고는 하나, 아들은 아들일 뿐이었다.

    부우우우우우……!

    그때.

    묵직한 나팔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단 하나의 나팔이었다.

    하지만 곧 그 숫자가 많아졌다.

    부우우우우우-!

    부우우우우우-!

    부우우우우우-!

    즉위식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일대에 흐르던 공기를 통째로 뒤바꿔버렸다.

    나아가 기사와 마법사들의 철저한 통제 아래 펼쳐진 붉은색 길목으로 황제, ‘테리 그린리버’가 입장하기 시작했다. 본인의 역사가 끝나는 순간임에도 가벼운 발걸음을 잃지 않았다.

    “황제 폐하!”

    “황제 폐하!”

    “황제 폐하!”

    그는 누가 무어라 한들 성군이었으며, 앞으로도 쭉 성군으로 회자될 황제였다. 그린리버 제국의 백성이라면 응당 존경심을 가질 수밖에 없을 터. 몰려든 구경꾼들의 무릎이 동시다발적으로 꿇어졌다.

    [짐의, 자랑스러운 백성들이여.]

    이윽고 모두의 시선을 받을 수 있는 중심부 단상 위에 올라선 황제, 그가 음성 증폭구로 구경꾼들 모두에게 말했다.

    제국의 황제로서 내뱉는 마지막 목소리였다.

    [이미 알고 있겠으나, 짐은 오늘 이 자리를 통하여 무거운 황관을 벗고, 나의 아들이자 그대들의 황태자, 하이든 그린리버에게 이 무거운 영광을 물려주고자 하노라. 본디 죽음으로서 벗어야 할 영광이지만, 짐은 오랜 고심 끝에 이것이 제국을 위한 길이라 판단하였다.]

    현 황제 테리 그린리버가 본인의 머리에 씌워졌던 금빛 황관을 벗었다. 마치 신줏단지라도 모시듯 두 손으로 조심스레 잡았다.

    [짐의 뜻을 이해하든, 아직 이해하지 못하든, 이것 하나만은 그대들에게 약속할 수 있다. 제국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것이며, 그대들의 삶 또한 새로운 황제의 행보와 더불어 풍요로워질 것이다. 믿어도 좋다. 짐은 결코 허언이나 일삼는 그릇된 군주가 아님을, 그대들이 더 잘 알고 있지 않던가?]

    풍요로운 삶의 약속, 백성에게 이보다 더 큰 행복이 또 있을까?

    “황제 폐하, 만세!”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만세!”

    우레와도 같은 환호가 터져 나왔다.

    수십 년을 성군으로서 살아온 황제의 위용이었으며, 나아가 무거운 바통을 이어받을 황태자에게 던지는 조용한 압박이기도 했다.

    [짐의 백성들이여. 이제 두 눈을 돌려 그대들의 새로운 황제를 보라. 그 생김새, 걸음걸이, 표정, 손짓 하나하나까지 절대로 놓치지 마라. 또한, 진심으로서 맞이하라.]

    그야말로 진풍경이었다. 황제 테리의 선언에 따라 모든 시선이 한곳으로 향했으니까. 바로 황제가 걸어 나왔던 길목, 그 붉은 카펫으로 펼쳐진 길 위를 황태자 ‘하이든 그린리버’가 밟았다.

    그의 호위 기사이자 역대 최강의 검사 ‘올리버 레이우드’ 역시 곁을 바짝 지켰다.

    “아바마마.”

    “왔느냐. 태자.”

    마침내 현 황제 앞에서 무릎을 꿇은 황태자 하이든, 그런 아들의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는 황제였다.

    “길었구나.”

    “예. 길었습니다.”

    두 부자의 짧은 대화.

    그러나 많은 의미를 내포했다.

    얼간이 황태자가 이 자리에 오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 또 얼마나 많은 성취와 좌절이 반복했던가? 그것은 황제도, 황태자도 마찬가지였을 터.

    “네가 자랑스럽다.”

    “앞으로도 소자가 자랑스러우실 수 있도록, 절대로 실망시켜드리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던 황제 테리 그린리버, 그가 마침내 금빛 황관을 황태자 하이든 그린리버의 머리에 씌워줬다.

    “즉위를 감축드리옵니다. 폐하.”

    그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황제, 아니 ‘전 황제’ 테리 그린리버의 축하였다. 바로 이 순간, 황태자가 ‘황제’로 등극하였음이 만천하에 공표되었으며, 자연스레 황제는 ‘상왕’의 자리로 물러나게 되었다.

    “…….”

    새로운 황제, 하이든 그린리버.

    그가 등을 돌려 백성을 봤다.

    동시에 모두의 무릎이 꿇어졌다.

    말소리 한 줌 내뱉지 않았다.

    백성, 황족, 귀족, 기사, 마법사.

    누구 할 것 없이 그랬다.

    새로운 황제의 탄생 앞에.

    진심 어린 경배를 올려졌다.

    “……나는. 아니, 짐은.”

    황제, 하이든 그린리버의 입술이 느릿하게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쿠르르릉……!

    방금까지만 하더라도 맑았던 하늘이다. 비는커녕 먹구름조차 보이지 않았다는 거다.

    천문학자들과 마법사들이 예측하기로도 그랬다. 비록 그린리버디움의 날씨가 변덕스럽기도 유명하긴 하지만, 그렇기에 더 고르고 골라 오늘을 즉위식의 날로 정했던 것이다. 분명 그러했거늘.

    쿠릉, 쿠르릉……!

    약간의 천둥을 동반한 먹구름이 우르르 몰려왔다. 어디 그뿐일까?

    쏴아아아아아……

    빗줄기마저 떨어지기에 이르렀다.

    이런 날에 먹구름과 빗줄기.

    심지어 천둥이라니.

    “가, 갑자기 왜……?”

    하필 즉위식 날에, 나아가 황관을 물려받은 순간 비가 쏟아지다니?

    하늘의 노여움일까?

    신이 노여워하시는 걸까?

    웅성거림이 순식간에 번져갔다.

    응당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백성에게는 익숙하지 못했던 즉위다. 이토록 공개적인 즉위식은 물론이거니와, ‘선위’라는 개념 자체가 많이 생소했으니까.

    쿠릉! 쿠르릉! 쿵!

    쏴아아아아아아……!

    빗줄기가 점점 더 거세졌다. 굵기며 수량에 이르기까지, 이대로라면 즉위식을 파해야 할 판국이었다.

    “자, 잠깐. 저게 뭐지?”

    “저기, 저 위를 좀 보게!”

    이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시커먼 구름으로 가득했던 하늘.

    그 가운데로 푸른색의 기운이 소용돌이치는 구멍 하나가 나타났다.

    휘오오오오오오-!

    이는 결코 단순한 소용돌이가 아니었다. 사방의 모든 먹구름과 빗줄기, 하물며 천둥과 번개까지 싹 다 빨아들이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상아탑의 마법인가……?”

    너도나도 ‘마법’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러나 정작 상아탑의 마법사들도 넋을 놓은 채 하늘만 올려다봤다. 그들로서도 경이로울 뿐, 관여한 바가 전혀 없었으니까.

    “우, 우리가 지금 뭘 본 거야?”

    어떤 백성의 중얼거림처럼.

    하늘은 다시 맑음을 되찾았다.

    대신.

    “저, 저거…….”

    “사람, 사람이잖아?”

    “푸른색 로브라면…….”

    맑아진 하늘, 모든 것을 빨아들였던 푸른색 구멍조차 사라져버린 그곳에 웬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밝은 갈색의 머리칼, 푸른 빛깔 로브, 허공을 자유로이 비행하는 마법까지. 제국의 백성이라면 결코 잊을 수 없는 특색의 집대성.

    ‘상아탑주?’

    모두가 공통된 인물을 떠올렸다.

    동시에 그 인물이 가까워졌다.

    모두가 밟고 있는 즉위식장으로.

    멍하니 비를 맞고 있었던 황태자.

    아니, '새 황제’의 얼굴 앞으로.

    “소신, 상아탑주 이안 페이지.”

    가볍게 착지한 푸른 로브의 마법사, 그 남자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잔잔한 어조였으나 즉위식장 전체에 똑똑히 전해졌다. 마나가 잔뜩 실린 까닭이었다.

    “황제 폐하를 뵈옵니다.”

    본편 완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