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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클래스 마법사의 회귀 148화
59. 계기가 필요할 때(2)
캉! 카앙! 캉!
망치가 쇳덩이를 두들기는 소리였다. 발걸음이 할리아의 대장간 근처로 들어선 탓이었는데, 비단 망치질 소리뿐만이 아니었다.
“어때? 확실히 가볍지?”
“하나같이 엄청난 물건이오. 세상에 이런 장비가 존재할 줄은…….”
“역시 물건 보는 눈이 있네. 현 인류 최고의 칼잡이답구먼? 옳지, 내친김에 이것도 한번 신어볼래? 얼마 전에 새로 만든 장화인데, 실력 발휘 제대로 했거든? 아마 그쪽이 신으면…….”
한쪽은 응당 있어야 할 대장장이 할리아의 목소리였으나, 다른 한쪽은 또 새로웠다. 익숙하기도 했다.
‘……올리버 경?’
바로 황태자의 호위기사.
올리버의 목소리가 들렸으니까.
중후한 음성에 흥분이 깔렸다.
“그 기회를 준다면야, 나로서는 무한한 영광이외다.”
“이쪽으로 와봐. 이게 손으로 드는 건 좀 무거운데, 일단 발에 신겨지기만 하면! 깃털 하나 달랑 얹은 것처럼 아무런 무게감도 없어진다~ 이거지. 그렇다고 기능이 떨어지냐? 아니, 그럴 리가 있나? 이 장원 주인, 그 마법사 꼬맹이가 마법을 퍼부어도 이 장화랑 네 발은 멀쩡할 거야. 장담할 수 있어.”
“오오, 과연……!”
대장장이 할리아와 기사 올리버, 둘은 병장기와 방어구라는 공통된 관심 분야가 맞물려 그야말로 열띤 대화와 호응을 일으키고 있었다.
덕분일까? 서로 알고 지낸 지 며칠이나 지났다고 상당히 것 같았다.
‘확실히, 올리버 경이 아티펙트까지 제대로 무장한다면…….’
칼 한 자루 쥔 어마어마한 괴물이 탄생해 버릴 터. 아마 이안이 존재하지 않았을 경우 마법사에게 종말을 내려도 손색이 없는 전설적인 기사의 출현이었으리라.
‘그러고 보니, 그날 이후로 별말씀하지 않는군. 장인들과도 스스럼없이 지내는 것 같고.’
올리버는 이안의 에반투스 구출 작전을 도왔다. 덕분에 페어리와 드래고니안과 같은 ‘인 외의 존재’를 접했으며, 불사의 힘을 가진 장인들까지 만났다. 인간사 외의 영역에 한발 넣은 셈이란 얘기다.
한데도 이안에게 아무런 의문조차 품지 않았다. 어쩌면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것일 수도 있으리라.
‘궁금할 법도 할 텐데.’
이안이 생각했다. 물론 에반투스 구출 작전을 시행하기 전에 어느 정도 설명은 해줬다. 하나 그런 배경을 참작하더라도 대단한 절제력이 아닐 수 없었다. 정말이지 난 인물은 난 인물인가 보다.
‘근데 황태자는 어디 있지?’
올리버는 결코 황태자의 곁을 벗어나지 않는다. 정말 특별한 경우나 공적인 임무, 가끔의 개인훈련 시간을 제외한다면 항상 그랬다.
즉, 할리아와 병장기에 대하여 논하고 체험하고자 황태자의 곁에서 떨어져 나왔을 리는 없다는 거다. 올리버의 성정이면 확실할 터.
사락!
그때, 책장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이안이 청력을 강화시킨 탓도 있겠지만, 애당초 강하게 넘겨지긴 했다.
마치 책을 읽고 있다는 티라도 팍팍 내려는 넘김이었다.
사락! 사락! 사락!
이안이 그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봤다. 나아가 이해할 수 있었다. 올리버가 이곳에 오래 머물 수 있는 까닭이며, 요란하기 짝이 없는 책장 넘김의 주인공이 보였으니까.
‘황태자.’
할리아의 대장간 앞뜰, 큼직한 나무가 세워진 그곳에 조각과도 같은 백금발 미남자, 황태자 하이든 그린리버가 걸터앉아있었다. 주변으로는 제2 황실기사단의 기사들이 일정한 거리를 둔 채 호위하고 있었으며, 황태자는 그 가운데서 두꺼운 책을 읽고 있었다.
아무래도 올리버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결코 잘못된 표현이 아니었다.
정말로 기다렸다. 호위기사가 주군을 기다리는 모습이 아닌, 주군이 일개 호위 기사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모양새였다.
‘……두 번 사니 별꼴을 다 보네.’
심지어 황태자의 손에 들린 책, 요란하게 넘겨 가며 읽고 있는 저 책이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통치란 무엇인가]
[저자-마우로 그린리버]
강화된 안력으로 책의 겉표지를 살폈던 이안, 그의 눈이 놀라움이라도 겪은 듯 휘둥그레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무려 그린리버 제국의 5대 성군 중 하나, ‘마우로 그린리버’의 정수가 담긴 정치이론서를 읽고 있었을 줄이야. 다른 누구도 아닌, 저 황태자가 말이다.
‘해봤자 이야기책이겠거니 했건만, 많이 쳐줘야 기초서적이었고.’
그리 생각했던 만큼 충격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은연중에 황태자의 수준을 낮잡아 봤던 결과였다.
‘저게 정말 그 황태자가 맞나?’
시간을 되돌릴 때마다 그 시간을 기점으로 차원이 분열된다더니만, 정말 전생의 황태자와는 종자부터가 전혀 다른 인간인 것 같았다.
‘굳이 방해할 필욘 없겠지.’
눈에 띈다면 또 방방 뛰고 난리가 날 터, 이럴 때는 그저 조용히 빠져주는 게 상책이리라.
이안이 다시금 산책에 나섰다. 산책의 코스는 여전히 장원 내 길이었다. 한 바퀴를 쭉 돌아볼 수 있도록 탁 트인 길, 할리아의 대장간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소규모 재배지가 자리 잡고 있었다. 래디오와 더글라스 부자의 약초 재배지였다.
“어라? 이안 님?”
마침 채집한 약초 바구니를 들고 저택으로 향하던 래디오가 이안과 마주쳤다. 그 뒤로 더글라스 역시 졸졸 쫓아오고 있었다. 두 부자의 발걸음에 급한 기색이 역력했다.
“요 며칠 통 서재에만 계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하시던 고민은 잘 해결을 보신 겁니까?”
딱히 서재에 하루 종일 박혀있고자 했던 건 아닌데,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걱정을 끼친 모양이었다.
“그럭저럭요. 그런 래디오 님은 어디를 가시던 길이십니까? 약초를 그렇게나 많이 캐시고는.”
딱히 긴 대화를 나눌 수도 없는 주제, 이안이 적당하게 다른 얘기로 넘어갔다. 래디오 역시 눈치가 빠른지라 금방 알아들었다.
“아, 에반투스 님께 쓸 약을 조제 중입니다. 이건 그 재료고요.”
“전부 다 말입니까? 그 정도로 심각해요? 전에 봤을 때는…….”
“아뇨, 아뇨. 심하진 않습니다. 그냥 하루라도 빨리 회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셔서…… 에반투스 님이 말이죠.”
“특별한 이유라도 있답니까?”
“글쎄요, 누워있을 시간이 없다고, 할 일이 산더미라는 말씀밖엔 없으십니다만, 초조해 보이더군요.”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에반투스로서는 자손의 수명이야말로 최선 순위의 가치 아니겠는가? 평범한 이들과는 하루의 무게감부터가 다를 터. 어서 털고 일어나 드래곤의 행방을 찾아 쫓고 싶으리라.
‘말을 해줘야 하긴 하겠는데.’
이안은 바로 그 에반투스의 목표, 드래곤의 행방을 찾아냈다. 문제는 언제, 어찌 알려주느냐는 거다. 충분한 고민이 필요한 문제였다. 자칫 권속들을 적으로 돌릴 수도 있을 테니까. 그것만큼은 최대한 미루고 싶었다.
“알겠습니다. 당분간은 좀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이안이 정중하게 인사했다. 래디오도 덩달아 예의를 갖출 수밖에 없었다. 거의 본능이나 마찬가지였다. 오랜 세월 알고 지내 허울이 없어졌다곤 하나, 이안은 엄연한 제국의 이인자였으니까.
“대장!”
그 인사를 끝으로 지나가려는 찰나, 더글라스가 이안에게 다가왔다. 그러더니 웬 약병을 건넸다.
“드셔 보세요. 제가 개발한 피로회복젠데, 이름은 붕붕 드링크라고 해요. 어제 직접 마셔봤거든요? 효과가 아주 엄청나더라고요. 졸리고 무기력하던 게 그냥 싹!”
약병에 담긴 갈색 비약, 더글라스 표 피로회복제 붕붕 드링크가 이안의 손에 쥐어졌다. 별로 마실 마음이 드는 색감은 아니었다.
“더글라스! 네 몸으로 신약 실험은 금지라고 했잖느냐? 도대체 애비 말을 어디로 들은 게야?”
“만드는 사람이 먼저 먹어봐야 마시는 사람도 안심하죠! 아버지, 연금술사로서 기본이 안 되셨네요!”
“뭐라고? 이 녀석이 요즘 나라에서 천재~ 천재 띄워주니까 아주 그냥 눈에 뵈는 것이 없나 보구먼!”
“쳇! 아들이 천재면 좋은 거지! 꼭 마음에도 없는 잔소리는!”
“요, 요, 요 녀석이 근데!”
후다닥 도망치는 더글라스와 그 뒤를 쫓는 래디오. 그 모습이 부자라기보다는 친구처럼 느껴졌다. 이안으로선 사뭇 머나먼 풍경이기도 했다. 아마 꿈에서도 힘들 거다.
‘내 아비란 작자는…….’
끔찍하다. 생각하기도 싫다. 씁쓸하게 웃었던 이안이 더글라스의 특제 피로회복제, ‘붕붕 드링크’를 쭉 들이켰다. 예상했던 대로 맛은 별로였다. 대신 각성효과 하나만큼은 충만하게 느껴졌다. 단언컨대 이름과 잘 어우러지는 효과였다.
“크으……!”
술도, 음료도 아닌 피로회복제를 기분 좋게 들이킨 이안. 그가 상쾌한 탄성과 함께 발걸음을 나아갔다. 단지 집 주변을 걷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좋네.’
이안의 기분 좋은 걸음걸이가 계속해서 사박사박 뻗어 나갔다. 또 어떤 사람들이 걸음 앞에 기다리고 있을까? 그다음 주자를 만나기까지는 금방이었다. 아니, 이번에는 주자가 아니라 ‘주자들,’ 혹은 ‘주자의 무리’인 것 같았다.
끼익! 쿵! 끼익! 쿵!
끼익! 쿵! 끼익! 쿵!
묵직하면서도 절도 있는 발자국 소리, 사람은 아니었다. 사람보다 열 배 이상은 족히 무거워야 저러한 굉음도 일으킬 수 있을 터.
“골렘……?”
소리의 근원은 바로 골렘, 조금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사람의 형태를 이룬 거대한 조각상’들이 줄 맞춰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었다. 심지어 엄청나게 무겁고 다양한 종류의 자재들을 한껏 짊어진 채로 움직였다.
“앗! 후손님! 여기에요. 여기!”
그 골렘 중 가장 앞장서 걸어가는 개체, 홀로 아무런 짐짝도 짊어지지 않은 골렘.
그 어깨 위에 소년 하나가 타고 있었다. 아직 정신과 기억이 온전치 못한 조각의 달인, ‘클레반’이었다.
“뭘 그렇게 옮기십니까?”
이안도 골렘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도시 복구와 장원 증축에 지대한 공을 쌓은 클레반의 짐꾼 조각상, 이름하여 ‘불끈이’ 부대였으니까. 클레반이 몸소 타고 있는 저 불끈이가 바로 ‘1호기’였다.
“스람 아저씨 비행포격선이요! 며칠 전부터 진화하는 중이거든요!”
“진화?”
“우음, 진화가 아니라 강화였나?”
“……아마 강화가 맞을 겁니다.”
“넵! 강화!”
아무래도 스람이 탄생시킨 거대한 비행포격선, 이안과 동료들을 가고일의 중심부로부터 구출해준 ‘용의 심장’에 대한 보수 및 강화가 한참 진행 중인 모양이었다.
“후손님도 구경하실래요?”
“천천히 따라가겠습니다.”
“잘 따라오셔야 해요!”
이안이 불끈이 행렬의 뒤를 따라갔다. 장원에서 가장 널찍한 공터에 도착했는데, 넓다고는 하나 비행포격선의 보수 및 강화를 꾀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자아, 이제…….”
클레반이 서책 한 권을 펼쳐 들었다. 더불어 서책에 걸린 아티펙트 효과가 발동되기 시작했다.
서책의 정체는 바로 포탈의 책, 심지어 기존에 봐왔던 포탈보다 훨씬 커다란 포탈을 생성해냈다. 용용이와 불끈이의 크기에 맞춰 만들어진 대형 포탈이었다.
“불끈이 부대! 일렬종대!”
(크으응……?)
“앗! 처음부터 일자였지 참.”
제 머리를 콩 찍은 클레반.
녀석이 명령을 바꾸었다.
“불끈이 부대! 진입!”
(크으으응……?)
“포탈로 들어가라고!”
(크응!)
이윽고 포탈 너머로 진입하기 시작한 불끈이 부대, 이안 역시 그 뒤를 따라 포탈 너머에 도착했다.
“여긴……?”
정말이지 놀라울 정도로 거대한 지하였다. 한데도 어둡지 않았다. 수많은 마도공학품의 힘이었다.
‘이런 지하가 존재했었나.’
이 초대형 지하실의 정체, 마도공학자 스람이 수백 년간 사용해온 ‘비밀 공방’이었다. 얼마나 넓은지, 비행포격선 용의 심장이 들어섰음에도 공간이 남아돌 정도였다.
“아저씨! 저 왔어요!”
“오, 클레반! 마침 잘 왔다.”
비행포격선의 갑판에 마도공학자 스람이 서 있었다. 보석세공사 데니스와 목수 제르비오의 얼굴도 보였다. 조각가 클레반까지 합쳐 총 네 명의 장인들이 모여 비행포격선의 강화를 연구하는 모양새였다.
“포격의 위력을 강화하려면 아무래도 포신 길이부터 바꿔야…….”
“무슨 소리! 내가 가져온 저 증폭 보석! 저거 하나만 뇌관에 끼워주면 다 필요 없어! 완벽하다고! 번거롭게 뜯어고칠 필요 없다니깐?”
“어허, 이 친구들 보게? 이거 엄연히 내 작품이야. 결정권은 무조건 나한테만 있음을 명심하라고!”
분야가 다를지언정 장인이다. 특히 저 비행포격선이야말로 여러 분야의 집대성 아니겠는가? 한손 섞고 싶단 생각이 들 수밖에 없으리라.
‘굉장한 물건이 완성되겠군.’
이미 산맥에서 보여줬던 위력만 놓고 보아도 인간사 외의 마도공학품이었거늘, 저 장인들이 모두 달라붙어 발전시킨다면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물건이 완성될까? 나아가 응용까지 해낸다면 인류의 문명 자체를 빠르게 격변시킬 터, 상상만으로 아득한 느낌이었다.
‘모두들 치열하게 사는구나.’
저택 주변 한 바퀴 돌았을 뿐인데, 이안은 생각보다 많은 생각 거리를 얻었다. 인간사는 그 세상만의 치열함으로 가득했다. 결코 아무것도 아닌, 평화롭기만 한 세상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수백, 수천, 수만 년을 흘러온 거다.
‘너무 내 위주로만 생각했어.’
‘거악’을 감당해야 한다는 부담감, 자신이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감. 근래에 들어 이안의 심정은 그 두 가지로만 가득했다. 때문일까? 자신조차 모르는 사이 인간사를 우습게 여긴 모양이었다.
‘내가.’
이안의 다짐이 확고해졌다.
‘저 치열함을 지켜줘야겠지.’
‘동기부여’란 중요하다. 이안은 지금 엄청난 동기를 얻었다. 그렇기에 다시금 추진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나눌 수 있는 부담은 나누어야 한다. 함께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협동으로 나아간다. 나는 단지 도우미로서 존재하는 것.’
이안이 스스로 경계선을 그었다. 그래야만 했다. 자신은 결코 해결사 따위가 아니니까. 인류의 수호자 역시 아니니까. 수호자란 이름의 남용이야말로 미쳐버린 존재, 프란 페이지의 전철을 밟는 행위가 아니겠는가?
‘좋아.’
딱 하루만 쉬고 싶었던 마음, 그 지쳐버린 정신과 몸뚱이가 기적처럼 깨어났다. 충만해진 고양감이 생각 하나하나에 힘을 실어줬다.
‘이만 돌아가자.’
장인들의 토론, 혹은 유치한 말싸움을 조용히 지켜봤던 이안. 그가 텔레포트 주문을 발동시켰다. 다시금 서재로 돌아가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기 위함이었다.
우우우우웅-!
빛이 이안의 육신을 꿀꺽 삼켜 서재 내부로 옮겨줬다. 프란 페이지가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언제나 고요했던, 이안의 가장 편안한 아지트와 같았던 공간, 한데 그 공간으로 손님의 모습이 보였다.
불청객은 아닌 것 같았다. 프란 페이지가 아니었으니까.
“……공주 마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