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화 제5장 도전(1)
“교수님, 정말 수술하실 겁니까?”
손대범이 진료실을 떠나기 무섭게 최경훈이 입을 열었다.
최경훈은 아직도 이믿음의 무모한 결정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환자가 요청한 무수혈 수술을 이믿음이 흔쾌히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무수혈 수술을 한다는 것은 외과의가 양손에 족쇄를 차고 수술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절개 부위 선정이나 절개 방식.
혈관 관리 및 혈관 봉합 방법 등등.
무수혈로 인해 외과의의 선택지는 대폭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가장 두려운 점은 역시 수혈을 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만약 수술 도중 피치 못할 출혈이 발생한다면?
최악의 상황을 상상해 본 최경훈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정말 실례지만 교수님, 종교가 혹시…….”
“이 녀석, 예뻐해 줬더니 못 하는 소리가 없네?”
이믿음이 자리에서 일어나 최경훈에게 다가왔다. 꽁 하고 최경훈의 머리를 살짝 쥐어박았다.
“죄송합니다, 교수님. 하지만 무수혈 수술은 다들 기피하시니까 혹시나 해서…….”
“내가 그 종교였으면 무슨 수로 흉부외과의를 하고 있었겠니.”
“아하!”
“경훈이 넌 다 좋은데 감정에 너무 치우쳐 있어. 그 점은 깊이 고민해 보렴.”
이믿음이 그 종교가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최경훈은 여전히 궁금했다.
이믿음은 왜 무수혈 수술을 허락했을까.
최경훈은 환자가 남기고 간 각서를 빤히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각서의 내용은 단순했다.
수혈하지 않아 발생한 문제에 관해서는 집도의가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일종의 면죄부랄까.
그렇다고 해서 각서가 전지전능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었다.
각서가 있더라도 환자가 사망하면 외과의는 정신적 타격을 입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보호자측에서 수혈 문제가 아닌 외과의의 과오를 주장하며 의료 소송을 걸 수도 있었다.
“과장님, 왜 수술을 승낙하셨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최경훈은 이믿음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려울 것 없지.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이믿음이 검지와 중지를 치켜든 채 말을 계속했다.
“하나는 이시형 교수에게 본때를 보여 주고 싶어서야. 이시형 교수가 포기한 수술을 내가 해낸다면 어떨까?”
“교수님이 이시형 교수님보다 한 수 위라는 걸 증명할 수 있겠네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던 최경훈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이믿음이 검지를 접으면서 이믿음의 중지가 최경훈을 정면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이믿음도 금방 본인의 실수를 깨닫고 손을 내렸다.
“흠흠, 방금 건 실수. 사실 제일 중요한 건 두 번째 이유란다.”
“제일 중요한 이유라고 하시니까 괜히 기대가 되네요.”
“두 번째 이유는 그냥 해 보고 싶어서야.”
“네? 진심이세요?”
다소 맥 빠지는 대답에 최경훈은 혀를 찼다.
그저 무수혈 수술에 흥미를 느껴서 수술을 허락했단 말인가.
단순히 흥미를 충족하기에는 이번 수술에서 이믿음이 잃을 것들은 너무 많았다.
환자의 사망과 보호자의 의료 소송.
이시형 교수의 반격과 과장 강태섭의 꾸지람 등등.
그런 의미에서 이번 무수혈 수술은 성공하면 본전이었고 실패하면 쪽박을 차는 수술이었다.
“나도 지금까지 무수혈 수술은 해 본 적이 없거든. 좋은 도전이 될 것 같다.”
이믿음을 당장이라도 뜯어말리고 싶은 마음을 최경훈은 꾹 참았다.
최경훈은 이믿음의 에세이를 여러 번 읽으면서 이믿음이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이믿음에게는 남다른 개성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도전 정신이었다.
이믿음은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분명 그 도전 정신 덕분에 남보다 앞서갈 수 있지 않았을까.
최경훈은 이번 기회에 이믿음의 도전 정신을 배워 보고 싶었다.
“선생님, 오더는 어떻게 적을까요?”
“수술 질문은 벌써 끝? 더 뜯어 말려야 하는 거 아니니?”
“제가 감히요? 그리고 전 이 교수님을 믿습니다.”
“걱정할 때는 언제고?”
“그거야 제가 교수님을 너무 존경해서 그런 거죠.”
타다다닥.
최경훈은 이믿음이 불러 주는 오더를 그대로 타이핑했다.
3주 뒤에 입원 후 수술.
그 전까지 삼 일 간격으로 외래를 방문해 자가 수혈을 위한 채혈 실시 등등.
오더를 다 입력한 최경훈은 탁상 달력을 손에 쥐고 수술 날에 빨간 동그라미를 쳤다.
결전의 날이었다.
* * *
첫 외래 진료를 성공적으로(?) 마친 다음 날 오전 컨퍼런스.
나는 강태섭의 집중 포격을 맞았다.
“이 교수,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 환자를 받았어요?”
강태섭은 무수혈 수술을 영 못마땅하게 여겼다.
수술을 거부하면 그만인 것을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진행하는 이유가 뭐냐고 따졌다.
강태섭다운 반응이자 내가 충분히 예상하고 있던 반응이었다.
“의사가 환자를 수술하는 데 무슨 생각이 있어야 합니까?”
나는 오히려 당당하게 맞받아쳤다.
“암, 당연히 생각이 있어야죠. 이 교수의 커리어를 위해서라도, 의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저도 과장님의 걱정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닙니다.”
“그럼 내 입장을 이해하는데도 이런 일을 벌였다고요?”
“네, 저는 수술을 성공시킬 자신이 있으니까요. 자신이 없었다면 처음부터 수술을 거절했겠죠. 누구처럼.”
나는 이시형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의국 스태프들이 보는 앞에서 이시형을 노골적으로 저격한 것이다.
내 의도를 알아차린 이시형의 두 뺨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한껏 벌어진 콧구멍에서는 씩씩 김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이 교수, 지금 용기가 아니라 만용을 부리고 있는 거 압니까? 무수혈 수술이 그렇게 만만한 줄 알아요?”
이시형이 도끼눈을 뜨고 물었다.
“아하, 바꿔 말하면 이 교수님은 만만한 수술만 하고 계신다는 뜻이죠?”
“뭐라고요?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말할 겁니까?”
“식당에서 일하지 않은 사람은 먹지도 말라면서 저를 능욕했던 분은 누구였더라?”
나는 얄밉게 딴청을 피웠다.
레지던트 시절에야 직급이 낮아서 하고 싶은 말들을 가슴에 담아 뒀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나는 부교수이자 의국의 2인자 중 한 명이었다.
상대방의 폭언과 무례를 참을 필요 없이 속 시원하게 맞받아치면 그만이었다.
나와 이시형 사이가 과열된 양상을 보이자 강태섭이 중재에 나섰다.
스태프들끼리 다투는 것은 금지다.
또한 손대범은 내 환자이니 나를 전적으로 믿고 맡기겠다고도 했다.
얼핏 보면 날 신뢰해서 하는 말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당연히 그렇지 않았다.
만약 수술이 실패한다면 강태섭은 나를 인정사정없이 물어뜯을 게 분명했다.
강태섭은 당근과 채찍을 황금 비율로 사용할 줄 아는 인간이니까.
지금은 단지 당근을 들어야 할 때라고 판단했을 뿐이리라.
무수혈 수술이 언급된 것은 컨퍼런스 첫날뿐이었다.
그 후로는 누구도 무수혈 수술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외래 진료실은 여전히 허전했다.
환자들은 나를 외면한 채 다른 흉부외과의들을 찾았다.
외래 환자가 없다시피 했으므로.
외래 환자가 있다고 한들 반드시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은 아니므로.
근무 첫 주에 나는 단 한 번도 수술방에 들어가지 못했다.
내 외과의 인생에 있어서는 거의 카노사의 굴욕이나 마찬가지인 끔찍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참혹했던 한 주가 지나고 나는 마침내 의료 정보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었다.
외래 진료에 커다란 전환점이 될 순간 말이다.의학 정보 프로그램의 이름은 건강 쏙쏙.
공영 방송에서 월-금 오전 10시에 방송하는 실시간 프로그램으로 아나운서, 의사, 게스트, 단 세 명이 출연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방식이었다.
해당 회차의 주제는 환절기 심장 건강.
게스트는 무려 오진호였다.
오진호가 나를 돕겠다며 발 벗고 나서 준 것이다.
실시간 방송이었던 데다가 사방에서 빨갛게 눈을 뜨고 있는 카메라들이 부담스러웠지만 나는 제법 조리 있게 말을 잘했다.
1살부터 갈고 닦은 말발은 그 어떤 위기의 순간에서도 빛을 발했다.
“선생님, 괜찮으시면 나중에 한 번 더 출연해 주시겠어요? 보는 눈도 즐겁고 말씀도 너무 잘하셔서요.”
방송이 끝난 후 담당 PD가 나를 불러 극찬을 할 정도니 말 다 했다.
방송의 효과는 실로 극적이었다.
실시간 방송이었던 만큼 그날 오후부터 예약이 해일처럼 밀려들기 시작했다.
한 주 예약이 바늘 하나 들어갈 틈도 없이 꽉 차 버렸다.
단 반나절 만에.
나는 소리 없는,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외래 환자가 증가하면서 수술에도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내가 입원시킨 환자들이 하나둘 병동을 찾았고 공백이었던 수술 스케줄도 하나둘 메워졌다.
그렇게 모든 일은 내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날의 그 사건의 터지기 전까지는.
* * *
“크으으, 좋네.”
최경훈은 믹스 커피를 한 모금 홀짝거리고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병동 라운딩을 마치고 마시는 커피는 언제나 일품이었다.
현재 시간은 오후 7시.
땅거미가 진 창밖의 풍경은 어두컴컴했지만 가로등과 건물이 뿜어내는 불빛이 등대처럼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당직실은 고요했다.
3, 4년 차는 내일 있을 발표 준비를 위해 회의실에 있었다.
2년 차 선배인 엄철우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아마 중환자실에서 환자를 보고 있으리라.
믹스 커피를 마시면서 최경훈은 남은 업무가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방금 막 라운딩은 끝냈다.
입력할 차트가 조금 남았지만 분량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모처럼 생긴 여유 시간에 최경훈은 에세이를 손에 쥐었다.
<당신의 심장이 뛰는 거리, 25억킬로미터>
몇 년 전 이믿음이 출간한 에세이였다.
오래전부터 다독을 해 왔던 탓에 책 표지는 많이 바래지고 헤져 있었다.
하지만 최경훈은 책에 묻은 때마저 좋았다.
촤르륵. 촤르륵.
최경훈이 에세이를 읽기 시작했다.
에세이 속에 이믿음은 교수가 아니라 최경훈과 같은 레지던트였다. 그래서 에세이 속 이믿음은 최경훈에게 친구처럼 느껴졌다.
띠리리링.
잔잔한 감동이 물결치려던 찰나, 당직실 전화기가 눈치 없이 울어 댔다.
최경훈은 인상을 쓰며 전화를 받았다.
“네, 흉부외과입니다.”
- 선생님, 응급실입니다. 방금 흉부외과 환자를 한 명 봤는데 급하게 수술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수술이요?”
수술이라는 단어에 최경훈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응급 수술 스케줄을 잡는 일은 최경훈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가만 보자.
지금 수술을 할 수 있는 교수님이 누가 있더라?
에세이의 여운은 어느새 감쪽같이 날아가 버렸다. 긴장한 최경훈은 허리를 곧추 세우고 통화를 이어 갔다.
“환자 번호부터 불러 주실래요?”
- 네, 1341…….”
타다다닥.
환자 번호를 입력하자 환자의 정보가 모니터에 떠올랐다. 순간 최경훈은 두 눈을 의심했다.
눈을 여러 번 깜빡거리고 손등으로 눈가를 비비기도 했다.
환자의 이름이 손대범이었다.
바로 다음 주에 무수혈 수술이 예약되어 있는 그 문제의 환자 말이다.
아직 충분히 자가 혈액을 보유하지 못한 상황이거늘…….
“하… 씨발 x됐네.”
- 네? 뭐라고요, 선생님?
최경훈의 거친 언사에 응급실 간호사가 당황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하지만 최경훈은 지금 심정을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진짜 x됐다고요!”
[] 그레이트 마운틴 강 1-266 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