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살부터 의사 생활-235화 (235/257)

235화 제2장 출국 (5)

인천 국제공항 대기실은 내국인과 외국인으로 북적거렸다.

다양한 피부색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드르륵. 드르륵.

출국하거나 출입하는 사람들의 손에 들린 캐리어 바퀴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전광판에는 각종 비행 스케줄이 떴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음식 코너 쪽에서는 달달한 음식 냄새가 풍기기도 했다.

마침내 한국을 떠나는구나.

대기실 벤치에 앉아 있던 나는 출국이라는 현실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처음 경험하는 출국이라 살짝 설레기도 하고 살짝 불안하기도 했다.

전생에서 나는 비행기를 탄 적이 없었다.

해외여행은커녕 제주도를 간 적도 없었다.

비행기 공포증이 있었다기보다는 비행기를 탈 여유가 없었다고 보는 편이 맞았다.

탑승을 기다리는 동안 문득 어머니가 떠올랐다.

스멀스멀 죄책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어 죄책감을 떨쳐 냈다.

지금으로부터 나흘 전.

원무과에서 해외 연수 준비가 끝났다는 소식을 들은 후, 나는 가족들에게 가장 먼저 연수 소식을 알렸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해야지. 건강하게 잘 다녀오너라.”

아버지는 해외 연수를 적극 지지했다.

“또 형 못 보는 거야? 형 얼굴 보기 진짜 힘드네.”

사랑이는 이별을 아쉬워했지만 나를 붙잡지는 않았다.

의외의 복병은 어머니였다.

“난 찬성 못 하겠어. 이번 해외 연수는 다시 생각해 보렴.”

어머니는 완고하게 반대 의견을 내세웠다.

미국에서 수련하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

미국은 사람들이 총을 휴대해서 까딱 잘못했다간 총 맞아 죽을 수도 있다.

동양인을 향한 인종차별도 심하다던데 따돌림을 당하면 어떻게 하냐.

말이 통하지 않아 외롭고 음식도 입에 맞지 않아 내가 고생만 할 거라고 했다.

“어머니가 걱정하시는 건 충분히 이해해요. 하지만 이건 제게 주어진 새로운 기회예요.”

나는 어머니가 놓치고 있는 미국행의 장점을 설명했다.

펠로우 수련 시간의 단축.

선진 기술의 습득.

해외까지 뻗어 나가는 흉부외과 인맥 등등.

하지만 어머니는 내 설명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자기 할 말만 했다.

어머니 눈에는 그저 내가 맹수의 아가리에 머리를 들이미는 것처럼 무모해 보였던 것이다.

어머니는 급기야 단식 투쟁에 나섰다.

내가 미국행을 철회할 때까지 물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어머니의 극단적인 행동이 나는 답답했다.

조금 화가 나기도 했다.

아들의 꿈을 모르는 분이 아니거늘 대체 왜 이렇게 고집을 부리시지?

주말 이틀에 걸쳐 어머니와 허심탄회하게 대화한 결과.

나는 간신히 어머니에게도 출국 허락을 받아 냈다.

하루에 두 번 전화하기.

3개월에 한 번씩 한국에 돌아와서 얼굴 보여 주기 등등의 조건을 걸고서 말이다.

어머니는 출국 허락을 하고서야 뒤늦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큰 아들이 설령 할아버지가 된다고 해도 엄마 눈에는 여전히 애처럼 보일 거란다. 부모에게 자식이란 그런 존재란다.”

내 나이가 서른을 훌쩍 넘었음에도 말이다.

어머니는 내가 아직 유치원 시절의 꼬마로 보인다고 했다.

그게 부모의 마음이라고도 했다.

솔직히 나는 어머니의 말을 백 퍼센트 공감할 수는 없었다.

전생의 나는 결혼도 하지 않았고 아이도 키우지 않았으니까.

그럼에도 말속에 담긴 뉘앙스는 어느 정도 파악했다.

어머니는 사랑한다는 말 대신 걱정한다는 말을 했을 뿐이었다.

드르륵. 드르륵.

상념을 마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캐리어를 끌고 이동했다.

비행기에 탑승할 시간이 되었다.

가족들의 배웅은 없었다.

출국을 특별한 이벤트로 만들고 싶지 않다고 가족들에게 말해 놓아서였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떠나서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오고 싶었다.

탑승장이 가까워지면서 심장이 쿵쿵 뛰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들을 향해서.

내가 기다렸던 것들을 향해서 나는 나아가고 있었다.

* * *

짐칸에 짐을 쑤셔 놓고 나는 창가 쪽 좌석에 앉았다.

자리를 찾는 사람들과 짐을 정리하는 사람들로 비행기의 가운데 통로가 혼잡했다.

지나가던 사람을 구경하던 중 나는 한 여성과 눈을 마주쳤다.

40대 정도로 보이는, 몸에 살집이 붙은 백인 여성이었다.

‘하이’하고 여성이 살갑게 인사를 건넸으나 내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여성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인사를 받아 주지 못한 것이 뒤늦게 미안해졌다.

‘문화적인 차이도 확실히 걸림돌이 되겠네.’

나는 가만히 턱을 쓸어내렸다.

사소한 에피소드였지만 내가 앞으로 미국에서 겪을 어려움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솔직히 언어 문제는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국민학교를 다닐 때부터 이 날을 위해서 영어 말하기·듣기 실력을 키워 왔고.

의사들의 의사소통은 대부분 의학 용어로 이뤄지니까.

그래서 언어보다는 미국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미국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나는 생각했다.

잠시 후 방송이 나오고 비행기가 이륙했다.

창 너머로 펼쳐졌던 우중충한 아스팔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대신했다.

도심의 풍경도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자동차는 개미 같았고 육중했던 빌딩은 장난감처럼 아기자기해 보였다.

비행기에 처음 탑승한 나는 그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 * *

제임스 홉킨스 병원이 위치한 볼티모어까지는 무려 15시간이 걸렸다.

그 긴 시간 동안 나는 창밖의 경치를 즐기거나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었다.

나름 발버둥을 쳤다만 지루함은 쉽게 가시지를 않았다.

온몸이 간질간질하고 좀이 쑤셨다.

활동적인 내게 15시간 동안 한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하는 것은 고문이었다.

“잠시 안내 말씀드립니다. 탑승 중인 승객 중에 의사분이 계시다면 52번 구역으로 와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려 드립니다. 탑승 중인 승객 중에…….”

기내 방송이 각각 한국어와 영어, 일본어, 중국어로 흘러 나왔다.

이게 말로만 듣던 닥터 콜인가.

탁터 콜에 대한 의사들의 반응은 보통 둘로 나뉘었다.

하나는 의사가 환자를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므로 환자를 진료한다.

다른 하나는 모른 척한다였다.

여기서 모른 척하는 이유는 의사가 환자를 돌보다가 문제가 생겼을 경우.

의사가 환자를 책임져야 하는 영역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 선택이라면 당연하게도 전자였다.

의사가 환자를 두려워한다는 것은 수영 선수가 물을 두려워한다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안전벨트를 풀고 복도로 나갔다. 이코노미석의 가장 뒤쪽인 52번 구역으로 이동했다.

문제의 장소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화장실 근처에 한 여성이 쓰러져 있었고 그 주변으로 승무원들이 몰려 있었다.

승객들은 호기심과 걱정이 어린 눈빛으로 현장을 힐끔거리기 바빴다.

자세히 보니 쓰러진 여성은 아까 내게 인사를 건넸던 백인 여성이었다.

아까 인사를 받아 주지 못했던 실수를 이번에 만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What’s up?(무슨 일입니까?)”

그런데 환자와의 거리가 10발자국 정도 남은 거리에서 한 백인 남성이 선수를 쳤다.

닥터 콜을 듣고 현장을 찾은, 미국 의사로 보였다.

한발 늦은 나는 미국 의사와 승무원들이 나누는 대화를 엿들었다.

승무원들의 설명은 간단했다.

방금 막 여성이 화장실 앞에 쓰러진 것을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한편 미국 의사는 본인의 이름이 마이클이고 피부과 전공이며 본인이 환자를 보겠다고 했다.

선수를 빼앗겼기 때문에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없었다.

마이클이 환자를 어떤 식으로 치료하는지 지켜보는 게 최선이었다.

“손님, 정말 죄송하지만 자리로 돌아가 주시겠어요?”

내가 환자 근처에 서 있자 한 승무원이 정중하게 부탁했다.

“저도 닥터 콜을 받고 온 의사입니다. 흉부외과 전문의예요.”

“아…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까지야… 그나저나 저 환자분의 동승자는 있나요? 동승자가 있으면 히스토리, 그러니까 병력을 청취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나는 환자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환자는 의식이 있었지만 의식이 온전하지는 않았다.

몸 상태를 묻는 마이클의 질문에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했다.

눈동자는 풀려 있었고 호흡은 거칠었다.

“동승자는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혼자 탑승하신 분이에요.”

“그래요? 곤란하게 됐네요.”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승무원이 가져 구급상자를 이용해 마이클이 환자를 진찰하기 시작했다.

자세히 관찰하니 환자의 혈압이 180mmHg에 120mmHg으로 꽤 높았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환자의 맥박과 체온은 어떻게 되지?”

“당신은 누구인데 진료를 방해하지?”

내가 영어로 묻자 마이클이 신경질적으로 되물었다.

나는 내가 한국의 흉부외과의라는 것을 밝혔다.

그제서야 마이클의 표정이 다소 풀렸다.

마이클은 환자의 맥박은 130회 정도 되고 체온은 36.1도라는 사실도 알려 주었다.

“환자의 소지품을 뒤져 볼 수 있어? 혈압약이 있는지 궁금해.”

마이클이 승무원에게 부탁했다.

승무원은 곤란해했지만 치료 목적임을 밝히자 순순히 환자의 좌석으로 이동했다.

돌아온 승무원은 환자의 소지품 중 혈압약이 없다고 전했다.

“이 환자는 공황 발작을 일으켰어. 특별한 조치는 필요 없고 푹 쉬게 두면 알아서 회복될 거야.”

마이클이 몸을 일으키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승무원도 마이클의 진료를 신뢰하는 눈치였다. 다들 긴장을 풀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마이클의 진단이 틀렸다는 사실을 나만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럼 슬슬 실력 발휘를 해 볼까.

“마이클, 이 환자 공황 발작 아닙니다. 고혈압 환자예요.”

“Come on. You don't know how to see a patient(이봐, 당신은 환자를 볼 줄 몰라).”

마이클이 대놓고 나를 무시했다.

마이클의 눈빛도 목소리도 나를 깔보고 있었다.

마이클이 인종 차별주의자인지, 단순히 나르시시스트인지는 아직 확인할 길이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마이클이 헛다리를 짚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방금 이야기 못 들었어? 환자의 소지품에 혈압약이 없다고 하잖아. 고혈압 환자라면 혈압약을 먹었겠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네.”

“뭐라고?”

내 반격에 마이클의 눈썹이 뾰족하게 솟구쳤다.

“이렇게 해석해 보는 건 어때? 환자는 고혈압인데 고혈압 약을 미처 챙기지 못해서 이런 상황이 발생했다고.”

“그럴… 수도 있겠군. 하지만 그건 가정에 불과해.”

“가정에 불과하지만 자주 일어나는 일이기도 해.”

나는 차분하게 환자가 공황 장애가 아닌 이유를 댔다.

그 이유는 바로 이륙 전 나와 환자가 나눈 인사였다.

환자는 낯선 한국인인 내게 인사를 걸 만큼 여유가 있었다.

비행기를 처음 탄다거나 비행기에 공포증이 있다면 그런 여유를 보일 수 없었을 것이다.

“약함에 비상 혈압약 가지고 있죠?”

“아, 네.”

“혈압약 가져와서 환자분에게 먹이세요.”

내가 지시를 내렸음에도 승무원은 갈팡질팡이었다. 내 말과 마이클의 말 중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이 환자가 공황 장애 환자라면 고혈압 약을 먹고 혈압이 정상치 아래로 떨어질 거야. 그럼 상태가 더 나빠지겠지.”

내가 영어로 내 처치 방식을 밝히자 마이클이 심한 거부 반응을 보였다.

여전히 본인 진단이 맞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환자가 고혈압이라면 마이클이 말한 것보다 더 큰 재앙이 벌어질 테고.”

“네 말에 책임질 수 있어?”

나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마이클이 한발 물러서면서 결국 환자에게 고혈압 약이 경구 투여되었다.

그렇게 40분이 지난 후 환자는 말을 할 수 있을 만큼 의식이 좋아졌다.

환자의 입으로 진실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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