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제3장 응급 아닌 응급(2)
대동맥 박리 수술 준비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남하늘은 밀려드는 불안에 딱딱딱 이를 부딪쳤다.
이믿음이 초저체온 완전 순환 정지법과 좌심방 대동맥 보조 장치 착용을 지시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당연히 납득할 수 있는 처치였다.
이 두 가지 방법을 쓰면 수술 후 환자의 회복을 극대화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번 수술에는 교수는커녕 펠로우급도 없어 열악했다.
흉부외과에서 3년째 수련 중인 남하늘조차 오늘 같은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런데 이 인원들만으로 초저체온 완전 순환 정지법과 좌심방 대동맥 보조 장치를 감당할 수 있을까.
고작 60분 만에 수술을 끝낼 수 있을까.
남하늘은 이믿음을 철석같이 믿어 흉부외과까지 왔지만 오늘만큼은 도무지 이믿음을 믿기 힘들었다.
이믿음이 너무 무모해 보여서 조마조마했다.
마치 냇가에 자식을 내놓은 것처럼.
“선배. 일단 시키는 대로 하긴 하는데, 정말 괜찮은 거예요?”
“뭐가?”
“이번 수술이요. 인공심폐기를 사용하면서 장기전을 보는 게 맞지 않아요?”
“환자는 50대 중반인 데다가 무려 대동맥 박리 환자야. 60분도 충분히 장기전이지.”
대답하며 마주친 이믿음의 눈빛은 확고했다.
남하늘은 저런 눈빛의 이믿음은 막을 수 없다는 걸 잘 알았다.
어휴, 저 쇠심줄에 고집불통.
가끔은 환자 말고 본인을 위할 줄도 알아야지.
“이렇게 일을 벌려 놓고 수술이 잘못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최소한 자기방어는 할 수 있어야죠.”
남하늘은 평소와 달리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이 기회에 환자만 보면 눈이 돌아가는 이믿음의 성격을 조금이나마 고쳐 보고 싶었다.
“자기방어? 엿 같은 단어네.”
이믿음의 목소리에 냉기가 묻어났다.
“외과의에게 진짜 필요한 자기방어는 말이야. 보호자에게 할 핑계나 변명을 생각해 두는 게 아니야.”
“그럼 뭔데요?”
“수술을 완벽하게 성공시키는 거지. 수술에 성공하면 누가 뭐라고 하겠어?”
과연 흉부외과의 에이스다운 호탕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남하늘에겐 이를 반박할 논리가 있었다.
“그렇다고 본인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벌이면 안 되는 거잖아요.”
“감당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60분 뒤에 판가름이 나겠지. 오늘은 평소의 내가 아닐 테니까 바짝 긴장해.”
“…네.”
의견 다툼을 잠깐 하는 사이 수술 준비가 종료되었다.
환자 감시장치를 살펴보니 환자의 체온이 16도까지 떨어졌다.
“지금부터 60분 카운트다운 합니다. 60분 넘어가면 환자 경과가 오히려 악화되는 거 알죠?”
마취의의 말에 이믿음이 고개를 끄덕였다.
집도의, 흉부외과 레지던트 4년 차.
퍼스트, 레지던트 3년 차.
세컨드, 스크럽 간호사 5년 차.
써드, 레지던트 2년 차.
교수와 펠로우급은 단 한 명도 없이 펼쳐지는, 환장의 대동맥 박리 수술의 막이 올랐다.
* * *
스으으윽.
환자의 가슴이 빨간 포비돈 용액에 젖었다. 그 위로 새하얀 수술포가 덮였다.
제2 보조가 소독을 하는 짧은 순간.
이믿음은 머릿속으로 이미 환자의 가슴을 열어 보았다.
대동맥의 상태를 추측해 보았다.
끔찍한 흉통이 발현한 게 4시간 전.
진단을 받은 게 30분 전.
거기에 현재 모니터에 나타난 환자들의 바이탈 수치 등등.
모든 요소를 감안했을 때 환자의 상태는 최악일 확률이 높았다.
그의 모든 능력을 모조리 끌어내야 환자를 겨우 살릴 수 있을 만큼.
‘그럼 이번 생에 첫 수술이 되겠구나. 내가 전력을 다하는.’
잠깐 생각에 잠겼던 그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지금부터 핵심 처치는 내가 다 할 거야. 오늘만큼은 너희들이 거드는 방식으로 도와줬으면 좋겠다.”
“암요, 그러셔야죠.”
“남하늘, 너 오늘따라 많이 삐딱하다?”
남하늘의 말투에 담긴 가시를 읽고 이믿음이 한마디 했다.
“솔직히 걱정이 돼서 그래요. 이번 수술 잘못되면 다 선배 책임이 될 텐데.”
“그게 무서우면 외과의를 하면 안 되지. 잡담은 여기까지 하고, 집중! 10번 블레이드 주세요.”
스크럽 간호사에게 받은 메스로 이믿음은 환자의 명치를 세로로 갈랐다.
빛나는 칼날이 환자의 살결과 근막을 단번에 갈라냈다.
이어지는 정중흉골절개.
보통은 제1 보조가 하는 일이지만 오늘은 그가 직접 나섰다. 조금이나마 시간을 벌고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위이이잉.
전기톱이 회전하면서 위협적인 굉음이 수술방에 퍼졌다.
톱날이 복숭아뼈처럼 생긴 흉골에 닿자 새하얗게 갈린 뼛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쩌저저적.
반으로 갈라지는 흉골.
이믿음은 전기톱 작동을 중단시켰고, 그동안 남하늘이 수술 시야를 확보했다.
갈라진 흉골을 중심으로 갈비뼈를 들어낸 후 수술 부위에 견인기를 착용시켰다.
개흉 시간이 고작 10분밖에 걸리지 않아 좋아하려던 찰나.
이믿음은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야 말았다.
단순히 박리가 아닌 파열이 되어 버린 환자의 대동맥 궁을.
대동맥 궁이란 우심방에서 뻗어 나오는 ‘∩’ 자 형태의 대동맥이었다.
대동맥 궁 중간 부근의 혈관이 아예 찢어져 있었다.
찢어진 틈으로 대량의 혈액을 철철 흘리며 인근 부근을 피바다로 물들이고 있었다.
“선생님, 환자 혈압이 80mmhg/60mmhg까지 떨어졌습니다. 맥박은 분당 130회까지 치솟았습니다!”
마취의의 급박한 보고로 수술방 분위기는 어수선해졌다.
난장판이 되었고 혼란에 빠졌다.
보조하고 있던 레지던트와 간호사마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기색이었다.
이럴 때 중심을 잡아 주는 게 집도의의 역할이었다.
“하늘이는 클램프(혈관 겸자)로 주변 혈관 잠가 주고 지혈 거즈 좀 덧대.”
“…….”
“성훈이는 수액팩 좀 꽉꽉 짜 주고, 마취의 선생님은 에피네프린하고 디곡신 IV 믹스 해 주세요.”
이믿음은 침착하고 정확하게 오더를 내렸다.
스태프들이 방황하고 당황하는 궁극적인 이유.
그것은 환자의 상태가 급속도로 악화되어 순간적으로 사고가 정지하기 때문이었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집도의가 스태프들이 할 일을 하나하나 정해 주는 것이었다.
길을 잃은 사람에게 가야 할 길을 알려 주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침착한 오더 이후 이믿음은 양손으로 대동맥 주변을 썩션했다.
치이이익.
썩션기가 허겁지겁 피를 빨아들였다.
대동맥이 잠길 듯 고여 있던 핏물이 어느새 바닥을 드러냈다.
‘뭐야, 선배가 이 정도였어?’
급박한 출혈 처치가 끝난 후 남하늘은 속으로 감탄했다.
저항 불가능한 홍수 같았던, 자연재해 같았던 출혈을 끝끝내 정복했기 때문이다.
혈관 겸자로 주변 혈관을 잠그면서 유입되는 혈류를 차단하고.
거즈로 출혈 부위를 직접 압박하고.
썩션기로 대량 출혈된 피를 빨아들이고.
수액팩을 쥐어짜면서 흘러나간 만큼의 피를 급속도로 보충해 주고.
약물로 환자의 바이탈을 조절하고.
이 모든 성과의 중심에는 이믿음이 존재했다.
모두가 당황했을 때 이믿음은 혼자 태연했다.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으로 정확하게 오더를 내렸다.
그 때문일까, 남하늘은 이믿음에게서 순간적으로 양순재 과장을 보았다.
양순재 과장이야말로 침착함의 대명사이자 표본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환자를 살릴 수도 있을지 몰라. 믿음 선배라면 가능할지도 몰라.’
방금 전 오더에 감화를 받았기 때문일까.
남하늘은 더 이상 이믿음이 걱정되거나 이믿음의 처치가 못 미덥지 않았다.
오히려 이 끔찍한 상황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이믿음뿐이라고 믿게 되었다.
“와, 진짜 출혈이 잡히긴 잡혔네요. 전 환자가 꼼짝없이 죽을 줄 알았는데.”
2년 차 배성훈이 한숨 섞인 혼잣말을 했다.
남하늘도 진작 하고 싶은 말이었다.
지금도 대동맥 궁에 흘러넘치던 혈액들을 떠올리면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싶었다.
“너무 긴장 풀지 말고. 간신히 한 고비를 넘겼을 뿐이니까.”
이믿음은 여전히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초저체온 완전 순환 정지법까지 남은 시간 30분. 좌심방 대동맥 보조 장치 연결하고 곧바로 처치에 들어간다.”
“네, 치프.”
“알았어요, 선배.”
이믿음의 주도하에 수술이 본궤도에 올랐다.
서걱, 서걱.
이믿음은 ‘∩’ 자 형태의 대동맥 궁을 메스로 과감하게 잘라 냈다.
한 번 박리된 대동맥 궁은 자연 회복되지 않았다.
그래서 제거한 후 인조 혈관으로 치환해 주어야 했다.
본격적인 외과 수술이 시작되면서 이믿음은 특별한 오더를 내리지 않았다.
자신이 맡은 처치에만 오롯이 집중했다.
그의 집중력은 어느새 송곳처럼 날카로워져 있었다.
‘이래서 사람 보는 눈이 중요하단 말이지.’
이믿음이 집중력을 유지하고 가다듬을 수 있었던 이유는 직접 선택한 스태프들 때문이었다.
남하늘, 배성훈, 이윤정.
그는 대동맥 박리 수술을 맡자마자 이 세 사람을 수술 보조로 낙점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세 사람 다 원하는 것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차리는 눈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다급한 상황에서 고난이도의 수술을 펼치는데 말이다.
의사소통이 안 돼서 수술 리듬이 방해받는다?
그것만큼 최악인 상황도 없었다.
집중하기도 모자란 에너지를 짜증과 불만으로 소모하는 건 심각한 낭비였다.
‘이젠 전생처럼 바보같이 혼자 싸우지 않아. 믿을 수 있는 동료와 더 멀리, 너 높이 나아간다.’
자신의 실력과 동료를 믿은 만큼 이믿음은 훨씬 거침없이 수술을 진행할 수 있었다.
텅!
험난한 작업 끝에 박리되었던 대동맥 궁이 곡반으로 떨어졌다.
이제 남은 시간은 단 20분.
20분 만에 인조 혈관 치환술을 펼치고 환류 테스트까지 마쳐야 했다.
그래야만 초저체온 완전 순환 정지법의 효과를 제대로 누릴 수 있었다.
“선배, 잘할 수 있죠?”
남하늘이 인조 대동맥 궁을 건네며 물었다.
남하늘의 말투는 처음보다 많이 부드러워졌으며 이믿음을 바라보는 눈빛은 온화해졌다.
남하늘이 180도 변했다.
자신의 실력을 의심하는 대신 자신을 믿기로 했다는 걸 이믿음은 알 수 있었다.
남하늘의 믿음은 분명 배신당하지 않을 것이다.
보호자 대기실에 애타게 환자의 쾌유를 비는 청년의 믿음도.
“솔직히 자신 없어.”
“엥? 여기까지 와서요? 선배가 이제 와서 그러면…….”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지. 자신이 없다고, 수술에 실패할 자신이. 4-0 Prolene 주세요.”
이믿음은 눈으로 웃으며 비흡수성 봉합사를 건네받았다.
끼기기긱.
니들홀더로 바늘 조이는 소리가 경쾌했다.
이믿음의 시야는 어느새 인조 혈관, 그리고 인조 혈관에 문합해야 하는 대동맥 인근 혈관에 고정되었다.
천신만고 끝에 도달한 이번 수술의 클라이맥스.
인조 혈관 치환술.
솜씨 좋은 교수들이라고 해도 인조 혈관 치환술에는 최소 30분 이상 소요된다.
치환이 꼼꼼하지 않으면 혈관에 혈액 누수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믿음은 이 자리에서 단 15분 만에 혈관 치환술을 완성할 작정이었다.
꼼꼼하면서도 빠르게.
모순인 것처럼 보이는 두 가지 덕목을 멋지게 재현할 생각이었다.
환자를 살릴 방법은 그것뿐이었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사람 또한 그뿐이었다.
후우우우.
한 번의 깊은 심호흡.
온몸을 짓누르는 부담감을 떨쳐 내고 이믿음은 손에 쥔 수술 도구에 힘을 주었다.
“인조 혈관하고 자연 혈관 꽉 잡아라. 이제 진짜 마지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