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살부터 의사 생활-161화 (161/257)

161화 제3장 응급 아닌 응급(1)

“하…….”

막내 윤재호와 통화를 마친 최진우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낭떠러지에 내몰린 것처럼 두렵고 긴장이 됐다.

초조함을 몰아내기 위해 다리를 떨어 봤지만 별로 도움은 되지 않았다.

오늘은 양순재 과장의 송별식이 있는 날.

수술이 가능한 교수급 인원들은 전원 회식에 불려 갔다.

수술이 가능한 펠로우 2년 차가 당직 근무를 섰었지만 그는 몇 시간 전 몰래 병원을 빠져나갔다.

서울 외곽에 있는 여자 친구를 잠깐 보고 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비극의 씨앗이 될 줄이야.

펠로우가 자리를 비운 사이 하필이면 대동맥 박리 환자가 응급실에 들이닥쳤다.

심지어 환자는 상행 대동맥 박리였다.

상행 대동맥 박리는 A타입, 또는 흉부 대동맥 박리라고도 불린다.

대동맥 박리는 1분 1초를 다투는 응급 수술이 필요하며 수술 난이도는 흉부외과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혔다.

환자가 증상을 느껴 병원을 찾았을 때는 이미 늦은 경우가 많았다.

증상 발현 후 환자 사망률은 50퍼센트에 육박하니까.

“새끼야, 여친이랑 노닥거려도 전화는 받아야지!”

최진우는 애꿎은 휴대폰을 바닥에 내던질 뻔했다.

아까부터 귀가 뜨겁도록 전화를 해댔겄만 펠로우는 통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내 속 터지게 하려고 작정했나?

오늘 대동맥 박리 환자가 사망한다면 그 책임은 필시 펠로우에게 물려야 할 것이다.

드르르륵.

때마침 당직실 문이 열리고 한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청년을 확인한 순간 최진우는 자신을 향해 한 다발 빛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

회식에 참여했던 이믿음이 복귀한 것이다.

믿음직한 의국장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교통정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치프! 지금 대동맥 박리 환자가 응급실에 있습니다.”

인사도 생략하고 최진우는 냅다 노티부터 했다.

노티를 듣는 내내 이믿음의 표정은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이따금 대답 대신 고개만 끄떡일 따름이었다.

“진우야.”

이믿음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최진우를 불렀다.

과연 이믿음은 이 답답한 상황에서 어떤 판단을 내렸을까.

“네, 치프.”

“재호 보고 환자에게 혈압 강하제 투여하라고 해. 그다음 환자 데리고 수술방으로 오라고 하고.”

“수술하시게요? 수술할 사람이 있나요?”

뜻밖의 결정에 최진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펠로우는 연락 두절이었고 교수들은 회식 자리에서 진탕 술을 마셨다.

한마디로 대동맥 박리 환자를 집도할 집도의가 없었다.

최진우가 지금까지 어쩔 줄 모르고 고통받았던 것도 그 때문이었고.

그런데 느닷없이 수술을 준비하라니 황당할 따름이었다.

그럼 설마?

“걱정은 내가 할 테니까 넌 할 필요 없어.”

“하지만…….”

“진우, 넌 수술방 잡고 응급으로 마취의 섭외해. 하늘이 보면 수술실로 콜하고.”

“알겠습니다. 근데 선배, 수술은 대체 누구 하는 거예요?”

최진우의 질문에 이믿음은 엄지로 본인을 가리켰다.

교수님들마저 피하고 싶어 하는 대동맥 박리 수술을 레지던트 4년 차가 집도한다고?

에이, 설마 농담이겠지?

* * *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통화를 끊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본의 아니게 양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집도의가 없는 상황을 설명하고 내가 집도를 해도 된다는 승낙을 받았다.

‘차라리 잘됐어.’

다른 사람들은 현 흉부외과 상황이 끔찍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실 펠로우 2년 차가 자리를 지켰으면 그게 더 큰 문제였다.

펠로우 2년 차에게 대동맥 박리 수술은 무리였기 때문이다.

경험이 부족한 당직의가 수술할 바엔 회귀한 내가 직접 수술하는 게 백배는 나았다.

“어, 어. 알았어.”

수술실로 향하는 도중 나는 쉽사리 콜폰을 놓지 못했다.

현재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받으며 환자의 상태에 대해 노티를 들어야 했기에.

모든 과정이 최선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최악은 피해 가고 있었다.

그거면 됐다.

일단 환자가 무사히 수술실로 들어갈 수만 있다면.

내가 집도의가 되어 100퍼센트의 솜씨를 발휘할 수만 있다면.

환자는 반드시 살 수 있을 것이다.

수술방에 도착한 나는 수술 동의서를 출력한 후 보호자 대기실로 이동했다.

집도하기 전 넘어야 할 마지막 고비가 남아 있었다.

바로 보호자 설득하기였다.

“손영호 환자 보호자분.”

“접니다.”

안경을 낀,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남학생이 손을 들었다.

아직 앳된 외모의 남학생은 초조한 듯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서 전생의 나를 보았다.

아버지의 OPCAB(무인공심폐기 관상동맥우회술)이 성공하기를 애타게 기다리던 전생의 나를.

세상에는 수많은, 또 다른 내가 있었고.

내가 회귀한 것은 아마 또 다른 나를 최대한 많이 품으라는 하늘의 계시가 아닐까.

“응급실에서 어느 정도 설명은 들으셨을 겁니다. 아버님이 위독하셔서 당장 수술이 필요합니다.”

“…네.”

“그런데 저희 병원에 지금 살짝 문제가 있습니다.”

나는 흉부외과의 상황을 설명하며 얼굴을 찌푸렸다.

일반적으로 동의서를 받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집도의가 도착하기 전에 수술을 먼저 진행한다.

…라는 사실을 나는 힘겹게 말해야만 했다.

실제로 서 교수가 병원으로 오는 중이었고, 그동안 내가 집도의 자리를 맡는 계획이 진행 중이었다.

“그건 조금 이상한데요? 수술해 주시는 교수님이 없는데 수술을 시작한다고요?”

청년이 미심쩍은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럼 교수님도 아닌 사람이 교수님이 오기 전까지 수술을 한다는 건데… 그걸 제가 어떻게 믿죠?”

청년은 급기야 사인하려고 든 펜을 손에서 내려놓았다.

대학 병원에서 수술할 사람이 없다니 그게 말이 되냐며 따지기까지 했다.

나는 청년의 대꾸를 백번 이해했다.

내가 청년이라도 지금 상황을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집도의가 병원에 오는 중이고, 그 전에 수술을 진행한다고 하면 당연히 찜찜할 것이다.

“오늘은 회식이 있는 날이라 의사가 부족했습니다. 집도의 도착 전에 부득이하게 수술을 먼저 시행하는 건 그만큼 아버님이 응급해서고요.”

“됐습니다. 그냥 저희 아버지 다른 병원으로 이송해 주세요. 찜찜해서 여긴 못 믿겠어요.”

보호자가 끝내 폭탄선언을 하고 말았다.

나는 낭패라는 기색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최대한 표정을 관리했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가운에 넣어 둔 콜폰이 떨리고 있어 확인하니 당직실 전화번호였다.

아마 수술 준비가 끝났다는 연락일 것이다.

수술 준비가 끝났는데 동의서를 못 받아서 수술을 못하는 상황이라니…….

어떻게 해서든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최대한 빨리 보호자의 마음을 돌려야 한다.

각오를 굳힌 내가 운을 뗐다.

“그건 안 됩니다. 환자분은 저희 병원에서 수술을 받으셔야 해요.”

“선생님이 저라면 여기서 받겠어요?”

“네, 받습니다.”

나는 다소 뻔뻔한 느낌이 들 정도의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자 보호자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콧방귀를 꼈다.

“장난하시는 거죠?”

“사람 목숨으로 장난치려고 의대 6년에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 근무 중인 거 아닙니다. 이유를 알려 드릴게요.”

대동맥 박리 수술이 가능한 대학 병원으로 이동하는 데 최소 30분.

이동해서 검사받고 수술 준비를 하는데 최소 20분.

환자가 도합 50분을 버틸 수 있을까.

절대 그럴 수 없었다.

지금 이 시간대면 환자의 찢어진 대동맥에서 본격적으로 출혈이 시작될 타이밍이었다.

만약 환자를 이송한다면 환자는 무조건 죽을 것이다.

“괜히 겁주는 거 아닙니까?”

설명을 다 듣고도 청년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사실을 말씀드린 것뿐이에요. 이성적으로 잘 생각해 보세요.”

나는 차분하게 두 번째 설득에 나섰다.

1살부터 다져 놓은 화술로 반드시 동의서에 서명을 받으리라.

“사실 보호자분 말씀대로 하는 게 저희도 편해요.”

“아버님 이송하는 거요?”

“네, 이송할 경우 환자분이 돌아가셨을 때 보호자분 탓을 할 수 있거든요.”

내 직설 화법에 청년이 미간을 찌푸렸다.

“보호자가 이송하라고 해서 이송했고, 이송 도중 환자가 죽었다면 보호자 책임 아닙니까? 제 말이 틀렸나요?”

“그건…….”

“환자분을 이송하지 않고 수술하겠다는 건 저희가 환자분을 책임지겠다는 겁니다.”

“…….”

“저희가 환자를 살리고 싶다는 겁니다. 아시겠어요?”

내 간절한 호소에 청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성적으로, 그리고 감성적으로도 내 말이 옳다는 걸 청년은 눈치챈 모양이었다.

다만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할 뿐.

“물론 꺼림칙하실 겁니다. 교수님 없이 먼저 수술을 한다고 하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라도 수술을 진행하는 게 최선입니다.”

나는 벤치에 놓여 있던 동의서와 펜을 손에 쥐고 청년에게 내밀었다.

청년은 한참 고민하다가 동의서와 펜을 받았다.

“저희 아버지 평생 막일로 고생만 하셨어요. 아파도 병원 한 번 안 가시고 약국 신세만 지셨어요.”

청년이 숙연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파스가 만능인 것처럼 파스만 붙이셨죠. 그래서 저는 아버지를 떠올리면 항상 파스부터 생각나요.”

“…….”

“선생님, 제발 저희 아버지 살려 주세요. 아버지가 오래오래 살아서 제가 효도할 수 있게 해 주세요.”

그간의 애환이 폭발했을까.

울먹거리는 청년의 고백이 내 가슴을 찢어 놓았다.

콧잔등을 시큰하게 만들고 눈가를 뿌옇게 만들었다.

이제는 전생이 되었지만 나는 병원에서 아버지를 잃는 고통과 괴로움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청년이 전생의 나와는 같은 아픔을 겪지 않기를 바랐다.

“의사는 함부로 약속을 하면 안 되지만…….”

나는 감정을 억누르며 가까스로 말을 이었다.

“이번만큼은 기필코 약속드리겠습니다. 보호자분의 아버님을 살려 내겠다고.”

“감사합니다, 선생님. 아까는 까칠하게 굴어서 죄송해요.”

“아니요, 저라도 그랬을 겁니다. 그럼 이만.”

극적으로 동의서를 받아 낸 나는 번개처럼 수술방으로 들어갔다.

벅, 벅, 벅.

스크럽(수술 전 소독)을 하고 수술모와 수술 가운과 마스크, 장갑, 마지막으로 광학 안경을 착용했다.

1분 1초가 급박한 상황.

동의서를 받으며 들은 청년의 애틋한 사연.

이 두 가지가 나를 부담스럽게 만들었지만 나는 오히려 이 부담스러움을 즐기려 했다.

이곳을 내 실력을 200퍼센트 발휘하는 자리로 만들자고.

지이이잉.

에어 샤워가 끝난 후 진입한 수술방.

나는 성큼성큼 수술대로 다가갔다.

수술 준비는 벌써 끝난 것처럼 보였다.

제1 보조인 남하늘과 제2 보조인 윤재호가 환자를 내려다보며 무어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선배, 왔어요?”

“오셨습니까, 치프.”

나를 알아보고 두 사람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대답하고 환자의 상태를 물었다.

노티를 들어 보니 혈압 강하제를 쏟아부어 가며 환자의 혈압을 낮추는 중이라고 했다.

‘이 정도면 아직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지.’

나는 환자 감시 모니터를 확인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서 교수님 올 때까지 버틸 수 있겠어요? 최소 2시간은 걸린다고 하던데.”

“해 봐야지. 마취의 선생님, 초저체온 완전 순환 정지법 준비해 주세요. 너희 둘은 좌심방 대동맥 보조 장치 준비하고.”

나는 분주하게 오더를 내렸다.

오더의 목적은 최적의 수술법으로 수술 시간을 60분 안쪽으로 당기는 것이었다.

전생에서부터 이어 온 경험과 솜씨.

그 바탕에 차곡차곡 쌓아 올린 이번 생의 경험과 솜씨.

두 가지가 합쳐진다면 못할 것도 없었다.

전생의 내가 겪은 비극을 보호자가 또 겪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