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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살부터 의사 생활-149화 (149/257)

149화 제5장 한번 붙어 보자(4)

나는 제3 보조로 수술을 돕고 있었다.

집도의 맞은편에서 제1 보조 중인 신창수의 곁에서 신창수를 보조하는 것이 내 역할이었다.

상황만 놓고 보면 나는 이 과장이 나타나기 전보다 훨씬 여유로웠다.

자리가 바뀐 뒤 한 일이라고는 썩션 두 번.

이리게이션(식염수 세척) 두 번으로 수술 시야를 확보한 것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역할이 줄어든 것과 반대로 내 긴장감과 걱정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전생으로 기억하는 환자의 사망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아서.

‘대체 뭔가 문제지? 아직까지는 무난한데?’

눈 한 번 깜빡거리는 동안 사고가 터질까 봐 무서워서, 나는 눈 한 번 깜빡거리는 것도 인색했다.

그런데 그런 수고가 무색할 만큼 수술은 순조롭게 진행 중이었다.

이 과장은 신창수의 도움을 받아 협착된 좌전하행지를 우회하는 우회로를 문합하고 있었다.

끼기기긱.

니들홀더로 봉합침을 쥐고 관상동맥과 채취한 내흉동맥을 문합하는 이 과장.

그의 손은 희미하게 떨렸다.

조심스러운 건지.

겁이 많은 건지 한 땀을 문합하는 데도 긴 시간이 걸렸다.

그 모습이 레지던트들의 눈에는 대단하게 보일지 몰라도 내 눈에는 영 미덥지 않았다.

내가 집도의였다면 이 과장이 한 땀을 꿰맬 때 최소한 세 땀을 꿰맸을 것이다.

이 과장의 손이 희미하게 떨리고 문합 속도가 느린 것과는 별개로 문합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봉합사가 삐뚤어지지 않았으며.

매듭이 깔끔하고 매듭 간의 간격도 균일했다.

비록 정치력으로 과장에 올랐다고는 해도 외과의는 외과의였던 것이다.

‘하… 곤란하네.’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리고 말았다.

어째 봉합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 더 불안했다.

환자의 사망 이유로 이 과장의 의료 과실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보여 준 이 과장의 문합은 흠잡을 데가 없었다.

그렇다면 환자의 사망 이유는 대체 뭐란 말인가.

지금처럼 이 과장만 뚫어져라 보고 있다간 진짜 사망 이유를 놓치는 것 아닐까.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환자 감시 장치를 힐끔 훔쳐보았다.

환자의 바이탈은 안정적이었다.

혈압은 150/100mmHg.

맥박은 분당 80회.

체온은 36.1도.

호흡수는 분당 13회.

모니터에 떠오른 환자의 심장 그래프는 규칙적인 파동을 띠고 있었다.

평화로운 바이탈에 나는 맥이 쏙 빠져 버렸다.

혹시 내가 사망 환자를 착각한 건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로.

‘아냐, 기억은 확실해. 나를 믿어야 해.’

나는 무뎌지는 정신의 칼날을 날카롭게 갈았다.

안경에 김이 서릴 정도로 펑펑 울었던 보호자.

수술은 백 퍼센트 성공한다며 자신했던 나를 원망했던 보호자.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보호자에 대한 기억만큼은 선명했다.

이 수술에는 분명 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그 문제가 환자의 생명을 앗아 갈 것이다.

“야, 뭐하냐? 멍 때리냐?”

곁에 서 있던 신창수가 문득 속삭이듯 물었다.

성격이 못된 것과는 별개로 신창수는 눈치가 좋았다.

그 눈치 덕분에 이 과장은 물론이요, 강태섭 밑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다.

“아닙니다. 수술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흐음… 손이 놀고 있는 걸 보니까 수상한데…….”

“당장 할 수 있는 처치가 없으니까요.”

나는 억울하다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까 말했지만 졸면 뒈져. 수술 끝날 때까지 집중해라.”

“네, 명심하겠습니다.”

건성건성 대답한 나는 피가 맺힌 수술 부위를 식염수로 세척했다.

혈관 문합술도 슬슬 막바지로 치닫는 중이었다.

* * *

좌전하행지에 이어 좌선회관상동맥에도 우회 혈관이 순조롭게 문합되었다.

환자의 사망을 예측하고 이를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신경을 곤두세웠던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하지만 내 기억을 믿었기에 나는 끝까지 방심하지 않았다.

올 것은 결국 올 것이다.

단지 빠르고 늦고의 차이만 있을 뿐.

“이만하면 훌륭하군.”

문합술을 끝낸 이 과장이 포셉으로 문합한 혈관을 가볍게 건드렸다.

혈관의 탄력성을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역시 과장님이십니다. 5밀리미터밖에 안 되는 혈관을 문합하시다니…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너희들도 열심히 노력하면 이 정도는 할 수 있을 게야.”

“정말 그런 날이 올까요?”

신창수가 감정이 과하게 섞인 목소리로 되물었다.

언어 선택이며 어조까지 이 과장의 기쁨조를 자처하는 모습이 꼴불견이었다.

“환류 테스트 시작하겠습니다.”

못난이들의 훈훈한 분위기를 깨며 나는 문합한 혈관에 생리 식염수를 주입했다.

문합의 적합성을 확인하는 마지막 절차였다.

놀랍게도 환류 테스트를 유심히 지켜보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

이 과장은 벌써부터 수술실을 떠날 기색이었고, 신창수는 해바라기처럼 이 과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허성호는 슬며시 고개를 틀었는데, 피곤해서 하품을 하는 듯했다.

스태프들이 다 따로 놀았던 데다가 막판에 집중력이 흩어지는 수술.

이번 수술의 퀼리티는 평균 이하였다.

“환류 테스트도 문제없는 것 같은데… 나머지는 창수 네가 마무리해라.”

“물론입니다, 과장님.”

스태프들은 환류 테스트를 진행 중인 혈관을 싱겁게 쳐다보고 말았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나는 루뻬(광학안경)의 배율까지 조절해 가며 문합 혈관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환류 테스트 중인, 생리 식염수가 통과 중인 혈관의 움직임이 너무 작아서 수상했다.

‘설마 환자가 이것 때문에 죽는 건가?’

순간 뇌리를 스치는 깨달음.

고뇌와 번민 끝에 나는 원하고 원했던 해답의 실마리를 찾은 듯했다.

“이믿음, 너 뭐 하냐?”

신창수가 가자미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노려보았다.

신창수가 주의를 환기하자 수술실 안에 있던 스태프들의 시선이 전부 나에게 쏠렸다.

“환류 테스트를 한 번 더 해 보려고 합니다.”

“누가 너한테 시켰어?”

“아니요, 확인 차원에서 한 번 더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혈관 멀쩡하잖아. 네 눈에는 리킹(leaking, 누수)이 보이니? 혹시 환시가 있는 거야?

신창수가 빈정거리며 스태프들 앞에서 나를 면박 주었다.

어쩌다 나와 눈이 마주친 허성호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나서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신호였다.

하지만 나는 옳다고 믿는 길을 찾았기에 물러설 수 없었다.

여기서 내가 물러서면 환자는 죽을 것이다.

“요즘은 인턴이 의국장 말도 안 듣나 보군. 세상 참 좋아졌구나.”

잠자코 있던 이 과장 역시 신창수의 손을 들어 주었다.

순식간에 역적 취급을 받았으나 나는 따가운 시선들을 무시하고 주사기에 꾸역꾸역 식염수를 다 채웠다.

방금 전 환류 테스트를 할 때보다 두 배 많은 양이었다.

“방금 전 환류 테스트를 할 때 혈관의 움직임이 너무 작았습니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건데?”

내 말에 신창수가 토를 달았다.

허성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고, 이 과장은 흐음, 하고 무거운 신음을 내뱉었다.

‘이 과장, 당신이라면 내 말뜻을 알겠지.’

나는 마스크 뒤에서 이죽거리며 말을 이었다.

“아까 치프가 말씀하신 대로 혈관에 누수가 있다는 뜻입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나도 테스트할 때 봤어. 누수는 없었다고.”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미세한 누수였는데? 그걸 어떻게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뭐… 뭐라고?”

“아까 전 리킹은 인비저블 리킹이었습니다.”

인비저블 리킹.

말 그대로 보이지 않는 누수.

눈으로 볼 수 없는 누수라도 해도 그 개념을 알고 유심히 관찰한다면 징조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인비저블 리킹의 가장 큰 징조는 혈관의 움직임이었다.

혈관에 생리 식염수를 주입했을 때.

혈관의 활동성이 너무 작다면 인비저블 리킹을 의심할 수 있었다.

생리 식염수가 어디론가 새어 나가고 있기 때문에.

그로 인해 혈관의 압력이 줄었기 때문에.

혈관의 활동성이 너무 작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는 걸 네가 알고 있다고?”

내 설명에 신창수가 콧방귀를 꼈다. 내가 어디선가 헛소리를 듣고 와서 지껄이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

“창수야, 넌 잠깐 가만히 있어라.”

“과장님, 설마.”

“인턴, 어디 한번 계속 이야기해 봐.”

이 과장이 신창수를 배제하고 내게 발언권을 주었다.

“인비저블 리킹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양의 식염수를 더 강한 압력으로 주입해야 합니다.”

“…….”

“제가 식염수를 다시 재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내 당돌한 발언이 끝난 후 이 과장은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관상동맥 우회술이 다 끝나 가는 시점이건만 수술실의 분위기는 전쟁터처럼 살벌했다.

그리고 그 살벌함을 주도한 것은 고작 인턴인 나였다.

“그러니까 인턴, 이름이 이믿음이라고 했나?”

“네, 과장님.”

“이 선생은 내 문합에 누수가 있다고 보는 거네? 그러니까 환류 테스트를 한 번 더 하자는 거잖아.”

나를 향한 이 과장의 눈빛이 언짢아 보였다.

한낱 인턴이 하늘 같은 과장의 문합술을 재차 확인하겠다니 기분이 확 상한 것이다.

‘어쩌면 이게 진짜 이유겠군.’

나는 환자가 사망한 궁극적인 이유를 마침내 밝혀냈다.

이 과장의 문합이 불안전했던 것보다 선행되는 원인이 따로 있었던 것이다.

이 과장이 지금 보여 주고 있는 권위 의식.

그리고 자신의 처치는 완벽하다는 오만함.

환자가 사망한 것은 이 두 가지기 끔찍한 조화를 이뤘기 때문일 것이다.

“꼭 그렇다기보다는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아까와 달리 한 발짝 물러났다.

흉부외과 먹이사슬의 최하위인 인턴이 먹이사슬 최상위인 과장과 정면충돌한다?

다치는 건 나일 수밖에 없었다.

“그게 그 소리지. 이 선생, 참 재미있는 사람이네. 여기 있는 스태프 중 누구도 보지 못한 인비저블 리킹까지 알아차리고.”

이 과장이 빈정거리며 말을 이었다.

“환류 테스트, 어디 한 번 더 해 봐. 의심이 생기면 풀어야지. 단.”

“…….”

“문합 부위에 문제가 없으면 각오해야 할 거야. 스태프들 기분을 상하게 하고 수술 시간까지 질질 끌었으니까.”

“알겠습니다.”

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내 눈은 틀리지 않고 내 기억도 틀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과장과의 싸움은 무조건 내가 이기는 싸움이었다.

확실히 회귀가 물건은 물건인 모양이었다.

인턴 신분으로도 이 과장에게 엿 먹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는 걸 보면.

“두 번째 테스트, 시작하겠습니다.”

모두의 기대와 우려 속에 펼쳐진 환류 테스트.

나는 혈관에 아까보다 많은 양의 식염수를 아까보다 강한 압력으로 주입했다.

식염수의 양과 압력을 늘렸으니 더 이상 인비저블 리킹은 없을 것이다.

이번 누수는 반드시 육안으로 보일 것이다.

삐이이이. 삐이이이.

드르르륵.

환자 감시 장치의 기계음과 인공 심폐기가 돌아가는 진동만이 요란하게 수술실에 퍼졌다.

스태프들은 침묵을 지킨 채 우회 혈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과장이 펼친 수술의 완성도를 두고 감히 반기를 든 간 큰 인턴의 최후를 궁금해했다.

다들 조마조마하고 노심초사하는 가운데 여유로운 사람은 나뿐인 듯했다.

“아…….”

가장 먼저 탄식을 흘린 사람은 신창수였다.

좌선회관상동맥과 새로 문합한 우회 혈관 사이에서 누수가 발견된 것이다.

문합 부위에서 졸졸 흐르는 식염수는 재앙 그 자체였다.

인공심폐기가 작동을 멈추고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하면.

문합 부위에서는 식염수가 아닌 혈액이 누수 되었을 테니까.

대형 출혈이 발생했을 테니까.

결국은 내가 맞았다.

수술 최후까지 집중력을 발휘한 끝에 수술의 문제점을 발견한 것이다.

전생에 사망했을 환자를 살린 데다가 못된 이 과장의 얼굴에 먹칠까지 할 수 있어서 나는 뛸 듯이 기뻤다.

내색을 할 수만 있었다면 천장에 손을 뻗으며 환호성을 질렀을 것이다.

나는 벅찬 감정을 가까스로 억누르며 과장을 쳐다보았다.

“과장님. 저기… 누수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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