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제5장 40년 만의 귀환(2)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그래, 거기 앉거라.”
박정렬이 맞은편에 있는 의자를 가리키자 이믿음이 앉았다.
박정렬은 한동안 말없이 이믿음을 바라보았다.
외모로 봤을 때 이믿음은 잘생기고 선량한 느낌을 주는 청년이었다.
새내기 대학생 같은 풋풋함도 아직 남아 있었다.
하지만 외모와 달리 이믿음이 지금까지 보여 준 활약상은 정반대였다.
인턴으로서 해야 하는 일을 척척해 냈으며 병원 내 인간관계도 모난 곳 없이 둥글다고 들었다.
이믿음의 활약이 정점을 찍은 건 몇 주 전이었다.
이식 수술 기증자의 심장을 적출하기 위해 대구로 내려갔을 때였다.
조교수의 후일담에 따르면 현지에서 심장을 이송할 수 있었던 건 다 이믿음 덕분이라고 했다.
심정지가 온 기증자에게 에크모를 사용하자고 제안한 것도.
도시 철도 공무원과 긴밀히 연결해 KTX 출발 스케줄을 연기한 것도 전부 이믿음이라고 했으니까.
‘범상치 않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박정렬은 속으로 감탄을 감탄했다.
부교수인 그가 한낱 인턴의 활약상에 탄복했던 건 머리털 나고 이번이 처음이었다.
“네가 이식 수술 적출팀에서 큰 활약을 했다고 들었다.”
“제가 도드라지긴 했지만 저 혼자만의 힘으로 해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박 교수와 고정민 레지던트, 그리고 많은 분이 힘을 보태 주셨던 덕분이죠.”
“교과서 같은 대답이구나.”
“저는 수능도 교과서로만 공부했습니다.”
이믿음의 농담에 박정렬은 피식 웃고 말았다.
교수인 자신 앞에서 주눅 들지 않은 이믿음의 패기 또한 마음에 들었다.
암, 외과의가 꿈이라면 저 정도 담력은 있어야지.
“그런 의미에서 네가 소아 흉부외과에 머무는 것을 받아 주마. 원래 규정상으로는 안 되는 거 알지?”
“감사합니다, 교수님!”
이믿음이 밝게 대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인턴은 매달 병원 내 각 진료과를 도는 것이 원칙이었다.
하지만 흉부외과 일편단심인 이믿음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소아 흉부외과에서 최대한 오랫동안 수련한 뒤 흉부외과로 넘어가는 것이 목표였다.
왜냐고?
소아 흉부외과 분야마저 정복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그는 전생에서 부교수로 심장을 다뤘고.
이번 생에서는 의대 시절 양순재 교수 밑에서 폐·식도 파트를 배웠다.
이제 소아 분야만 다룰 수 있다면 명실상부 완전체 흉부외과의가 될 수 있었다.
이를 위해선 최대한 길게 소아 흉부외과에 남아서 대가들의 수술법을 익히고 흡수해야 했다.
그래서 소아 흉부외과에 머물게 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그 부탁이 승낙을 받은 것이다.
아마 몇 주 전 대구로 내려가서 활약한 일 덕분이라고 이믿음은 생각하고 있었다.
남들과 다른 대접을 받기 위해선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 법이니까.
“그런데 이거 몹쓸 짓 아니니? 앞으로 9개월을 우리 과에서 보내고 마지막 달에 흉부외과로 쏙 내빼겠다는 거 말이야.”
박정렬은 빈정 상한 말투로 말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 서방이 챙긴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소아 흉부외과에서 10개월간 이믿음을 수련시키면 뭐 하는가.
이믿음은 결국 흉부외과 레지던트가 될 것인데.
이믿음 같은 인재를 흉부외과에 빼앗기는 것이 박정렬은 못마땅했다.
“흉부외과는 되고 소아 흉부외과는 안 되는 이유를 좀 들어 보자.”
“그게…….”
이믿음은 뜸을 들이다가 힘겹게 운을 뗐다.
“저는 흉부외과에서 해야만 하는 일이 있습니다. 제게 숙제이자 숙명 같은 것이라서 피할 수가 없습니다.”
“…….”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허… 네 말만 듣고 보면 네가 몇십 년 동안 의사 생활을 했던, 한 많은 의사인 줄 알겠구나.”
이믿음의 이야기를 듣고 박정렬은 가만히 턱을 쓸어내렸다.
이믿음이 풍기는 비장한 분위기가 거짓이나 연기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웃기는 일 아닌가.
이제 막 의대를 졸업해 인턴으로 취업한 아이가 흉부외과에 무슨 한이 있다는 건지…….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박정렬은 더 묻지 않았다.
개인사를 꼬치꼬치 캐묻는 것은 그리 성숙한 태도가 아니었다.
그래서 화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논문에 관한 것이었다.
[심장 기증자 심정지 시 심장 회복을 위한 에크모 사용.]
박정렬은 이런 제목의 논문을 다가올 한국 흉부외과 협회 컨퍼런스에서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거기에 공동 저자로 이믿음을 올리겠다고 알려 주었다.
그 깜찍한 발상이 최초의 이믿음의 머리에서 나왔으니까.
“연구 공로를 혼자 꿀꺽할 생각은 없으니 나중에 확인해 봐.”
“감사합니다, 교수님.”
“감사는 내가 해야지. 똑똑한 인턴 덕분에 논문 걱정 하나 줄었으니까.”
이믿음과의 대화는 10분 정도 더 이루어졌다.
이믿음이 먼저 떠난 뒤 박정렬은 이미 식어 버린 믹스 커피를 한 모금 홀짝거렸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 봐도 이믿음은 아까운 인재였다.
결코 흉부외과에 내주고 싶지 않았다.
남은 9개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믿음을 소아 흉부외과 레지던트로 잡아 두리라.
* * *
하루가 쏜살같이 지나갔다.
아침에 일어나서 루틴 잡을 한 게 1시간 전 같은데 벌써 오후 6시가 되었다.
수술방 어시스트를 마치고 병동으로 복귀하는 길.
문득 바라본 창가에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일단은 계획대로구나.’
나는 오늘 하루를 돌이켜 보고 만족했다.
그중 최고의 성과라면 단연 박 교수에게 소아 흉부외과에 잔류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일이었다.
앞으로 9개월.
비록 어시스트지만 박정렬 교수의 수술을 하루에 1번 내지 2번 들어간다?
수술이 끝나고서 철저하게 수술 비법을 복습한다?
전직 흉부외과 부교수였던 내가 이런 식으로 공부한다면 소아 흉부외과를 접수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
심장 파트.
폐·식도 파트.
소아 심장과 소아 폐·식도 파트.
먼 훗날 흉부외과의 모든 과목을 소화하고 있을 나를 떠올려 보니 벌써부터 흐뭇했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더 낫고.
오늘의 나보다는 내일의 내가 더 낫다.
회귀를 한 후 나는 성장과 성취의 재미를 톡톡하게 보고 있었다.
이런 감정들은 인턴 생활로 괴로운 나를 일으켜 세우는 원동력 중 하나였다.
“이믿음, 얼굴 보기 싫으니까 빨랑 꺼져.”
당직실에 들어가자 짝궁 인턴 김준호가 험한 말을 했다.
이 인간이 점심을 잘못 먹었나 싶었는데 말이 험악한 것에 비해 김준호의 표정은 익살맞았다.
“뭔데?”
“모처럼의 오프니까 일찍 나가라고.”
“오프는 내일인데?”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병원 근무 약 50일 만에 나는 1박짜리 첫 휴가를 올렸다.
올렸다기보다는 올려졌다는 게 더 정확하겠지만.
신원대학교 병원은 우수 인턴 표창을 받으면 그다음 날 휴가를 주는 풍습 같은 것이 있었다.
“선배들하고 다 이야기해 놨어. 너 평소에 고생 많이 하니까 먼저 보내 주자고. 그러니까 넌 지금 이 순간부터 오프다.”
“확실해? 나 놀리는 거 아니지?”
“놀리는 재미도 없는 인간을 놀려서 뭐해? 보내 줄 때 빨리 가라. 환자 생기면 붙잡을지도 몰라.”
김준호의 으름장이 문득 무시무시하게 들렸다.
김준호의 말대로 응급 상황과 응급 환자 앞에서 휴가란 태풍 앞의 등불과도 같았다.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 재빨리 환복에 나섰다.
병원 생활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지만.
바깥바람을 쐬고,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고 싶었던 욕심도 늘 존재해 왔다.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사다 줄게.”
“꽃게? 멍게? 성게? 족집게?”
김준호가 게로 끝나는 단어를 이용해 말장난을 했다.
분하지만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오늘 당직 근무 선다고 벌써 미쳐 버렸구나? 정신 차려. 밤은 길단다.”
나는 김준호의 어깨를 가볍게 건드리고 당직실을 나왔다.
영화 속 암살자처럼 기척을 죽인 채 최대한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게 병원을 나왔다.
고작 어린이 병원 건물을 빠져나왔을 뿐이거늘…….
이상한 나라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동안 24시간을 병원에서만 보냈더니 오히려 바깥세상이 별세계가 된 것이다.
병원을 완전히 벗어난 뒤에야 나는 가까스로 현실감을 되찾았다.
‘시간이 남아도 문제네.’
어느새 역에 도착한 나는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본래라면 내일 오전부터 휴가가 시작되어야 했다. 그래서 가족과 당일치기로 여행을 가고 외식할 계획도 잡아 놨다.
뭐, 이대로 집에 일찍 들어가도 좋겠지만 그건 왠지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모처럼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까불이와 손승우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여배우가 된 김지원을 부르는 건 민폐 같아서 아예 연락을 하지 않았다.
간신히 연락이 닿은 친구는 김요한이었다.
부르가다 증후군으로 제세동기를 삽입한, 내게 세상에서 하나뿐인 그랑죠 책받침을 선물해 준 친구.
김요한은 마침 퇴근 중이었다며 우리 병원 근처까지 오겠다고 했다.
김요한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뒤늦게 연락 온 까불이와 손승우의 전화를 받았다.
까불이는 지방으로 출장 가 있어서 서울에 올라올 수 없다고 했다.
나중에 시간을 내서 제대로 보자고 했다.
보험 회사 영업 직원인 까불이의 목소리는 어렸을 때처럼 까불까불했는데.
저 가벼운 목소리로 어떻게 저번 달 영업왕을 했는지 의문이었다.
지이이이잉.
까불이와 통화를 마치기 무섭게 손승우의 전화가 왔다.
기도질식으로 아마 전생에서는 지금까지 생존하지 못했을지 모르는 손승우.
손승우는 현재 K리그에서 주전 공격수로 활동 중이었다.
-믿음아, 진짜 미안하다. 오늘 경기 끝나고 회식 중인데 도무지 빠질 구석이 안 보인다.
“괜찮아. 내가 너무 갑작스럽게 연락한 건데. 고생하고 다음에 보자.”
-그래, 다음 경기에 골 넣으면 내가 멋지게 세레모니 할 테니까 꼭 봐.
“세레모니는 나 말고 네 여자 친구한테 해야 하는 거 아니냐?”
-여자 친구보다는 생명의 은인이 우선이지.
“알았다, 접수.”
비록 두 사람 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모처럼 통화한 것만으로도 마음이 푸근해졌다.
우리의 관계는 단순한 과거형이 아닌 현재 진행형이었다.
옛 생각을 하며 역 주변을 거닐던 중.
나는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김요한을 확인했다.
국민학교 때에 비하면 키는 꽤 많이 컸지만 밀가루처럼 하얀 피부와 소처럼 순박한 눈동자는 여전했다.
가장 최근에 김요한을 만났던 게 아마 4개월 전쯤이었나?
우리는 서로를 발견하고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잘 지냈어? 몸은 좀 어때?”
나는 김요한의 건강부터 물었다.
브루가다 증후군을 앓고 있는 김요한은 또래의 청년들과는 달랐으니까.
“괜찮아. 병원에서 정기적으로 검사도 받고 있고, 특별히 컨디션이 안 좋은 것도 아니고.”
김요한이 태연한 표정으로 대답했으나 나는 김요한의 말을 완전히 믿지 않았다.
김요한은 거짓말을 할 때 눈을 내리까는 버릇이 있었다.
그런데 그 버릇이 방금 대답을 할 때 나왔다.
그렇다면 요한이의 몸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걸까.
내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 뭔가를 숨기고 있는 걸까.
자세한 내용은 식사를 하면서 캐물을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