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제2장 나는 인턴이다(1)
“죄송합니다. 조금 늦었습니다.”
나는 다른 지원자들보다 몇 초 늦게 면접실로 들어갔다.
내가 면접실에 들어갔을 때 다른 지원자들은 이미 의자에 착석한 상태였다.
면접자들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면접관들은 안경을 만지작거리거나 불쾌하다는 눈빛을 내게 연신 쏘아 댔다.
이유야 어찌 됐든 지각한 나는 면접실의 청개구리이자 천덕꾸러기였다.
강민식.
응급의학과 교수이자 내가 방금 구한 어르신의 아들.
강민식 역시 팔짱을 낀 채 탐탁지 않다는 표정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어르신이 아직 강민식에게 연락하지 않은 걸까.
아니면 연락은 했는데 강민식이 받지 않은 걸까.
어느 쪽이 진실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강민식이 아직 어르신에게 연락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연락을 받았다면 내게 냉랭할 이유가 없었을 테니까.
상황이 조금 꼬인 듯했으나 개의치 않기로 했다.
조금 더디긴 하더라도 진실은 곧 밝혀질 테니까.
“흠흠, 앉아요.”
강민식이 헛기침을 하고 의자를 가리켰다. 나는 그제야 자리에 앉았다.
어수선한 분위기가 수습되면서 본격적인 면접이 시작되었다.
모든 면접이 그러하듯 면접의 시작은 자기소개였고, 자기소개는 나부터 시작됐다.
달달 외워 됐던 자기소개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면접실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적대적으로 여기는 듯한 분위기가 어려웠을 뿐.
“이믿음 지원자는 면접 시간에 조금 늦었네요? 인턴이 되면 환자들의 목숨이 이믿음 지원자에 손에 달리게 될 텐데…….”
“…….”
“이믿음 지원자처럼 지각하고 책임감 없는 사람을 우리가 뽑아야 하는 이유는 뭐죠?”
강민식의 질문은 북극의 칼바람처럼 매서웠다.
하긴, 전생에서 인턴과 레지던트들은 강민식을 얼음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스태프가 실수를 했을 때.
스태프의 처치가 더딜 때.
강민식은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이성적으로 스태프들의 잘못을 꾸짖었다.
그렇게 강민식의 꾸중과 훈계를 받다 보면 자연스럽게 모골이 송연해지고 등줄기가 서늘해진다고 하여, 강민식은 얼음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나도 인턴 때 얼음왕에게 걸려 된통 고생한 적이 있었고.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지.’
강민식이 몰아붙였음에도 나는 태연하기만 했다.
“우연히 환자분을 만나서 그분에게 응급 처치를 하느라 늦었습니다.”
“환자를 만났더라… 우연의 일치치고는 참 공교롭네요?”
“…….”
“근데 이믿음 지원자처럼 면접 전에 환자를 만나서 늦은 지원자들 말이에요. 그 사람들이 어떻게 됐는지 알아요?”
“말씀하시는 걸 보니 전부 떨어진 것 같습니다.”
“잘 아네요. 그럼 이믿음 지원자는 어떻게 될 것 같아요?”
“저는 합격할 것 같습니다.”
나는 대답하면서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지금이야 강민식이 나를 쥐 잡듯이 잡지만 어르신과 통화가 되는 순간 내게 절을 하게 될 테니까.
“무슨 근거로요?”
“저는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 환자를 구했습니다. 주차장과 응급실 CCTV를 돌려보시면 알 겁니다.”
“그렇게 말하면 확인 안 할 것 같아요?”
강민식은 여전히 나를 냉랭하게 대했다.
내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아니요, 확인하실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영상을 확인한 다음에 제게 미안해하실 것 같습니다.”
“하… 뭐 이런 게 다 있지?”
내가 꼬박꼬박 말대꾸를 하자 강민식이 들으라는 듯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면접이 계속되는 가운데 나는 완전히 소외를 당했다.
자기소개와 왜 늦었는지에 대한 질문을 한 뒤 면접관들은 내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강민식뿐만이 아니라 다른 면접관들까지 나를 무시하고 있었다.
사람이 곁에 있어도 나는 외롭다, 라는 표현이 이래서 나온 걸까.
10명이 함께 있는 공간에서 나는 지독한 고독을 느꼈다.
지각으로 찍힌 나는 그저 한 명의 투명 인간일 뿐이었다.
이 답답한 상황도 머지않아 시원하게 종결되겠지만.
그런데 면접이 끝날 무렵.
책상 밑으로 손을 내려 휴대폰을 확인하는 강민식을 나는 발견할 수 있었다.
드디어 오해가 풀릴 것 같았다.
* * *
‘잔뜩 기대하고 있었는데 막상 보니까 엉망이야.’
강민식은 이믿음을 한 번 쳐다보곤 다시 이력서를 훑었다.
이믿음은 그가 가장 유심히 살펴보고 있던 지원자 중 한 명이었다.
그 이력이 너무 화려했던 탓이다.
학교 성적은 늘 최상위권이었으며 의사 고시 또한 만점을 기록했다.
성적을 더 빛나게 만든 것은 이믿음이 가진 의사로서의 자질이었다.
초등학교 때 CPR로 학우를 구한 일.
OT 도중 발생한 교통사고를 수습한 일.
주점에서 칼부림 환자에게 응급 처치를 한 일 등등.
이믿음은 의사가 되기 전에도 환자를 구하며 매스컴을 여러 번 오르내렸다.
의학 지식은 물론이요, 실전 경험까지 기대되는 유망주라고 할까.
그런데 그랬던 이믿음이 면접 시간에 늦고 말았다.
물론 다른 지원자들보다 십여 초 정도 늦었지만 강민식은 이를 호락호락 넘길 수 없었다.
응급실에서 일해 본 사람이면 알 것이다.
별것 아닌 십여 초에도 사람의 목숨이 삶과 죽음을 오고 갈 수 있다는 것을.
‘게다가 변명까지. 한마디로 최악이군.’
이믿음은 면접에 늦은 것도 모자라 환자를 치료하느라 늦었다면 거짓말을 했다.
이믿음의 말대로 CCTV를 확인해 봐야 진위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믿음의 말이 진실일 확률은 없었다.
세상에는 당장 눈앞에 위기만 모면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대다수니까.
지이이잉.
불쑥 가운 주머니에 넣어 둔 휴대폰이 떨렸다.
책상 밑으로 내용을 확인해 보니 아버지가 문자를 보냈다.
[검진받으러 왔다가 주차장에서 천식 발작으로 쓰러졌다. 지금은 응급실에서 검사를 받는 중이고…….]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부분까지 읽고서 강민식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가뜩이나 연세가 있으신 분이 발작으로 쓰러졌다고?
순간 온몸의 온도가 내려가며 걱정 근심이 몰려왔다.
[아주 큰 일이 벌어질 뻔했지만 다행히도 나를 구해 준 사람이 있었다. 이믿음, 오늘 의사 인턴 면접을 본다는 친구다.]
…….
[그 학생이 면접에 늦는다면 나를 구하느라 늦은 것이니 네가 힘을 써다오.]
강만식은 아버지의 문자를 다 읽고서 이믿음을 쳐다보았다.
지각으로 찍힌 덕분에 이믿음은 면접관의 관심과 질문을 아예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 이 친구가 구했다는 게 아버님이었단 말이야?’
상황을 재구성해 보니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그러니까 강민식은 아버지에게 응급 처치를 해 준 이믿음을 면접 내내 거짓말쟁이로 몰아붙였던 것이다.
뒤늦은 깨달음으로 강만식의 두 뺨은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다들 고생했습니다.”
옆자리에 앉은 추 교수가 면접을 끝냈다.
10분 정도 휴식을 가질 테니 면접자를 잠깐 들여보내지 말라고 인사과 직원에게 통보했다.
“이믿음이란 친구 많이 아깝네요. 재능은 있어 보였는데 싹수가 영 노래서.”
“그러게 말입니다. 늦기만 했으면 봐주려고 했는데 바락바락 핑계를 대는 걸 보고 정이 다 떨어졌어요.”
양옆에 앉은 교수들은 이믿음을 씹기 바빴다.
아버지의 문자를 받지 않았다면 강만식도 다른 교수들과 이믿음을 씹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황을 알고 나니 그럴 수가 없었다.
“이믿음 지원자의 말, 사실입니다.”
“네? 그걸 강 교수님이 어떻게 알아요?”
“방금 저희 아버님에게 문자가 왔어요. 이믿음 지원자가 아버님께 응급 처치를 해 준 덕분에 무사했다고.”
뜻밖의 소식에 두 교수가 화들짝 놀랐다.
문자를 확인한 강만식이 그랬던 것처럼.
“죄송하지만 면접은 두 분께서 진행해 주시겠습니까? 제가 응급실에 가 봐야 할 것 같아서.”
“아버님이 응급실에 계신다는데 당연히 그래야죠.”
“어서 갔다 오세요.”
“감사합니다. 이믿음 지원자는 거짓말을 한 게 아니니까 두 분께서 합격으로 잘 처리해 주시고요.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강만식은 황급하게 면접실을 나왔다.
복도를 가로질러 엘리베이터로 향하니 이믿음과 이믿음의 친구로 보이는 이들이 서 있었다.
지은 죄가 있어서 그랬을까.
이믿음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믿음을 덮어놓고 거짓말쟁이로 만든 것은 분명 그의 실책이었다.
“이믿음 지원자.”
“네, 면접관님.”
“알고 보니 자네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더군. 공교롭게도 자네가 구해 준 사람이 내 아버지였어.”
“정말인가요? 저는 몰랐는데…….”
“아까 몰아붙였던 것은 진심으로 사과할게요.”
강민식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면접장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사죄.
아버지를 구해 준 것에 대한 감사.
그 두 가지를 함께 담아서.
“일단 아버님 상태를 확인하는 게 우선이니 조만간 약속 잡아서 제대로 봅시다.”
“…….”
“면접 걱정은 할 필요 없으니까 마음 푹 놓고.”
강민식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온 뒤 응급실을 향해 달려갔다.
자신도 모르게 이믿음과 인연의 끈이 맺어졌다는 사실은 까맣게 모른 채.
* * *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건데? 면접관이 왜 너한테 고개를 숙여?”
“그게 다 사정이 있지.”
신철우의 질문에 나는 면접 전에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물론 회귀와 관련된 지식은 빼놓았으며 병원 내부를 떠돌아다닌 건 혼자서 면접 연습을 하기 위함이라고 둘러댔다.
“와, 믿음이 너 진짜 트러블 메이커다. 어떻게 면접 직전에도 응급환자를 만날 수가 있냐?”
내 사연을 다 듣고서 권아름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신철우와 남초롱도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세 사람이 보기엔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OT 때부터 사건이 있는 곳엔 항상 내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나도 억울한 점이 없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경우 내가 사건을 몰고 다니는 것은 아니었다.
회귀한 내가 사건을 막기 위해 사건을 벌어지는 장소를 미리 찾아가는 것뿐이었으니까.
“그래도 일이 잘 풀려서 다행이다. 일이 꼬이긴 했지만 믿음이도 면접에 합격한 거나 다름없으니까.”
“진짜 불행 중 다행이지. 이믿음, 너 운 좋은 줄 알아.”
“정말 그럴까?”
나는 애매하게 웃었다.
사실 진짜 운이 좋은 사람은 강민식과 강민식의 아버지였다.
면접을 무사히 마치고 대강당을 나오자 시린 겨울바람이 불어닥쳤다.
우리처럼 면접을 끝낸 지원자들은 우르르 병원을 떠나고 있었다.
나 역시 친구들과 잡담을 나누며 병원을 나섰다.
그러던 중 출입구 앞에서 잠깐 멈춰 선 뒤 병원을 돌아보았다.
전생에서 내 인생을 바쳤던 신원대학교 병원.
추억과 후회와 성취와 원망과 비틀린 인연으로 범벅되어 있는 장소로 나는 조만간 돌아올 것이다.
비록 장소는 같을지언정
내가 앞으로 병원에서 펼칠 활약은 전생과는 감히 비교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이날을 얼마나 손꼽아 기다려 왔는지 아마 가족들과 친구들은 모르겠지.
“그나저나 시간이 애매하다? 그냥 헤어지기는 아쉬운데 술 마시기도 그렇고 저녁 먹기도 그렇고?”
“그럼 내 자취방으로 가자. 집에서 마시면 아무 상관 없으니까.”
남초롱이 흔쾌히 장소를 제공했다.
그러고 보니 남초롱은 의대를 다니는 내내 자취를 했고, 그녀의 자취방을 가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남초롱의 단짝 친구인 권아름조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