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살부터 의사 생활-78화 (78/257)

78화 제1장 인턴을 향해서(3)

“큰아들, 작은아들, 준비 끝났니?”

“네.”

“다 됐습니다.”

어머니의 질문에 우리 형제가 동시에 대답했다.

모처럼 맞이한 주말, 조부모님의 댁을 방문하기 전 나와 동생은 거실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손에 쥔 패드를 놓으며 나는 사랑이를 바라보았다.

포켓몬 마스터를 꿈꾸던 철부지 사랑이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내 옆에 앉은 사랑이는 어느새 키도 크고 머리도 큰 중학교 2학년생이 되었다.

젖살이 덜 빠져서 예전의 귀여운 모습이 남긴 했지만 그럼에도 부쩍 자란 사랑이의 모습이 나는 가끔 낯설었다.

이럴 때 격세지감이라는 표현을 쓰던가.

“사랑아, 그만하고 나가자.”

“알았어, 형.”

내 말이라면 껌뻑 죽는 사랑이가 나를 따라 현관으로 나왔다.

부우우웅.

우리 네 가족을 실은 자동차가 경쾌하게 주차장을 빠져나와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먹구름 낀 하늘은 하얀 눈송이를 펑펑 쏟아 내고 있었다.

“눈이 내린 지는 얼마 안 됐나 보네.”

“그러게. 내리는 양을 보니까 금방 쌓이겠는걸?”

아버지가 자동차 와이퍼를 작동시켰다.

‘이런 게 행복인가?’

온 가족이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하는 이 시간이 내겐 너무 소중했다.

의과 2년을 지나 본과 4년을 거치는 동안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일단 학과 수업 자체가 빈 공간이 없을 정도로 빡빡했는데.

거기에 양순재의 폐·식도 파트 펠로우 수업이 더해지니 나조차 죽을 맛이었다.

없던 여유가 생긴 건 작년 10월 말부터 올해 2월 초까지였다.

정확히 말하면 의사 고시에 합격하고 신원대학교 병원 인턴에 지원할 때까지.

그 짧은 몇 개월 동안 나는 가족들과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했다.

본과 4년 동안 가족들과 함께하지 못한 시간을 보상받기 위해서.

인턴과 레지던트, 더 나아가서는 흉부외과의가 되면 보기 힘든 가족들을 미리 잔뜩 봐 두기 위해서였다.

내 인생에 숨구멍이 트인 시간은 아마 당분간이 유일할지도 모르겠다.

“형, 잠깐 옆으로 돌아봐.”

“왜?”

“시키는 대로 해 봐.”

사랑이가 시키는 대로 했더니 사랑이가 내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녀석, 기특하게 마사지를 해 주고 싶었던 건가.

중학생이 된 사랑이의 악력을 제법 강해 뭉친 어깨가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사랑아, 넌 항상 형부터 챙기더라? 엄마 어깨는 어깨도 아니니?”

“엄마는 조수석에 앉아 있잖아요.”

“오늘만 그러는 게 아니니까 그렇지. 형이 그렇게 좋니? 커서도 형한테 껌딱지네?”

“엄마, 아빠한테 잘하는 것도 당연하지만 형한테 잘하는 것도 당연한 거예요.”

사랑이가 차분하게 운을 뗐다.

“저는 유치원 때 기억이 가장 선명해요. 열나고 머리 아플 때 형이 택시를 타고 가면서 저한테 호 해 줬던 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

“병원에 도착해서도 형이 절 지극정성으로 간호했고요. 그래서 형한테 항상 고마워요.”

그동안 듣지 못했던 사랑이의 고백에 나는 적잖이 놀랐다.

동생의 가장 선명한 기억 속에 내가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뿌듯하기도 했고.

“그러고 보니 사랑이 너도 많이 컸다? 포켓몬 마스터가 되겠다고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형, 그건 잊어 주면 안 될까?”

“글쎄, 너 하는 거 봐서.”

마사지를 다 받은 나는 사랑이 쪽으로 몸을 돌리고 사랑이의 어깨를 주물러 주었다.

사랑은 오고 가는 것이니까.

하늘에서 하얀 선물로 쏟아지는 눈송이.

도란도란 정겹게 이어지는 가족 간의 대화.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즐기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흉부외과의가 되어 힘들고 지칠 때 이날을 떠올리면 위로받고 힘을 낼 수 있도록.

1시간여를 도착해 조부모님의 집.

나와 어머니 사랑이가 먼저 차에서 내리고, 주차를 끝낸 아버지가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다행이다. 이제 완전히 끝난 모양이니.’

정정한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전생의 아버지는 이 시기에 살아계시지 않았다.

내가 의과 2학년생일 때 불안정성 협심증으로 인해 OPCAB(무 인공 심폐기 관상동맥 우회술)을 받다가 돌아가셨으니까.

하지만 이번 생의 아버지는 달랐다.

정확히 말하면 아버지의 심장은 전생과 달랐다.

보증 빚에 시달리지 않고.

소설가로서 성공한 아버지의 심장은 튼튼했다.

매년 받는 건강 검진에서 실시하는 초음파와 심전도 검사 결과에 따르면 아버지의 심장은 건강 그 자체였다.

미래는 장담할 수 없겠지만.

지금처럼 잘 관리만 된다면 최소한 심장병으로 괴로워하는 일은 없을 듯했다.

“아빠 얼굴에 뭐라도 묻었니?”

내 시선이 너무 노골적이었을까.

아버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머리에 눈이 좀 많이 쌓인 것 같아서요. 아, 그리고 갈 때는 제가 운전할게요.”

“그런 게 아니었던 것 같은데? 큰아들 눈빛에 뭐랄까… 아련하고 애틋한 분위기가 있었는데 말이야.”

소설가인 아버지의 관찰과 해석은 과연 날카로웠다.

절대 그럴 리 없겠지만 마치 내가 회귀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처럼.

“소설 신작 준비하느라 고생하시는 것 같아서요.”

“아빠가 고생해 봐야 너만 하겠니? 들어가자꾸나.”

오히려 나를 위로하는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사랑이와 함께 나는 조부모님의 댁을 찾았다.

* * *

부엌 테이블에서 가진 조부모님과의 점심 식사에서는 웃음이 떠날 줄 몰랐다.

불행, 슬픔, 초조 같은 감정은 손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결국 모두모두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로 끝나는 동화 속의 한 장면이 현실에서 그대로 펼쳐지고 있었다.

부모님은 각자 자기 분야에서 인정을 받았으며 사랑이는 무럭무럭 성장하는 중이었다.

나는 의사 면허증을 취득하고 인턴 시험을 앞둔 상태였다.

할아버지는 신원대학교와의 파트너십을 유지하며 신원대학교의 EMR(전자 의무기록)과 PACS(의료영상저장전송시스템)과 OCS(처방전달 시스템)을 총괄하고 있었다.

자리에 모인 사람이 모두 행복하니 행복이 넘쳐흐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나저나 세월이 참 무상하구나. 유치원생이었던 믿음이가 벌써 인턴 생활을 시작한다니 말이야.”

“저도 시간이 무척 빨리 지나간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께서 담배를 피우시면서 기침하시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 녀석 좀 보게?”

내 농담에 할아버지가 깔깔 웃었다.

“그러고 보니 믿음이 네 말을 들으면서부터 할애비 인생이 활짝 핀 건 같구나.”

“…….”

“금연하면서 컨디션도 좋아졌고, 사업도 이렇게 번창하게 됐으니까 말이야.”

“제가 뭐 한 게 있겠습니까? 다 할아버지 능력이신데요.”

“하긴, 당시 유치원생이었던 네 말을 주의 깊게 들었던 이 할아비의 판단력도 나쁘진 않았지?”

“물론입니다.”

나는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문득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주변 사람들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했던 1살부터 유치원 때까지의 시절이 떠올랐다.

그날들을 추억하는 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이야.

하지만 코흘리개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는 엄연히 다른 사람이었다.

전생의 내가 현생의 나와 다른 것처럼.

어렸을 때의 내가 순진무구함을 무기로 내세웠다면 성인이 된 나는 천재라는 무기를 내세웠다.

장애물을 돌아가지 않고 직진으로 물리치며 나아갔다.

통쾌한 걸로 따지면 요즘이 훨씬 나았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조부모님 댁에 2시간 정도 더 머물렀다.

집으로 돌아올 때는 미리 말했던 것처럼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예과 1학년 때 면허를 따 놓았고, 전생에서도 운전을 했기에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우리 저기 공원에서 사진 찍고 가면 안 돼요?”

사랑이의 돌발 제안이 호수의 파문처럼 차 안에 퍼졌다.

“뜬금없이 공원에서 사진을?”

“네, 형 병원 들어가면 앞으로 얼굴 보기 힘들잖아요. 그 전에 가족사진이라도 찍어요.”

“녀석, 거기까지 생각하다니 기특하구나.”

“엄마는 찬성!”

가족들의 의견이 모이면서 나는 한강 공원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등 뒤로 펼쳐진 한강.

하늘 위에서 쏟아지는 하얀 눈송이를 배경으로 우리 가족은 멋 내지 않은, 꾸미지 않은 가족사진을 촬영했다.

행인이 휴대폰으로 찍어 준 사진을 확인한 나는 문득 가슴이 뭉클했다.

전생에 누리지 못했던 벅찬 행복이 밀려와서.

어쩌면 내가 가족을 살린 게 아니라 가족이 나를 살린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족이 있어서 나는 더 힘을 내고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었으니까.

바깥바람은 쌀쌀했지만 훈훈한 마음으로 나는 가족들과 주차장으로 돌아갔다.

신원대학교 인턴 시험이 나흘 뒤로 예정된 시점이었다.

* * *

“큰아들, 긴장하지 말고 평소처럼만 해.”

“걱정 마세요. 식은 죽 먹기니까.”

“식은 죽도 가끔은 먹다가 체하는 수가 있으니까 그렇지.”

어머니의 걱정 섞인 배려를 받은 나는 정장을 갖춰 입고 집을 나섰다.

얼마 전 실기 면접을 마치고 오늘은 신원대학교 병원 인턴 최종 면접을 보는 날이었다.

면접이 딱히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애초에 합격률이 3 대 1 정도로 높은 편이었던 데다가 나는 병원 모교 출신이었으며 내 본과 성적과 의사 고시 성적은 최정상이었다.

그렇다고 면접 때 부릴 말주변이 없는 것도 아니었고.

면접에 떨어진다면 그게 오히려 기적 같은 일이었다.

‘조금 위험할 수도 있으려나?’

나는 한 가지 불안 요소를 떠올리곤 미간을 찌푸렸다.

전생에서 면접 시작 즈음에 환자가 발생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환자는 60대 중반의 노인이었으며 동시에 오늘 면접을 보는 교수님의 아버지였다.

-교수님의 아버님이 응급실에 실려 오셔서 깜짝 놀랐다니까? 진짜 간 떨어지는 줄 알았다고. 병원 근처에서 쓰러지셔서 다행이었지,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전생에서 인턴을 시작할 때 나는 가장 먼저 응급의학과를 돌게 되었다.

그때 선배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응급의학과 교수님의 아버지가 내 면접 날 응급실에 실려 왔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 이유까지는 기억이 나질 않았다.

교수님의 아버지는 응급 처치로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후유증 때문에 거의 한 달 동안 입원을 하게 됐다는 말만 선명했다.

‘그때 그 전화가 그 전화였을 줄이야.’

나는 내가 경험한 기억까지 되짚어 보았다.

면접 도중 전화를 받고 급하게 면접장을 뛰쳐나가던 응급의학의 교수의 모습을.

내 기억과 선배의 경험담을 조합하면 도출되는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병원 인근에서 오늘 내 면접을 보는 면접관의 아버지가 쓰러진다.

응급실에 실려 가서 목숨은 건지지만 큰 후유증을 앓게 된다.

면접관의 아버지가 쓰러지는 타이밍은 내 면접 시간과 겹칠 확률이 높다.

병명은 미상.

이에 따르면 면접관의 아버지를 구하려다가 정작 내가 면접을 아예 못 보는 불상사가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면접관의 아버지도 구하고 내 면접도 무사히 보려면 아무래도 순발력이 필요할 듯싶었다.

하지만 밀려오는 우려와 걱정을 나는 금방 떨쳐 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회귀해서 실력을 쌓아 온 나였다.

분명 둘 다 잘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면접 시작은 오후 2시였지만 오전 11시에 집을 나온 나는 병원 대신 다른 목적지로 향했다.

면접 전에 꼭 봐야 할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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