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덩이
-신념의 대군주 타무그의 충성 맹세를 받으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가장 먼저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는 바로 타무그의 충성 맹세였다.
‘당연히 예지.’
현성이 예를 선택했다.
그 순간 예상했던 대로 믿을 수 없는 업적이 떠올랐다.
그런데 떠오른 업적의 숫자가 현성의 예상했던 것보다 꽤 많았다.
[믿을 수 없는 업적 – 초월 등급]
-최초로 이계의 침입자 군주 플레이어를 등용하셨습니다.
-업적 보상 : 칭호 [최초로 이계의 침입자 군주 플레이어를 등용한 자 – 초월 등급]
[믿을 수 없는 업적 – 일반 등급]
-최초로 100레벨 이상 차이 나는 이계의 침입자 군주 플레이어를 등용하셨습니다.
-업적 보상 : 칭호 [최초로 100레벨 이상 차이 나는 이계의 침입자 군주 플레이어를 등용한 자 - 일반 등급]
……중략……
[믿을 수 없는 업적 – 초월 등급]
-최초로 2000레벨 이상 차이 나는 이계의 침입자 군주 플레이어를 등용하셨습니다.
-업적 보상 : 칭호 [최초로 2000레벨 이상 차이 나는 이계의 침입자 군주 플레이어를 등용한 자 - 초월 등급]
순식간에 초월 등급 업적 두 개를 얻었다.
그리고 신화, 준신화, 전설, 영웅, 희귀, 일반 업적을 하나씩 손에 넣었다.
현성의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최초 업적이 뜰 거라고 예상하기는 했다.
하지만 고작해야 한 개 정도를 예상했다.
그런데 총 여덟 개의 업적을 획득했다.
‘단발형이 아니었어.’
업적은 단발형과 연계형이 있다.
단발형은 그냥 업적 하나 주고 끝이다.
방금 전에 얻은 [최초로 이계의 침입자 군주 플레이어를 등용한 자 – 초월 등급]이나 침략자 차원에 처음 진입해 얻은 [최초로 적 차원을 침공한 자 – 초월 등급] 같은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연계형은 일반, 희귀, 영웅, 전설 같은 등급이 존재한다.
‘등용 업적은 따로 없는 줄 알았는데.’
현성은 침략자 차원에서 수많은 적 플레이어들을 휘하에 넣었다.
하지만 반란자, 진압자, 침략자처럼 특별한 연계형 업적을 주지는 않았다.
살짝 아쉽기는 했지만 다른 업적들을 많이 얻은 터라 그걸로 위안으로 삼았다.
한데…….
‘없는 게 아니었어.’
등용 역시 연계형 업적이 있었다.
단지 현성이 연계형 업적을 획득하는 방법을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군주라는 직업이 중요해.’
다른 직업을 가진 침략자 차원의 플레이어를 등용하는 경우에는 아무런 업적 보상이 없었다.
하지만 군주는 달랐다.
확실한 연계형 업적 보상이 있었다.
‘저거 완전히 복덩이네.’
조금 전까지 엄청난 골칫거리였던 타무그가 복덩이로 바뀌었다.
현성에게 총 여덟 개의 업적을 선물로 주었다.
어디 그뿐인가?
타무그의 전투력은 실로 엄청났다.
겉으로 보기에는 현성이 손쉽게 승리한 것 같다.
하지만 그건 타무그의 체력과 마력이 고갈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타무그의 체력과 마력이 완벽하게 회복된 상태였다면?
현성도 이렇게 빨리 타무그를 쓰러트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타무그는 강했다.
아, 물론 지금은 사정이 꽤 많이 달랐다.
총 여덟 개의 업적을 손에 넣은 현성의 기본 스텟은 어마어마하게 늘어났다.
지금 다시 타무그와 싸운다면?
타무그의 체력과 마력이 완벽하게 회복된 상태라고 해도 방금 전보다 더 빠르고 손쉽게 쓰러트릴 자신이 있었다.
‘직업도 마음에 들고.’
신념의 대군주.
직업은 플레이어의 행보에 따라 결정된다.
그건 모든 직업이 마찬가지다.
신념의 대군주라는 직업은 현성이 알 수 없는 타무그의 과거 행실을 가장 손쉽게 보여 줄 수 있는 성적표였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현성의 말에 타무그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 * *
전 세계는 난리가 났다.
바로 타무그와 그 수하들 때문이었다.
각국의 정부는 이계의 침략자 플레이어에 대해 강력하게 경계를 해 왔다.
이미 속아 넘어간 미국의 사례가 있었고, 막대한 피해를 입은 중동과 터키의 사례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계의 침략자 플레이어 한 명이 지구에 입힐 수 있는 피해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한데 이번에는 한 명이 아니라 무려 1백 명이 넘어왔다.
이계의 침략자 플레이어들이 그간 보여 준 무력을 생각하면, 제아무리 현성이라고 해도 해결이 불가능해 보였다.
그래서 미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핵보유국들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핵 발사 준비까지 했다.
만약 핵보유국들이 핵 발사 단추를 누른다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그대로 멸망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계의 침략자 플레이어들이 나타난 곳이 한국이고 한국이 현성의 조국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미친 짓이나 나름이 없었다.
그렇지만 핵 발사 버튼을 누를 때쯤이면 현성의 전사는 기정사실이었기에 큰 의미는 없었다.
문제는 사건이 해결된 후였다.
핵 발사 준비를 했던 핵보유국들은 부랴부랴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움직였다.
하지만 세계 각국에 퍼져 있는 인류의 수호신교도들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결국 핵 발사 준비를 했던 핵보유국들은 현성의 강도 높은 질책을 들어야 했다.
-정말 실망입니다.
“죄송합니다, 최현성 플레이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현성의 말에 필모어 대통령이 쩔쩔맸다.
-미국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났어도 핵 발사를 준비하셨을 건가요?
핵이 발사되었다면?
수많은 민간인들이 희생될 게 뻔했다.
당연히 자국이었다면 그렇게 손쉽게 결정하지 않았을 거다.
“죄송합니다.”
필모어 대통령은 죄송하다는 말만 연발했다.
-정말 죄송하신 것 맞나요? 제가 볼 때는 제가 이계의 침략자 플레이어들에게 지기를 간절히 바라셨던 것 같던데?
“아,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필모어 대통령이 펄쩍 뛰며 부정했다.
이미 미국은 카렌의 일로 현성에게 한 차례 찍힌 적이 있었다.
그 일로 윌슨 대통령을 비롯한 거물들이 단체로 옷을 벗고 감옥에 갔다.
그 덕분에 미국의 부통령이었던 필모어는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하지만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상당히 불안했다.
필모어는 아무런 사고 없이 자신의 남은 임기를 끝마치고 싶었다.
그래서 얼른 차기 대선이 치러져 다음 대통령이 뽑혔으면 했다.
‘빌어먹을.’
그런데 갑자기 사고가 터졌다.
미 국방성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최후의 수를 준비했다.
한데 그 책임을 자신이 몽땅 뒤집어쓰게 생겼다.
필모어 대통령은 절대 윌슨 대통령의 전철을 밟고 싶지 않았다.
-핵은 절대 안 됩니다. 침략자 플레이어들에게 아무런 효용도 없고, 오히려 민간인 피해만 키우는 일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예, 알겠습니다!”
필모어 대통령이 군기가 바짝 든 신병처럼 힘차게 대답했다.
그 후에도 현성의 타박이 한참 동안 이어졌다.
필모어 대통령은 핵 발사를 준비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던 미 국방성 관계자들을 때려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미 국방성 관계자들의 말은 틀린 게 아니었다.
현성이 패배하면?
유일한 해결책은 핵밖에 없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필모어 대통령을 비롯한 핵보유국의 수장들이 핵 발사를 준비한 것이다.
문제는 현성이 핵 발사까지 고민했던 일을 너무도 손쉽게 해결했다는 점이었다.
아니, 해결하는 수준을 넘어서 그 강력한 이계의 침략자 플레이어들을 모두 휘하에 거두어 버렸다.
“이번 일로 인해 정신적 충격을 받은 최현성 플레이어와 대한민국 국민들을 위한 보상책을 준비하겠습니다.”
-보상이 아니라 배상이겠죠.
“네, 배상책을 준비하겠습니다.”
필모어 대통령은 현성의 화를 풀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보상을 배상으로 고치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원하는 게 있다면 뭐든지 퍼 줄 작정이었다.
하지만 현성은 그 정도에 만족하지 않았다.
아니, 만족하지 못했다.
-대통령님의 성의는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하지만 결국 일을 이렇게 만든 당사자는 미 국방성입니다.
“이번 일을 주도한 미 국방성 관계자들은 모두 합당한 법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필모어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굴욕적인 일이었다.
자국의 국방 핵심 인사들을 외부의 압력에 의해 처벌하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그걸로는 부족합니다.
“예?”
필모어 대통령이 자기도 모르게 반문하고 말았다.
이번 사태를 무마하기 위해 필모어 대통령은 많은 것을 포기했다.
경제적인 손실도 감수했고,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미국의 자존심도 버렸다.
한데 그걸로는 부족하다니?
‘설마 나까지?’
필모어 대통령의 머릿속에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갇혀 있는 윌슨 대통령이 떠올랐다.
-제가 지명한 인물들을 미 국방성의 요직에 임명해 주세요. 그래야 안심이 될 것 같습니다.
수화기에서 현성의 요구 조건이 흘러나오자, 필모어 대통령은 절망했다.
다행히 자신을 감옥에 보내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절망적인 요구였다.
이건 한국인인 현성이 미군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이 없었다.
자국의 핵심 플레이어들이 모두 현성의 휘하에 들어갔다.
유일하게 믿을 건 군대뿐인데, 그것마저도 현성의 수중에 들어가게 생겼다.
-왜요? 제 부탁이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그럼 거절하셔도 좋습니다.
당연히 마음에 안 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싫다고 단호하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거절하면 현성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랐기 때문이다.
자신이 감옥에 가는 건 일도 아니었다.
최악의 경우 미국이라는 국가가 무너질 수도 있었다.
“아, 알겠습니다.”
결국 필모어 대통령은 현성의 부탁을 가장한 협박을 받아들였다.
-너무 억울하게 생각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번 일에 협조한 국가들 모두에게 동일한 조치가 취해질 테니까요. 그럼 이만.
뚝!
그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어졌다.
털썩!
식은땀 범벅이 된 필모어 대통령이 힘없이 의자에 주저앉았다.
모든 것이 끝났다.
플레이어에 이어 군대까지 최현성 플레이어의 수중에 떨어졌다.
세계 각국이 최현성 플레이어에게 대항할 방법이 말끔하게 사라진 셈이다.
* * *
‘순조롭네.’
현성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미국을 시작으로 러시아, 인도, 영국, 프랑스, 파키스탄, 이스라엘에 모두 연락을 돌렸고 확답을 받았다.
그 후 핵보유국들의 군 내부에 인류의 수호신교도들을 배치했다.
군에 배치되는 인물들은 각국의 국적을 가진 자국 인물들로 구성했기에 겉으로 봤을 때는 큰 변화가 없었다.
명단에서 빠진 핵보유국은 한국과 중국뿐이었다.
하지만 그 두 나라는 전 세계에서 현성의 영향력이 가장 깊게 침투해 있는 ‘직할령’이니 크게 문제 될 건 없었다.
‘지구에서는 더 이상 문제가 일어나지 않겠어.’
사실 그 전에도 현성에게 대항할 세력은 지구에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핵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들이 약간의 걱정거리였다.
한데 이번 일을 빌미로 핵보유국들의 군대에 간섭할 수 있는 명분을 얻게 되었다.
‘나쁠 건 없어. 침략자 플레이어들이 사고 치는 것도 방지할 수도 있고.’
핵보유국들은 현성이 배치시킨 인물들의 허락 없이는 핵 발사 버튼을 누를 수 없다.
침략자 플레이어들이 정권을 장악하고 미친 짓을 하려고 해도 불가능한 시스템이 만들어진 것이다.
‘일단 내부 정리는 끝났으니까, 다시 반격을 시작해 볼까?’
여덟 개의 업적을 손에 넣으며 현성은 더욱 강해졌다.
거기다 타무그와 그 수하들이라는 강력한 전력이 합세했다.
물론 타무그와 그 수하들을 완전히 믿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믿을 수 있었다.
타무그와의 대화를 통해 한 가지 거래를 했기 때문이다.
거래의 조건이 성실하게 지켜진다면, 타무그와 그 수하들은 계속해서 현성에게 충성을 바칠 것이다.
‘굳이 자력 결계에만 의지할 필요가 없어졌어.’
자력 결계의 쿨타임이 돌고 있는 와중에 대영주의 직속 수하들이 쳐들어와도 문제없이 처리할 수 있는 전력을 손에 넣었다.
‘그럼 어디 한번 가 볼까?’
현성은 침략자 플레이어들의 차원으로 넘어가서 전과는 차원이 다른 난동을 부려 볼 생각이었다.
‘아마 얼마 전과는 좀 많이 다를 거다.’
현성이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아크사 대영주와 코디기 대영주의 전쟁은 점점 더 치열해졌다.
원래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속았다고 생각했기에 감정의 골이 더 깊어졌다.
아크사 대영주는 코디기 대영주를 죽이거나 두 번 다시 자신을 도발하지 못하도록 완전히 짓밟아 놓을 생각이었다.
코디기 대영주는 더 절박했다.
이미 과거 전쟁에서 대패해 크게 세력이 꺾였다.
여기서 또다시 패배한다면?
목숨을 잃거나 대영주 자리를 내려놔야 할지도 몰랐다.
아크사 대영주와 코디기 대영주의 주력이 드넓은 전장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충돌했다.
아크사 대영주의 세력이 공격을 가하고 코디기 대영주의 세력이 방어하는 형세였다.
“빌어먹을!”
코디기 대영주의 얼굴이 엉망진창으로 일그러졌다.
주력 중 일부가 빠진 틈을 타 가해진 갑작스러운 기습으로 인해 적지 않은 피해를 봤다.
한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코디기 대영주의 영토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주력이라고 할 수 있는 본진 전투에서 밀려 영토를 빼앗기고 있는 게 아니었다.
본진은 나름 탄탄하게 지키고 있었다.
문제는 휘하에 있는 하급 영주들끼리의 전쟁이었다.
하급 영주들끼리의 전투에서 코디기 대영주의 세력이 연전연패를 기록하고 있었다.
‘아크사 놈이 수를 쓰고 있는 게 분명한데.’
원래 휘하에 있는 하급 영주들은 나름 팽팽한 접전을 벌였었다.
한데 하룻밤 사이에 연쇄적으로 몰살을 당했다.
아크사 대영주가 직접 정예 세력을 투입해 손을 썼다는 뜻이었다.
‘무드크 놈과 그 수하들이 보이지 않는 게 수상했는데.’
아마 그들이 지속적으로 아크사 대영주의 하급 영주들을 돕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러다가는 하급 영지가 모두 쓸려 나가겠어.’
어느 리그든지 팜은 중요하다.
그건 전쟁도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고레벨 플레이어가 하루가 멀다 하고 죽어 나가는 전면전에서 팜의 중요성은 더욱더 올라갔다.
계속해서 젊은 피를 수혈할 수 있는 건 하급 영지에서 쑥쑥 크고 있는 플레이어들이 있기 때문이었으니까 말이다.
‘아크사 놈의 휘하에 있는 하급 영주들의 레벨이 꽤 올랐을 거야.’
전투에서 지속적으로 승리하면?
더 넓고 효율적인 사냥터를 손에 넣을 수 있다.
또 전쟁의 승리로 얻은 전리품을 통해 빠르게 강해질 수 있다.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계속해서 시간이 흐르면 보급에 문제가 생긴다.’
코디기 대영주는 오래전부터 설욕전을 준비했다.
그렇기에 식량과 군수물자는 나름 탄탄하게 비축되어 있었다.
하지만 전쟁이 장기화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비축된 물자가 지속적으로 소모될 수밖에 없다.
전쟁은 인적, 물적 자원을 잡아먹는 귀신이다.
직할령에서 생산하는 인적 물자가 바닥나면?
코디기 대영주는 더 이상 물자를 보급받을 창구가 사라진다.
반면 아크사 대영주는 하급 영지에서 플레이어들을 보충받을 수도 있고, 전쟁 물자도 보급받을 수 있다.
‘결단을 내려야 한다.’
코디기 대영주가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방법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수비적인 포지션을 버리고 공격적으로 전투를 치러 빠르게 승부를 보는 것이다.
하지만 위험성이 너무 컸다.
두 번째는 수비적인 포지션을 유지하면서 아크사 대영주처럼 주력의 일부를 하급 영지에 파견하는 것이다.
그럼 하급 영지를 지키는 것은 물론 추가로 빼앗는 것도 가능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첫 번째 방법은 단기전으로 결판을 내는 것이고, 두 번째 방법은 장기전으로 가는 것이다.
양쪽 모두 장단점이 있었다.
‘전면전은 위험 부담이 너무 커.’
갑작스러운 아크사 대영주의 공격에 너무 많은 피해를 입었다.
그런 상황에서 수비가 아닌 공격을 선택한다면?
승리할 확률이 없는 건 아니지만 너무 희박했다.
‘결국 버티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나?’
버티기 위해서는 그나마 남아 있는 하급 영지라도 지켜야 했다.
그리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아크사 대영주의 하급 영지까지 빼앗아 와야 했다.
“아드모.”
“예, 주군.”
코디기 대영주의 부름에 뱀 인간의 형상을 한 플레이어가 공손히 답했다.
“네가 이끄는 부대가 변방에서 일어난 일을 해결해 줘야겠다.”
“맡겨만 주십시오.”
“아마 변방에는 무드크가 있을 것이다.”
“이번 기회에 무드크의 숨통을 끊어 놓겠습니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움직여라. 절대 아크사 놈들의 눈에 띄어서는 안 된다.”
“명심하겠습니다.”
짧게 대답한 뱀 인간이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잘되어야 할 텐데.’
무드크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써는 아드모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 * *
서걱!
현성이 코디기 대영주 휘하에 있는 하급 영주 한 명의 목을 베어 냈다.
“암살자다!”
다른 하급 영주들이 화들짝 놀라 공격 스킬과 방어 스킬을 시전했다.
하지만 단 한 명도 원하는 스킬을 완성시키지 못했다.
파지지직! 화르르륵!
흑뢰신의 숨결과 화염의 서가 순식간에 코디기 대영주 휘하에 있는 하급 영주들의 몸을 휘감았다.
“크아아악!”
순식간에 코디기 대영주 휘하의 하급 영주들이 전멸했다.
‘이거 너무 쉽네.’
현성이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타무그와 그 수하들을 데리고 침략자들의 차원으로 넘어온 현성은 대대적인 정복 전쟁을 벌였다.
방법은 전면전이 아니라 암살이었다.
현성은 전처럼 서로 전투를 벌이는 아크사 대영주와 코디기 대영주 휘하의 하급 영주들을 습격했다.
문제는 현성이 너무(?) 강해졌다는 점이다.
타무그가 합류하기 전에도 하급 영주들을 정리하는 것은 현성에게 손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더 쉬워졌다.
여덟 개의 업적을 손에 넣으며 현성의 스텟이 대폭 상승했다.
그 결과 마력 필드의 위력이 엄청나게 강화되어 버렸다.
굳이 타무그와 그 수하들의 도움을 받을 필요도 없었다.
그저 차원의 이면 스킬을 사용하고 하급 영주들을 습격하면, 그들은 제대로 된 저항도 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뭐, 나쁠 건 없지.’
일이 순조롭게 풀리고 있다.
현성의 휘하에 들어온 플레이어들의 숫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거기다 등용을 철회하고 현성의 휘하에서 탈출하는 이들의 숫자도 월등히 줄어들었다.
이 모두가 현성의 스텟이 증가했기에 나타난 결과였다.
‘이제 될 것도 같은데.’
현성이 카렌 휘하에 있던 신하들을 떠올렸다.
처음에는 승전 대군주의 외침으로 열심히 카렌 휘하의 신하들을 설득했다.
승전 대군주의 부름 스킬도 자주 사용했다.
하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자 때려치웠다.
아무리 설득을 해 봐야 들어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상황이 좀 다르지.’
현성은 수많은 업적을 손에 넣으며 엄청나게 강해졌다.
그 효과가 어느 정도냐 하면 예전에는 갈팡질팡하며 눈치를 보다 어쩔 수 없이 살기 위해서 현성을 따랐던 1000레벨대의 플레이어들이 별다른 고민 없이 현성의 명에 따를 정도였다.
‘뭐, 거부해도 크게 상관은 없고.’
차원 게이트를 통해 침략자 자원으로 넘어오기 전 현성에게 1000레벨대 플레이어 23명은 엄청나게 큰 전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좀 달랐다.
현재 현성의 휘하에는 1000레벨대 플레이어가 무려 2천 명이나 있었으니까 말이다.
‘승전 대군주의 부름.’
현성이 카렌 휘하에 있던 23명의 신하들을 향해 승전 대군주의 부름 스킬을 사용했다.
화악!
그 순간 현성의 눈앞에 정확히 23명의 플레이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대다수가 카렌과 같이 크로커다일맨을 닮은 플레이어들이었다.
“주군을 뵙습니다!”
23명의 플레이어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물론 현성의 기분은 그리 좋지 못했다.
정작 필요할 때는 싹 다 씹고 무시하더니, 필요가 없어지니까 냉큼 부름에 응했다.
“그동안 뭘 하다가 이제야 내 부름에 응한 거지?”
냉기가 풀풀 날리는 현성의 물음에 신하들이 차례대로 입을 열었다.
‘헛소리만 늘어놓네.’
카렌을 따르던 플레이어들의 사정은 다양했다.
수준 낮은 하급 영지의 분쟁에서 용병으로 활동하던 놈도 있었고 부랑자로 살아가던 놈도 있었다.
자유롭게 활동하면서도 현성에 대한 충성 맹세를 철회하지 않은 것은 바로 군주의 깃발이 가진 버프 효과 때문이었다.
‘아마 적당한 대상을 만나면 충성 맹세를 철회하고 갈아타려고 했겠지.’
현성을 이용만 하려던 속셈이 빤히 보였다.
문제는 너무 짧은 시간에 현성이 급성장해 버렸다는 점이었다.
그 결과 23명의 플레이어들 머릿속에 현성을 배신할 계획이 말끔하게 증발해 버렸다.
문제는 그 후에 벌어진 현성의 방치 플레이(?)였다.
현성이 불러 주면 냉큼 올 생각이었는데, 불러 주지를 않으니 올 수가 없었다.
‘뭐, 다 지나간 일이니까.’
현성의 입장에서는 어쨌든 단 한 명도 이탈하지 않고 부름에 응한 셈이니, 과거의 일은 잠시 접어 둘 필요가 있었다.
이들은 이미 현성의 충성스러운 신하로 거듭났으니까 말이다.
현성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플레이어들의 고해성사는 계속되었다.
“저는 부랑자들의 왕국인 시즈라에서 생활했습니다.”
“부랑자들의 왕국?”
현성의 표정이 의아함으로 물들었다.
부랑자는 섬기는 군주가 없는 플레이어를 이르는 말이다.
섬기는 군주가 없는데 어찌 왕국이 될 수 있겠는가?
“말에 어폐가 있는 것 같은데?”
현성의 물음에 발언을 했던 신하가 재빨리 입을 열었다.
“그게 시즈라의 태생이 조금 애매하기에 그런 이름이 붙었사옵니다. 다른 말로는 부랑자들의 천국이라고도 부르옵니다.”
그 말에 현성의 표정이 더 이상해졌다.
일반적으로 부랑자들의 삶은 힘겨울 수밖에 없었다.
레벨이라도 높으면 그나마 자기 앞가림은 할 수 있다.
하지만 레벨이 낮을 경우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고난의 연속일 수밖에 없었다.
결정적으로 부랑자들은 외톨이였다.
무리를 지어도 고작해야 열 명 내외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부랑자들의 천국이라니?
태생이 조금 애매하다는 것도 그렇고,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시즈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보도록.”
“예, 시즈라는…….”
주절주절 설명이 이어졌다.
설명을 듣던 현성의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발언을 하고 있는 신하의 말에 따르면, 시즈라는 체제 전복을 꿈꾸는 일종의 반란군이었다.
침략자들의 차원은 군주들이 장악한 세상이다.
왕이라는 절대군주가 있고 그 휘하에 대영주와 하급 영주라는 계급 체계가 있다.
플레이어 역시 지배 계층이자 기득권층이기는 했지만, 그래 봤자 결국 군주에게 종속된 존재였다.
플레이어가 아닌 일반인들은 노예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노예나 마찬가지인 일반인들 중에서 플레이어가 나온다.
문제는 선택권이었다.
갓 각성한 플레이어들은 강제로 군주에게 충성 맹세를 해야 한다.
운이 좋아 군주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온다고 해도 부랑자로서 힘겨운 삶을 살아야 한다.
시즈라 왕국은 그렇게 뛰쳐나온 부랑자 중 하나가 만든 왕국이었다.
강성한 세력의 군주에게 충성 맹세를 했다면 충분히 지배 계급이자 기득권층이 될 수 있었다.
한데 그걸 거부하고 같은 부랑자들을 모아 결국 왕국을 건국하고 스스로 왕의 자리에 올랐다.
침략자 차원 최초로 군주 직업을 가지지 않은 이가 왕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시즈라 왕국에는 군주라는 직업을 가진 플레이어가 없었다.
아니, 없는 것을 넘어서 강력하게 배척했다.
물론 시즈라 왕국에도 플레이어와 일반인의 신분 차이가 존재했다.
하지만 그 차이가 군주들이 다스리는 왕국처럼 절대적이지는 않았다.
또 군주라는 직업을 가진 플레이어가 없으니 일반인이 각성을 해도 강제로 충성 맹세를 할 필요가 없었고 그럴 대상도 없었다.
또 떠돌아다니는 부랑자를 아무런 조건 없이 수용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부랑자들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대거 모여들었다.
시즈라 왕국의 모토는 군주 직업을 가진 플레이어로부터의 자유와 독립이었다.
‘대단하네.’
일개 부랑자가 왕국을 만들었다.
그것도 기존의 관습과 질서를 거부하고 말이다.
같은 왕국이라고는 하지만 군주 직업을 가진 플레이어를 배척하니 기존에 침략자 차원에 존재했던 왕국과는 물과 기름 같은 사이일 수밖에 없었다.
‘타 군주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을 텐데.’
아마 왕국을 건설하기까지 수많은 고난과 역경이 있었을 것이다.
한데 그 모든 고난과 역경을 이겨 내고 결국 왕국을 건설했다.
그것도 주변에 있는 적대적인 왕국들이 섣불리 전쟁을 걸기 힘들 만큼 강대한 왕국을 말이다.
‘이건 거의 프랑스혁명급인데.’
아니, 그 이상이었다.
중세 시대 지구의 군주와 침략자 차원의 군주가 가지는 권한과 지배력은 그 급이 달랐으니까 말이다.
현성의 입에 옅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건 충분히 도움이 되겠어.’
주절주절 떠들다가 할 말을 다 마친 후 조심스럽게 현성의 눈치를 보는 크로커다일맨이 갑자기 복덩이로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