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권. 용인화 (121/225)
  • ┃용인화

    현성이 소말리아에서의 일을 마무리 짓고 한국으로 귀국했다.

    그러곤 귀국하기 무섭게 연구소에 호루스의 눈을 넘기고 파르티샤를 호출했다.

    -절 고용해 주세요.

    -고용주 파르티샤 님이 용병 최현성 님의 고용을 신청하셨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오]

    군주의 외침으로 지시를 내리자마자 파르티샤가 현성을 고용했다.

    현성이 예를 눌렀다.

    화악!

    밝은 빛무리에 휩싸인 현성이 지구에서 모습을 감췄다.

    “주군을 뵙습니다.”

    파르티샤가 자신의 아들, 딸과 함께 현성에게 공손히 군례를 취했다.

    “사냥을 하러 왔습니다.”

    현성이 파르티샤에게 고용해 달라고 한 이유를 밝힌 뒤 곧바로 이동하려고 했다.

    그때 파르티샤가 현성을 불렀다.

    “주군, 전에 명령하신 아이템의 제조가 끝났습니다.”

    지금은 현무가 된 녀석의 등껍질을 재료로 만들어진 아이템이 완성된 모양이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현성은 파르티샤로부터 현무의 등껍질을 재료로 해 만들어진 영웅 등급 아이템들을 무더기로 넘겨받았다.

    그 후 곧바로 사냥터로 향했다.

    ‘할 일이 많아.’

    아직 미완성 단계인 레드 드래곤을 완성시켜야 했다.

    어디 그뿐인가?

    신화 등급으로 업그레이드 된 용혈검과 새롭게 얻은 스킬들의 테스트도 필요했다.

    ‘일단 레드 드래곤부터 완성시켜 보자.’

    마력 부족으로 겨우 기초공사만 마친 레드 드래곤을 완성시켜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력 공급원이 되어 줄 몬스터들이 필요했다.

    스킬 테스트는 그 후에 하면 된다.

    몬스터들을 닥치는 대로 잡다 보면 용종 몬스터도 나올 테니까 말이다.

    현성이 아공간에 레드 드래곤과 삼두룡을 꺼냈다.

    휘익!

    현성이 레드 드래곤의 머리 위에 올라탔다.

    ‘가자.’

    현성의 지시에 따라 두 마리의 본 드래곤들이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름은 그냥 빨강이라고 부르자.’

    카이라스라는 본래 이름이 있었지만 그냥 빨강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아아아아아!”

    현성이 광역 도발 스킬을 사용해 몬스터를 끌어모았다.

    파지지직! 화르르륵!

    현성이 빨강이와 삼두룡에게 흑뢰신의 숨결과 화염의 서를 걸어 줬다.

    -캬아아아앙!

    두 마리의 본 드래곤이 브레스를 내뿜으며 몬스터들을 쓸어버렸다.

    ‘빨강이랑 화염의 서랑 궁합이 좋네.’

    원래 화염 브레스를 사용해서 그런지 효율이 삼두룡보다 좋았다.

    현성은 몬스터들을 쓸어 담으며 얻은 마력을 빨강이에게 몰아주었다.

    빨강이는 마른 스펀지처럼 쉼 없이 마력을 빨아 먹었다.

    한데 마력의 그릇이 커도 너무 컸다.

    ‘도대체 얼마나 처먹는 거야.’

    마력을 거의 퍼붓다시피 하고 있음에도 완성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거기다 효율도 나빴다.

    신화 등급 몬스터를 재료로 만들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일반, 희귀, 영웅 등급 몬스터의 마력을 지속적으로 빨아들이면서도 그중 일부밖에 흡수하지 못했다.

    ‘뭐,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는 다 차겠지.’

    마력을 많이 먹는다는 건 그만큼 강하다는 뜻이었고, 마력 흡수 효율이 안 좋다는 건 그만큼 마력의 질이 높다는 뜻이다.

    현성은 계속해서 빨강이에게 마력을 넘겨주며 몬스터를 사냥했다.

    그러다 드디어 용종 몬스터들을 만나게 되었다.

    ‘리자드맨이네.’

    하위 용종이긴 하지만 용종은 용종이다.

    현성이 용왕의 지배력 스킬을 사용해 보았다.

    지배 대상은 리자드맨 열 마리였다.

    용왕의 지배력 스킬로 거듭난 현성의 마력이 리자드맨들을 휘감았다.

    도발 스킬을 듣고 광분해 달려오던 리자드맨들이 그 자리에서 멈췄다.

    ‘효율이 그렇게 좋지는 않네.’

    하위 용종임에도 소모되는 마력이 꽤 큰 느낌이었다.

    현성은 리자드맨 무리 전체에 용왕의 지배력 스킬을 사용했다.

    ‘다른 종의 몬스터들을 죽이고 먹어 치워라.’

    현성의 명령에 리자드맨들이 서로 힘을 합쳐 다른 몬스터들을 공격했다.

    그 후 먹어 치웠다.

    ‘과연 될까?’

    현성은 지금은 본 드래곤이 된 빨강이가 레드 드레이크와 와이번 들에게 했던 일을 리자드맨으로 재연해 볼 생각이었다.

    리자드맨들의 마력이 꾸역꾸역 늘어났다.

    문제는 마력의 흐름이 상당히 불안정하다는 점이었다.

    엉성하게 만든 골조에 시멘트를 붓고 억지로 완성시키는 느낌이랄까?

    ‘이건 딱 봐도 부실 공사잖아.’

    현성에게 달려들며 자폭했던 전설 등급 몬스터 세 마리는 전설 등급 아이템을 단 하나도 뱉어 내지 않았다.

    그 이유를 이제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너무 불안정해.’

    -캬아아앙!

    그때 리자드맨 한 마리가 영웅 등급 몬스터로 성장했다.

    덩치가 더 커졌다.

    힘도 강해졌고 속도도 빨라졌다.

    하지만 정상적인 영웅 등급 몬스터보다는 약해 보였다.

    결정적으로…….

    ‘일회용으로밖에 못 쓰겠네.’

    부실 공사로 만든 건물은 오래가지 못하는 법이다.

    단시간에 육체가 감당하기 힘든 마력을 흡수해 영웅 등급으로 승급한 리자드맨 역시 마찬가지였다.

    ‘얼마 못 가겠어.’

    몸이 금방이라도 깨질 유리그릇처럼 위태로웠다.

    꽈아아아앙!

    결국 영웅 등급으로 승급한 리자드맨이 몸 내부의 마력을 제어하지 못해 그대로 폭발해 버렸다.

    현성의 예상대로 얼마가지 못하고 스스로 자멸해 버린 것이다.

    현성은 다른 리자드맨들을 가지고 테스트를 했다.

    아예 영웅 등급으로의 승급 자체에 실패해 자멸해 버리는 개체도 있었고, 승급 후 꽤 오래 버티는 개체도 있었다.

    ‘본판이 어느 정도 상위 등급에 근접했느냐가 관건이네.’

    어느새 리자드맨들이 전멸해 버렸다.

    ‘다음에는 드레이크나 와이번으로 해 봐야겠다.’

    영웅 등급 용종 몬스터를 지배하는 데 드는 마력을 측정해야 했다.

    현성은 두 마리의 본 드래곤을 이끌고 몬스터들을 쓸어버렸다.

    그리고 빨강이를 강화하면서 일반, 희귀, 영웅 등급 용종 몬스터를 이용해 여러 가지 테스트를 했다.

    결과는 생각보다 효율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용왕의 지배력 스킬을 쓰느니 그냥 내가 쓸어버리는 게 더 빠르겠네.’

    용종 몬스터를 지배해 병사로 사용해 적을 공격하는 건 효율이 너무 안 좋았다.

    그럴 마력이면 차라리 현성이 직접 몬스터들을 쓸어버리는 게 나았다.

    몬스터를 병사로 사용한다는 점이 이점이기는 했지만, 현성의 입장에서는 종의 제한이 없는 망자의 부활 스킬을 사용해 언데드 몬스터로 부리는 게 더 편했다.

    ‘상당히 애매한 스킬이네.’

    하지만 마력이 계속해서 보충되는 장기전에서라면 어느 정도 써먹을 여지가 있었다.

    또 강제 승급의 경우는 확실히 일시적으로나마 큰 전력이 되어 줄 수 있었다.

    ‘용왕의 지배력은 이쯤 하고.’

    이제 신화 등급으로 새롭게 태어난 용혈검을 테스트해 볼 때였다.

    당연히 테스트 대상은 용종 몬스터들이었다.

    타악!

    현성이 빨강이의 머리에서 뛰어내려 쌍두사 무리가 있는 곳으로 뛰어들었다.

    쌍두사는 몸길이가 10미터가 넘는, 머리가 두 개 달린 뱀이다.

    영웅 등급 몬스터로 용혈검의 성능을 확인하기에는 제격이었다.

    현성이 용혈검을 휘둘러 쌍두사들을 베어 넘겼다.

    쌍두사들이 무더기로 죽어 나갔다.

    한데 전과 다른 한 가지 차이가 있었다.

    화르르르륵!

    현성이 마력을 주입하자 용혈검이 붉은 불꽃에 휩싸였다.

    그리고 붉은 불꽃에 휩싸인 용혈검을 휘두르면…….

    화르르르륵!

    용혈검에서 피어난 불길이 몬스터들의 피와 살을 불태웠다.

    ‘마력과 체력이 회복된다.’

    용혈검은 용종의 피를 흡수해 성장한다.

    한데 화염 속성이 생긴 이후에는 적을 불태워 현성의 마력과 체력을 회복시켜 줬다.

    ‘좋은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용혈검에 마력을 부여한 상태에서 쌍두사들의 피로 용의 혈조와 용의 혈갑을 사용했다.

    화르르르륵!

    쌍두사들의 피로 이루어진 용의 혈조가 화염에 휩싸였다.

    용의 혈갑 역시 마찬가지였다.

    용의 혈조와 용의 혈갑은 쌍두사들의 피를 연료로 강렬한 불길은 내뿜었다.

    ‘좋아.’

    용혈검이 강해지고 내장되어 있던 스킬이 더 강화되었다.

    ‘역시 신화 등급이 좋기는 좋구나.’

    속성 하나가 추가되었을 뿐인데 용혈검의 효용성이 대폭 올라갔다.

    ‘자, 그럼 이제 마지막으로 하나만 남았나?’

    의도적으로 가장 마지막으로 테스트를 미뤘다.

    현성이 가장 걱정한 스킬.

    도대체 무엇을 대가로 스킬을 구현시키는지 알 수 없는 스킬.

    바로 용인화였다.

    ‘생명력이 정확히 뭘 뜻하는 건지 확인해 봐야지.’

    확률은 낮지만 체력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수명일 확률이 높겠지.’

    인간은 생명력이 바닥나면 죽는다.

    아니,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는 생명력이 바닥나면 죽는다.

    그렇다면 용인화 스킬이 말하는 생명력은 각 개체가 가진 수명일 확률이 높다.

    다른 플레이어가 용인화 스킬을 얻었다면 섣불리 테스트를 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스킬을 사용하면 수명이 줄어든다.

    도대체 누가 테스트를 위해 자신의 수명을 소모하겠는가?

    하지만 현성은 아니었다.

    ‘포인트가 소모될 확률이 높아.’

    현성은 1레벨 플레이어다.

    자신의 수명이 얼마나 남았는지 초 단위로 확인할 수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자신의 수명을 늘릴 수 있다.

    ‘한번 해 보자.’

    마음을 굳게 먹은 현성이 용인화 스킬을 사용했다.

    우득! 우득!

    스킬을 시전하기 무섭게 뼈가 뒤틀리고 살이 찢어졌다.

    입에서 칼날 같은 이빨이 돋아났고 이마와 등에서는 날카로운 뿔이 솟아났다.

    현성의 피부에서 자라난 붉은 비늘이 전신을 뒤덮었다.

    좌악!

    등 뒤에서는 세 쌍의 날개가 모습을 드러냈고 꼬리뼈가 자라나 기다란 꼬리를 만들어 냈다.

    -크후후후!

    용인으로 변한 현성이 긴 숨을 토해 냈다.

    현성의 숨결을 따라 흘러나온 마력이 작은 화염으로 변했다.

    ‘이거 상당히 위험한데.’

    힘이 넘쳐흘렀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인간의 감각으로는 느끼지 못했던 여러 정보들이 물밀듯이 밀려들어 왔다.

    결정적으로…….

    ‘죽이고 싶다.’

    마치 저주 스킬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살육에 대한 욕구가 치솟아 올랐다.

    -크르르르르!

    맹수가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현성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패시브 스킬 굴하지 않는 정신이 발동합니다.

    -패시브 스킬 꺾이지 않는 신념이 발동합니다.

    -패시브 스킬 불타는 투지가 발동합니다.

    ……후략……

    정신계 방어 스킬들이 일제히 발동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살육에 대한 욕구를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잘못하면 정신 줄을 놓을 수도 있겠어.’

    정신계 스킬의 도움이 없었다면 정말 정신 줄을 놓았을 수도 있다.

    용인화는 현성에게 강한 힘과 몬스터의 본능을 선물해 주었다.

    대신 그 대가로 냉철한 이성을 빼앗아 갔다.

    ‘확인부터 하자.’

    현성이 상태창을 열어 남은 포인트를 확인했다.

    ‘역시.’

    현성의 예상이 맞았다.

    포인트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었다.

    용인화의 대가는 역시 시전자의 수명.

    즉, 현성에게 있어서는 포인트였다.

    ‘이것도 효율이 좋지는 않네.’

    포인트가 줄어드는 속도가 무척 빨랐다.

    ‘일단 테스트는 이 정도에서.’

    현성이 용인화 스킬을 해제했다.

    우득! 우득!

    커진 골격이 다시 작아졌다.

    몸을 뒤덮고 있던 붉은 비늘이 자취를 감쳤다.

    등 뒤로 돋아났던 날개가 사라졌고, 몸에 돋아난 뿔과 입안에 자리했던 날카로운 이빨도 모습을 감췄다.

    “휴우!”

    현성이 긴 한숨을 토해 냈다.

    몬스터의 본능은 제어하기가 어려웠다.

    전투 중에 사용한다면 몬스터의 본능에 취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화 등급 정신계 방어 스킬을 구입해야겠어. 아니, 일단 급한 대로 준신화 등급이라도 구입해야겠어.’

    현성은 이미 많은 정신계 스킬을 익히고 있었다.

    하지만 신화 등급 스킬의 부작용을 감당하기에는 무리였다.

    신화 등급 스킬의 부작용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동급의 신화 등급 정신계 방어 스킬이 필요했다.

    하지만 당장은 포인트가 부족했다.

    ‘진짜 이놈의 포인트는 넉넉할 때가 없네.’

    마신의 갑주 세트 구입이 좀 더 뒤로 미뤄질 것 같았다.

    * * *

    현성은 한동안 파르티샤의 차원에 머물렀다.

    빨강이를 완성시키기 위해서였다.

    준신화 등급 정신 방어 계열 스킬북을 구입해 익힌 후 사냥 도중 몇 번 더 용인화 스킬을 테스트해 봤다.

    -콰콰콰콰콰콰!

    용인으로 변한 현성의 입에서 화염 브레스가 뿜어져 나왔다.

    마력 소모가 꽤 크기는 했지만 위력은 상당히 강력했다.

    특히 화염의 서와의 궁합이 상당히 좋았다.

    ‘이 정도면 신화 등급 공격 스킬 하나를 공짜로 얻은 격이네.’

    용인의 화염 브레스는 그 정도로 강력했다.

    ‘단순히 스텟만 오르는 게 아니야.’

    용인의 감각을 얻었다.

    현성의 전신을 뒤덮은 붉은빛 비늘은 물리 저항력과 스킬 저항력을 올려 줬다.

    세 쌍의 날개는 스킬의 도움 없이 자유롭게 하늘을 유영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문제는 이 힘을 제어하는 것이다.

    준신화 등급 정신 방어 계열 스킬을 익히니 전보다 좀 더 나아지기는 했다.

    하지만 완벽하지는 않았다.

    ‘당분간은 봉인해야겠네.’

    주인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칼은 없는 것만 못했다.

    특히 용인화 스킬은 마력 대신 포인트를 소모한다.

    용인화 스킬을 사용한 상태에서 상태 이상 디버프를 가진 다른 패시브 스킬까지 발동한다면?

    현성이 광기에 잠식당해 완전히 이성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그러면 포인트가 모두 소모될 때까지 싸우다 죽는 괴물이 되어 버릴 수도 있다.

    ‘천천히 익숙해지자.’

    용인화 스킬은 완전히 컨트롤할 수 있을 때 사용해야 했다.

    완벽한 컨트롤이 가능해지면 수인화 스킬의 일종이라고 둘러대고 사용하면 그만이다.

    ‘이제 그만 돌아가야겠어.’

    너무 오랜 시간 지구를 떠나 있었다.

    루시아와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받기는 했지만, 슬슬 돌아가야 할 때였다.

    ‘진짜 오래 걸렸네.’

    현성이 흐뭇한 표정으로 바닥을 탁탁 쳤다.

    -크르르릉!

    현성에게 머리를 얻어맞은 붉은빛 뼈로 이루어진 거대한 본 드래곤이 나직하게 으르렁거렸다.

    빨강이였다.

    빨강이는 전과 달리 힘이 넘쳐흘렀다.

    몸을 구성하는 뼈는 더 단단해졌고 전신에 강대한 마력이 넘쳐흘렀다.

    빨강이가 드디어 완성된 것이다.

    빨강이는 신화 등급 몬스터를 재료로 만든 언데드 몬스터답게 마력을 엄청나게 많이 처먹었다.

    중간에 전설 등급 몬스터 두 마리를 발견해 사냥했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더 늦어질 뻔했다.

    ‘문제는 자연적으로 소모되는 마력도 꽤 크다는 건데.’

    그래도 워낙 보유한 마력이 많다 보니 완전히 소모되기까지는 꽤 긴 시간이 걸렸다.

    ‘어차피 사냥은 매일 나갈 거니까.’

    매일매일 마력을 보충해 주면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들어가.’

    현성이 아공간을 활짝 열었다.

    -크르르릉!

    빨강이가 얌전히 아공간으로 들어갔다.

    ‘이제 가자.’

    현성이 용병 고용을 해제하고 지구로 귀환했다.

    * * *

    지구에 도착한 현성은 일단 게임 시스템 서버를 점검한 후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고 이모탈 길드로 향했다.

    ‘꽤 쓸 만한 게 나왔어.’

    현무의 등껍질로 만든 아이템은 대부분이 방어구였다.

    전설 등급 몬스터의 사체를 재료로 만들어서 그런지 영웅 등급 아이템치고는 방어력이 상당히 좋았다.

    ‘1기 척살단원들한테 주면 딱이겠어.’

    현성의 제안을 받아들여 척살대에 들어왔던 저레벨 플레이어들은 현재 고레벨 플레이어들이 되어 있었다.

    현무의 등껍질로 만든 방어구는 그들을 위한 선물이었다.

    ‘어차피 돈은 많아.’

    굳이 현무 등껍질로 만든 방어구를 팔아 돈을 벌 필요가 없었다.

    포인트도 많았다.

    전자 제품, DVD, 이북, 게임 등등의 문화 상품들이 지속적으로 포인트를 벌어들이고 있었다.

    현성은 전략 무기인 아이템을 시스템 상점에 팔 생각이 없었다.

    ‘아이템은 무조건 플레이어들에게 뿌린다.’

    아이템들은 현성의 휘하 플레이어들을 강화시켜 줄 것이다.

    그들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현성의 세력이 강대해진다.

    현성의 세력이 강대해지면?

    지구의 안전이 올라간다.

    현성에게는 스스로의 생존과 지구의 안전이 최우선 과제였다.

    현성이 이모탈 길드에 도착했다.

    “어서 오십시오, 자문위원장님.”

    강선영 길드장이 웃는 얼굴로 현성을 반겼다.

    “길드 운영에 문제는 없으시죠?”

    현성의 말에 강선영 길드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이모탈 길드는 현성의 부재에도 잘 돌아가고 있었다.

    길드원은 꾸준히 늘어났고 벌어들이는 수입과 영향력도 나날이 확대되고 있었다.

    전설 등급 아이템 경매를 다시 열어 달라는 성화와 차원 게이트 조기 감지 장치 선점을 위한 로비 등등이 있었지만, 그건 강선영 길드장 선에서 정리가 가능했다.

    “한동안 전설 등급 아이템 경매가 뜸했죠?”

    현성이 전설 등급 아이템을 가지고 오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경매를 다시 여실 생각이십니까?”

    강선영 길드장의 물음에 현성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번에 물량을 좀 확보해서요.”

    “그럼 바로 준비시키겠습니다.”

    강선영 길드장이 환한 얼굴로 대답했다.

    “또 하나 더 드릴 게 있습니다.”

    현성이 아공간에서 현무의 등껍질로 만든 아이템 하나를 꺼냈다.

    “1기 척살대원들에게 지급할 방어구입니다.”

    강선영 길드장이 방어구를 받아 들고 옵션을 확인했다.

    “영웅 등급 방어구 중에서는 최상품이군요.”

    “수량은 1기 척살대원 전원에게 지급하고도 남을 만큼 있습니다. 그들에게 우선 지급해 주시고 남는 물량은 2기 척살대원들 중 성장 속도가 가장 빠른 이들에게 지급해 주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현성은 그 외에도 이런저런 지시를 내렸다.

    강선영 길드장은 열심히 현성의 지시 사항을 받아 적었다.

    현성의 말이 다 끝났을 무렵 강선영 길드장이 입을 열었다.

    “정부가 눈먼 돈에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현성의 눈이 번뜩였다.

    똥개가 똥을 끊을 수는 없는 법이다.

    역시 현성의 예상대로 정치인들이 구린 짓을 했다.

    “증거 자료는 수집하셨습니까?”

    “정보 요원들을 동원해 수집 중입니다.”

    이모탈 길드의 정보 요원들은 전원 사이코 메트리 스킬을 익히고 있었다.

    아무리 비밀스럽게 자금을 빼돌려도 정보 요원들의 눈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아직 한창 빼돌리는 중이겠군요.”

    “예, 그렇습니다.”

    “정보 수집이 완료되면 알려 주세요.”

    털려면 한 번에 털어야 했다.

    괜히 설레발치다가는 몸통을 놓칠 수도 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강선영 길드장의 대답을 들은 현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모탈 길드에서 해야 할 일이 끝났으니 이제 다음 일을 처리해야 했다.

    * * *

    이모탈 길드를 빠져나온 현성은 이누쿠소에게 전화를 걸어 일본의 상황을 점검했다.

    일본은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사실 정권 자체를 인류의 수호신교가 장악하고 있으니 큰 문제가 있을 리가 없었다.

    소말리아도 순조로웠다.

    소말리아의 군벌들은 빠른 속도로 비리를 척결했다.

    그 후 연방제를 폐지하고 다시 하나의 국가로 거듭났다.

    물론 꽤 많은 진통이 있었다.

    부패한 수하들이 쿠데타를 일으킨 경우도 있었고 새로운 군벌이 생겨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 순식간에 진압되었다.

    소말리아 군벌의 수장들은 자국 최고의 플레이어들이다.

    그런 이들이 하나로 뭉쳤으니 무력에서 당해 낼 수가 없었다.

    마지막 점검 대상은 중국의 마분석이었다.

    한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뭐?”

    -반대 파벌이 생겼습니다.

    마분석의 말에 현성은 어이가 없었다.

    “중국은 일당독재 아니냐?”

    -맞습니다. 그런데 당 내부에서 반대 파벌이 생겼습니다.

    “왜?”

    마분석은 나름 중국이라는 나라를 잘 이끌어 나갔다.

    현성이 권력을 잡게 도와줬고 본인도 나름 수완이 있었다.

    -중국 국민들이 최근 들어 많은 자괴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자괴감?”

    -제가 정권을 잡고 한 일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한국에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배상하고, 문화재 반납하고 대여료 지급하고, 한국 기업 제재 풀어 주고, 한국 미세먼지 사과하고 공장에 유해 물질 차단하는 특수 필터 설치 의무화하고 배상하고…….

    “그건 당연히 해야 하는 거잖아.”

    원인 제공자가 사과하는 건 상식적으로 당연한 일이었다.

    자기들이 테러를 했으니 사과하는 게 맞았다.

    문화재 훔쳐 갔으니 반납하는 게 맞았다.

    황당한 제재는 풀어야 했다.

    넘어오는 미세먼지?

    그건 당사자가 해결해야 할 일 아니겠는가?

    중국 때문에 피해를 본 한국에 대한 배상도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다.

    -중국 국민들은 강한 중국을 원합니다.

    중국은 G2라고 불릴 정도로 경제가 급성장한 국가다.

    특히 대격변 이후 그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플레이어는 각 국가의 국력을 상징하는 척도였다.

    단순히 전투력이 높은 군인으로서의 활용성만 있는 것이 아니다.

    플레이어는 던전에서 마석과 아이템을 채굴하는 광부였다.

    차원 게이트의 등장과 몬스터 웨이브 발생 시 국가의 치안을 책임지는 경찰 역할도 했다.

    많은 플레이어 숫자로 인해 중국은 엄청난 성장세를 이어 갔다.

    한데 현성이 등장한 이후 그 성장세가 주춤했다.

    -많은 중국인들이 한국에게 너무 저자세를 보인다며 저를 맹비난하고 있습니다.

    “미친.”

    한국에게 저자세를 보이는 것은 중국만이 아니다.

    미국과 러시아를 포함해 세계 강국들이 모두 한국의 눈치를 보고 있다.

    뭐,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한국에 있는 현성의 눈치를 보고 있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사과도 하고 배상금도 주고 하는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강국의 국민들은 그걸 당연하게 납득했다.

    오히려 현성과 더 강한 친분을 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게 자국에 이익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현성의 반대 세력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상당히 미미했다.

    한데 중국은 그 규모 자체가 달랐다.

    -국민들이 지지를 받고 세력을 키우다 보니 저도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국민들이 돌아섰다.

    중국공산당이 두 개의 파벌로 나뉘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자각한 현성이 인터넷으로 중국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그러다 몇 가지 이상한 기사들을 발견했다.

    “너 뒤에서 헛수작 부리다가 걸렸냐?”

    -…….

    현성의 물음에 마분석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권력 욕심이 강한 마분석이 이런 사태를 방치했을 리 만무했다.

    당연히 무력으로 자신을 반대하는 파벌을 진압하려고 했다.

    정보를 수집해 자신에게 적대적인 국민들을 탄압하고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이들에게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뒤집어씌워 체포했다.

    한데 이런 모습이 오히려 역효과를 가지고 왔다.

    무력 제압은 실패했고 없는 죄를 뒤집어씌운 체포 행위가 국민들에게 알려졌다.

    그 결과 더 많은 중국인들이 마분석에게 등을 돌렸다.

    독재자 마분석을 몰아내자는 구호가 공공연하게 들려올 정도였다.

    “하아!”

    현성의 입에서 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 무식한 새끼.”

    타국의 사례를 예로 들며 국민들을 설득할 생각을 했어야 했다.

    한데 강제로 찍어 누르려다 오히려 사태만 커졌다.

    절대 권력을 쥐고 시황제라고까지 불렸던 마분석의 권위에 금이 갔다.

    “실각당할 정도는 아니겠지?”

    -물론입니다. 주도권은 제가 꽉 쥐고 있습니다.

    반대 파벌이 생기고 등을 돌린 국민들이 생겼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마분석을 따르는 파벌의 힘이 더 강했고, 마분석을 지지하는 국민들의 숫자가 더 많았다.

    “타국 상황을 설명하고 국민들을 잘 달래 봐. 더 이상 강압적인 방법은 쓰지 말고.”

    -그렇게 하겠습니다.

    현성이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이건 현성이 어떻게 개입할 방법이 없었다.

    이번 사태는 무조건 중국이 최고라는 중국인들의 비이성적인 생각과 마분석의 실책이 버무려진 결과였다.

    ‘전문가들을 보내 놨으니까 어느 정도 수습은 할 수 있겠지.’

    지금으로서는 중국 정계에 파고든 인류의 수호신교도들이 잘해 주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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